모두들 주지하다시피 객의 태실 합천은 눈이 참으로 귀한 곳이다.
이제는 나이탓에 점점 아슴 아슴해져가는 유년의 기억을 되돌려
봐도 남들 다 하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던 추억은 약에
쓸려고 해도 찾아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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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재.
미상불 중놈 상투나 처녀 불알 만큼이나 귀하고 귀했던 눈이 작년
세모에 슬쩍 곁맛을 보이는가 하더니 그저께는 발목이 푹신 할만치
본때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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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봉.
거시기 위쪽의 미터급 폭설에는 조족지혈의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만산편야한 설경의 운치에 자못 흐뭇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흔히 얘기하는 강원도 면허증을 갖추지 못한 대부분의 갱상도
운전자들은 설경을 감상할 틈도 없이 여기서 뻥 저기서 뻥, 뻥뻥거리며
터지는 사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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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봉 아래의 너덜길.
그러나 인생사 세옹지마요, 그늘이 짙으면 햇살은 더 찬란한 법.
자동차 정비 공장은 소지황금출의 희망에 부풀어 더욱 더 눈이
쏟아지길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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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 덕룡 능선.
안타까운 소식도 잇따른다.
운전을 업으로 삼는 남편이 눈길 사고를 당해 그만 허망히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단다.
멀리 남만(베트남)에서 시집 온 이제 갓 스물의 새댁은 우리말을 몰라
눈만 껌뻑이다 어떤 다문화 가정의 통역으로 천붕을 알고는 그대로 실신해
주위를 눈물 바다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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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초님 부인인듯.
또 어떤집은 남편이 흰손 클럽의 간부로 무위도식 하는 통에 아내가
어렵게 가계를 꾸려 갔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만 사고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젊은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보다 사후 수여받을 보험금에
더 뒷말이 무성한겄이 참으로 목불인견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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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봉 통천문.
아내가 돌아왔다.
교통 사고로 근 달포를 입원해 서방눔을 애달구던 아내가 마침내
흰눈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입원 하던날 환자복이 잘 어울린다는 서방눔의 썰렁한 농담에
말없이 미소짓다가 밤늦게 서방과 딸년들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저 혼자 눈물이 그렁 그렁하던 아내가 우리곁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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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봉에서 본 가련봉.
20년을 한이불 속에서 뒹굴어 이젠 좀 떨어져 있어도 괜찮으려니 생각
했는데 그게 만만치가 않았다.
쥐구멍과 견주어도 그리 넓지 않은 코딱지만한 집안이 아내의 빈자리에
드넓은 만주 벌판 만큼이나 휑하고 허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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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리 앞바다.
딸년들이 입성과 먹성 수발을 드노라 하건마는 두딸년의 공궤가 어찌나
낯설던지 마치 남의 집에 앉은듯 좌불안석으로 돌아친다.
침실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아내의 잠투세가 없는 잠자리는 웬지 미진하고
허전해 괜히 안팎으로 쏘다니니 큰딸이 자기랑 같이 자자며 손목을 잡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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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재에서 본 가련봉과 두륜봉.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자 객의 무능함이 흥부네 지붕에 비새듯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해산한 쥐 쏘다니듯 바쁜 두딸년들은 객이 퇴근해 오면 벌써 종적이
묘연해 어데 밥 구걸할데가 제일로 난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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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제일경 구름다리.
처음엔 객의 유일한 비장의 요리술 라면으로 그럭저럭 허기를
끄곤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엔 죽을 맛이였다.
별수 없이 상추밭에 똥싼 개모양으로 아내 옆에 빌빌거리면
아내는 병원 근처 식당으로 데려가 밥을 사 멕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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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봉의 두 신선(삿갓님,김이사님)
결국 아내는 병원에서 조차 서방눔한테 자유롭지 못한 것이였다.
빨래가 어떻고 공과금이 어떻고 애들의 학원비 형편에 아파트 모임,
거의 재앙 수준의 일상이 객을 기다리고 있는데 객은 일일이 아내에게
전화로 결제를 받아야 하니 이래저래 아내의 퇴원만 목매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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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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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과 도솔봉.
설상가상으로 객의 모친도 빙판에 미끄러져 손목 골절로 입원하시니
두병원을 왔다갔다 하는 객의 심정은 화로 위에 엿을 올려 놓은듯
마음만 바쁘고 아내는 아내대로 죄인이 되어 면목 없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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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능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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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과 지릿재님.
설날이 되어 모다들 설을 쇠러 집으로 가고 아내가 있는 병실은 혼자
동그마니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텅빈 집에서 홀애비 냄새 풀풀 거리느니 아내란 같이 있는게 한결 나으리란
판단에 아예 병실로 이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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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리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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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우타!!
빈 병실 침대 하나를 도차지 하고 수건이랑 칫솔도 구비하고 보는 책도
몇권 가져다 놓고 마눌 치매 예방 뿌루젝트의 일환으로 양놈 기계(카드)
도 한벌 들여다 놓았다.
염치없는 부부는 마치 신접 살림을 차릴때처럼 희희낙낙 기분을 내며
날뛰고 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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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과 대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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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마음.
병원 간호사들의 눈치밥 속에서도 그때서야 소화가 제대로 되고 잠도
편히 자게 되더라.
이렇게 설 연휴를 오붓이 둘만이 보내고 일주일후 아내는 집으로 환히
웃으며 돌아왔다. 팔불출 남편과 두딸년이 있는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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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끝, 닭골재.
그래 마침내 아내가 돌아왔다.
2011년 2월 16일. 난테 진맹익청정.
첫댓글 퇴원 축하드립니다. 나름 고생을 하셨겟네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고합니다.
잘 모시기 바랍니다.
감사 드리며 즐산 빕니다.
기쁨의 눈물은 흘리지 않으셨나요?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빈자리이었을것입니다.
이제는 꼬~~~옥~~ 오랫동안 곁에 모시 옵소서~~
에고 ,, 완전 팔불출로 인정해 주시니 감사드림니다.
두륜산의 그림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시는데 아내사랑,가족사랑이 철철 넘치네요!!ㅎㅎ
말만 그럴듯 합니다.ㅎㅎ
저런! 곁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단 말씀이군요. 그래도 불행중 다행입니다.
아내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는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고 당해(?)봐야 압니다. ㅎㅎ
암튼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부곡 잘 들었고 그간의 노고에 대해 진심으로 치하(?)를 드립니다.
귀띔이라도 주셨으니 병문안이라도 갔었것을.. 미안한 마음 전합니다. 그리고 정승봉이라고 적은 것은
노승봉의 오타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사진이 웬만한 찍사들 사진 보다 좋은데 우찌된 영문인지?? ^^
아참 맞습니다. 노승봉이고 도솔봉이 아니라 대둔산입니다. 역시 방장님의 혜안에는..... 부끄럽습니다.
퇴원 축하합니다.
교통사고 그거 남의집 일이더니 차가 많아져 그런지 이제는 집집이 내집일이 되었네요.
궁해도 그렇지 딸이 같이 자자고 하도록 티를 내시시나 에구.
그러게 말입니다. 선비는 얼어 죽어도 곁불은 아니 쬐는데 말입니다. 늘 선생님의 즐산빕니다.
그래도 옆에 있는게 낫지요? 큰사고는 아니었는지요 그림보다는 난테님 옆지기님의 상태가 더 궁금합니다,
늦게나마 이렇게 알린것도 다 객이 잘못 한거지요? ㅎㅎㅎ
뭐,, 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우짠지 곁만,,,, 거참,,
그당시 그런 일이 있었군요.
좀 뜸하시드라만, 우야노,? 불행중 다행이라 여기오며 퇴원을 축하드리옵니다.
글이 처음에는 그저 웃음으로 넘길만 혀서,.읽다 보니,,.그기 아이라,..어이쿠 송구스러웠슴다.
빨리 쾌차하시어,..부부의 운을 길이 넘치시길 기원 합니다.
산이 넘 좋네요.
한해액땜은 그렁 저렁 했으니 ,,, 늘 감사드리며 즐산 빕니다.
사모님이 병원에 입원해 정말 고생이 많으셨군요.
홀애비 심정이 단적으로 표현된 글을 읽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난테님! 사진이 많이 짱해진것 같습니다.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셨는지요?
합천에서는 참 먼곳, 두륜산을 다녀오셨네요.
합천뿐만 아니라 경남 전역이 눈구경 하기가 쉽지는 않지요.
얼마전 쉬블링님 산행기를 보니 통영에도 눈이 제법 내렸던데.....
제물출로는 어려워 대구의 땅끝기맥 팀에 끼여 어울렸읍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게 난테님 평소에 옆지기 없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도록 밥도 하고 반찬도 해보고 빨래도 하고 그래야 합니다.
젊은 날 학교 다니고 직장 초기에 자취를 오래해서 그런가 아내 여행가서 며칠 있다와도 별 어려움이 없으니 곰국 한 솥 끓여도 걱정이 없습니다. 자꾸 매달리면 더 튕기는거 옛날 연애할 때 다 겪어봤잖아요. 당당하게 늙어갑시다. ㅎㅎㅎ
정곡을 찌르시매 유구무언 올습니다. 감사드림니다.
저역시 그런 처지에 놓이면 동감하는 심정인데 술술 풀어가는 이야기 보따리가 참 정겹습니다
해마다 진달래 꽃 만발할때면 너무나 황홀한 풍경에 매년 찾는곳인데 벌써부터 올봄이 기다려집니다
카메란 밝기 좋다는 삼성 ex1 인가 봅니다 저같이 무식하고 무거운 카메라 보단 맘도 몸도 홀가분하게 가벼운 카메라가 그리운데
무슨 욕심이 많아선지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ㅎㅎ
역시 낭중지추,,,, 고수님은 뭣이 달라도 ... 늘 즐산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