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나의 붓길이 이 책의 원고칸을 한칸 한칸 메꾸어나가고 있는 절박한 시간 동안 나는 탄핵정국이라고 하는 스트레스에 내내 시달렸다. 3월 5일 밤 드디어 이 책의 원고를 탈고했다. 그리고 연이어 부지런히 교정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닷새 후에 헌재의 판결을 접했다.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헌재 소장권한대행 이정미 재판관의 낭랑한 목소리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사운드 심볼을 내 귓전에 때릴 때 나는 실로 거대한 충격, 아니, 뭐라 할까, 해월 선생이 그리워하던 “다시 개벽”의 갈라짐이라 할까, 나의 존재의 그룬트가 뒤바뀌고 시간의 움직임이 새로운 카이로스를 향해 컨버젼을 일으키는 그런 혁명의 빛줄기가 나의 전신을 전율케 하는 것을 느꼈다.
그 찰나의 직전까지만 해도 무소불위의 권력인 듯이 느껴졌던 거대한 중압체가 그 순간에 쓰레기통의 휴지만도 못한 전혀 무의미한 물체로 그 실체성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멍하게 앉아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제자 오군으로부터였다.
“선생님! 이제 우리도 우리 역사에 대한 진정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미국혁명이나 프랑스대혁명보다도 더 위대한 혁명을 우리 민족이 인류사에 남겼잖아요. 브렉시트로부터 트럼프의 승리까지 전 세계가 정의롭지 못한 이기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을 때 우리 민족만이 정의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잘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겨우 우리 역사의 희망이 보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계속 버팀목이 되어주셔야지요.”
미국혁명은 그것이 근원적으로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혁명이 아니라, 영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독립전쟁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연방파든 비연방파든 “자유”라는 가치에 매달려 있었을 뿐, “평등”이라는 인간세의 가치에 대하여 심오한 고민을 결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인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앞에 “자유”라는 수식어만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회”라는 말은 놓아서는 아니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링컨이 게티스버그연설에서 말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이라는 것은 실제로 사회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는 실제로 아무런 규정성이 없는 추상적 신화용어가 되어버렸고, “의, 에 의한, 을 위한”이라는 것은 듣기 좋은 레토릭이 되고 말았다. 진실로 “의, 에 의한, 을 위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민과 민주는 끊임없이 역동적인 교섭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는 실제로 “자유로운 기업체제”를 위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미국의 민주는 돈이 우선이다. 인간의 평등성에 관한 근본적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비하여 제3신분의 제헌국민의회의 인권선언을 기축으로 긴 시간에 걸쳐 치열하게 진행된 프랑스혁명은 혁명과정 자체 내에 많은 인류정치사의 다양한 패턴들이 집결되는 복잡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자유라는 가치를 상실하지 않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이상을 인간사에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가볍게 처리될 수는 없다.
민주는 자유와 평등을 융합하는 곳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나의 바울연구는 바울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라는 가치와 평등이라는 가치의 융합을 시도한 최초의 혁명적 사상가라는 의미의 지평을 갖고 있다.
나는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나라 민중들과 수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반드시 탄핵은 인용될 것이며, 인용된 후에 새로운 정권의 주체가 될 사람들은 반드시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실천해야 한다고 외쳤다.
1. 남북화해
2. 경제민주화
3. 풍요로운 농촌
이러한 주제는 내가 여기 상설치 않는다. 지금 이 역사의 길목에서 내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당위성은 사드는 결코 이 땅에 배치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런 효용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조국을 또 하나의 대전쟁의 전선으로 만드는 거대음모의 일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현명한 다른 선택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 우리 민족에게는 후천개벽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에 의한 인의”의 새세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가능성에 대하여 보다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세계역사를 포섭하는 넓은 도량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가 과연 우리 역사의 지평 위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 기성종단의 편협한 울타리를 뛰어넘어 우리 민족 전체가 한번 체험해봐야 할 시점이다.
2017년 3월 13일
서울 천산재에서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이 책은 1779년 겨울 천진암 주어사에서 남인 학자들이 모여 천주학에 관한 세미나를 연 이후로 238년이 지난 오늘, 한국인 학자가, 한국인의 심성으로, 한국말의 감성으로, 기독교를 체화하여 그 고뇌의 역정을 토로한 한 보고서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지은이 도올 김용옥은 일찍이 《기독교성서의 이해》, 《요한복음강해》, 《도올의 도마복음 한글역주》(전3권), 《큐복음서》와 같은 풍요로운 저작을 통하여 자신의 신학관을 표명하여 왔습니다. 그것은 주로 “역사적 예수”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서는 바울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창시자로서의 바울을 말하지 않고, 적나라한 한 인간 바울을 말합니다. 바울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무슨 생각을 한 사람인가? 과연 뭘 위해서 산 사람인가? 그가 진실로 노린 것이 무엇인가? 정녕 예수와 바울을 대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바울이 단순한 예수의 이방인 사도일까?
이 책을 통하여 여태까지 한국 지식인들이 접할 수 없었던 수없이 많은 세계 신학계 아방가르드의 성취와 고뇌를 충격적으로 해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신앙의 해체와 구성을 동시에 선사할 것입니다
목차
저자서문 13
입오入悟―구약의 세계, 신약의 세계, 나의 탐색역정
바울과의 해후 17
낙향, 삶의 최초의 좌절 19
천안 대흥동 231번지 바이블 클래스 21
함석헌 선생과 나의 장형 김용준 22
교학상장, 눈물겨운 새벽강론 25
허혁 선생님, 불트만과의 만남 27
예수가 유대인일까? 29
이스라엘왕국과 유다왕국 31
북조와 남조의 멸망 34
바빌론 유수의 실상 37
메시아 고레스의 등장 41
바빌론이라는 원점 43
계약의 구체적 의미 45
이스라엘민족과 유일신관 47
스피노자의 신즉자연론, 헤노테이즘, 모노래트리 52
유일신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관계의 계약이 있을 뿐 54
비브리칼 히스토리는 역사가 아니다 56
유일신관의 채택: 바빌론 원점의 정치적 전략 59
텅 빈 예루살렘과 토라의 출현 61
E문서, J문서, P문서, D문서 66
근동문명의 총화로서의 바빌론과 유대전승 68
바빌론 유대인 지도자들의 문제의식:반복되는 이야기 패턴 70
바빌론유수와 시온주의, 그리고 예루살렘 74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한다 75
바빌로니아제국과 아캐메니드제국 77
바빌론유수 생존전략: 예레미야의 권고 82
칼 맑스의 유대인 문제 88
고레스 칙령 이후의 유대인들의 행방 90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대제 92
페르시아제국의 쇠퇴와 아테네의 흥기 95
델로스동맹과 페리클레스의 등장 99
페리클레스 전성시기와 데모크라티아 104
뮈토스와 로고스, 듣는 문명과 보는 문명 108
페리클레스의 죽음 110
아리스토파네스의 섹스파업 111
소피스트의 시대 115
디오니소스 축제, 희랍비극의 주제 119
희랍비극이 말하는 운명이란 무엇인가? 123
소크라테스의 죽음 126
소크라테스, 과연 그는 누구인가? 129
소크라테스가 살었던 시대 132
소크라테스 재판의 정치사적 맥락 138
소크라테스는 과연 반민주주의 사상가인가? 143
크세노폰이 기술하는 소크라테스 145
소크라테스 최후진술의 허구성 150
등에와 무지의 자각 153
법정죄목에 숨어있는 소크라테스의 진실 156
공자의 앎과 소크라테스의 앎 158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160
예수와 소크라테스 164
예수, 과연 그는 누구인가? 166
입오의 줄거리 168
바울의 예수, 야고보의 예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170
플라톤이라는 반민주주의 사상가 174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 177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180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183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와 남인 기독교 185
플라톤과 바울 188
알렉산더 대제 이후의 세계,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189
그리심산과 사마리아 정통주의 192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성전파괴, 하스모니아 왕국의 성립 197
역사적 예수의 역사 199
불트만의 비신화화 201
신화란 무엇인가? 205
칼 바르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209
브루탈 팩트 213
불트만의 케리그마 216
예수와 말씀 219
독일어라고 하는 질병, 독일신학의 문제점 221
한국말 신학: 포괄적 인문학지평 225
갈릴리 지평위의 예수 226
나의 최종적 견해 229
바울이냐, 예수냐 234
천안에서 내가 만난 바울 236
바울, 삶의 고뇌 240
바울의 육체 속의 가시, 그 정체 243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245
존재의 겸손, 탄핵의 역정 속에서 248
십자가의 의미 251
나는 종교혁명을 원한다 253
로마서강해The Letter of Paul to the Romans
《롬1:1~7, 인사》, 바울은 누구인가 259
《롬1:8~15, 로마에 가고 싶습니다》 309
《롬1:16~17,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 314
《롬1:18~32, 인간의 타락상》 320
《롬2:1~16,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334
《롬2:17~3:8, 유대인의 문제점》 348
《롬3:9~20, 모두가 죄인이다》 358
《롬3:21~31, 율법에서 믿음으로》 366
《롬4:1~12, 아브라함의 믿음》 384
《롬4:13~25,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인의》 388
《롬5:1~11,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 393
《롬5:12~21, 아담과 그리스도》 399
《롬6:1~14,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지어다》 410
《롬6:15~23, 예속과 자유》 420
《롬7:1~6, 율법의 지배에 대한 혼인의 비유》 424
《롬7:7~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426
《롬8:1~17, 성령이 주시는 생명》 431
《롬8:18~30, 종말론적 영광에 대한 소망》 442
《롬8:31~39, 하나님의 사랑》 446
《롬9:1~18, 나의 동포 이스라엘사람들에 관하여》 448
《롬9:19~33,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하여 긍휼의 그릇으로서 선택된 자》 451
《롬10:1~21, 구원은 만민에게》 454
《롬11:1~36, 이스라엘의 구원과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 457
《롬12:1~21, 몸의 영적 예배》 474
《롬13:1~14, 인간세의 권력Civil Authority에 관하여》 482
《롬14:1~23, 음식문제에 관하여》 492
《롬15:1~33, 스페인을 가고 싶습니다》 502
《롬16:1~27, 문안》 506
탈이고脫而顧 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