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틈새
장마전선이 주춤한 칠월 둘째 토요일이었다. 새벽녘 잠깨어 아침밥을 일찍 들고 산행을 나섰다. 습도가 높은 장마철은 한낮이 되면 기온이 높이 올라가 산행을 나서기 무리다. 그래서 서늘한 아침 서둘러 산에 올라 볕이 나기 전 내려옴이 좋다. 집을 나서니 어둠이 가시지 않아 가로등이 이제 막 꺼져가는 거리였다. 집 앞에서 창원대학을 거쳐 대방동 종점으로 가는 101번을 탔다.
대암고등학교 부근에서 내려 25호국도 대방 나들목에서 대암산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이른 아침인데도 산행을 나선 사람이 간간이 보였다. 등산로 들머리 설치된 운동기구에서 몸을 단련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근래 찾지 않았던 대암산을 오를 요량이었다. 약수터를 지나니 등산로는 녹음이 드리운 숲이라도 가팔라서 숨이 가프고 등허리 땀이 흘렀다. 서둘지 않고 쉬엄쉬엄 올랐다.
남들보다 느긋하게 대암산 정상에 섰다. 운무에 가린 주변 연봉들을 바라보았다. 안민고개 너머 진해바다는 희뿌옇게 보였다. 발아래 굽어보인 창원 시가지도 마찬가지였다. 대방 나들목에서 대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세 갈래다. 나는 수월한 코스를 올라 그 코스로 되돌아 내려왔다. 나머지 두 코스는 가팔라서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제철에 피어난 산나리 꽃을 만났다.
산정에 올랐다 내려오기까진 세 시간 가량 걸렸다. 남들은 두 시간 반이면 될 텐데 나는 시간이 더 걸린 편이다. 비탈진 산길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신경 쓰였다. 워낙 일찍 나선 산행이라 집으로 곧바로 가기엔 점심때도 일렀다. 나는 시내를 관통하는 버스를 타서 동정동에서 북면으로 향하는 버스를 갈아탔다. 승산마을 산기슭 농장을 일구고 사는 지인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손님이 텅 빈 버스는 천주암을 지나 굴현고개를 넘어갔다. 나는 외감마을을 지난 화천리에서 내렸다. 정류소는 막걸리와 두부를 파는 가게가 노점과 이어져 있었다. 등산복 차림에 곡차를 달라하니 주인아주머니는 낮 기온이 만만하지 않으니 산행은 무리일 거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이실직고하길 산행은 새벽녘부터 다녀왔고 근처 지인 농장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화천리에서 지인 농장까지 직선거리로는 그리 멀지 않다. 그런데 꾸불꾸불 산모롱이를 돌아가려면 차로도 비포장이라 불편하고 걸어가도 삼십 분은 족히 걸린다. 농장에 머룰 지인에게 전화를 넣으면 차를 몰아 마중을 나오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뙤약볕 아스팔트길을 얼마간 걷고 논두렁을 탔다. 산기슭 단감과수원 산마루를 넘으니 지인 농장이었다. 인적 드문 외딴 산기슭이었다.
산 고개 넘어 지인 농장에 닿으니 삽살개가 반겨(?)주었다. 처음엔 두어 번 짖어대더니만 금세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아무리 독한 농부일지라도 한낮엔 농사일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지인은 주말이면 매번 잊지 않고 농장을 찾아 일손을 도우는 아우와 함께 등나무 그늘 원두막에서 곡차를 비우고 있었다. 나도 그 아우와 예전 같은 학교 근무한 적 있어 서로는 잘 아는 사이였다.
지인 농장에선 매실나무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심은 블루베리가 제철 과일이었다. 나는 이제 갓 시험 재배포장인 블루베리엔 관심이 적었다. 농막에서 지인과 아우와 더불어 곡차를 들면서 밀려 놓은 화제로 안부를 나누었다. 나는 그새 잠시 막간 틈을 타 텃밭으로 가 고구마 잎줄기와 깻잎을 따 놓았다. 한낮이라 잎줄기가 시들어 갈 때였지만 워낙 토실하게 자라 볕을 이겨내고 남았다.
내가 푸성귀를 뜯고 있을 때 지인의 생질이 방문했다. 여든에 이른 지인 큰누이 아들이니 나이 쉰이 넘어 같이 늙어가는 사이였다. 나는 즉석에서 상추와 풋고추를 따 헹구고 아우는 삼겹살을 구워냈다. 장마 사이 찜통 더위였지만 등나무 그늘 아래 농막엔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났다. 한정된 시간인지라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집에 오니 가지 오이 호박 부추 양배추까지 담겨 있었다. 16.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