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도리
서정길
손주들이 할머니를 부르며 현관문에 들어선다. 아내는 “아이쿠, 내 새끼들 왔구나.” 하면서도 황급히 휴대폰을 가방 속으로 감추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속삭이듯 휴대폰을 어디 두었는지 모른다고 둘러대라 이른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에 들어서기 무섭게 녀석들은 제 할머니에게로 달려가 휴대폰을 내놓으라며 조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언제부터인가 손주들은 할머니 품에 안기기보다 휴대폰을 먼저 찾았고, 할머니와 정해진 시간만큼만 게임을 즐기기로 약속하곤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는 날은 드물었다.
아내는 너스레를 떨며, 휴대폰은 할아버지가 감춰두었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녀석들은 쪼르르 내게 달려와 어디에 두고 왔느냐며 집요하게 캐묻는다. 휴대폰을 성당에 두고 왔다며 오후가 되어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손주들은 하나같이 울상을 지으며 입을 삐쭉거렸다. 문득, 저 어린것들이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일전에 나 역시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마치 세상의 빛을 잃은 듯한 막막함이 밀려왔다. 눈만 뜨면 손이 먼저 기억해 내던 습관처럼, 뉴스나 세상 소식을 확인하던 일상들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것이다. 평소 자주 손길이 닿던 앱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사흘의 기간은 지옥에 머문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하루 중 내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져 있던 시간은 고작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몇 시간뿐이었던 것 같다. 낮에는 일상에 묻혀 잠시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한들, 진짜 문제는 밤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스마트폰은 절친이자 스승이었다. 밀려드는 불안과 허전함을 손바닥 속 기기가 해결해 주었다. 더구나 암 투병 생활은 이를 더 가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사흘이 지나자 놀랍게도 폰 없이도 평온하게 잠이 들기 시작했고, 손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점차 옅어져 갔다. 불편함이 없진 않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애당초 찾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손주들 역시 그러할 터였다. 녀석들은 할머니 집에 오기 전 일주일 동안은 폰 없이도 제법 잘 견뎌내지 않았던가. 결국 문제의 시작은 '할머니 집에 오면 얼마든지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작은 방심을 허락한 어른들에게 있었다. 처음부터 단호하고 분명하게 약속을 받아두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실랑이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 가져다준 이로움이 적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여린 영혼을 잠식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호주와 유럽 등 몇몇 나라가 아이들 손에서 그것을 떼어내려 법까지 만든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라가 나서야 할 만큼 걱정과 우려가 된다는 뜻일 터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법이 손목을 붙잡는다고 한들, 마음까지 붙들 수 있을까. 요즘 학교도 수업 시간만은 폰을 거두어 보지만, 종이 울리기 무섭게 학생들의 손에는 휴대폰이 자리를 지킨다. 도려낸다고 해서 도려내지는 것이 아니었다. 소셜미디어라는 거대한 중독의 늪은 이토록 깊고 넓어, 어설픈 손길로는 아이들을 건져내기 요원해 보였다.
돌이켜보면 길든다는 것은 늘 사소한 곳에서 비롯되었다. 사흘 동안 폰을 잊은 나도, 일주일을 견뎌낸 손주들도, 손에 닿지 않으면 이내 마음에서 멀어지곤 했다. 아무튼 아이들을 수렁의 늪에서 건져 올리는 손길은 차가운 법이 아니라, 눈을 맞추며 온기를 나누는 밥상머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게 거두어 주는 지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엄한 규제보다 먼저가 아닐까.
손주들은 여전히 내 주머니를 뒤지며 휴대폰을 내놓으라고 성화다. 이 순간 귀찮다고 마지못해 내어 준다면, 녀석들은 올 때마다 똑같은 실랑이를 반복할 터였다. 잠시 멈춰 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길인지 생각에 잠긴다. 조금 성가시고 귀찮더라도, 이번만큼은 묵묵히 참아내는 것이 할아버지의 도리일 것만 같다.
첫댓글 회장님 사모님은 손주들께도 인기 만점 할머니시네요. 여러모로 많이 배웁니다.
그 손주들께 게임보다 재미있는 몸으로 노는 법 일러주심 되시겠네요. 그 뜰에서
텐트 치고 수박파티 해 보셔요. 옥상에도
텐트치고 별 세기 해 보시고요. 외할머니 댁의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들어 주셔요.
전 이런 글이 소름 돋게 좋습니다.
이과를 전공해서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제아들이 소박했던 외가가 그립다합니다. 낙동강 줄기 길안천에서 아버지는 수심 염려 되어 한쪽 버드나무에 줄을 묶고 한쪽은 당신이 쥐고 계시고, 제 엄마는 손주들 멱 감는 중간중간 라면 끓여 주시던 시절이 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다 하십디더. 세상이 떠드는 반도체 전쟁터 한복판에 선 아들이 근래 외가가 그립다고 말해 가슴이 먹먹하고 제 눈가가 젖었습니다.
가신지 십년! 새록 그리운 아들의 외조부모를 떠올리게 하는 수필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