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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에 지나치게 집착하시는 분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몸의 모든 것, 아미노산 농도, 혈당, 에너지 연소 메커니즘.....기타등등을 자신이 '이론을 통해', 혹은 약물이나 식사를 통해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지구의 산과 강, 기후와 생태계, 자연의 조화로움을 인간의 힘으로, 토목공사와 과학기술로 모두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던 20세기 전반의 오만한 인간들처럼 말이죠.
우리 몸도 누군가 그 자체가 작은 우주라고 했을 만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정말로 똑똑하고 자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얄팍한 지식 따위로 꼼수를 부려 봤자 쉽게 오락가락하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는 걸 말이죠.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꼼수가 잘 통하지 않고, 심지어 내가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사실 우리 몸은 내가 혈당과 비타민량을 공부하고 아미노산 농도를 따지고 근손실을 걱정하지 않아도 [지가 알아서 잘만] 굴러갑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별의별 설레발을 쳐도, 큰 방향에서 자기 길을 갑니다. 난 운동을 하고 밥과 반찬만 잘 먹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닭가슴살을 갈아서 먹든, 그냥 질겅질겅 씹어먹든 상관이 없고, 운동 후 바로 포도주스와 보충제를 먹든, 느긋하게 집에 들어가 집밥에 달걀프라이를 먹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저기 주워들은 이야기로 별의별 보약에 보양식 다 찾아먹는 사람보다 보양식에 보자도 모르고 탄수화물 단백질이 뭔지 몰라도 삼시세끼 밥에 반찬 골고루 먹는 사람이 더 건강합니다.
자동차를 몰면서 지금 엔진에 몇 CC의 공기가 들어가고 있을지, 몇 마력을 내고 있을지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 만들어 먹고살 것 아니면 핸들조작 잘 하고 악셀과 브레이크, 기어만 잘 쓰고, 기름 떨어지면 넣어주면 됩니다. 가끔 보면 지엽적인 이론에 매몰되어 의미없는 수치에 목숨을 거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봅니다.
혈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혈당이 그렇게 관리하기 쉬운 것이라면, 혈당이 얼마인지 내가 느낌만으로 알 수 있다면 당뇨 환자들이 그리 고생할 일도 없겠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운동하시는 분들이 지쳤거나 힘이 빠졌다는 것을 혈당이 떨어졌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혈당이 떨어지긴 한 걸까요? 아니면 그렇게 혼자 넘겨짚은 걸까요?
1. 운동으로 떨어진 혈당을 보충해준다고라???
운동중에 혈당이 정상치 아래로 떨어져 근손실이 난다는(???)내용을 군데군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정상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혈당은 뇌의 연료이고, 뇌는 혈당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극도로 정밀한 피드백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주변에 당뇨 검사기가 있으면 운동 전 운동 후에 혈당 한 번 재 보세요. 별 차이 없을 테고 도리어 약간 올라갔을(!!!) 수도 있습니다. 운동시 혈당상승은 운동시 땀으로 체수분이 줄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운동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같은 흥분 호르몬이 혈당을 높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운동이 격렬할수록 혈당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당뇨 환자는 격한 운동에 도리어 확 낮아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뇨 환자가 아니시라면 [운동이 끝났더나 혈당이 떨어져.....???]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일반인이 운동 후 힘이 없는 건 혈당이 떨어져서가 아니고 그냥 피로하고 스태미너가 떨어져서입니다.
출처 : DiabetesHealth - Why Does My Sugar Go Up After Exercise? (운동 후엔 왜 혈당이 올라갈까요?)
2. 혈당이 아니면 운동할 때 쓰는 당분은 대체 뭐죠?
놀랍게도(?) 골격근은 혈당을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주 안 쓰지는 않습니다만 혈당은 근육보다는 기본적인 생명반응을 관장하는 뇌나 간 같은 기관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최우선 순위는 뇌죠. 뇌의 기능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몸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혈당치를 사수하려 합니다. 이 역할을 간과 췌장이 맡고 있는데, 혈당이 높아지면 인슐린을 분비해 당분을 세포 내로 끌어들여 혈당을 낮추고, 너무 낮으면 글루카곤이 간 글리코겐을 분해해 혈당을 올립니다.
운동시에 근육에서 쓰는 당분은 대부분 근육 내에 저장된 근 글리코겐입니다. 혈당 유지용 당분창고와 근육의 당분창고를 별도로 관리하는 건 [목숨이 걸린] 혈당이 활동량에 따라 멋대로 들썩거리는 것을 막기 위한 몸의 놀라운 메커니즘입니다.
설사 간 글리코겐이 바닥난 최악의 경우라도 지방이나 단백질을 분해해 당분을 만드는 [당신생]을 해서 죽어라 혈당치를 관리합니다. 왜냐하면 뇌는 혈당 형태로 보내주는 당분이 아니면 입도 안 대는 까다로운 기관이거든요. 그래서 (정말로) 혈당이 떨어지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몸이 처지는 게 아니고 어지럽고 눈앞이 흐려지고 졸립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인지장애입니다. 애석하게도 저혈당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당뇨가 없는 일반인에게 있어 저혈당을 불러오는 건 강한 운동이 아니고 흡수속도가 빠른 다량의 단당류 섭취입니다.
3. 운동 전, 운동 중의 탄수화물과 혈당
식사 직후처럼 혈당치가 '적당히' 높은 상태에선 근육과 뇌에 모두 당분이 평소보다 활발히 공급되기 때문에 신체 컨디션이 일시적으로 좋아집니다. 물론 이 타이밍이 길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공복시에도 운동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운동 전 1시간 정도에 소화가 오래 걸리는 다당류 탄수화물이 든 식사를 하라는 건 짧으나마 최적의 상태에서 운동하려는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운동 직전 식사는 좋지 않습니다. 소화운동에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어 혈당과 무관하게 몸이 처지고 운동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탄수화물은 입-위-장에서 모두 소화가 이루어지는 반면, 단백질은 주로 위에서 소화가 이루어지는만큼 위에 가장 부담을 줍니다.
몇몇 분들은 운동 직전 GI높은 액상의 흡수 빠른 단당류를 먹기도 하는데, 이런 단당류는 혈당을 빨리 올리는 반면 인슐린의 과잉 피드백을 유도해 혈당을 단시간에 빨리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소위 롤링 현상이라고 하죠. 당장은 힘이 날지 몰라도 곧 처지기 때문에 공복에 운동하느니만도 못합니다. 다시 적지만, 저혈당은 운동 때문이 아니고 잘못된 식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라토너들은 시합 직전에는 단당류를 절대 먹지 않습니다. 시합 초반, 몇 십분만에 저혈당이 올 수도 있거든요. 옆은 이전에 한 번 올린 일 있는 그림입니다.
반면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비교적 단시간에 끝나는 운동이라면 운동 직전 단당을 약간 먹는 것도 한 편법이긴 합니다만 역시 미리 다당류를 먹어두고 시작하는만큼은 아니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분들 중에는 '인슐린이 근생성을 자극한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생각해 인슐린이 핏속에 펑펑 넘쳐나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인슐린이 넘쳐나는 건 곧 혈당이 확 떨어질 것이라는 빨간불입니다. (또한 체지방이 쌓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운동중엔 과하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량'의 인슐린이 있어야 기운이 덜어지지 않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으로 돌아가서, 도리어 달리기를 시작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엔 근육세포의 당분 흡수가 인슐린에 [덜 의존적]이 되어 당분 섭취에 의해도 인슐린이 팍팍 올라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그 무렵부터는 중간중간 계속 [소량의] 당류를 보충하죠. 다만 쓸데없이 인슐린을 자극해 확 쏟아져나오지 않도록 아주 조금만 배합합니다. 단순히 혈당을 높이려는 욕심에 인슐린이라는 괴물(?)을 자극했다가는 저혈당으로 뒤통수를 맞기 때문이죠. 말 그대로 영양공급과 혈당충격 사이의 외줄타기입니다.
이만큼 혈당은 전문적인 지식으로도 다루기 힘든, 정말 괴물입니다. 먹는다고 오르고, 안 먹는다고, 혹은 운동한다고 떨어지는 일차원적인 놈이 아니라는 거죠.
4. 운동 후 탄수화물을 먹는 이유
운동 후 탄수화물을 먹는 건 혈당을 올리려는 것이 아니고, 근육이 운동중 소모한 글리코겐을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겁니다. 운동 직후 GI높은 단당류를 먹는다면 혈당과 인슐린이 확 높아지면서 일시적으로 기운이 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잠깐이라는 것이죠. 운동 직후 주스에 단백질 조금 먹고 [영양섭취 끝~] 이 아니고 차라리 다당류를 드시는 게 낫다는 것이고요. 운동 후 맥이 빠져 굳이 단당을 드신다면 그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다당류가 포함된 제대로 된 식사로 몸이 정상적인 회복단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낫습니다.
글리코겐은 운동이 끝나고 2~3시간 정도 지나 안정상태에 접어든 후부터 본격적으로 회복을 시작해 운동강도에 따라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에 걸쳐 천천히 수치를 회복합니다. 이때 탄수화물 공급이 충분치 않으면 몸은 체지방이나 단백질을 분해해서라도 글리코겐을 채울 테니까요.
5. 가짜허기와 혈당
몸에서 혈당이 갑작스레 낮아지거나, 글루카곤이 분비되면서 간 글리코겐이 분해되는 단계가 되면 간에선 [방금 먹은 거 소화 다 됐어요~]라는 신호를 뇌에 보냅니다. 이제부터는 다른 음식을 소화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죠. 받아들인 것을 다 썼다는 게 아니고, 그냥 위가 비었다는 의미입니다. 방금 먹은 것이 공장 라인에서 정제와 가공이 끝나 창고에 들어갔다는 의미이고, 다 팔리려면 아직 멀었죠.
그런데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일시적인 허기를 느끼게 됩니다. 보통 식후 3시간 정도에 사람들은 [특별히 배가 아주 고픈 건 아닌데 뭔가 헛헛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단계를 [가짜 허기] 단계라고 하는데, 진짜로 에너지가 부족해서 음식을 갈구하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보통 한 시간 내외면 저절로 사라집니다. 말 그대로, 그냥 소화 잘 됐다는 통지서죠.
실제 허기와 무관한 이런 [사전 허기]가 있는 이유에 관해서는 인류학자들이 나름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데, 인류 진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 채집 문화에서 식량활동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적응이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머리맡에 항상 먹을 것이 있는 현대와는 달리, 과거엔 힘든 사냥 혹은 채집을 몇 시간에 걸쳐 수행한 후에만 음식이라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나마 나간다고 꼭 먹을 수 있게 된다는 보장도 없었고요. 그러니 정말로 몸이 축축 처질 만큼의 '진짜 허기'가 오기 몇 시간 전에 [지금부터 나가서 다시 음식 좀 찾아봐]라고 알려줄 수단이 필요다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허전한 느낌에 군것질에 손을 대게 되죠. 심하게 비만한 분들은 식사량 자체보다는 이런 [가짜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언가, 특히 혈당을 확 올리는 단음식을 먹게 됩니다. 그렇지만 위에 적었듯, 단음식일수록 그 뒤엔 [가짜허기]가 더 빨리, 더 강하게 오게 되고, 결국 습관성으로 굳어집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께도 [열량과 관계없이 간식 자체를 아예 끊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지금은 방울토마토로 채우는 배를 나중엔 초코바로 채우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 식후 3시간 정도에 이유없는 허기를 느끼는 분이라면 [딱 1시간만 기다리자]며 일단 물만 마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6. 운동과 혈당, 당뇨
그런데 위에 적은 정상적인 혈당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당뇨를 혈당이 높다고만 오해하시는데, 당뇨 환자는 몸의 자연적인 혈당 조절능력이 약해지거나 상실된 경우입니다. 비유하자면 엑셀과 브레이크가 모두 고장나 제멋대로인 자동차입니다. 식사를 하면 혈당이 주체 못 하게 오르고, 반대로 공복이 오래가거나 격한 운동을 하면 순식간에 떨어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엑셀을 까딱 잘못 밟으면 폭주하고, 브레이크를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급정거를 해버리는 셈입니다.
이런 경우 운동으로 인해서도 저혈당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운동의 강도에 신경을 써야 하고, 너무 혈당이 높거나 낮을 때는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당뇨 환자의 운동은 혈당과의 관계를 생각해 세심한 고려가 필요한 것이고요.
당뇨 환자중에는 선천적으로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 인슐린 의존형 1형 당뇨도 있고, 인슐린이 나오긴 하지만 부족하거나 몸에서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인슐린 비의존형 2형 당뇨도 있습니다. 한국인 중에는 이 중간에 걸쳐 있는, '불량인슐린'을 분비하는 소위 1.5형 당뇨도 많고요.
당뇨라 해도 운동을 못 할 이유는 없습니다. 도리어 운동이 인슐린의 활용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보고되고 있고요, 부분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적절한 운동을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당뇨의 양상과 정도에 따라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라지거나, 때로는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내 병이 어떤 상황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죠.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