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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투르크 제국 *연도별 셀주크투르크 제국의 영토
투르크계 왕조(1038∼1194). 10세기말 족장 셀주크는 투르크멘족을 인솔하여 카스피해·아랄해의 북방에서 시르다리야 하구로 이주하여 이슬람화한 투르크인을 모아 세력을 이루었다. 그의 아들 이스라일은 사만왕조·카라한왕조, 이어서 가즈나왕조와 동맹하여 세력을 키웠다. 셀주크의 손자 투그릴 베크·차그리 베크 등은 1038년 네이샤부르에 무혈입성하였고, 1040년 단단칸의 싸움에서 가즈나왕조군을 무찌르고 호라산의 지배권을 얻었다.
1055년 투그릴은 바그다드에 들어가 아바스조 칼리프로부터 처음 공식적으로 술탄 칭호를 받아, 동방이슬람세계의 지배자로서 공인되었다. 다음의 알프아르슬란은 그루지야·시리아로 원정하였고 1071년에는 동아나톨리아의 말라즈기르트에서 비잔틴군을 무찌르고 황제를 포로로 잡았다. 제3대 술탄 말리크 샤시대가 전성기였으며 판도는 시리아·페르시아만에서 호라즘·페르가나에까지 이르렀고 예멘·바레인에도 원정군을 파견했다.
궁정공용어는 페르시아어였으며, 우마르 하이얌 등의 문학가, 가잘리 등의 신학자를 배출했다. 관료는 페르시아인이 등용되었다. 니자미야학원을 창설한 니잠 알 물크가 그 대표적인 존재였으며 그의 일족이 대대로 재상이 되었다. 군대는 초기에는 유목인 투르크멘이 중심이었지만 뒤에 노예병인 굴람(맘루크)이 중용되어 총사령관, 지방총독, 이크타의 보유자, 어린 왕족의 양육담당인 아타 베크 등의 요직을 독점했다. 국토는 왕족간에 분할되어 있었는데 말리크 샤가 죽은 뒤 일족간의 내분이 격화하여 굴람 우대에 불만을 품은 투르크멘도 이에 가담했다.
역대 술탄은 서방으로 진출하려는 적극적 의도는 없었으나 새로 마와라알나르에서 들어온 투르크멘이나 반란에 실패한 왕족들이 신천지를 찾아 아나톨리아로 이동, 룸셀주크왕조와 제후국을 세웠다. 산자르시대에 왕조가 재통일되었으나 서방에서는 아타 베크왕조가 독립하였고, 동부주는 카라 키타이 구즈족의 침입으로 혼란해졌으며 산자르 자신도 구즈의 포로가 되어 술탄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그가 죽은 뒤, 이라크와 케르만에 셀주크가에 의한 지방정권이 남았으나 이라크는 호라즘 샤왕조에 의해, 케르만은 구즈에 의해 멸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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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시아's History 원문보기 글쓴이: 무전신현
첫댓글 셀주크투르크와 고려와의 관계는 뭘까요?
영토확장과정에서 동의 고려와 부딪쳤을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