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비법이 있을 수 없다 네이버블로그/ 글쓰기초보01_ 구체적으로써라
② 보이는 것을 구체적으로 써라 보이지 않는 것에 닿을 수 있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두세 줄밖에 못 쓰고 손을 놓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어떤 주제든 좀 더 자세하게 써보도록 하자. 가장 좋은 방법은 사물을 한 가지 정해서 최대한 정밀하게 묘사해보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연필이라도 좋다.
“연필꽂이에 혼자 툭 튀어나온 연필이 눈에 띈다. 길이는 15센티미터, 두께는 0.4센티미터 정도이고, 육각형 모양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달 베이 블레이드’라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그려져 있다. 아들 녀석이 사용하는 연필인가 보다. 연필 맨 위쪽에 굵은 고딕체로 ‘HB’라고 연필심의 농도가 찍혀있고, 그 아래로는 ‘동아연필’이라고 회사의 로고가 있다. 또 그 아래쪽으로는 ‘필기용 외에는 사용하지 마세요.’라고 적혀있는데, 깨알같이 작은 글씨여서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굳이 왜 이런 문구를 적어넣었을까 싶다. 흑심을 둘러싼 나무 부위가 매끄럽게 깎인 걸 보니 칼로 직접 깎지 않고 연필깎이로 깎은 것 같다. 꽤 오래 사용한 듯 손때가 묻어있다. 무심코 손에 쥐고 곁에 놓인 종이에 내 이름을 몇 번 써보았다. 조금은 투박한 느낌이 들지만, 연필로 글씨를 써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감회가 새롭다. 문득 몽당연필을 볼펜 대에 꽂아서 썼던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난다. 하나하나 정성껏 연필을 깎아서 가지런히 필통에 챙겨 넣던 아침도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썼으며 어떤 가슴을 가지고 살았던가. 기억이 어찌 이리도 새카맣게 지워졌는지 한스러울 지경이다.”
자세하게 쓰는 예를 보여주려고 연필에 대해 즉흥적으로 써 봤다. 사소한 사물을 묘사하는 잠깐 동안에 어린 시절 순수했던 내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무엇 하나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어 안타까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연결될 수 있다. 어떤 주제든 상관없다. 손이 멈추고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무조건 계속 써나가야 한다. 일단 멈추고 나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글을 계속 쓴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쓰라는 말은 글을 쓰는 방법을 논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손을 멈추지 않기 위해, 즉 계속해서 여백을 채우기 위해서다. 생각을 쥐어짜서 쓰려면 골치가 아프고 흥미도 떨어진다. 하지만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쉽고 효과도 크다. 이 또한 내가 경험해본 결과다.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쓰기가 힘들다면 가만히 말로 해보는 것도 괜찮다. 연필을 바라보고 눈에 보이는 대로 중얼거려보자. 그러고 나서 그 중얼거림을 그대로 종이 위에 적는 것이다. 말을 글로 옮길 때 자칫 민망하거나 수치스러울 수 있다. 왠지 글은 말보다는 좀 더 그럴 듯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괜찮다. 나만의 글쓰기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가 절대로 아니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순도 백 퍼센트 나의 글이다. 그러니 아무 염려 말고 써보자.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따위는 개밥에나 말아줘 버리고 있는 그대로 쏟아부으면 된다.
술에 만취하면 구토가 올라온다. 그런데 구토할 때 안주로 먹은 비싼 소고기는 뱉기 아까우니 입안에 남기고, 속이 허할지도 모른다고 밥알을 걸러서 신물만 쪼르륵 뱉어내는 사람이 있을까? 읽자마자 없던 구역질이 다 올라올 것이다. 단언컨대 그런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가리고 계산하며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런 것은 나중에 ‘혼불’이나 ‘토지’ 같은 대작을 쓰게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시라.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나만의 글쓰기는 그저 가슴 깊은 곳에 박혀있는 아픈 가시들을 모조리 캐내어 쏟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그저 쓰고 또 쓰자. < ‘무일푼 막노동꾼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이은대, 슬로래빗, 2018.)’에서 옮겨 적음. (2023. 5.11. 화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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