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립신고(粒粒辛苦)를 직역하면 ‘낟알마다 고생이 어리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곡식 알 알 즉 낟알 하나하나(粒粒)에 지극한 농부의 피땀이 배어있는 결정체(辛苦)’라는 뜻으로 ‘곡식의 소중함’을 이르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은 ‘곡식 한 톨 한 톨에 한결같이 농부의 피땀이 스며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생을 기억하며 곡식을 중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런 수고와 지극정성을 담은 뜻이라는 맥락에서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열성을 다하며 최선을 다하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탐관오리들의 끝없는 수탈을 견뎌내며 살아가야 하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비유할 때도 쓰이고 있다. 이 성어와 조우이다.
유래는 당(唐)나라 시인이었던 이신(李紳)이 지은 ⟨민농(憫農)⟩이라는 시의 한 구절(句節)에서 비롯되었다. 원래는 입립개신고(粒粒皆辛苦)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다 개(皆)’자(字)를 삭제하고 줄여서 입립신고(粒粒辛苦)라고 한다. ⟨민농⟩이라는 시를 중심으로 성어의 생성 과정과 의미 따위를 살핀다.
당나라 중기 사람인 이신은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장적(張籍), 왕건(王建) 등과 신약부운동(新樂府運動)을 했다. 신약부운동이란 일종의 시가(詩歌) 혁신운동으로서 시(詩)로서 사회를 개혁하려 했던 일련의 창작활동을 뜻한다. 이 운동은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문장과 사건에 합당한 시가(詩歌)를 주창하면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노래했다. 한편 신약부(新樂府)란 지난날인 ‘한대(漢代)의 악부(樂府)’에 대응해 새로운 ‘중당시대(中唐時代) 악부’라는 의미로 알려졌다.
이신의 대표작이 ‘고생하는 농민이 가련하다’는 뜻으로 쓴 ⟨민농⟩은 달랑 두 수(首)로서 다음과 같다. 첫 수와 둘째 수의 내용이다.
/ 봄에 한 알의 씨앗을 파종하여(春種一粒粟 : 춘종일입속) /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둔다(秋收萬顆子 : 추수만과자) / 세상에 휴경(休耕)하는 전답(田畓)은 없거늘(四海無閑田 : 사해무한전) / 농부들은 되레 아사(餓死)한다(農夫猶餓死 : 농부유아사) /
/ 김을 매다보니 어느덧 정오(鋤禾日當午 : 서화일당오) / 땀방울(汗滴)이 벼(禾) 아래 흙으로 떨어지누나(汗滴禾下土 : 한적화하토) / 뉘 알까 그릇에 담긴 밥(誰知盤中餐 : 수지반중찬) / 한 알 한 알이 모두 (농부의) 피땀인 것을(粒粒皆辛苦 : 입립개신고) /
위의 시에서 작가는 농부들이 휴경(休耕)하는 땅 없이 알뜰살뜰하게 농사를 지어도 탐관오리들의 온갖 수탈로 백성들은 헐벗거나 굶어죽는 경우가 속출하는 모순된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그러면서 농민들의 노고를 높게 사는 일종의 고발 시이다. 이 시의 두 번 째 수의 마지막에서 입립개신고라는 내용에서 성어가 비롯되었다.
그 옛날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며, 엄연히 문화가 판이해도 사는 형편은 별반 차이가 없었던가 보다. 당나라 이신의 생몰(生沒) 해(780~846)와 고려의 이규보(李奎報)의 생몰 해(1168~1241)를 견줄 때 거의 3백년 가까운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해 당나라 이신에 비해 고려의 이규보가 대략 3백년 늦게 태어났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삶의 형편은 엇비슷했던 것 같다. 그 단적인 예이다. 고려의 문호(文豪)로 알려진 이규보의 시 신곡행(新穀行)이 바로 그 징표이다.
/ 한 알 한 알을 어이 가벼이 여길소냐(一粒一粒安可輕) / 사람이 죽고 삶과 빈부가 달렸거늘(係人生死與富貧 : 계인생사여부빈) / 내가 농부를 부처처럼 존경할지라도(我敬農夫如敬佛 : 아경농부여경불) / 부처도 굶주린 사람은 살리기 어려우리라(佛猶難活已飢人 : 불유난활이기인) /
여기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규보는 사람의 생사와 빈부를 가름할 곡식 낟알 하나하나를 중히 여기며 농부를 존경한다. 그래도 아사(餓死)의 위험에 처한 백성은 구제하기는 매우 어렵고 힘든 문제임을 일갈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옛날 당나라와 오래 뒤인 고려시대의 관념이나 사회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삶에서 뗄 수 없는 요소가 식량이다. 그런 까닭에 유사 이래 어느 민족 어느 국가도 농업은 반드시 필요한 분야였다. 하지만 농부들은 상대적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최근에는 너나없이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오늘날 도시에서 막노동을 해도 주(週) 몇 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으며 알바를 해도 임금은 최저임금제도가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다. 게다가 특별한 국가 재난이 아니라면 5일제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그 외에도 법정 휴가 제도와 월급이라는 정액 보상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농업은 어떤가. 하루 여덟 시간 근무하면 퇴근하고 주말은 쉬고 때가 되면 휴가 떠난다는 사고(思考)는 아예 남의 나라 얘기이다. 풍수해에 농작물이 유실되는 상황에 제 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를 비롯해 수확기를 놓치거나 파종 시기를 놓치면 실농 혹은 폐농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런 까닭에 법정 근무시간, 연장근무, 휴가 따위의 타령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인건비를 못 건져도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다. 이런 때문에 문전옥답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게 마련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대접을 받고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확보된다면 그렇게 이농 행렬에 동참했을 이유가 없다.
하나의 예이다. 적어도 수 천 년 재배해온 쌀 얘기다. 우리의 주식(主食)이었다가 식생활 변화로 애물단지로 전락했지만 그렇다고 거둬치울 수 없다. 흔히들 쌀을 뜻하는 한자(漢字)인 ‘쌀 미(米)’를 파자(破字)하면 ‘팔십팔(八十八)’이 된다고 한다. 이는 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여든여덟 번의 손을 봐야 한다는 뜻이라고 얘기한다는 사실은 농사란 원래 손이 많이 간다는 의미일 게다. 이는 벼농사뿐이 아니라 모든 농사는 끝없이 돌봐야함을 뜻한다는 말일 게다. 이렇게 어렵다고 모든 농민이 손 털고 다른 산업 분야로 이직한다거나 포기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아울러 현재 농업 문제는 농민들 자력으로 해결할 형편이 아니다. 따라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아 어떤 방법과 접근으로 풀어 나가야 농민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심각한 고민이 따르는 난제 중의 난제이다.
(한판암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