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노란봉투법’ 안건조정위 강행처리… 대통령실 “거부권 고려”
환노위 법안소위 의결 이틀만에
與 “무식하게 법 밀어붙여” 반발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가운데)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파업 근로자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 규정 등을 신설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15일 환노위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서 개정안을 의결하자 즉각 안건조정위 회부를 신청했다. 안건조정위는 다수당의 일방적 통과를 막기 위한 제도로, 상임위에서 최장 90일까지 법안을 심사할 수 있도록 했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이 불과 이틀 만에 또다시 강행 처리한 것이다.
이날 민주당 이학영 이수진 전용기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만 참석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적 위원 6명 중 4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 김형동 임이자 의원이 회의를 비공개로 연 야당 방침에 반발해 표결 직전 회의장에서 퇴장한 가운데 회의는 18분 만에 끝났다.
임이자 의원은 “기울어진 운동장임에도 안건조정위를 요청한 건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공개토론을 하자고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렇게 무식하게 법을 밀어붙이는 경우는 없다”고 반발했다. 이수진 의원은 “그동안 수개월에 걸쳐 토론하고 네 차례 소위를 열었지만 국민의힘이 충실히 임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안건조정위에서 조정안이 가결되면 상임위 소위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야당은 21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野, 노란봉투법 18분만에 처리… ‘최장 90일 논의 규정’ 무력화
안건조정위서 강행처리
與 “민노총 청부입법, 법사위서 저지”
野 “토론 불필요, 본회의 직회부 검토”
일부 ‘양곡법 등 패키지 거부권’ 거론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위한, 민노총에 의한, 민노총의 청부 입법이다.”(국민의힘 임이자 의원)
“노동 약자들이 진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일명 ‘홍길동법’이다.”(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민주당이 정의당과 손잡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것을 두고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했다. 15일 소위에 이어 안건조정위마저 90일간 숙의 기간이 보장됨에도 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무력화했다는 것. 회의장에선 고성이 오갔다.
국민의힘은 자당 소속 김도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개정안 처리에 제동을 걸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개정안이 법사위에 장기 계류할 경우 정의당과 함께 본회의 직회부를 밀어붙이겠다는 계획이라 여야 간 충돌이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 대통령실 “尹 거부권 행사에 무게”
민주당이 ‘거대 야당의 폭거’라는 여권의 비판을 무릅쓰고 안건조정위마저 무력화한 것은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 단계까지 이르는 데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 환노위 관계자는 “법사위에서 여당이 개정안을 계류시킬 것이 뻔한데 굳이 상임위 단계에서 시간을 더 끌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어차피 논의된 지 한참 된 법안이기 때문에 여당 주장대로 굳이 공개토론에 나설 이유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정안은 위헌적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라며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법적 권한을 활용해 법사위 심사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더라도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여야 합의 없이 처리한 법안 중 위헌성이 있거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법안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노란봉투법이나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은 거부권 행사를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일부 법안을 묶어 한꺼번에 재의 요구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법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는 의견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재계 “불법 파업 용인, 국가경쟁력 피해”
고용노동부는 21일 예정된 환노위 전체회의 전까지 지속적으로 입법 재고를 요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개정안에 대해 “법치주의와 충돌되는 입법이고 ‘파업 만능주의’로 인해 사회적 갈등만 커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던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회의 하루 전인 20일 세종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재차 밝힐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안이 가져올 파장과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 해외 조사 결과 등 상당히 많은 자료를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는데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 진행돼 유감”이라며 “다시 한번 신중하게 논의해 주실 것을 국회에 계속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개정안에 줄곧 반대해 온 재계도 야당의 입법 강행 시도를 강하게 규탄했다. 경제단체들은 15일 일제히 입장문을 내며 입법 중단을 촉구한 데 이어 20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재계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용자 개념의 확대로 산업 생태계가 교란될 뿐만 아니라 노조의 불법 쟁의 행위를 사실상 방치·조장하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법안”이라며 “특히 노조의 불법 파업을 용인함으로써 우리 산업계와 국가 경쟁력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개정안이 △위헌 가능성 △기존 법질서와의 배치 △경영권 제한 △원·하청 생태계 교란 등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에 맞서 민노총은 20일 현 정부의 노동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김은지 기자, 이은택 기자, 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