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과 욕망 7화.
선택과 운명.
실존주의의 대표적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말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Life is C between B and D)”
사르트르의 해석을 따르자면, 인생이란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사이에 존재하는 선택(Choice)이다. 그렇다, 우리는 매 순간 순간 선택을 하며, 우리의 인생은 그 선택들의 결과물 위에 존재하게 된다.
그런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해버리는 대선택을 하고 만다. 그의 말마따나 인생은 그렇게 우리의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사르트르의 이 말을 부정하기란 쉽지가 않다.
20세기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남긴 우리의 인생을 다른 한 편으로 조명해보는 명언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와서, 그의 말은 반만 옳다. 왜냐면, 그와 정 반대 되면서도, 또한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개념과, 그 개념을 뒷받침하는 무수한 사실들이 현대에와서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 미에현의 이세신궁(伊勢神宮).
내궁안으로부터 쇠북소리가 새어나온다.
신도교(神道:Shitoism)의 중심지나 다름 없는 이세신궁에서 일본 불가에서나 사용하는 쇠종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뎅~~, 뎅~~, 뎅~~~,
내궁인 황대신궁안에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노법사와, 머리를 단정하게 내린 고작 7~8살된 어린 무녀가 마주 앉아 있었다.
노법사의 왼 손에는 검정색 구슬 108개가 엮어진 묵주를, 다른 한 손에는 작은 그릇모양의 쇠북을 치는 짧은 대가 쥐어져 있었다. 다만, 조금 눈에 거슬릴 수 있는 것은, 노법사는 민머리였는데, 그의 희고 긴 수염이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윤기가나고 매끄럽다는 것이었다.
노법사는 일본의 자생밀교인 일련정종(日蓮正宗)의 흥문파(興門派) 사람이고, 무녀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교(Shintoism)의 본산인 이세신궁의 마지막 남은 무녀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사건인 이 두 사람이 지금 이세신궁의 내궁안에서 어째서인지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손님인 노승은 눈을 감은채로 편안한 표정이었지만, 반대로 어린 무녀의 똘망똘망한 두 눈과 얼굴표정에는 근심과 긴장감이 역력했다.
“남묘호렌게쿄(나무묘법연화경), 남묘호렌게쿄… 참으로 슬픈일입니다… “
노법사가 쇠북을 세번 끊어서 치며 말했다.
“무엇이 슬프다는 말씀인가요? 아키라 사마(님).”
어린 무녀가 물었다. 아직 정식 학교라고는 가본적도 없는 어린 무녀였지만, 그녀의 눈빛과 말투, 그리고 행동 거짐은 너무나 어른스럽고 젊잖았다. 마치, 어린 소녀의 몸안에 어른의 영혼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가끔, 그런 아이들이 있다.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는 오래된 예언의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 나라가 짊어질 운명이란 참으로 슬프기 때문입니다. 산렌(삼연: Three lotus flowers)사마.”
“그… 운명이란 건… 미래라는 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요.”
“아…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그런...
아키라 사마, 부디 부족한 저에게 조금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린 무녀가 물었다.
이세신궁의 산렌은, 일본의 태양의 신인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신도교(Shintoism)의 마지막 남은 진무녀이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경험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산렌사마, 들어보십시오.
이 세상, 우주 삼라만상에는 절대적으로 그냥 일어나는 일이란 없답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또 지금 이렇게 서로 마주 앉아 있는 것에도 모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흠…”
산렌은 생각했다.
“그 누가 타고나는 외모와, 식성, 성격, 국가, 부모, 가족 환경 따위를 선택적으로 정한단 말입니까? 산렌님은 본인의 선택으로 여자가 되었고, 무녀가 되었나요?”
“아… 아니요…”
산렌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그에 준하는 이유(reasons, or causes)란게 있기 마련입니다.”
산렌은 생각했다.
“그… 그럼… 미래란, 운명이란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인가요? 아키라 사마..”
“아니요. 우선, 예언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뜻이 문자로 남지만, 항상 그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요. 문자로 남은 뜻에는 해석의 오차가 발생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미래는 예측하기가 불가능 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노법사 아키라는 어린아이에게는 꽤나 버거울 수 있을만큼의 많은 비유를 문장마다 넣어서 말했지만, 놀랍게도 어린아이 산렌은 그 문장들로부터 가능한한 많은 여러 의미들을 그 짧은 시간에 생각해내고 습득하고 있었다. 단지, 산렌에게 있어서 어려운 것은, 아직 정확히 잘 모르는 단어들이었다.
노법사 아키라는 어린 산렌의 표정을 줄곧 읽으면서 그녀가 무엇을 이해하고 못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아키라의 눈에 산렌은 놀라울 정도로 명석한 두뇌와 착한 성품을 가진 아이였고, 산렌의 눈에 아키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스승과도 같았다.
아키라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세상에 그저 일어나는 일이란 결코 없으니, 세상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마치, 시계가 정해진 대로 돌아가 듯,
봄이 오면 어김없이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농부들은 반드시 씨앗을 뿌리지요.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그렇게 찾아오지요.
우리는 알고 있지요.
어느덧 가을이 와, 낙엽이 지면, 우리는 그것을 우연(Coincidence)이 아니라 당연 혹은 필연(Fate)이라 하지요. 가을엔 낙엽이 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뭔가 설명이 조금 더 쉬워졌다. 그러자, 산렌은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여름 날, 나무 밑을 지나가다 떨어져 만난 어린 나뭇잎을 보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이라고 하기보다는 우연이라고 하겠지요. 그것을 이해할 만한 모든 이유들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잘 알면, 당연이라 할 것이고, 모르면 우연이라 하지요.
미래는 그와 같습니다. 미래는 반드시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잘 모를 뿐이지요.”
“그… 그럼, 우리의… 우리들의 나라 일본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에요? 아키라 사마!!”
“그것은 아직 저로써도 모릅니다, 산렌 사마.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일은 정해진 대로, 예언서에 적혀있는대로, 정확히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이자리에 산렌사마를 마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서에 적혀있는대로 이지요.
재앙이 이미 닥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하지 않을 것인가요? 아니요, 유감이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산렌사마.”
“아….!”
산렌은 그만 탄성을 지어내고 말았다.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산렌은 일본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다해서라도.
“아직은 모릅니다. 예언서에도 그 끝의 해석이 불분명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언대로, 재앙이 있기 전에 세번째 연꽃이 동쪽 땅끝에서 태어나고, 그 후에 동쪽 땅끝에 대재앙이 찾아 왔습니다. 아직은 그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예언서와 예언서가 말한 저희 세 사람이니까요.
자, 예언대로, 세번째 연꽃과, 노인 안내자, 그리고 불교 크리스찬이 만났습니다.
정해진대로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의지(Will power)라는게 있으니까요. 그 의지만이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노법사가 말했다.
“아, 크..크리스 도노(도령)!.... 제발… 아마테라스님…, 크리스님이 늦지 않기를….”
어린 무녀 산렌이 두 손을 마주 잡고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다.
“예언서의 말대로, 그는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시간, 도쿄의 한 노점상에는 거구의 과대비만인 한 젊은 백인 남성이 약 40만원($400)치가 넘는 꼬치를 먹고 있었다.
“아…., 난 이거라면 매일 먹을 수도 있어!! 완전 맛있어~!!완전~!!(I`m never gonna get enough of this~! Oh, So, good~!! So~, good~~!!)”
-데엥~, 데엥~, 데엥~-
노법사 아키라가 쇠북을 치자 그의 길고 흰 수염이 찰랑거렸다.
조우(遭遇:encounter)
“저기… 실례합니다. 이 앞에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차가 막히자 택시 기사가 창문을 열어 누군가에게 물었다.
잠시 후,
“아~ 이거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더 이상은 앞으로 못들어 갈 것 같군요.. 아무래도 이 앞쪽에 무슨 사고가 난 듯 한데요.”
택시 운전기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차는 목적지로부터 약 150미터정도까지 완전히 막혔고, 비록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숨을 곳을 찾지 못한 쥐들이 산발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럼 저희들은 여기에서 내릴게요.”
메리가 유창한 일본어로 답했다.
“아, 정말입니까? 아, 이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더는 무리일 것 같아서요. 차가 아주 꽉 막혀버렸어요.”
그렇게 택시에서 내린 메리와 일행들.
다름도 아니고 바쁜 아침 시간에, 그것도 도쿄라는 대도시의 시내에서 수천마리의 쥐들이 동시에 해산했다. 쥐들의 해산은 소집보다 훨씬 더 큰 난장판을 피어놓았다.
오직, 북동쪽 방향으로만 쥐들이 출몰하지 않았기에 그 쪽의 교통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다. 졸리의 그라찌에덕분이었다.
후서 일행들은 쥐들을 피하는 사람들과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여러 쥐들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으악… 쥐들이 왜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거지?”
후서가 죠에게 물었다.
“흠… 대체... 어떻게 된거야, 메리? 이건 그다지 자연현상처럼 보이진 않는데?”
죠가 메리에게 물었다.
“어, 이건 피가로(Figaro)의 짓이야.”
메리가 간단히 답했다.
“뭐? 피가로? 그럼, 그 애늙이 꾸미날레도 여기에 와 있다는 거야?”
“벌써 튀었지. 그녀는 쎈시를 가지고 있으니까말이야.”
“아… 우리가 오는 걸 알아차리고 미리 도망갔겠구만.. 흠..”
죠는 아쉬워 했다.
죠는 쎈시를 가진 졸리의 감각 능력이 메리의 그것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메리는 굳이 그 사실을 죠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메리는 그저 죠에게 필요한 정보만 주었을 뿐, 아무런 거짓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메리의 폭넓은 감각능력을 구두로만 전해 들어온 죠는 졸리의 그것 역시도 메리의 능력과 같거나 비슷한 수준의 것으로만 생각했다. 인간은 아는만큼 착각하기도 쉽다.
“잠깐..”
메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서서 눈을 감고 집중했다.
죠와 후서는 아무말 없이 메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런, 큰일이야. 신(Siin)이 폭주를 할 것같아. 서두르는게 좋겠어.”
“뭐? 폭주를 한다고? 왜 그걸 이제서야 말해주는거야?”
죠가 말했다.
“나도 일이 이렇게 될진 몰랐으니까. 막 시작될 것 같아.”
“자, 그럼..어어...거... 서두르자구, 신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같은 프라이드의 돌인 할라뿐일테니까!”
죠가 말했다.
“아, 그리고 조금 전에 타로도 마력이 강한 누군가와 동조했어. 그것도 완벽에 가까운 동조를 말이야.”
메리가 말했다.
“뭐? 어떻게 한 번에 인간과 완벽동조를 이뤄낸거야? 대체 상대가 누구이기에? 왜 이 모든걸 이제서야 말해주는거야?!”
죠가 놀라면서 물었다.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되었어요. 그 대상은 오타 사부로라는 남자에요. 그는 과거에 이미 타로와 완전 동조한 경험이 있어요.-
모두에게 가이아의 전음이 들려왔다.
-타로는 현재 북극지방의 빙하수를 얻었고, 완전 동조를 이루었으니 당장에 신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거에요. 하지만 신이 폭주를 예고한 이상 타로 혼자서 그것을 막기에는 무리에요. 서둘러주세요, 모두들.-
가이아의 전음이 이어졌다.
“자, 들었으면 어서 가자구.”
죠가 앞장서며 말했다.
“잠깐,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메리가 말했다.
“왜? 시간없어, 빨리 가자구.”
“가이아가 못 본 것이 있어.”
“그게 뭐야?”
“21세기의 뉴이어의 주인.”
“뭐?! 그럼 새 뉴이어의 주인이 여기에 있다구?!”
“아직, 하지만 곧 여기에 있을거야.”
메리가 막 말을 마친 참이었다. 후서 일행들이 서 있는 횡단보도 앞에 택시 한 대가 섰고, 한 젊은 여성이 다급히 택시에서 내렸다.
그것을 본 후서.
“하.. 하...루… ...꼬??”
후서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했다.
“에...에…. 에~~~!! 후서~? 에~~ 혼또? 어째서? 어째서 후서가 도쿄에..”
후서를 본 하루코가 더욱 놀라며 말했다. 아침 출근길에 뉴욕에 있어야 할 후서를 만난 것이었다.
“것보다, 너 언제 일본으로 돌아간거야?”
후서가 물었다.
“난.. 약 한 달 전에.. 아니.., 대체 넌 왜 지금 여기에 있는거야?”
하루코가 물었다. 하지만, 후서는 그 이유를 선뜻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뭐라고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아는 사람이야?”
그 때, 죠가 물었다.
“어… 워싱턴 DC에서 같이 영어 공부했던 친구야.
하루코, 이쪽은 죠, 그리고 메리.”
후서가 짧게 모두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가 바로 내가 말한 새로운 뉴이어의 주인이야.”
메리가 무표정으로 말했다.
“뭐?!”
“뭐?!”
죠와 후서가 화들짝 놀랐다.
감각능력은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뿐만아니라 솔로몬의 12보물의 주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에? 뉴이어? 그게 무슨말이야?”
하루코가 물었다.
그 때까지 떠나지 않고 있던 택시에 어떤 한 고객이 타려고 했지만 어쩐일인지 택시운전기사는 승차거부를 하고서 택시를 몰아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 시간, 신도쿄상사의 세일즈부실.
오타의 입에서는 알수 없는 새하얀 연기가 계속해서 새어 나오고 있었고 우미드는 동공이 풀린 채로 침을 흘리며 헐떡이고 있었다.
-서둘러 주세요. 신의 폭주가 시작되려고해요. 그리고 타로는 막 어떤 큰 기술을 걸었어요.-
가이아의 전음이 모두에게 들려왔다.
“안돼, 타로가 필살기를 쓸건가봐. 지금,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어.”
타로의 마력이 급격히 방출 되자 메리가 다급히 말했다.
“뭐? 타로의 필살기라면 공간마법이잖아!! 만약 그런거라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게 돼! 하늘을 날아가더라도 우리에겐 시간이 없단 말이야!”
죠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타로의 공간 마법이 시전되면 그 안으로 들어갈 방도가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후~, 미안해 다들… 나도 잠깐 늦었지 뭐야…”
그 때, 갑자기 공중에서 나타나 사뿐히 모두의 뒤로 내려앉은 한 거구의 백인 남자가 영어로 말했다. 그의 오른 손에는 여전히 데리야끼 쏘스가 잔뜩 묻은 꼬치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