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론
이창식
어머니의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에서 호랑이 등에 탄 소도둑 장면에서 크게 웃음이 터졌다. 어머니의 「이웃영감 조조」 이야기에서 며느리가 구렁이가 되고 시어머니 몸에서 사리 나온 대목에 깨달음의 웃음이 터졌다. 「윗입과 아랫입」 등을 들려주었던 어머니는 즐거운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하는 어머니가 방귀 뀌자 시원하시겠다고 하자 특유의 미안한 웃음 탓에 가족이 다 같이 웃었다. 솔직하고 하나 되는 웃음이다.
이처럼 웃음의 현상은 삶에서 고통의 치유적 효과로 그 가치를 말한다.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킬러 세포’가 많고, ‘엔도르핀’이 잘 돈다. 킬러 세포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질환과 암과 성인병을 예방해 준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어머니는 95세 사셨다. 웃음은 신이 인간에게만 내린 축복이다. 어머니 웃음은 지금도 보약이다. 웃음은 그 장면을 떠올려도 사람들의 기분을 일시에 바꿀 수도 있다.
어머니가 좋아했던 「우동 한 그릇」이 있다. 작품에서 북해정 주인 마음과 세 모자 이야기가 길지 않지만 읽으면 그림처럼 느껴지는 추억담이다. 우동 반 덩이 더 삶는 배려, 잊지 않고 찾아온 세 모자의 사랑, 2번 테이블로 안내하는 끝 장면에 눈물 속 박수, 웃음이 번진다. 이른바 울음 웃음 범벅이다. 독자도 같이 웃으며 손뼉을 친다. 나훈아의 <테스형> 노래도 어려움 속에 이러한 위안의 웃음 노래인 셈이다.
고샅길이/참/정겹다.//이름 모를 새 한 마리/부리에 음표를 물고/꽁지 까불며 따라온다.//입술에/햇볕을 찍어 바르고/애기똥풀꽃이/노랗게 웃고 있다.
- 「노란 웃음」(오순택 동시인, 1942-)
이 동시에서 아이 웃음이 잡히고 어머니 웃음 이야기처럼 덩달아 웃게 된다. “웃기 위해 시간을 내라/웃음은 영혼의 음악이다”(아일랜드 민요)라 하였다. 여기서 웃음의 효과에 대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부가 가치가 있다. 그에 대한 밝혀진 의학적 지식은 아직 미미하다. 인간은 생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경험한다. 웃음은 심장을 튼튼하게 한다. 웃음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며 몸 상태를 편안하게 해 준다. 웃음은 분노와 긴장을 완화해 심장마비 같은 돌연사도 예방해 준다.
어머니는 성性 소재 촉발 웃음 이야기꾼이었다. 『깔깔웃음』(남궁설, 1916년)도 있다. 학자로서는 김영진, 최래옥, 서대석, 권영철, 정하영 등이 잘 하였다. 그걸 시로 쓴 최고가 김삿갓과 오탁번이다. 오탁번 「굴비」는 본래 고등어가 소재다. 굴비 장수와 산골 계집의 성행위 거래가 1연과 2연에 실감 나게 그려졌다. 또 다른 오탁번 「폭설」처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 지점에 건강한 웃음이 터진다. 신현정의 「하나님 놀다 가세요」라는 시에 “하나님 거기서 화내며 잔뜩 부어 있지 마세요” 구절도 마찬가지다.
며칠 후 굴비 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려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 「굴비」 3연(오탁번 시인, 1942-)
엄숙의 이미지를 희극적 장면으로 슬쩍 바꿔놓는 시인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웃을 때는 배꼽을 잡고 크게 웃는 게 좋다. 배가 아플 때까지, 눈물이 나올 때까지, 숨을 쉴 때까지, 크게 웃고 난 뒤에는 기분이 좋아지고 후련해진다. 번역도 힘든 시원하다는 웃음 말이다. 웃음 바이러스 감염이 최고 좋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에 행복하다. 제임스 월쉬처럼 어머니는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였다. 웃는 이는 실제적으로 웃지 않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며, 건강은 실제로 웃음의 양에 달렸다고 하였다.
어머니 세대는 옛날부터 한꺼번에 잘 웃었다. 삶의 현장에서 웃음은 거의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더 나아가 희망적인 것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다. 웃음으로 건강이 찾아오고 웃음으로 행복이 넘쳐나고 웃음으로 평안이 찾아오고 웃음은 그날의 모든 것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옥소 권섭의 시조가 있다. 어처구니 웃음이다. 못마땅한 것에 신랄한 ‘쓴웃음’이다. 니체도 웃음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웃음을 미학의 영역에 고착시킨 논자가 니체이다. 그의 웃음은 쇼펜하우어의 웃음과 함께 경험의 주체에서 벗어난 이성 비판적 웃음이다.
하하허허 한들 내 우음이 졍 우음가
하 어척 업셔 늣기다 그리 되게
벗님네 웃디를 말구려 아귀 쯰여디리라
- 「옥소집玉所集」
정상을 무너지게 하고 끌어내리면 희화戲畫의 맛깔스러움이 있다. 이 지점에서 한바탕 시원하게 박장대소 하고 나면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닥콩닥 뛰며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는 이야기대회에서 웃겨서 대상도 받았다. 웃다 보면 하루가 다르게 행복하다고 하였다. 스스로 웃어서 행복하면, 아이들이 웃고, 가족들이 웃고, 주위의 모든 이들이 따라서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웃음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잘 웃는 것은 하나의 축복으로 볼 수 있다.
강릉단오장 이야기대회에서 어머니는 구경꾼들을 웃겼다. 이런 웃음판은 연장이 판소리나 탈춤 대사인데 골계미가 보인다. 골계는 우리말로 익살이다(이창식, 『익살과 재치의 구연원리: 재담학』, 민속원, 2016). 익살은 남을 웃기기 위하여 일부러 하는 재미있고 우스운 말이나 몸짓이다. 익살은 해학과 풍자를 포함하는 말이다. 축제 속 바보대회, 코미디 극장, 개그 공연, 전기수, 광대, 솟대패, 사당패, 재담꾼이 존재하였다.
어머니는 해학과 유머 감각이 상당하였다. 실제 놀이판에서는 웃음으로 이웃에게 우행과 악덕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국면도 있다. 더구나 감정을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호탕한 웃음과 함께 고된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해방, 방어, 슬픔, 비밀 폭로와 수치감을 주기도 한다. 다만 웃음으로 질타받거나 오해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것도 ‘난장’이라는 범주에서는 잘 통용된다.
어머니는 어려운 시기에도 늘 눈에서 웃음이 살짝살짝 번지었다. 웃음 발상이 환한 마음을 두드리는 능력을 드러낸다. 웃음을 끌어당겼기 때문에 입가에 주름이 생긴다. 이러하듯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 속에서의 ‘웃음의 장치’를 통하여 코로나19로 인해 메마른 고통 시대에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주변을 따스하게 데워줄 수 있다. 마스크를 써 입이 가려져도 웃음의 여유는 드러내야 한다. 왜 스마일마스크는 없을까.
아, 어머니 똥광을 살려내기 위해 내가 똥쌍피를 던지자,
손주가 잽싸게 똥피를 주워 담는 추석날 보름달이 뜨고
삼대의 놀이판에는 가피 안의 또 다른 부처님 달이 솟았다.
- 「놀이하는 어머니」 일부(이창식 시인, 1957-)
이처럼 잘 노신 어머니처럼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 주면 천년을 가는 그런 웃음-신라 기와 미소, 서산마애불 미소-을 남기고 싶다. 잘 웃는 사람이 그 대상이다. 우월적 상태나 유머를 잘 구사하는 머리가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매 순간 웃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노라면 이렇게 긍정적인 ‘어머니’ 아바타가 정말로 있다. 긍정이 최고의 유머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삶의 꿈은 인간이 갖는 여러 아픔, 고통, 슬픔, 괴로움, 어두운 생각 등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도록 돕는 것이 된다. 진정한 명품 유머는 남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즐거움에서 온다. 팬데믹 시대에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을 위해 크게 한번 웃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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