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끝물
장마 끝물 중국 대륙으로 태풍이 진입했다. 그 영향으로 이삼 일 뒤 우리나라에는 비바람이 닥칠 거라는 예보가 있던 칠월 둘째 일요일이었다. 태풍 간접 영향권에 들기 전이라 찜통 무더위가 예상되었다. 나는 이른 아침 산행을 나섰다. 출발 전 동행을 요청한 대학 동기가 있었다. 지난번 돌복숭을 함께 채집한 이후 다시 만났다. 대암고등학교 부근에서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갔다.
이른 아침이고 휴일이라선지 산행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대암산이나 용제봉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에서 용제봉 산기슭으로 들었다. 용제봉이 품은 산자락은 그 면적이 아주 넓었다. 그간 장마철 비가 제법 내렸는지라 계곡에 드니 철철 흐르는 물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근교에서 계곡이 깊어 여름 장마철이면 포말이 부서지는 물줄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용제봉으로 오르는 목책 교량을 건너 쉼터 의자에 앉았다. 이른 시각이지만 배낭의 곡차를 꺼내 두어 잔 비웠다. 안주는 지난번 작대산 언저리서 꺾은 죽순 장아찌였다. 가까이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쉼터서 일어나 숲길을 계속 걸었다. 너른 숲에는 수종 갱신을 위한 편백나무나 굴참나무 같은 어린 묘목을 심어 사후 관리를 잘 하고 있었다.
산허리로 난 길을 한참 빠져나가니 아까 이정표 갈림길에서 상점령으로 가는 임도와 만났다. 고개로 가는 도중 불모산 숲속 길 들머리가 나왔다. 상점 고개까지 이르러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도 가지 않고 고개를 내려서 장유계곡으로 가는 찻길을 따라 걸었다. 워낙 이른 시각에 길을 나선지라 상점고개에 이르니 아침 햇살이 비쳤다. 상점고개에서 불모산 정상까지는 자동찻길이 있다.
불모산 산정엔 방송국과 통신사 송신탑이 세워져 관리 인력이 상주하기에 차량이 오르내려야 한다. 정상 못 미친 화산 산마루에는 공군부대가 있어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라도 자동차가 다녀야 한다. 상점고개에서 불모산을 오르는 산행객들은 자동찻길을 이용하지 않고 산등선 숲속 등산로로 다닌다. 여름철 무더위가 아니라면 불모산 등정도 좋겠으나 우리는 무리하지 않았다.
고개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장유계곡으로 내려서는 중간 어디쯤서 숲속으로 들었다. 이맘때면 참나무 삭은 등걸에서 영지버섯이 돋아난다. 숲속을 두리번거리며 헤집고 다녀도 영비버섯은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포장도로로 나왔다가 다시 숲속으로 들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질 않았으나 불모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만나 수월하게 숲속을 헤쳐 나갔다.
개옻나무를 피해 가면서 부엽토 숲길을 한참 걸었다. 중간 너럭바위에 앉아 아까 비우다 남긴 곡차를 두어 잔 비웠다. 이어 숲속을 빠져 나가니 장유계곡이 가까웠다. 산중에서 독립가옥이 한 채 나왔는데 곁에 민들레를 키우는 밭이 있었다. 자동찻길 따라 내려가다니 시원한 줄줄기가 흐르는 계곡에 약수가든이 나왔다. 우리는 숲속으로 들어 계곡 상류 인적이 드문 물웅덩이를 찾아갔다.
내가 동행을 정글 속 물웅덩이로 안내함은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알탕을 감행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먼저 남은 곡차를 마저 비웠다. 그리고 머리끝 모자부터 발끝 등산화까지 홀라당 벗고 알몸이 되었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계곡 물웅덩이에 들어 번잡한 세상사를 잊고 속진을 씻었다. 국립공원이 아닌지라, 상수원 보호구역이 아닌지라, 무엇보다 인적이 끊긴지라 아무 탈 없었다.
소름 돋을 정도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숲속을 걸었다. 나는 주변 생태를 잘 아는지라 송전탑에 지장을 준 참나무를 자른 그루터기로 갔다. 삭은 참나무등걸에 자주색 영지가 돋아 갓을 펼쳐 자랐다. 신비스럽고 탐스런 영지였다. 영지를 잘라 배낭에 챙겨 넣고 장유계곡으로 내려갔다. 길가 국수집에 들려 부추 전으로 곡차를 들고 59번을 탔더니 금방 창원터널을 넘어 시내에 닿았다. 16.07.10
첫댓글 알탕하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시원하셨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