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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줄 알자
월튼 H 워커 대장 (중장으로 전사, 사후 대장으로 추서됨)
우리 미 24사단을 독려하고 후퇴 작전 중에 큰 전과를 올린
우리 사단에 대한 부대 표창과 미국 정부가 저에게 수여한 은성무공훈장을
제 가슴에 직접 달아주시려고 짚 차로 달려오시다가 의정부와 문산 간의
어느 도로에서 후퇴중인 한국군 트럭에 부딪쳐 현장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계속되는 추위와 끝없이 밀려오는 중공군의 대공세에 밀려
전 전선이 계속 패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속에서 모처럼 아군이 큰 승리를 했고
그 승리의 주인공이 아들이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나중에 알았지만 며칠 전 맥아더 사령관은 미국 정부에
아버님의 대장 진급을 상신해 놓았더군요.·····.
월튼 H 워커 대장 의 우락 부락한 모습과는 달리
멋진 미 육군 정장에 네 개의 별이 반짝이는 바나나 모자를 쓴
훤칠하고 잘생긴 아들 S 워커 미 육군 예비역 대장은 알링턴
미 국립묘지의 아버지 무덤에 한참이나 거수경례를 한 뒤 눈물을 글썽이며
30년 전, TBC-TV 6.25 30주년 다큐멘터리 제작팀과의 인터뷰를 이어갔다.
월튼 워커 대장은 정말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의 죽음은 우리 미군은 물론 미국의 커다란 손실이다
저는 일선의 보병
중대장입니다.그리고 지금 저희 부대는 후퇴중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부하들은 목숨을 건 위험에 노출되어악전고투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대장이 바뀌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 중대에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고 월튼 워커 대장의 유해는 의전 부대에 맡기십시오.
각하의 휘하에는 반드시 의전 부대가 있습니다.
저는 전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것은 명령이야’·······
그리고는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군인이 명령을 어길 수가 없어 용서구하고.....
바로 이 자리에 안장 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저는 이미 워싱턴의 육군본부로 발령이 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때 맥아더 장군이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 결정에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군인이 부하를 위험한 전장에 남겨놓고, 치열하게 전쟁 중인 한국을
떠나왔다는 생각이 지금도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초대 주한 미 8군 사령관이었던 고 월튼 워커 대장과 함께 최초의
미군
父子 大將(4 star)이며 미 육군 최연소 대장 진급자였던전도유망한
워커가 젊은 나이에 예편된 것은 바로 한국 때문 이었다.
주한 미군을
철군하려고 했을 때 한국에서는 주한미군 참모장인싱그러브 소장이
반대했다가 예편되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미 육군의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이며 차기 참모총장이나 NATO군 사령관으로 유력하던 워커 대장이 카터에게 반대를 했고결국
예편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월튼 워커 미 8군 사령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의정부 문산 간의 도로가
바로 몇년 전 미군이 탱크 훈련 중 미선과 효순 이라는 두 소녀를 치어 죽게 한
바로 그 도로이며 사고지점도 거의 같다는 사실이다.
짚 차와 부딪힌 한국군 트럭 운전병을 이 승만 대통령이 사형시키려 하자
1951년 미 8군 사령관을 죽게 한 한국 병사를 미군과 미국은 용서해 주었는데
2002년 훈련 중에 두 소녀를 과실로 죽게 한 미군 탱크 병을,
아니 미군과 미국 전체를 싸 잡아서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증오하고 저주하며 촛불을 켜들고 한국을 떠나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아직도 우리나라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탱크를 앞세워 밀려오는 적을 보병만으로 막아야 했던 불리한 전황 속에서
어떻게 든지 대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소 3·5인치 로켓포를 발사하여
적의 T-34 탱크 한 대를 직접 폭파시키면서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리던
미 24사단 사단장 윌리암 딘 소장이 부대와 떨어져 홀로 36알 동안
산속을 헤매다가 한국인 농부의 밀고로 북한군에게 잡혀
3년동안의 포로생활을 하였다는 사실,
포로생활에서 풀려나자 그의 조국 미국은 사단장이 직접 적 탱크와 맞닥트려
싸울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급박한 상황과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3년 동안의 포로생활 중 보여준 미군 장성으로서의
내가
한국에서 사단장으로서 한행위는 나무 훈장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적 탱크를 격파한 것도 어느 하사관도 할 수 있는 일 이었다’단돈 5 달라 에 자기를 밀고해서 미군 장성으로서의 인생을 포로라는
치욕으로 마치게 한 그 농부가
5년형을 받아 복역 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분연히 일어나 무지한 농민이 살기 위해서 한 행동이니감형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간청하여 기어코 출옥시켰다는사실을
아는 사람이몇 명이나 될까?
이 규현이 탈출 귀순하여 진술함으로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이 규현씨는 후에 중앙일보 사장과 문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전투 중에
포로가 되고 군사령관이 전사하는 경우를 당했다면 우리 국민과 나라는 어떻게 했을까? 이런 것을 한번 이라도생각 해본 사람들이 있기나
한가? 지극히 의심스럽다.
눈물이 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조종사이기 때문에 기수에는 폭격수, 옆에는 항법사,
후미에는 기관총 사수와 함께 있습니다.아버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지금 한국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미국이 위급한
상황에서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소집된 나의 승무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고,애인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저의 의무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들 짐 올림]
맥아더 장군이 해임됨에 따라 UN군 총사령관으로 영전한뒤
그 후임으로 부임한 벤프리트 미 8군 사령관의 아들
지미 밴프리트 2세 공군 중위가
이제 막 해외근무를 마쳤음으로 한국전에 참여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해서 아버지가사령관으로 있는
한국전에 참여하며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이다.그리고 그 것이 마지막 편지였다.
출격했다가 새벽 세시 김포비행단의 레이더와 접촉한 후 표적을 향해서 날아가더니
레이더에서 사라진 뒤 소식이 끊겼다.즉시 수색작전이 시작된 것은 물론이다
지금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고 한다.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너무 무모하다.” 라고·········
이것은 인접 한국군 부대장으로서 회의에 참석했던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 명신 장군의 증언이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사람은 없습니다.>
한국을 벗이라고 생각했고
그 벗을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시킨 것이었다.
1952년 12월, 대통령당선자인 노르만디의 영웅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한국 전선을 살피기 위해 방한하여 8군 사령부를 찾은것이었다.
지켜보는 가운데 밴프리트사령관이 전선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끝내자
조용히 듣고 있던 차기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당선자가뜬금없는 질문을 하였다.
장군, 내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 안 있어 대통령에 취임할 당선자의전투 사령관에 대한 첫 질문 치고는 너무나 대통령답지 않은 사적인 질문이기도 했지만 상대가 아들을 잃고도
꿈쩍하지 않은
밴프리트였기에 모두들 무슨 일이 벌어질까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참석자 모두가 놀라 자빠질 사적인 부탁을 공공연히 했다.
언짢은 표정으로 아이젠하워를 응시하면서 의아해 하자 당선자가 조용히 말했다.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가지고 미국과 흥정을 하려 들 것입니다.나는 결단코 그런 흥정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령관이 잘 알다시피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아들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외치며
나와 미국에게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태를 원치않습니다
취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웃는 표정이 되고 곧이어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각하!”
라는 밴프리트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고
이 자리에 참석했던
This kind of war(한국 전쟁)이라는책에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마지막 UN군 사령관인 마크 클라크 대장의 아들 클라크 대위도 금화지구의 저격능선에서
중대장으로 싸우다가 세 번에 걸친 부상으로 전역을 했으나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한국전 에서의 미군 전사자는 모두 54.000여명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었다.
자기
자식들 마저 참전시켜 전사를 당하게 하는 장군들과,남의 나라 전쟁에
54.00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도 꿈쩍 않는 국민을 둔 미국··········
전직 대통령들과, 어떻게든 자식들을 군대에 안 보내려고 갖은 수를 다 쓰는
벼슬 꽤나 하고 돈 꽤나 있다는 고위층 사람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역을 면제받으려고 온갖 꾀를 다 쓰는
이런 사람들에게 박수치고 환호하는 국민들의 정신이 정상인지 너무도 햇갈린다
두 명의소녀가 작전 훈련 중에 사고로 죽었다고 미국 물러가라며 몇 달 동안
촛불 시위로 온 나라를 소란케 하는
국민을 가진 한국··········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6.25가 북침이라고 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탓하겠는가?
가르치지를 않으니 교육이 바로선 것인지 안타깝다
부모도 선생님도 군대도 다 잊어버렸는데 누가 가르쳤겠는가.
며칠 있으면 6.25인데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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