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농민신문 공동기획] 명의에게 듣는다 (16)손발저림
당뇨·척추질환 등과 연계되거나 외상·약물치료·시술 뒤 나타나기도
상당수는 원인불명의 ‘특발성 말초신경병’
영상·조직검사로 발견 어려워 환자가 느끼는 증상 토대로 진단
초기에 치료해야 만성진행 막아
평소 불쾌한 외부 자극이 없으면 우리 몸은 별다른 감각을 느끼지 않는다. 주변이 덥거나 추울 경우 손발이 차거나 화끈거릴 수 있고, 바늘에 찔리면 따끔한 통증을 느낀다. 이런 감각은 외부 자극에 대한 정상 반응이다. 이런 반응이 있어야만 위험한 상황에서 신체가 적절하게 반응해 우리 몸을 가장 안전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도 저리고 시리고 화끈거리는 증상을 느낀다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말초신경 이상으로 나타나는 말초신경병 증상이다. 신경에서 유발되는 통증을 뼈나 관절·근육 등에서 나타나는 일반 통증과 구별하기 위해 신경병성 통증이라고도 한다. 흔한 증상은 저림이나 통증이다. 하지만 시리고 차가운 증상, 화끈거림, 콕콕 쑤시는 느낌,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 피가 잘 안 통하는 느낌, 자갈밭 위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 마취된 것과 같은 둔한 감각 등 매우 다양한 증상이 말초신경 이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뇌와 척수같이 몸 중심에 있는 신경을 중추신경, 중추에서 나와 몸통·팔·다리·얼굴 등에 분포하는 신경을 말초신경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말초신경병은 당뇨로 인해 생기는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척추질환과 연관돼 생기는 신경뿌리병, 신경이 반복적으로 압박돼 생기는 압박성 신경병(손목터널증후군 등)이 있다.
이밖에도 치과나 성형외과 시술을 받은뒤 일부 해당 부위에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또 외상·약물 등 매우 다양한 원인이 있다. 그러나 상당수 환자는 특정되는 원인을 찾을 수 없는 특발성 말초신경병으로 진단된다. 이렇게 뚜렷한 원인이 없는 경우는 비교적 나이 든 사람들에게 많지만 젊은 사람들에게서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병원에 온 많은 환자들이 여러 병원에 다녀도 명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검사 기록을 검토해보면 진단이 이미 결정 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다른 질환들은 혈액검사나 엑스레이(X-ray)·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영상검사와 조직검사 등으로 100% 가깝게 확진된다. 그러나 신경질환, 특히 말초신경병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외에 다른 검사로는 이상 발견이 어렵다. 말초신경 자체 기능을 평가하는 신경전도검사는 신경 손상이 뚜렷하지 않은 초기에는 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의사는 증상만으로 진단해야 한다. 또한 다른 원인을 배제하기 위한 검사를 시행하거나 애매한 경우 약물을 먼저 사용한 후 치료 효과를 보면서 진단한다. 의사도 객관적 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되지 않으면 병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 환자가 명확하게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다.
말초신경병에 사용하는 약물은 흔히 말하는 진통제, 즉 소염진통제와는 다르다. 원래 항뇌전증약·항우울증약과 같이 다른 질병을 치료하고자 개발됐던 약이 현재 신경병성 통증 치료를 위한 용도까지 확장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뇌전증은 뇌 안에서 비정상 전기신호가 퍼지면서 경련을 일으키고 심하면 의식을 잃게 하는 질환이다. 손발저림은 팔다리 같은 말초신경 자극이 뇌로 가는 것으로, 경로는 다르지만 비정상적인 전기신호가 전달되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래서 항뇌전증약으로 개발된 약이 요즘에는 신경병성 통증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이런 약물은 단순 진통제가 아닌 치료제이므로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면 불편함을 덜고 병 앓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
대부분의 환자는 손발저림을 완치가 안되는 만성질환으로 생각하지만 상당수는 치료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일반 통증과 달라 약물을 적어도 수주에서 수개월 이상 복용해야 치료 확률이 높다. 약물을 복용하면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면 복용량을 줄여볼 수 있다. 이때에도 약물을 갑자기 중단하기보다는 서서히 줄여야 증상이 재발하지 않는다.
손발저림은 흔한 증상이지만 많은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가급적 초기에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만성통증으로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 따라서 비슷한 증상이 있으면 가까운 병원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신제영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진료분야는 근육질환·말초신경질환·손발저림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