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가 불교회화의 영향을 받다
중국의 전통적 회화(선묘 중심의 인물화가 )가 불교회화라는 외래 회화의 영향을 받는다.
돈황 172굴의 벽화는 8세기 초에 구려쪘다. 남과 북의 벽면에 그려진 벽화는 그림의 양식이 다르다. 그러나 두 그림은 관무량수경을 똑 같은 구도로 도해하여 그린 것이다. 두 그림은 회화양식이나, 시각적 효과가 다르다.
남벽은 가볍과 경쾌하고, 부드럽다. 중국식으로 변형하여 그린 그림이다.
북벽은 인도 양식 그대로이다.(사진으로 보여주어서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데 그림이 너무 흐릿하여 우리같은 비 전문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사진은 생략합니다.)
이처럼 같은 무량수경을 다른 양식으로 그렸다는 것은 문화적, 정치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 미술이 불교 미술을 수용하면서 보수적 태도와 진보적 태도에 따라서 그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대는 외래 양식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중국화 하는 과정에 친화적인 요소도 있었고,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도 있었다. 172굴 벽화가 중국 미수이 외래의 미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보수적, 진보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당 현종이 당시의 大家들인 이사훈과 오도자에게 벽화로 산수화를 그리게 하였더니 이사훈은 꼼꼼하게 그리느라 몇 달이 걸렸고, 오도자는 붓질을 쓱쓱하여 후딱 그렸다. 둘 다 아주 훙륭한 그림이라면서 칭찬했다는 전설이다.0
이 전설은 이사훈에서 오도자로, 전문화가의 꼼꼼하게 그린 그림에서 비전문가의 묵화로 나아가는 중국 회화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전설이다.
그래서 세필채색화는 이사훈을 정점으로 점차 힘을잃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