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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청-Dragon
안녕? 내이름은 박지성 난 1981년 2월 25일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지 어렸을때부터 유난히
몸이 허약했던 난 경기도 일으키고 그래서 부모님의 엄청난 보살핍에 유년기를 보냈어
난 초등학교 4학년때 부모님의 반대에도 축구를 시작했어, 왜소한 체격에도 축구에 대한 열정,
꾸준함과 성실함은 나에게 버릇같은 습관이자 유일한 나의 장점이였어
난 안용중을 졸업하고 수원공고에 입학했지만 작은키때문에 이학종감독님이 1년간 키를 키우기 위해
축구를 하지말고 집에서 쉬라고 권하셨어,축구를 못한다것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였고 결국 난 기본기만
연습하고 매일 집에서 뱀달인물과 개구리 달인물을 먹었고,결국 난 엄청난 노력끝에 170cm를 넘겼어
수원공고 졸업후 K리그 수원삼성 2군에 입단테스트를 받았지만 왜소한 체격때문에 탈락했고,
난 명지대학교에 우여곡절에 입학했고,대표팀과 연습경기에서 날 지켜본 허정무 감독은
날 대표팀에 발탁했지 정말 소식을 전화로 받고 한동안 난 전화박스에서 머리가 하얘졌어, 기쁨과 동시에
은사인 김희태감독과 허감독의 바둑으로 만들어진 선수다 라는 소문이 무성했서 괴로웠지
그렇게 난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고 2승1패에도 팀은 조별예선을 탈락했고,젊은나이에 세계의벽이 높다는걸 실감했어
보잘것없는 날 J리그 교토퍼플상가가 받아줬고,구단주가 직접 나를 봐주러 와줄정도로 나에게 엄청난 관심이 있었어
그렇게 한국축구 역사 최초로 최연소 해외파 이적 프로선수가 됬지
2002월드컵을 위해 히딩크라는 명장을 감독으로 세웠고,난 대표팀에 소집됬지,보잘것없는 난 그에게 잘보이기 위해
한겨울 훈련장에서 공을향해 미친듯이 뛰어다녔지,하지만 북중미골든컵을 앞두고 난 부상을 당했어, 좌절해있는
나에게 히딩크감독과 통역사가 다가왔지 "박지성선수는 정신력이 정말 뛰어나요,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신력이
안되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수없죠,박지성선수는 분명히 세계최고의 유럽리그에서 뛸만한 선수에요"
난 2002월드컵 엔트리 탈락 1순위로 언론에 뽑혔지만,결국 난 히딩크감독의 신뢰하에 월드컵에 참여했고
본 포지션인 윙백과 수비형미드필더가 아닌 윙포워드로 전경기 주전으로 임했지, 그리고 3라운드인 포르투갈전에
나는 16강 확정 골을 넣었고,나를 믿고 잠재력을 이끌어준 히딩크감독에 보답했지
우리팀은 이탈리아-스페인을 모두 격파하고 4강에 올랐어,K리그 입단조차 힘들었던 나에겐 세계적인 무대에서
두각을 보여줄수있었고,젊은나이에 엄청난 경험을 쌓을수있었던 대회였지,그리고 나를 한번더 돌아보게 된 시기였어.
J리그에 복귀하려던 나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어 바로 히딩크 감독님이 나에게 러브콜을 보내온거지
유럽? 누구나 한번쯤은 도전하고 싶은 리그지,난 결국 부모님과 상의하에 PSV아인트호벤에 입단하게 되었어.
히딩크"박지성은 공수가 완벽한 최고의 미드필더"
초반 나의 PSV에서의 생활은 순탄했었어, 난 국내에서 열린 피스컵에서 우승도했고 MVP까지 받게됬지
네덜란드로 돌아가자 일이꼬이기 시작했어,쉼없이 달려온 무릎이 부상이 난거야,한동안 그라운드에서
뛸수없었지, 그라운드에 복귀를 했는데 마음대로 몸과 공이 움직여지질 않더라구,난 PSV팬들에게 야유를
받기시작했고,히딩크 감독은 날 배려해서 원정경기에만 출전 시켰지.잘나가는 영표형에 비해 어려웠던 난
매번 라커룸에서 눈물을 감추곤 했지.그러던 나에게 히딩크가 이야기좀 하자는거야.
"지성 지금 J리그에서 너에게 몇팀이 오퍼를 넣었어 너가 가고싶으면 가도돼,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넌 분명히
이시련을 이길수있고,난 절대로 내눈을 의심치 않아" 그래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지
UEFA컵 페루자 경기이후 난 점점 유럽축구를 이해하기 시작했고,난 리그에서 많은 골들과 어시스트를 하게됬지
팀을 리그우승,FA컵우승,챔피언스리그 4강에 견인시켰고, AC밀란 2차전의 골은 정말 온몸에 전율이 돋았지
그렇게 나를 미워하던 팬들이 한순간에 나를 찬양하니 정말 한쪽으로는 가슴 시리면서 기분좋은 일이였지
가투소"박지성은 모기와 같은 선수" 요한 크루이프"2차전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주인공은 박지성"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점점 감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었고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어
날믿고 기다려준 히딩크감독님,이젠 가족같은 동료들, 나의유일한 동포 영표형,이젠 나의 빅팬 PSV서포터...
시련을 이기고 나니 이 달콤함은 잊을수 없는 기억이었지
반봄멜"나의 베스트 11의 왼쪽날개는 박지성이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들어섰더니 에이전트 이사가 나에게 맨유의 퍼거슨감독이 나와 통화하고 싶다고 말하는거야
맨유? 반니,스콜스,긱스,루니 세계적인 선수들이 뛰는곳 아냐? 라는 생각이 제일먼저 내 뇌리를 스쳤지.
"지성? 안녕 나 알렉스 퍼거슨이야 우리팀에 지성이가 필요해 PSV출신 반니스텔루이도 잘하고있으니깐 너도
분명 맨유에서 성공할수 있을꺼야" 하지만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한명 날 믿고 신뢰해준 히딩크 감독님이였어,
내가 잉글랜드에 가게되면 배신을 하게되는거니깐,하지만 아버지와 에이전트의 무조건 맨유에 가자는 이야기에 결국
난 잠자리에서 내 발을 보면서 그래 까짓거한번 도전해보자 세계최고의 무대! 그렇게 난 맨유에 입단했지
더타임즈"맨체스터는 몇안되는 진정한 아시아의 슈퍼스타를 영입했다"
평발에다가 쉼없는 훈련으로 손상된 박지성의 영광의 발
내가 맨유에 입단했을때 영국언론에서는 티셔츠를 팔러온 아시아 축구선수라는 기사와 평이 나돌았지
하지만 난 신경쓰지 않았어."아버지 저도 5분,10분,30분 이렇게 조금씩 출전하다보면 반니스텔루이,루니처럼
매경기 출전할수있지 않을까요?" 난 절대 벤치를 지키려고 잉글랜드에 온게 아니니깐, 나는 그렇게 조금씩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하고 있었지
무링요"박지성의 가세로 우린 더 큰 공격을 받을것이고 그는 프리미어리그의 커다란 충격을 안겨줄것이다"
맨유입단후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난 골을 못넣고 어시스트만 많이해서
국내에서 말들이 많았지 "골은 언제 넣는거냐?" 하지만 기달림의 미학이랄까
결국 난 칼링컵 버밍엄시티전에서 환상적인 첫골을 넣었고 자신감을 얻었지
루니" 박지성이 상대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서서막아야할지 태클을 해야하는지 당황해한다."
난 2006 독일월드컵에 참가했고,4강신화의 재현에 힘썼지만 스위스전 오심으로 인한
16강이 탈락됬어.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심도 축구의 일부분이다" 라는 말때문에
엄청나게 국내팬들에게 욕먹은걸로 기억하지.하지만 이것또한 하나의 경험이자
성장할수 있는 계기야.1승1무1패 절반의 성공이라 볼수있지
사하"내가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박지성의 골로 나의 조국이 무너졌다 박지성은 무서운 선수이다."
난 월드컵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후 새시즌에 5골이나 몰아 넣으며 활약을했지만,
이게 무슨일인가! 무릎이 부상이라는거야,결국 난 선수생활 일대를 걸고 수술을 했고
시즌을 마감했어,하지만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메달을 목에 걸었지
다음시즌 난 복귀했고 쉽지않았지만 매번 주전경쟁에서 밀렸지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갔고,결국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꽁꽁 묶으며 팀을 결승전에 진출시켰어 난 PSV때 이루지못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향해 마음가짐을했지
英언론"바르셀로나 스쿼드를 찢어버린 박지성"
하지만 내축구인생의 최고의 시련이 다가왔어,팀을 결승전에 올려놓는데 헌신한 날
퍼거슨감독은 결승전 엔트리에 제외시킨거야... 국내에서는 난리가 났고 나또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였어 결국 팀은 우승을 하게되고,퍼거슨 감독은 나에게 다가와"지성 정말 미안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어"
스포츠의 세계는 냉혹하다는걸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됬지
하지만 난 시련을 이기고 엄청난 활약으로 1년뒤 아시아인 최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로 나서게 됬어 팀은 비록 2-0으로 졌지만 또하나의 기록을 세우게 됬지
웽거"박지성이 우리팀을 무너뜨렸다,그와 같은 스타일은 앞으로 잉글랜드에서 보기 드물것"
난 주장이 되어 3번째 월드컵에 참여했고, 나는 1라운드 그리스전에 추가골을 넣었고,
대한민국을 월드컵 원정 16강에 진출시켰어. 이제 한국은 더이상 축구약국이 아니라는걸 보여준 셈이지.
사마라스"역시 박지성은 한국의 슈퍼스타였다"
나는 어느덧 맨유에서 6년차가 되었고 진정한 맨유맨이 되가고 있어
지금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있어, 내기록상 프리미어리그 최다 득점도 하고있고,
이제 팀의 완전한 주전이란 말이지,울버햄튼전의 2골은 정말 환상이였어
퍼거슨 "박지성은 정말 환타스틱한 선수,그는 결코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주지 않는다"
나는 2011 카타르아시안컵을 대표팀 마지막무대로 선언했고,우리팀은 조별예선에서 2승1무로
승점 7점으로 조2위로 8강에 올라갔지, 8강전 이란을 상대로 우리팀은 압박플레이를 펼쳤어,
후반연장 결승골로 드디어 4강에 오르게됬고,나의 꿈인 50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한걸음 다가갔지
4강상대는 한국의 영원한 숙적 일본이였어,작년 월드컵 직전 나의 일본에서 골이 생각나더군,
일본전에는 나의 A매치 100경기 달성하게되는날이야,태극마크를 단게 엊그제같은데,11년이 지났군
우리팀은 2-2무승부상황까지 갔지만,아쉽게 승부차기에서 졌고,주장이자 고참으로써,눈물을 흘리는
후배들을 감싸주었지,2002년 한일월드컵 준결승전 독일을 상대로 아쉽게 1-0으로 패배했을때,
대표팀 막내인 21살의 어린날 감싸준 홍명보-황선홍선배 처럼 말이지...
맨유 레전드 롭슨"주장 박지성은 완벽한 모범"
그렇게 50년만의 도전의 꿈은 물거품됬지만,3-4위 우즈벡전을 위해 훈련했고,난 아쉽게
부상으로 인해 아시안컵 마지막경기에 뛰지못했지...하지만 후배들의 활약으로 우리팀은
3-2승을 거뒀고 아시안컵 3위를 달성하게 되었어..아시안컵에서 우승보다 멋진 유종의미를
거둬준 후배들 그리고 코칭스태프,감독님,응원해주신 국민들에게 정말 감사할 따름이야!
황선홍"박지성은 한국축구사에 큰 획을 그었다"
2011 카타르 아시안컵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하는 박지성주장
아시아컵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나와 영표형은 경기가 끝난후,후배들의 헹가래를 받았고,
너무나 기뻤어,선배로써,주장으로써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려고 노력했는데,내가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후배들의 판단의 몫으로 맡겨야지,그동안 2년동안 대표팀에서 주장완장을 차고 뛰었을동안 정말 많은걸 느꼈어
홍명보"지난 10년간의 대한민국 축구역사에서 축구팬들에게 항상 기쁨을 선사한 선수가 바로 박지성"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 소식을 전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오늘 2011년 1월 31일 국가대표팀 공식은퇴를 선언했어,기자들은 나에게 가장 행복했었던 순간을
물어봤지...당연히 2002월드컵이지...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멈추질않아,이제 난 후배들을
위해 나의자리를 물려줄거야,분명히 후배들은 잘하거라고 믿고,나는 뒤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야지
그동안 대표팀에서 슬픔과 감동을 많이 느꼈고,그리고 패배를 바탕으로 교훈 삼아 승리할줄아는 방법을 배웠지
아...2000년 태극마크를 달고,시드니올림픽으로 시작해서 레바논아시안컵-북중미골드컵-한일월드컵
중국아시안컵-독일월드컵-남아공월드컵-카타르아시안컵까지...참 많은 대회를 참가했었네,
대표팀에서 선배들의 사랑을 받은 귀염둥이 막내로 시작해서,어느덧 후배들을 아우르는 선배이자 주장으로...
이제 대표팀에서 못뛰는 대신에 클럽팀인 맨유에서 후배들의 유럽진출을 위해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벼야지,
그동안 한국축구의 심장이라 불리던 박지성을 사랑하고,응원해주신 모든 국민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11년간 영광스럽고 행복하게 해준 나의 코리아팀 Good Bye~
첫댓글 자랑스러운 박지성
영원히 우리의 레전드가 되어줘요~
노래좋다..
노래제목이 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