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오면
오디가 익는다.
신이 주신 선물이라 하는 뽕나무에 매달려...
나무 하나하나가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한 소나무가 가득한 운동장을 가진
대관령 아랫마을 성산초등학교는 아담하고,
맞은 편으로는 작은 동네에 비하여 크다 할 면사무소 건물이 우람하다.
몇 집 오르면 작은 파출소 하나 있어 시골동네에서 할 일이 없을 듯 하고
골목골목으로는 맛있다 하는 대구머리찜 가게들이 즐비하다.
칠십 년대들어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고속도로를 만들었으니
장대한 대관령 마루에 오르면 강릉 시가지가 아스라이 보이고,
동해바다는 한 줄기 하얀 선으로 보이는 흰 파도와 함께 검푸르다.
작은 마을 성산은 옛 고속도로의 시발지가 되어 한 동안 번영을 누렸으나
이천 년대에 들어 터널 여럿을 뚫은 새 고속도로가 생겨,
잠시 누린 영화는 스러지어 다시금 조용하고도 작은 마을로 돌아가고
대관령 고갯마루에는 우람한 풍력발전기 큰 날개만 유유히 돌아간다.
새 고속도로가 생기고 나서 이내 만난 태풍 루사와 매미로 강릉사람들은
불경스럽게도 터널을 뚫어 산신이 노했노라 지금도 수근거린다.
오래 된 강릉단오제는 강릉사람들로 하여금 대관령산신을 믿게 하였으니
그리 생각함도 무리는 아니겠다.
작은 마을 성산을 둘러봄은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아 발길을 돌려 오르면
또 작은 동네 어흘리가 아담한 대관령박물관과 함께 기다린다.
박물관을 옆에 끼고 오르는 길은 그 유서깊은 대관령옛길이다.
끼끗한 소나무 울창하여 향긋한 송진내음을 음미할 즈음 오르막이 있어 원울이재라
산설고 물설은 강릉 땅을 제수받은 원님이 오면서 울고,
떠날 적엔 정든 땅을 이별하기 어려워 또 울었다.
띄엄띄엄 한두 채 민박집과 식당들이 어수선한 마을을 지나면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대관령옛길이 시작되니,
작은 오솔길 밑으로는 섬섬옥수 맑은 물에 산천어는 노닐고
봇짐메고 한양으로 가는 길손이 뒤로 오는 듯 하다.
일찍이 강릉에서 한양으로 오르는 길은 이 길이라 어린 율곡의 손을 잡은 신사임당도
멀어지는 친정을 돌아보며 시 한 수를 읊어 지금도 전해진다.
늙으신 어머님 강릉에 두고
외로이 한양길로 떠나는 마음
때때로 고개돌려 북촌을 바라보니
흰 구름 사이로 저녁산이 푸르구나
시를 떠올려 몇 걸음 오르는 사이 터만 남은 주막거리에 당도한다.
신새벽에 길을 떠난 길손이 허위허위 올라 주막에 당도하면 아침이 되니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힘을 내어 고갯마루는 잠시다.
집이라도 있었음직한 허물어진 낮은 돌담이 펑퍼짐한 터가 군데군데 보이고
개복숭, 돌배나무는 사람이 심었노라 일러준다.
나무 사이로 유별나게 우산처럼 퍼진 큰 나무들이 몇 보이니 뽕나무라
유월이면 오디가 흐드러진다.
땀흘려 오르는 갈증에 오디 한 줌 따서 입에 물면 달콤하나 진하지 않고
입 안을 맴도는 향취는 오묘하기 그지없어 무어라 표현할 길 찾지 못 한다.
어른들은 휘어진 나뭇가지 끌어당겨 까만 오디를 따서는 아이들에게 쥐어주니
아이들은 처음 보는 까만 열매가 자못 신기하다 하고,
아직 그 맛을 알지 못함이라 즐겨 먹지는 않는다.
십여 년 전의 대관령옛길을 오르며 처음 만난 오디는 꿈에서나 본 듯 잊지 못 하매
그 후 서울에서의 유월이면 대관령옛길의 오디를 떠올린다.
대관령옛길에서 오디를 만난 후 정선에 벗이 부임했다.
항골계곡에 자리잡은 작은 대학의 독신자숙소에서 기거하는 그를 찾아
주말이면 정선으로 간다.
항골계곡으로 드는 마을의 이름은 羅田이라 불렀으니 비단밭이라
예로부터 누에를 길렀기에 뽕밭이 많았고,
지금도 그 때 이름으로 명주내라는 동네가 남아있어 자취를 찾을 수 있음이라
뽕나무는 여기저기 자생한다.
누에를 치지 않는 지금에야 뽕나무는 귀하지 않아 밭둑에 무성하면 베어내기 바쁘고
오디가 열렸어도 이 곳 사람들은 치어다 보지도 않는다.
벗의 독신자숙소 뒤에 큰 뽕나무 몇 있어 유월이면 오디가 흐드러지게 열리니
해마다 유월이 오면 서울에서 묻는다.
“오디가 익었는가?”
“아직... 한 열흘 기다리소.”
열흘이 지나면 정선으로 간다.
서울의 뙤약볕과 찌든 매연을 피하여 정선에 작은 집을 짓는 시점에
대학은 문을 닫아 벗은 떠난다.
애시당초 때가 되면 떠남을 알고 있었지만 가끔은 그립다.
또 유월은 왔고
오디는 익었다.
무릇 과일이란 가뭄에 달다 하니
봄가뭄이 길어 오디는 달디달다.
쟁반 하나 들어 까맣게 잘 익은 오디를 골라 따는 손 끝에
추억도 함께 물든다.
첫댓글 사뭇 오디를 내가 따는냥 즐겁고 행복한맘으로 풍경 상상하며 달 머물다 갑니다~감사합니다~^^
즐겁고 행복했다 하시니 반갑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유년시절 이맘때면 오디따먹던 생각이납니다
동작동현충원에 펏도 까맣게 익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도시에서 자랐기에 대관령옛길에서 처음 오디를 만났습니다.
텃밭둑의 뽕나무에 오디가 많이도 열렸네요...
오디..달고 맛나는데 요즘 얘들은 입이 까매진다고 안먹네요.
나그네님...정선에서의 일상이 그림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름도 아름다운 분이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나그네님과 발효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
생겼음 해요 ㅎㅎ
그 날이 언제일까요...ㅎ
어릴때 많이 다먹던 기억이 세록세록 떠오릅니다.. 그시절엔 아주 훌륭한 먹거리였었는데...
정선나그네님?? 님의 아름다운 글을 볼때마다 고향에 다녀온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감사 합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먹지 않아 그대로 땅에 떨어집니다그려...
본인도 어제는 외근 갖다오다가 회사근처에 차를 세워 놓고 오디를 따먹는데 비가 안와서 그런지 맛이 작년만 못하지만 그래도 맛있데요,요새중부지방은 너무 비가 안와서 농작물 피해가
점점커지는 모습이 보여요,옥수수가 드문드문 말라가고 오이 참외도 시들어 가는 모습보니 빨리 비가 많이 와야 되는데 걱정입니다. 강원도 정선쪽은 괜찮은지요?
그동안 두어 번의 비로 흡족하지는 않아도 아직 가뭄 피해는 없습니다만
조만간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오디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으니 뽕밭에서의 추억이란 없다는...ㅎ
재래종 오디가 작고 탱글탱글 한게 맛있는데~~
요즘은 그 뽕나무들 대부분 잘려지고 ~~~
그렇군요. 오디가 작다 생각했더니 재래종이군요. 대신 무척 달아요.
내어릴때 우리집울타리 나무속에 뽕나무있어 오디를 입이까맣도로 먹었는데 오늘 마트에서 만난 오디는
옛날 맛이 아니였어요. 정선에 오디 많아요?? 따러 갈까봐.ㅎㅎㅎㅎㅎ 생각만 해도 다리가 아프다.
다음글 기다리며.
오디는 많은데 아무리 따도 그릇에 차지 않습니다. 따면서 모두 입으로 가져가니...ㅎ
오디는 물도 잘 들어서
따는 이의 손끝에도
먹는 이의 입술에도
자국을 남기지요.
한 동안 안쳐다보던 열매들 인기가 적지 않으니
세상은 돌고 도는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나봅니다.
정선 나그네님 오디 따는 방식
쟁반 하나 들어 까맣게 잘 익은 오디를 골라 따는 손 끝에
추억도 함께 물든다.
대가족 오디 따는 방식
나락 말리는 검은 망(모기장과 비슷)을 뽕나무 밑에 펼쳐놓고 작대기로 털음.
무지 막지한 방식
작대기로 털어 그 많은 오디를 어찌 하려구...ㅎ
입술과 혓바닥, 손바닥에 검은 물감 들여가며 정신없이 따먹던 오디..
가뭄이 깊을때는 더욱 달았습니다.
요즘은 효소를 내는데 많이 쓰인다고 하지요..
방장형님 일상의 즐거움은 변함이 없는 듯 합니다..ㅎ
오랫만에 셋째님을 뵙습니다. 반가운맘 어케 표현하나요?ㅎㅎㅎ
금년의 오디는 가뭄이 들어 달아요. 글구, 셋째님은 자주 오시기를...
어렸을적 오디 산딸기 많이도 따먹었습니다.ㅎㅎ
오디먹으면 입이 검프르게되어 웃기도 많이했고.ㅋㅋ
뽕을딴 오디는 싱거워 맛이 없었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금 한창 익어갑니다. 손가락도 푸르게 물들이고...
조은열매님~ 지두 엄청 방가워요..ㅎㅎ
요즘두 여전하시지요?
그럼요~^^ 여전히 잘 지내고 있구요~^^ 산행길에서도 어딜 가다가도 셋째님생각이 문득문득나는건 왜 일까요?ㅎㅎㅎ
저는 까칠한편인데 까칠함과 정 같이 있나봅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언제나 평강하시길...
가믐에 익은 오디의 맛은 그 엣날을 화상케 하지요.
저도 주말농장에 자연뽕 (어디서 날아와서 난 뽕나무)
익어가고 있어 따먹어 봣죠. 그맛이 일품, 그것을 따서
설탕과 1:1 석어 한달정도 발효후 내려 마시면 복분자
그맛이 일품 이랍니다, 나그네님 한번 해 보심은 어떨지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양을 따기가 어렵습니다.
따면서 죄다 먹어버리니...ㅎ
복분자랑 오디랑은 다른과 아닌가요? 복분자는 산딸기 종류인거 같은데????
맞아요. 복분자는 산딸기에 속하지요.
벗은 떠나고,,,나그네만 남은 정선이네요....
저도 오디를 1KG에 만원주고 샀는데,,,예전의 맛보다 싱겁더라구요...설탕에 절여 놨어요,,ㅎㅎ
어차피 떠남을 알고 있었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쟁반들고 오디를 다러가면 연신 입으로 먼저 가는 바람에 언제나 빈 쟁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