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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 - 우 에인다까 사야도
우 에인다까 사야도께서
사성제에 관해 법문하신 내용을
혜송 스님께서 통역, 녹취하신 것입니다.
2005/6/23
이 법문은 붓다께서 대각을 성취하시고 2달 후에 까띠 지역 바라나국 이시빠다나 근처 미가다예(사슴동산)에서, 사람으로는 다섯 수행자를 위하여 설하였습니다.
대각을 성취하고 최초로 설하였으므로 붓다께서 빠알리로 담마쌕까 빠웃다나(최초로 법륜을 굴리다)라고 이름하였습니다. 다섯 수행자는 깨달음을 원하여 부처님보다 먼저 출가하여 산에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고따마 싯다르타가 王의 부귀를 버리고 출가하여 고행할 때,
‘저 분은 분명히 삼마삼붓다가 될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는 삼마삼붓다의 최초 설법을 들을 것이다.’라고 희망하고, 고따마 고행자가 더욱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더운물 찬물 등 필요한 것을 공급하면서 시봉하였던 이들입니다.
고따마 삼마삼붓다께서도 성불하신 후에 그들의 은혜가 많았음을 생각하여 가장 먼저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붓다께서 사성제를 최초 설법으로 정한 것은 그 당시에 노병사를 벗어난 최상의 행복을 원해서 수행하는 이들에게 유행하던 극단적인 수행 방법들을 벗어난 「中道」수행법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그 방법 한 가지는 마음이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오욕락을 마음껏 누리면 그것이 최상의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집단입니다.
오욕락이란 눈으로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귀로 듣고 싶은 것 다 듣고,
코로 원하는 향기 모두 맡고,
자신이 원하는 음식 모두 먹고,
몸으로 원하는 사람끼리 욕락을 마음껏 즐기는 등…….
오관이 원하는 것을 좇아서 쾌락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빠알리로 「깜마 뚜깐디까 누요고」라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위와 반대로 자신의 몸을 아주 고통스럽게 하는 고행을 하면 몸에 대한 갈애(탐)가 소멸해서 열반을 성취한다고 생각하는 수행집단입니다. 고행이란 눈으로 보고 싶은 것 안 보고, 귀로 듣고 싶은 것 안 듣고, 자신이 좋아하는 향기 안 맡고, 좋은 음식은 일체 안 먹고 안 마시고, 몸은 거친 옷만 입고, 더울 때 더욱 뜨겁게 추울 때 더욱 춥게 하는 등 최대한 몸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빠알리로 「아따낄라마타 누요고」라고 합니다.
붓다께서 출가하기 전 王의 영화를 누릴 때 천상보다 훨씬 완전하고 풍부한 오욕락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잠시 잠깐 행복할 뿐 오욕락의 탐은 끝이 없어서 - 원하는 것이 너무나 많아서 -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부귀영화를 모두 버리고 출가하여 고행 수행을 했는데,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심한 고행을 닦았습니다. 그리하여 만 6년이 되었을 때 고따마 고행자의 몸은 살과 피가 다 말라서 가죽과 힘줄, 뼈만 남은 고행상이 되었지만 하나의 도와 과도 성취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지나친 고행으로도 영원한 행복(열반)을 성취할 수 없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고따마 수행자께서 오욕락을 탐하는 것도 버리고 몸을 괴롭히는 고행도 버리고 「中道」라고 말하는 八正道를 갖추어서 몸과 마음을 관찰했을 때 하룻밤 동안에 대각을 성취하였습니다. 그것을 빠알리로 「밋시마 빠리빠다」라고 합니다.
붓다께서 다섯 수행자에게, “사랑하는 아들들이여, 갈애를 더욱 강하게 하는 오욕락을 삼가 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챙김 없이 몸만을 지나치게 괴롭히는 고행도 삼가라. 극단의 두 길을 놓아버리고 中道(8정도)를 수행하라, 팔정도를 수행하면 있는 그대로의 진리 사성제(네 가지 진리)를 정확히 알게 된다.
진리 네 가지란,
첫째 고통의 진리
둘째 고통의 원인의 진리
셋째 고통이 모두 소멸한 진리
넷째 고통이 모두 소멸한 진리에 이르게 하는 道의 진리이다.
진리 네 가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사람마다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고통을 고통이라고 정확하게 알면 그 고통을 받지 않도록 살 수 있고,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을 정확하게 알면 언제 어디서나 고통의 원인을 짓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고통이 소멸(적멸)한 진리를 정확하게 알면 그 곳에 도착하고 싶어지고 모든 고통을 소멸하는 바른 방법을 알면 바르게 닦을 수 있고, 바르게 닦으면 고통이 소멸한 곳에 도착하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 4가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붓다가 되시고 제일 먼저 이 법(고. 집. 멸. 도)을 설하셨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 고통의 진리가 있다.
① 어머니 태중에 지내는 것이 고통이다(좁은 공간에 언제나 뜨겁고 불안한 고통 속에서 지낸다).
② 늙어야 하는 것이 고통이다(늙지 않기 위해서 음식을 섭취하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지만 시시각각 늙어가는 것).
③ 죽어야 하는 것이 고통이다(그 어떤 생명이든 죽음을 당해서는 행복하지 않고 고통스럽다).
④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가 죽어갈 때 가슴이 뜨겁고 괴로운 것이 고이다.
⑤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통곡하고 기절하고 미치는 것이 고이다.
⑥ 몸에 병이 나서 가지가지로 괴로운 것이 고통이다.
⑦ 의식주가 부족하여 피로하게 일 해야 할 때 몸과 마음이 괴로운 것이 고통이다.
⑧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이 재앙으로 모두 사라졌을 때(괴로워하거나 너무 참담하여 정신을 잃는 것) 고통이다.
⑨ 싫어하는 이, 자신과 맞지 않는 이와 함께 지내야 하는 것이 고통이다.
⑩ 사랑하는 이와 멀리 헤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 고통이다.
⑪ 자신이 원하는 가지가지가 원하는 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것이 고통이다.
⑫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몸(육체와 마음)이 바로 고통이다.
왜냐하면 몸이 있는 생명들은 모두 먹기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피로하고, 입기 위해서 옷을 갖추는 것이 피로하고, 거처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이 피로하고 모든 고통들이 이 몸을 위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몸이 바로 고통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이므로 붓다께서 “둑카둑카(아주 고통)”라고 한다.
그 다음 고통은 오관이 원해서(보고, 듣고, 향기, 음식 …….), 행복한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으로 변화해서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지치는 것, “위쁘리나마 둑카(변화하는 고통)”가 있다.
그 다음은 사람들이 잘 알 수 없는 고통인데, 사띠빳타나 위빠싸나 수행자들이 몸과 마음을 관찰했을 때, 몸에 일어난 뜨거움‧ 차가움‧ 통증 등 가지가지들이 生滅하는 것, 즉 몸이라고 하는 물질과 정신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고통인 것. 이것을 “상카라(生滅하는)둑카”라고 한다.
지금 말하는 고통 세 가지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이 있어서 일어난다, 고통을 다른 데서 찾지 말라, 이 몸이 바로 苦이다.
자신의 몸(육체와 마음)을 주의를 기울여서 관찰하면 몸이 고통인지 행복인지(苦), 변화하는지 영원한지 알게 된다(無常). 그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들 성품대로 스스로 일어나는지(無我)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고통의 원인이 되는 진리입니다. 붓다께서, 고통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다. 고통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탐심(원하는 것 모두)이다. 탐심이 한 생을 다 망칠 수 있다(고통 속에 사는 것). 만나는 것, 보이는 것, 옷, 집……. 가지가지 대상, 물질들을 탐해서 살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생(세계)에 대해서 집착해서 살 수 있다. 욕망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깜마딴하(오관(색. 수. 상. 행. 식)을 통한 오욕락을 탐해서 사는 것)
둘째, 바와 딴하(사람세계, 천상세계, 색계, 무색계, 여자생애, 남자생애 등 가지가지 생에 집착하는 것)
셋째, 위바와 딴하(다음 생은 필요 없다고 생을 원하지 않는 탐)
이 세 가지 탐이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좋아하는 차(車)가 다른 차와 부딪혀서 망가졌다면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마음이 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차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이들의 차는 부서져도 마음에 아무런 고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남의 물건에는 집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모, 형제, 가족이 죽었을 때 슬프고 괴롭습니다. 그것은 부모, 형제, 가족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병원이나 길을 가다가 자신과 상관없는 이들의 죽음을 보게 되지만 마음에 고통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집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붓다께서 貪은 좋은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것에도 집착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세계에서 감옥에 갇힌 이에게 그 곳을 원해서 왔느냐고 물으면 원하지 않는데 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 갈만한 나쁜 행위를 하는 것은 그 곳에 가기를 원하는 거와 같습니다. 고귀한 생에 날 수 있는 선업을 짓지 않고 불선업을 짓는 것은 지옥에 가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생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수행하지 않고서 죽으면 끝이라고 생을 원하지 않는 이도 또한 더 나쁜 생을 받고 싶어 하는 거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부자도 싫고 가난한 것도 싫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현재보다 더 가난해지겠지요. 수행을 하지 않고서 생을 끝내고 싶어 하는 탐은 생을 받으려는 거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의 탐이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붓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붓다께서 이어서 세 번째, 멸의 진리를 설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이여 모든 고통이 소멸한 법(적멸)이 있다. 그 법은 탐이 모두 소멸한 것이다. 그것을 열반이라고 말한다. 탐이 소멸한 사람은 고통이 완전히 소멸한 영원한 행복 열반에 도착한다. 열반이란 걸어서 도착되는 곳도 아니고 죽으면 도착되는 곳도 아니고 수행을 해서 원하는 것(貪)이 하나도 없이 소멸 했을 때 저절로 도착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貪의 번뇌가 가장 근본이다. 모든 번뇌는 탐으로부터 일어난다. 탐의 번뇌가 소멸하면 진심이 소멸하고 탐. 진이 없으면 치심은 저절로 소멸 해 버린다. 소멸의 진리를 다시 말하자면 탐이 완전히 소멸해서 원하는 바(욕망의 불)가 완전히 소진 해 버린 것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道의 진리입니다. 붓다께서 “사랑하는 아들들이여 모든 고통(번뇌)이 소멸하도록 실천 수행하는 바른 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八正道이다.
8정도는,
정견 - 바르게(生. 滅) 보는 것
정사유 - 바른 생각
정어 - 바른 말
정업 - 바른 행위
정명 - 바르게 사는 것(정어와 정업을 지키면서 사는 것)
정정진 - 바르게 노력함(불퇴전의 노력)
정념 - 성성한 알아차림(대상과 아는 마음이 정확하게 만나는 것)
정정 - 집중하는 대상에만 마음이 밀착되는 것이다.
8정도를 완전하게 실천 수행하면 성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붓다께서 설하신 진리 네 가지(사성제)입니다.
바른 법 진리 4가지를 8정도가 갖추어 지도록 어떻게 닦는가하면, 苦 의 바탕인 이 몸(정신과 육체)을 관찰해야만 합니다. 그 몸이라고 말하는 이 고의 진리를 사실 그대로 알게 되면 집착하는 갈애가 모두 소멸합니다. 갈애가 완전히 소멸한 것을 소멸(적멸)의 진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성제를 반대로 말하자면 도의 진리가 일어나기 위해서 고의 진리(육체. 마음)를 관찰해야만 하고, 고의 진리를 관찰하면 갈애가 모두 소멸한 적멸의 진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집(고통의 원인)은 원인이고 고통은 결과입니다. 도(8정도)는 원인이고 적멸은 결과입니다.
이제 여러분 진리 네 가지에 대해서 모두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한 사성제의 진리를 완전하게 실천 수행하여 모두가 원하고 동경하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담마, 道와 果 열반에 이생에서 더욱 쉽고 빠르게 도착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스승님께서 해 주신 축원대로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자료를 제공해 주신 호두마을에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
사두사두사두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