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장풀
닭의장풀은 외떡잎식물로 달개비라고 불리는데 닭장 근처에서 잘 자라고, 파란 꽃잎이 닭의 볏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풀밭, 습기가 있는 땅, 길가 등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일년생 잡초다. 줄기는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고 마디가 굵고 마디 부분이 흙에 닿으면 마디에서 뿌리가 나온다. 잎은 달걀모양으로 어긋나고 잎의 끝은 뾰족하며 밑 부분이 얇은 잎 둘레가 줄기를 덮고 있다.
밭에서 가장 생명력이 질긴 잡초를 꼽으면 닭의장풀과 쇠비름일 것이다. 이 두 녀석은 호미로 뽑아 제 이랑에 두면 햇볕에 시들시들 말라가다가도 이슬만 받고도 살아난다. 잡초를 뽑아 아예 밭둑 멀리감치로 치우지 않으면 김을 매도 헛수고다. 닭의장풀은 바위나 돌담이나 울타리에 걸쳐두어도 허공에 수염뿌리를 드러내고 대기 중 습기로 생장을 계속해 한여름이면 파란 꽃을 피운다.
“어머니 생전 / 밭이랑 김매실 때 / 방동사니 쇠비름과 함께 / 모질기로 달개비만한 풀 있을까? // 잡초라고 뽑아 / 밭고랑 던져 놓거나 / 울타리나 돌담 걸쳐놓으면 / 시들시들하다가 금세 살아났다. // 하늘 향해 / 허연 뿌리 드러내고 / 이슬 받아먹고 목숨 이어 / 마디마디 보석 같은 꽃 피웠다.” 여기에 인용한 부분은 몇 해 전 내가 ‘닭의장풀’이라는 제목으로 남긴 시의 전문이다.
나는 출근길에 창원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지나 교육단지를 향해 걷는다. 대학 정문을 통과해 제2 캠퍼스와 붙은 보도를 따라 걸어간다. 자연석으로 계단을 쌓은 틈에서도 닭의장풀은 자라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모진 생명력에 새삼스러운 경의를 표한다. 도심에선 절로 자라는 야생화를 보기 드문데 닭의장풀이 피우는 꽃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틈에서도 자란다.
한여름에 피는 야생화는 보기가 쉽지 않다. 그것도 산중에 들어야만 산나리나 비비추나 산도라지가 피우는 꽃 정도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도심 공터나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닭의장풀이다. 닭의장풀은 흰 꽃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한 것은 파란 꽃이다. 허리를 굽혀 자세히 살펴보면 닭의장풀의 꽃잎은 모양이 좀 특이하다. 정말 닭의 볏처럼 생겼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정은 꽤 넓다. 본관 앞 너른 운동장은 천연 잔디가 심겨져 아주 싱그럽다. 본관 뒤뜰은 연못에 분수가 가동 되고 여러 조경수들이 자란다. 여름철엔 야간 당직을 서는 기능직 아저씨 두 분이 잡초를 제거하느라 잠시도 쉴 틈 없다. 잡초를 호미로 뽑거나 예초기로 잘라 놓고 돌아서면 또 무성해졌다. 기능직 두 분이 워낙 부지런해서 잡초와의 전쟁을 이겨내었다.
뒤뜰엔 봄날 화사하게 피던 꽃들이 더러 있었다. 양지꽃, 괭이밥꽃, 봄까치꽃, 제비꽃, 꽃다지들이다. 노란 민들레는 지천으로 피어 홀씨가 폴폴 날았다. 여름 야생화는 보기가 어려운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 학교 정원 구석구석 부지런한 기능직 아저씨 손길에도 살아남는 닭의장풀이 있다. 급식소 근처 콘크리트포장 경계에 자랐다. 본관 앞 화단도 용케 예초기 날을 피한 것이 있었다.
산자락과 맞닿아 자연석을 쌓아 영산홍 틈새도 보였다. 뒤뜰 산기슭에는 가을에서 겨울까지 교정의 낙엽을 쓸어 모아 둔 곳이 있다. 주변의 아카시나무 그늘을 드리워 볕이 잘 들지 않은 데였다. 그곳에도 닭의장풀은 싱싱하게 세력을 뻗쳐 자랐다. 아침 출근길 폴리텍 대학을 지날 때는 닭의장풀에서 파란 꽃이 피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 학교 교정 닭의장풀은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
닭의장풀은 한여름이 되어야 꽃을 피운다. 뙤약볕 아래서도 싱그러움을 잃지 않는 잎줄기에서 파란 꽃을 피운다. 닭의장풀은 대표적인 장일성(長日性) 식물이다. 일조량이 많아야 꽃눈이 분화되어 봉오리가 맺어진다. 내가 근무하는 교정의 닭의장풀은 하나 같이 구석지거나 그늘진 곳에 자랐다. 시간이 좀 지나야겠지만 우리 학교 교정의 닭의장풀에서도 언젠가는 꽃이 피어날 것이다. 1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