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당선생님의 위 글을 읽다가 필자가 쓴 아래 글이 떠올라서 답글로 붙입니다. 뜯어먹는 세상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법을 빙자한 뻔뻔한 사람이 늘어나는 마을은 사람 살 곳이 못됩니다. 나는 그 후 빵을 사러 이 가게에 갔지만 그때 그 사건이 어찌 처리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 청년이 세상을 그래도 긍정하며 살도록 빵을 더 많이 사 가지고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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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형, 세상이 정말 왜 이래요?
수필가 정임표
얼굴이 뺀 질한 아줌마가 스물 대여섯 쯤 된 앳된 사장을 붙들고 딴죽걸기를 하고 있다. 이 집 빵을 먹고 배가 아픈데 어쩔 것이냐고 하며 계속 다그친다. 내 딸아이 보다 나이가 적어 보이는 젊은 사장은 "어떡해요, 어떡해요" 하며 안절부절 쩔쩔 맨다. 빵을 고르고 있던 내 속에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온다. '여기 빵을 먹고 배가 아픈 것인지 다른 음식을 먹고 배가 아픈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역학 검사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배가 아프면 병원으로 갈 것이지 빵집에 와서 뭘 요구하고 싶은 것인가? 나는 매일 이 집 빵을 먹어도 아무 일 없던데' 하고 한마디 거들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빵을 고르는 척하며 둘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 ‘목소리가 생생한 걸 보니 아프기는커녕 힘만 좋구먼.’
뺀질이 아줌마의 말 같잖은 소리를 계속 듣다보니 “나일론 뻥”이라는 화투놀이가 떠올랐다. 요즘은 화투를 거의 치지 않지만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농한기가 되면 할일이 없어 사람들이 모였다하면 화투를 치고 놀았다. 화투 놀이는 민화투에서 시작하여 육백, 삼봉, 구삥, 나중에 고스톱 까지 나왔는데 고스톱이 나오기 전에는 “나일론 뻥”이라는 게 유행 했다. 화투 패를 5장씩 나눠서 들고 돌아가면서 한 장 씩 추가로 가져가서 짝을 맞추다가 상대방이 내 손에 쥔 두 짝의 패를 내게 되면 “비 뻥에 똥” 하며 석장을 털어 내고 나머지 손에 쥔 두 짝의 패로 자기가 이길 자신이 있을 때 스톱을 부르고 ‘구삥’처럼 끗발을 따져서 장땡을 최고로 하여 그 판의 승부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 뻥을 치는 패인 “똥”을 잘못내면 상대방 중에서 “똥” 두 쪽을 쥐고 있으면 바로 바가지를 씌워서 함부로 “뻥”을 치지 못하게 응징한다. 부엉새가 우는 긴긴 겨울밤을 보내는 데는 참으로 적격인 재미있는 놀이였는데 이제는 그 규칙도 가물가물하다.
‘나일론’이란 말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나일론 양말이 등장하고서다. 약장수 비슷한 ‘나일론’ 양말장사가 왔는데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로 깨물고 마구 잡아 당겨도 찢어지지 않고 물에 넣었다가도 툴툴 털면 바로 건조가 되는 신기한 양말이었다. 설치고 뛰어 다니는 어린 자식들 양말 뒤꿈치를 꿰맨다고 낮에 들일하고 돌아와서 저녁 늦게까지 침침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 한다고 골병든 엄마들에게는 정말 신의 선물 같은 양말이었다. 그 후 세월이 한참 흘러 우리 사회가 보험 사회가 되자 ‘나일론 환자’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자동차 보험금을 타먹으려고 아프지도 않은데 환자 행세하며 입원실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나일론 환자 때문에 한 몫 보는 사람이 있으니 나이롱환자는 요즘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계속 빵을 고르는 척 하고 있고, 아줌마는 배상을 얼마 해내라고도 하지 않고 어린 사장을 붙들고 어떻게 할 것이냐고 자꾸 다그치기만 하는데, 말하는 품세가 보통 요령꾼이 아니다. 그 때 젊은 사장이 모기만한 소리로 한마디 한다. "여기 빵 먹고 배가 아픈지 다른 것 드셔서 배가 아픈지 제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나는 속으로 ‘옳지 그렇게 당하지만 말고 반격을 해야지’ 하면서 격려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그러면 내가 계속 그 빵을 먹어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한다. ‘먹고 싶으면 먹고, 말고 싶으면 말면 될 일이지 어른이 돼 가지고 크는 애들 데리고 말하는 꼬락서니 봐라! 그걸 말이라고 하나! 에라이~'. 우리 ’어매‘가 살아서 이 꼴을 봤다면 ‘야, 이것아! 개 대가리 딩기(등겨)를 털어 묵어라!’하고 머리채를 잡아 뜯었을 것이다.
빵을 고르던 잠시 잠간의 순간에 나일론 뻥과 나일론 양말과 나일론 환자에 더하여서 돌아가신 우리 ‘어메’까지 떠오른 것은 ‘뻥“을 쳐도 참으로 끈질기게 친다는 생각이 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테스 형, 세상이 정말 왜 이래요?”
(필자 주)
“개 대가리 딩기(등겨)를 털어 묵어라” : 가난하던 시절에는 집에서 키우던 개도 늘 배가 고팠다. 보리방아를 찧을 때 나오는 부산물인 등겨를 사료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개가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등겨 가마니에 대가리를 집어넣어서 컥컥 목이 메어가면서 허겁지겁 먹다가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나면 부리나케 달아나곤 했는데 그때 개 대가리에 붙은 등겨까지 털어서 먹을 지독한 인간성을 비난하는 속된 은유이다.
(2024년 <에세이 21>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