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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수(度數)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계에 다다르면 다음 단계로 변화되도록 짜여져 있는 일종의 흐름도를 말한다.
☯ 육도수(六度數)란?
일찍이 중국 송대(宋代)의 현자(賢者) 소강절(邵康節)은 인류의 역사에서 이러한 도수를 발견하고 인류 역사의 변천 과정을 6단계로 나누어 설명한것을 말하는데,
소강절은 이러한 도수의 흐름을 파악하여 그의 저서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서 인류역사의 변천 과정을 6단계로 밝혀 놓았다.
즉 인류의 역사는 그 동안 황(皇) • 제(帝) • 왕(王) • 패(覇) 시대를 거쳐 왔고, 이적(夷狄) 시대를 지나 더욱 타락하여 도덕성이 없는 인두겁의 금수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 육도수에 나타나는 인류 역사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인류역사의 흐름에 따라 인세(人世)에 도(道)가 어떻게 세워졌고 변해왔는지 진단해 봄으로써 절대 절명의 위기인 말대(末代)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도가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소강절의 육도수를 좀더 구체적으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
1. 황시대(皇時代 : B.C 3528~B.C 2592) ; 배천입극왈황(配天立極曰皇)
☞ 삼황(三皇) 시대로서 하늘과 더불어 지극히 바르게 세워진 시대
삼황이란, 천황(天皇) 태호 풍복희(太昊 風伏羲) • 지황(地皇) 염제 강신농(炎帝 姜神農) • 인황(人皇) 황제 희헌원(皇帝 姬軒轅)을 말한다.
태고(太古)에 삼황(三皇)이 오기 전 인류는 풀잎이나 짐승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산짐승을 잡아 혈식(血食)하고, 나무 열매나 풀뿌리로 연명하였으며 땅을 파고 굴속에 거처하고 들판에 풀을 덮어 웅크리고 살았으니 생활의 도리가 구비되지 못하였고, 임금이 없이 모여 살아 서로 싸우고 빼앗으며 약자는 죽고 강자는 차지하니 인도(人道)가 구비되지 못하여 마치 금수(禽獸)와 같았다.
천도(天道)가 창창(蒼蒼)하였으나 도(道)를 알 길이 없어 그 이로움[德]을 취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삼황(三皇)이 내려 하늘의 때[天時]를 알고, 땅의 이치[地理]를 밝혀 백성을 기르는 기구를 만드니 의복과 음식과 집과 각종 용기(用器)가 갖추어져 백성들이 필수품을 얻어 생을 즐기면서 생업(生業)에 편안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안일하게 지내면서 가르치지 아니하면 금수에 가까워짐을 근심하여 인심을 따르고 천리(天理)를 근본으로 하여 교화(敎化)기구를 만들어 가르치니 백성이 지혜로워지고 천리에 순응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만인(萬人)이 삼황(三皇)을 우러러 의문이 있으면 가르쳐 주기를 구하고, 다툼이 있으면 해결해 주기를 구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이끌어주기를 구하니 백성들의 군사(君師)의 직책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백성들이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는데 민심의 향하는 바가 바로 천명(天命)의 돌아오는 바라, 만백성의 임금이 되어 다스리니 천도의 이로움[德]을 백성들이 입게 되었다.
① 천황(天皇) 태호 풍복희(太昊 風伏羲)
지금으로부터 약 5,500년전 사람으로 [한단고기] [신시기]등에는 배달국 제5대 태우의 환웅의 열두아들중 막내로 태어나 風山에서 살았으므로 性을 風이라 하였다 한다.
정치기구를 두었으며, 집짓는법, 제사법을 내놓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제도를 만들어 가정을 이루게 하고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서 백성의 배를 부르게 했다. 풍씨는 15대까지 내려오다 대가 끊어지고 여덟가지 성으로 갈라지고 지금은 風體, 風骨, 風身등 몸의 칭호로만 전해진다.
② 지황(地皇) 염제 강신농(炎帝 姜神農)
풀을 먹어 독초와 약초를 가려내어 神農本草經을 지었으며, 농기구를 만드는 주조법을 가르쳤고, 시장을 만들어 물물교환을 가르치는등 백성들의 생활법도를 내놓았다. 姜水에서 살았으므로 성을 姜氏라 하였고, 지금까지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성씨가 되었다.
③ 인황(人皇) 황제 희헌원(皇帝 姬軒轅)
나라를 9구조 나누어 다스렸으며 天干地支를 만들어 六十甲子를 제정하였고, 치우가 청동갑옷을 입고 안개를 피워 작란하였으나 헌원씨가 指南車로 치난하여 나라를 안정케 하였다. 황제의 성은 公孫인데 姬水에서 오래 살았으므로 성을 姬라고 고쳤다.
2. 제시대(帝時代 : B.C 2598~B.C 2208) ; 덕합사해왈제(德合四海曰帝)
☞ 오제(五帝) 시대(時代)로써 삼황(三皇) 이후 대대로 성인(聖人)이 이어져 덕(德)이 사해(四海)에 넘쳐흐르는 태평시대(太平時代)였다.
성인이 천도(天道)로 본받아 그 이치(理致)로써 다스려 백성들로 하여금 게으르지 않게 하였으며 신통(神通)한 것으로 교화(敎化)하여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편히 하니 백성들은 각자 자기 본분을 다하여 옷을 늘어뜨리고 있어도 천하가 다스려졌다.
①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
황제의 아들이다. 제(帝) 위에 오르자 봉황(鳳凰)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 한다. 황제를 이어 천문(天門)과 지리(地理), 인사(人事)를 널리 권장하고 구주(九州)에 법을 세워가니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② 전욱(顓頊) 고양씨(高陽氏)
황제의 손자. 이때까지 백성들과 신들이 함께 살았다. 신을 신봉하는것을 예로 제정하였으며, 농작물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며 황무지를 일구었다.
③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
황제의 증손자.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은덕을 베풀었다.
④ 제요(帝堯) 도당씨(陶唐氏)
제곡의 아들이며, 황제의 현손. 근신절도하여 몸으로써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였다. 명협이라는 풀을 통해 순,삭을 알아 달력을 제작하여 가르치니 백성들은 계획하고 준비할수 있었다. 천도의 위대한것은 무위이화인데 이것을 본받아 천하를 다스림.
⑤ 제순(帝舜) 유우씨(有虞氏)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고 많은 직책을 위임한 까닭에 몸소 일하지는 않았지만 천하는 잘 다스려졌다.
☯ 삼황에 의해 지극히 세워졌던 도는 요순에 이르러 널리 이루어져 덕이 사해에 넘쳤다.
3. 왕시대(王時代 : B.C 2205~B.C 770) ; 계천우세왈왕(繼天于世曰王)
☞ 왕(王)이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세상을 다스려 나가던 시대이며, 무력과 폭력이 시작되는 시대.
우(禹)가 석주(石柱)로 9년 홍수를 막아내는 것을 보고 순(舜)은 천하를 우(禹)에게 물려주었다.
우왕(禹王)의 이름은 문명(文明)이며, 요임금 시대에 치수를 맡았던 곤(鯤)의 아들이고 전욱(顓頊)의 후손이다.
요임금 때 대홍수가 나서 산봉우리까지 물바다를 이루게 되자 요임금은 물을 다스릴 사람을 찾게 되었다. 사악(四岳:요임금 당시 관직명)이 곤(鯤)을 추천하여 치수를 담당케 하였으나 도리어 막히어 다스리지 못하였다.
이때 요임금은 자신의 뒤를 이어 천하를 다스릴 순(舜)을 찾아 왕권을 이양하였다.
그런데 왕권(王權)을 이어받은 순(舜)은 곤(鯤)을 익산(翊山)으로 귀양을 보내 죽게 하였다. 그러자 우(禹)는 부친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치수를 맡고자 하므로 순(舜)은 우를 기용하여 치수를 맡게 하니 그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외지에 거처하며 치수 기간 8년 동안
3번이나 그 집 앞을 지났으나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9주(州)에 9개의 수로를 내었으며 9도(道)를 통하게 하였다.
또한 아홉 개의 큰 호수에 제방을 쌓았으며 큰 산 9개를 뚫었다. 이것을 순에게 고하자 순은 그의 사업을 칭찬하며 말하길 “땅이 평(平)하고 하늘이 이루어지니 육부(六府)와 삼사(三事)가 진실로 잘 다스려져서 만세토록 길이 의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대의 공이라” 하며 천하를 우에게 넘겼다.
4. 패시대(覇時代 : B.C 770~AD 280) ; 선세후의왈패(先勢後義曰覇)
☞ 먼저 세력을 다투고 승리 후에 정의를 내세우던 패자시대(覇者時代)이다. 도덕정치보다는 힘의 정치가 행하여지는 시기이다. 영웅들이 등장하여 패권을 다투는 시대였으며 모사(謀士)들의 권모술수가 난무하며 각종 병법이 나왔던 시기이다.
주(周)왕조가 성립된 후 13대에 와서 평왕(平王)은 견융족(絹戎族)의 침입을 피해 수도를 낙양으로 옮김으로써 동주시대(東周時代, B.C 770~B.C 221)가 열리게 된다.
동주시대는 다시 춘추시대(春秋時代)와 전국시대(戰國時代)로 나뉜다.
춘추시대에 들면서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점점 약해져 왕으로서의 위력이 없어지고 대신 강력한 제후(諸侯)들이 각처에서 서로 패권(覇權)을 다투게 된다. 이 가운데 패권을 잡은 제후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는데 이 오패(五覇)는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문공(文公), 초(楚)나라의 장왕(莊王), 오(吳)나라의 왕 합려(闔閭), 월(越)나라의 왕 구천(勾踐)을 가리키는데, 한편 진(秦)나라의 목공(穆公), 송(宋)나라의 양공(襄公)이나 오나라 왕 부차(夫差) 등을 꼽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B.C 453년 경 오패 중 가장 강력했던 진(晉)이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뉘면서 전국시대가 펼쳐졌다.
춘추시대에는 그나마 힘이 약한 주나라 왕실을 존중하는 관념이 있었으나 전국시대에 접어들자 이러한 관념은 사라지고 오직 힘과 힘이 대결하는 약육강식의 양상이 펼쳐졌다.
그 결과 천하는 다시 칠웅(七雄)으로 할거하였는데, 전국시대 칠웅은 한(韓), 위(魏), 조(趙)와 초(楚), 진(秦), 연(燕), 제(齊) 등 일곱 국가였다. 이 중에 진(秦)나라를 제외하고는 근 2백 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어 여섯 나라는 국력이 쇠약해졌다. 이를 진나라가 차례로 멸망시키고, B.C 221년에 제나라의 마지막 항복을 받아내어 진의 시황제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웠다.
이 시기에 공자(孔子, B.C 552~B.C 479)가 나서 요(堯) • 순(舜) • 우(禹) • 탕(湯) • 문(文) 시대의 왕도정치를 구현코자 철환천하(轍環天下)를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자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의 교육에 힘써 유교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공자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유가(儒家)를 비롯해 한비자의 법가(法家), 묵가(墨家), 도가(道家) 등 여러 문파(門派)가 나와 사상적 논쟁과 혼란이 가중되었으므로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천 년 동안 이어 내려오던 많은 문헌과 전통은 모두 불살라져 버리고 묻혀져 왕도(王道)의 맥은 끊어져 버렸다.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구덩이에) 파묻다는 뜻으로, 진시황이 주 왕조 때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승상 '이사'의 입안으로 중앙집권의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법가사상을 바탕으로 사상을 통일하고자 '옛 책을 통해 배운 사람들 중에는 옛 책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중앙 집권적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 비난하니 반드시 필요한 의학, 점, 농업, 진나라 역사에 관한 책을 제외하고 모두 불태우라는 승상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많은 희귀한 책들이 불태워졌다.(분서)
다음해 진시황의 이러한 행동들을 비난하는 많은 유가들이 있자 그들을 모두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갱유)
통일 대업을 이룬 진시황은 스스로 황제(黃帝)라 칭하고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아방궁과 여산릉의 공사 등을 벌여 과중한 노력 동원을 하였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그 결과 시황제가 죽은 다음해인 B.C 209년에 마침내 진승(陳勝), 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켜 이 반란을 신호로 세상은 또다시 패권 다툼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종국(終局)에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의 초한전(楚漢戰)이 일어났으나 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漢)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한나라 14대 평제(平帝) 때에 이르러 환관과 황후를 비롯한 황제의 외척들의 권력투쟁은 극에 달하여 평제가 외척인 왕망(王莽)에 의하여 살해당했다. 외척 왕망은 한나라의 왕권을 찬탈하여 ‘신(新)’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나 제도개혁에 실패하고 15년 만에 광무제 유수(光武帝 劉秀)에 의하여 후한(後漢, 25∼220)이 세워졌다.
광무제는 이십팔장(二十八將)을 비롯한 어진 신하가 많아 정치는 안정되어갔고 백성은 일시 평안을 찾았으나 후한의 후기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외척과 환관들의 발호로 정치는 문란하고 세상은 어지러워졌다.
그러자 전국에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후한의 왕조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가기 시작하였고, 군웅이 할거하여 천하는 삼분되어 위(魏, 220~265), 촉(蜀, 221~263), 오(吳, 222~280) 삼국(三國)이 정립되었다.
이후 삼국은 치열한 패권 다툼 끝에 사마염(司馬炎)이 280년에 오나라를 마지막으로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했다. 이로써 먹고 먹히는 오랜 패권다툼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5. 이적시대(夷狄時代 : 280~1911) ; 왕지부도왈이적(王知不倒曰夷狄)
☞ 각국 왕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크게 다투던 시대로 서로 다른 나라를 오랑캐로
간주하던 시대이다.
중국은 주변 민족을 크게 넷으로 나누어 동이(東夷) • 서융(西戎) • 남만(南蠻) • 북적(北狄)이라 불렀다. 하지만 오랑캐라 불리던 민족도 세력을 얻으면 역시 다른 민족을 오랑캐로 간주하였다.
280년에 건립된 서진(西晉)이 망하고, 317년 사마예가 중원과 지방 토착호족의 추대를 받아 동진(東晉)을 세웠다. 이 동진 왕조와 때를 같이하여 중국 북부에는 흉노(匈奴), 선비(鮮卑), 갈(乫), 저(楮), 강(羌) 등 다섯 이민족이 약 130년 간 중국 북부에 16개의 왕조를 세웠는데 이를 5호16국이라 한다. 이들 중 선비족(鮮卑族) 출신의 탁발씨(拓跋氏)가
439년에 북부(北部)를 통일하고 남부는 송(宋)의 유유(劉裕)가 통일함으로써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가 열렸다.
이후 수나라(隋) 문제(文帝)가 북쪽의 호족들을 물리치고 남쪽으로 내려와 5호16국 중
남조(南朝) 최후의 진(陳) 왕조를 멸망시켜 통일천하를 이루었다. 그러나 수(隋)나라는
겨우 3대, 39년 만에 망하고 당(唐)나라가 건립되었다.
당나라는 618년에 이연(李淵)이 수나라를 멸하고 세운 나라로써 이연의 아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24장(將)의 도움으로 천하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당은 건국한 지 20대 290년 되는 907년에 후양(後梁)에게 멸망하였다.
당이 망하자 중국 대륙은 또다시 분열되어 5대10국 시대가 약 반세기 동안 존속하다가 이후 송(宋)나라 태조(太祖) 조광윤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 후 12세기 초엽 여진족(女眞族)이 세운 금(金)나라는 요(遼)나라를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북부 중국으로 쳐들어와 1127년 송나라의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송나라 고종(高宗)이 강남으로 피난하여 임안[臨安:지금의 항주(杭州)]에 도읍을 정하고 남송(南宋)이라 하였다. 그러나 북부 몽고에서 일어난 칭기즈 칸이 금나라 등을 멸망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남송을 침입하여 결국 송은 망하고 몽고족에 의한 원(元)나라가 서게 되었다.
그러나 원나라는 불과 90년 만에 망하고 주원장(朱元璋)이 1368년 명(明)나라를 세워
남경(南京)에 도읍을 정했다. 이후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가 즉위하면서부터 동북쪽의 여진족 누루하치가 그 세력을 확장하더니 명나라는 17대 숭정제(崇禎帝)에 이르러 끝내 북경이 함락되고 명나라는 17대 227년 만에 멸망했다. 그리고 여진족에 의해 청(淸)나라가 세워졌다.
청나라도 말기에 이르러 국내적으로는 백련교도(白蓮敎徒)의 난과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이 일어나고, 국외적으로는 아편전쟁과 1856년 에로우 호 사건을 거치면서 서구 열강의 공격을 받아 수도 북경이 함락되어 청나라는 스스로 침몰하였다.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최후의 황제 부의(溥儀)를 마지막으로 멸망하였다.
6. 금수시대(禽獸時代 : 1911~현재) ; 부지강상왈금수(不知綱常曰禽獸)
☞ 인간의 근본(根本)을 잃고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일상의 도리[常道]를 알지 못하는
금수(禽獸)들의 인두겁 시대.
중국의 중원은 삼국통일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외부의 오랑캐라 불리는 세력들에 의해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쳐 왔다. 이러한 와중에 인간성의 타락은 극도에 이르고 결국 모든 전통과 문명조차도 상실되어 오직 본능적 욕심과 야욕으로만 일관하는 금수와 같은 마음으로 타락되어갔다.
이것은 소강절이 중국을 배경으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였지만 결국 이러한 양상은 전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물질문명이 앞선 서양세력들은 힘의 우위를 내세워 전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인간으로서는 차마 행할 수 없는 인신매매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또한 동양이라고 예외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권력을 쥔 위정자 계급들은 힘없는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야말로 인륜도덕이 사라진 금수세상으로 변하여 전 인류는 진멸지경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 상황들에 대하여 소강절은 미리보기라도 한 듯이 이미 오래 전에 육도수(六度數)로써 밝혀놓았던 것이다.
『채지가』 ‘춘삼노인 이야기’에도 위와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천황지황 개벽후에 인황시대 언제련고
반고인이 지낸후에 삼황시대 이때로다.
삼황시대 지나가고 오제건곤 어느땐고
오제건곤 지나가고 왕패시대 되었구나.
왕패시대 지나가고 이적금수 운수로다.
이적시대 지나가고 금수운이 이때로다.
개벽이후 몇만년후 금수시대 당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