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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7월2일 주일 [(녹)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수도회]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다하는 행복한 제자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1역대 24,18-22
○ 제2독서 로마 5,1-5
† 복음 마태 10,17-22
◈ 오늘의 묵상
한국인으로서 첫 번째 사제이신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십니다. 고국을 떠난 지 9년 만인 1845년, 중국 상하이 근처
김가항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하여 1년 남짓한 짧은 사제 생활 끝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하신 분입니다.
참으로 고귀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김 신부님은 서양 학문을 체계적으로 배운 최초의
한국인이었지요. 조정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회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오직 하나만을 택하고 맙니다. 바로 하느님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순교의 칼을 당당히 받았던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끝까지 사제의 길을 지킬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솟아
나오는 것입니까?
물론 본인의 신심과 열정에서 나왔겠지만, 그 뒤에는 많은 교우가 드린
기도의 힘이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사제는 신자들의
기도를 통해 성장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제들의 힘과 능력, 용기는 신자들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제들이 순수함과 열정을 잃지 않도록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부족한 사제의 노력과 능력을 메워 줄 영적인 힘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사랑
2017년 가해 7월2일 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
(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8-22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5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우리나라의 법정근로시간은 주 40시간입니다. 그런데 주 40시간이
아니라 52시간 넘게 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15세 이상 18세 미만자는
1일 7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단,
노사 간 합의에 의해서 12시간까지 초과근무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요. 따라서 52시간까지는 합의하에 어떻게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문득 지난 번, 성지에서 만났던 한 고등학생이 떠올려졌습니다.
너무나도 의욕이 없는 모습을 보고서 “왜 어디 아프니?”라고 물었더니,
곧바로 “피곤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오늘은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성지 미사에 가자고 억지로
끌려왔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학생이 공부만 하면 되는데 뭐가
피곤하냐?”라고 말씀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한 주에
공부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아마 12시간 초과근무를 뛰어넘는
시간을 공부하고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공부라면 그럴 수 있다 싶어도, 억지로 또
마지못해서 하는 공부는 중노동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쟁사회에서 뒤처지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
마음대로 하라고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매일 전쟁 중이라고
어떤 부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국제중-특목고-명문대-출세’의 코스를 밟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이의 체력과 실력,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 있어야 한다고 어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씁쓸한 기분과
함께 과연 이 길이 진정으로 행복한 길인가 싶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돈과 명예와 권력의 잣대로 판가름되고, 모든 것이
소유 개념에 의해 평가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부모, 처자, 형제자매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하나의 소유로 대할 때가 많아집니다. 남편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돈과 명예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부모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식이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 부모의 위신을 세워주어야 하며, 친지들에게 자식 자랑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맺어지는 부모 자식, 부부, 친구 사이는 그들 존재 때문이
아니라 재물과 명예, 이기심 따위가 바탕에 근거한 것이 됩니다.
이들을 공동체로 묶어주는 것은 오로지 소유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라는 말씀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를 멀리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관점인
소유로 보는 것이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관점인 사랑으로 바라볼 때, 진정으로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의 유일한 비결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동시에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헨리 포드).
어제 강의를 했던 대구 관덕정 성지
생명이 먼저...
현모양처의 대명사이고 자녀 교육을 누구보다도 훌륭히 했던 인물을
뽑으라고 한다면 아마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사임당도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율곡 이이를 못 키웠을걸요.”
요즘에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의 사교육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아이 한 명에게 들어가는 총
교육비가 최소 1억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결혼 포기가 이득이라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인간 생명보다 재물을 우선으로 여긴 결과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생명은 하느님의 영역이고 재물은
세상의 영역입니다.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각들은 결국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지 못합니다. 계속된 부족함만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역인 생명을 존중하고 우선시한다면
분명히 충분한 만족을 가져올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성당 내부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다하는 행복한 제자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7월2일 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2열왕 4,8-11.14-16ㄴ; 로마 6,3-4.8-11; 마태 10,37-42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마태 10,38)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다하는 행복한 제자
오늘 복음은 참된 제자의 길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의 파견설교(10장)
의 결론 부분입니다. 오늘 대목은 참 제자의 기준과 제자들의 신분에
관해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인 우리도 어떻게 그분을
추종해야 할지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을 따라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나섬은 떠남을 의미합니다. 떠남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남이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에 자신을 던지는 것을 말하지요. 떠남은
소유를 포기하는 것이고, 깊이 젖어있는 습관과 정서를 망각의 숲으로
날려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떠난다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떠나 따르고자 하는 예수님을 향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쏟기 시작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삶을 통째로 바꾸고 뒤엎는 일이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과 자기포기, 확고한 결단 없이 실행할 수 없는
‘위험한 신앙의 도전’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10,37)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따르고자 하는 예수님을 다른 그 무엇보다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적당히 저울질하며 따른다면, 그것은 거래이지
‘거룩한 추종’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10,38) 하십니다. 제자들은 자신을 얽매고 있는 현세의
굴레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위해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십자가란 무엇일까요? 자기 십자가는 바로 자신입니다. 나의
나약함과 한계, 내가 겪은 고통과 아픔, 시련과 슬픔, 불안과 분노 등
주님께로 걸어가는 길을 가로막고,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모든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외면하고 내려놓고 가려 한다면,
그건 제자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랑하기에 앞서 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저 그것을
묵묵히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이지요. 오늘의 사회에서는 이런 제자의 길을 걷기가
너무도 힘듭니다.
그러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목숨을
다해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날 때,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며, 좀 더
성숙한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비록 고통스럽고 힘겨워도
그 무엇보다 더 강한 주님 사랑의 힘을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그분과 함께 사는”(로마 6,8) 행복한 제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 18)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7월2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 18)
휘어지고 흔들리는 모든 순간들을 지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있습니다.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그의 시간에 아프게 다시 보게됩니다.
새 아침은 언제나 어두운 밤을 지나야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어둡고 가장 추웠던 이땅의 역사안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기도로 아침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느님을 향한 그의 정신을 꺾을 순 없었습니다.
짧은 삶이 더더욱 풍요롭고 넉넉한 품이 되었습니다.
성직자들을 철들게 하시는 첫사제가 계십니다.
지켜야 할 것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임을 뜨겁게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이 응답한 길에 끝까지 충실하셨습니다.
변함없이 성직이라는 직분을 지키고 서 계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통해 우리의 삶도 익어가길 기도드립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희망하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도의 삶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이땅의 우리를 위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헤매이더라도 만나야 할 분 증언해야 할 분은
우리의 영원한 사제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잊지맙시다.
지켜야 할 것이 무언지를 아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의 성직자들을 위해 빌어주소서.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착실히 준비해서 천국에서 만납시다!
2017년 가해 7월2일 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경축이동
마태 10,17-22
착실히 준비해서 천국에서 만납시다!
사제나 수도자, 사목자들의 양성을 담당하면서 크게 느낀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실연을 당해서, 세상에서 못 다
이룬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 문을 두드리는 지원자는 가급적
받아들이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수도원은 도피처가 아니며 정치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는
우울한 얼굴로 마지못해 살아가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복음 선포를 향한 열정과 이웃 사랑으로 가득한 하느님의 사람들이
충만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지상천국이 수녀원이어야 합니다.
최근 저희 살레시오회 윗선에서도 수도자 양성과 관련해서 자주
강조하는 바가 있습니다. 아무리 성소자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부적격자들은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양보다 질을
선택하라는 지시입니다. 단 한명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수도자로
양성시키라면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내려 보냈습니다.
4가지 측면, 즉 인간적 측면, 영적인 측면, 지적인 측면, 사목적 측면에
고른 성숙도를 갖춘 수도자요 사목자 양성! 그런데 문제는 그런 후보자
한명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온화하고
덕스런 성품, 깊이 있는 기도생활, 지혜와 경륜, 경영 능력에
리더십까지 골고루 갖춘 사목자가 예수님 빼고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그 모든 덕과 자질을 겸비한 매력적인
사목자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와 수도회에 모두가
우러러볼 합당한 사목자들을 더 많이 보내주시길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같은 사목자 말입니다.
비록 지극히 짧은 생애, 그리고 1년 남짓한 사제로서의 삶을
살다가셨지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참으로 제대로 된 사제의
본보기를 남기셨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서한,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느끼는 바는, 그는 진정 참 사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목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하는 명확한 이정표를 잘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주님의 거룩한 사제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 그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정도의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 깊은 학문적 소양과 해박한 교리지식, 동포들과
양떼를 향한 뜨거운 사목적 열정, 박해자의 서슬 푸른 칼날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는 그 당당함, 그 논리정연함...
외국에서 생활할 때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먼 나라의 사제들과 신자들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의 축일에 기념미사를 봉헌하시며
강론시간에는 신자들에게 김대건 신부님의 탁월한 덕행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신부님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
교회 신자들이 공경과 존경을 드리는 위대한 성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온 교회가 김대건 신부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한국 천주교회 1호 사제여서만은 아닙니다. 순교자여서 뿐만도
아닙니다. 그의 놀라운 신앙 때문입니다. 그가 남겨준 영웅적 덕행
때문입니다. 하느님 섭리의 손길에 대한 깊은 신뢰심 때문입니다.
교회와 교도권에 대한 항구한 충실성 때문입니다.
만 25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다가온 죽음이 많이 두렵고 또
아쉬웠을 텐데,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조금도 위축됨 없이, 의연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고 만민
앞에 자신의 장엄하게 신앙을 고백하며 사목자로서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곧 형장에 나갈 터이니 착실히 준비해서 천국에서
만납시다. 부디 지금의 박해에 굴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다져
밤낮으로 하느님께 빌어 세속과 육신과 마귀를 대적하고 이 고난을
참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여러분의 영혼을 구하십시오. 이런
시련은 오히려 공로를 쌓기에 좋은 기회이니 감사히 여기며
성인성녀들의 삶을 본받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서로 위해주고
일치를 이루며 주님의 자비를 청하고 주님이 마련하신 은총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할 말이 무수히 많지만 옥중에 있어서 다 못하겠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함께 행복을 누리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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