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35-36 예수께서는 종은 아버지의 집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지만 아들은 영원히 머물러 있다며 아들이 너희를 죄의 종에서 해방시켜주면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자신들을 자유하게 한다고 하시자 발끈하여 화를 내며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씨이고 한번도 매여있었던 적이 없었다며 반발하자 예수께서는 죄를 짓는 자마다 모두 다 죄의 종이라고 대답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아들은 언제까지나 아버지 집에 머물러 있다며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이다.
35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34절에서 죄를 짓는 사람들은 다 죄의 종이라는 말과 연결이 된다. 모든 인간들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뜻대로 살기에 모두가 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을 대적하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상속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의 주인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러나” 라고 하시며 종은 그 집에 영원히 머물러 살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지금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중심으로 살고 있지만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 뿐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방인들의 노예제도로 해석하면 안된다. 이방인들은 노예를 소유하면 영원히 자신들의 소유이고 죽이든 살리든 자신들의 뜻에 달려 있다. 이방인들은 주인이 노예를 해방시켜 줄 의무가 없다. 돈을 받고 팔기 전에는 언제까지나 자기 집에 두고 부릴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신명기 15:12-14절을 근거로 해석해야 한다. 동족 히브리 남자나 여자를 노예로 산 경우에는 여섯해 동안 섬기면 일곱째 해에는 그를 자유민으로 풀어줘야 한다.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품삯을 후히 줘서 보내도록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지금은 아버지 집인 성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상속자들인 척 하지만 사실은 죄의 종들이기에 아버지의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집의 모형에 불과한 예루살렘 성전을 영원한 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하고 그 집에서 주인노릇 하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에게 이러한 신명기의 법을 따라 잠시 있다가 나가야만 하는 존재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신명기 15장을 따라 해석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아들은 영원히 거한다”는 말이 필요가 없는 말이다. 그래서 4세기 사본인 Codex Sinaiticus는 이 부분을 삭제했다. 이 사본의 필사자는 예수께서 신명기 15장을 근거로 말씀하신 것이기에 잘못된 부분이라 생각하고 삭제한 것이다. 몇몇 소수의 후기 소문자 사본들도 Codex Sinaitucus를 보고 베낀 것이이기에 이 부분이 삭제되어있다(33, 124, 346, 1071. 1313). 그러나 3세기 파피루스 사본인 P66과 P75를 비롯해서 4세기 사본인 Codex Vaticunus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초기 대문자 사본들과 절대다수의 소문자 사본들은 이 부분을 포함한다. Codex Sinaitucus의 필사자가 잘못해석하고 삭제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용하고 있는 종과 아들을 비교한 비유는 신명기 법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창세기 21:10절에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한 말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집의 상속자이고 주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이스마엘이 상속자인줄 착각했던 것처럼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잠시 상속자인줄 알고 있지만 쫓겨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인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집의 주인이기에 영원히 거한다고 하신 것이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낳은 아들이 아니다. 사라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자신은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아브라함과 합의하여 여종 하갈에게서 아들을 낳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이삭보다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는 상속자인 줄 알고 상속자 행세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신 것이다.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사라가 쫓아내라고 한 것이다.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괴롭히는 모습을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비교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기에서 쫓겨난 이스마엘은 다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줄 착각하고 살았지만 죄의 종이었고 사탄의 자녀였기에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녀가 되려면 사탄에게 매여있는 상태에서 해방이 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36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라는 말로 35절과 연결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사탄의 자녀이면서 이 땅의 아버지 집에 잠시 머물며 하나님의 상속자로 착각하고 있기에 예수께서 먼저 그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죄의 종이고 사탄의 자녀로 매여있는 상태에서 해방이 되어 진정 자유로운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해방시켜 준다면 죄와 사탄에게 매여 있는 굴레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시켜 주신다는 뜻이다.
전 후 문맥도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비유로 사용하고 있기에 이 부분은 창세기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비유로 사용하신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요한복음 1:12절에서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히브리서 기록자도 히브리서 3:5-6절에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신실하게 일한 종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라며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고 했다. 모세는 장차 올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증언한 종일 뿐이고 모세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닌 것이다. 오직 예수를 믿는 자들만이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