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
kt수련관에서 아침 식사 만나게 하고 오늘은
부산으로 와서 제일 첫번째로 태종대로 왔답니다.
부산에는 여려번 다녀왔지만 태종대는
참으로 오랫만에 온듯 싶다.
여렴프시 생각도 날듯 전망대에 오르려니
카페도 있고 예전에 왔든 모습이 아니다.
태종대다누비열차는 우린 타지 않고 걸어서
한바퀴를 구경하면서 돌았답니다.
부산태종대는 영도의 남동쪽 끝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이자 국가지질공원이다.
태종대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신라 태종 무열왕이 이곳에 와서
활을 쏘아 이곳의 이름을 태종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동래부지에 전한다.
다른 하나는 1419년 조선에 큰 가뭄이 들자
그해 5월 태종이 하늘에 빌어 비가 내린
일을 본받아 동래 부사가 가뭄이 들때
마다 이곳에서 기우재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안정복의 동서강목에 나온다.
부산일대에서는 보기드문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으로
된 해안침식 절벽.푸른바다 등과 함께 절경을 이루는 곳.
태종사의 진실사리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 교외의 두 그루 사라수
아래에서 열반을 드신 후 세존의 유해를 다비했는데,
불가 사의한 일은 유해의 겉살,속살,근육,힘줄,관절
즙 등 모든 유해가 재나 그을음조차 남기지 않은 채
완전하게 타버리고 단지 유골만 남았다.
세존의 유해가 뼈만 남긴 채 모두 타 버리자,
하늘에서 비가 나리고 땅바닥에서는 물이 뿜어
올라와 세존의 유해를 안치했던 화장 나무의
불을 껐다.
이렇게 세존께서 열반에 드신후, 마가다의
아자타삿투왕,웨살리의 릿차비족,
카필라 왓투의 샤카족,알라카파의 부리족,
라마 마을의 꼴리야족,베타디파의
바라문,파말라말라족 드이 사리를
의좋게 분배하여여덟나라에 가가 탑을
세워 분배 받은 사리들을 안치 하였다.
그중 아자타삿투왕이 분배 받은 사리가
라자가하의 사리탑에 안치 되었는데
2세기 뒤 아소카 대왕이 그 탑을 해체하여
사리를 나누어 인도 전역에 탑을 세워
안치하게 되었다.
이때 스리랑카에도 아소카 대왕의 아들인 마힌다
장로와 상가미따 비구니를 통해 사리가 미힌탈레에
안치 되였는데 그중 한 과를 1983년 스리랑카
정부에서 우호의 뜻으로 우리나라에 증정 하였으며
지금 태종사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 진실사리가
바로 이때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사리인
것이라고 합니다.
유람선을 타기위해 계단으로 내려 갑니다.
왼쪽으로는 해녀들이 직접 잡은 낙지와 멍게 해삼
파는곳이 있답니다.
해녀촌에 들려서 싱싱한 낙지 해삼 멍게와
라면을 만나게 먹었답니다.
아주머니께서 낙지와 조개를 넣어서
맛있게 끊여준 맛!!
집에서 끊여 먹는 맛과는 전혀 비교할수
없는 맛이 랍니다.
해안절경을 구경할수있는
유람선과 갈메기떼들....
감천문화마을
초행이라 운전 하기가 조금은 힘들었답니다.
감천문화마을하늘마루전망대를 네비에 찍고
가는데 계속 오르려다 우회전을 하는데
천주교아미성당을 바라보며 갑자기가피르게
오르는데 차가 꼭 뒤집어지는줄 알았답니다...ㅋ
내려 올때도 기아 내리고 부레이크 잡고...휴`우
감천문화마을은마을의 역사적 가치와 원형을 보존 하면서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연대감.
소속감 강화와 같은 참여적 과정을 통해 낙후된 달동네를
문화와 예술을 가미하여 사회.문화.경제적으로 재 탄생시킨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제교육도시연합(IAEC)으로부터 제1회
우수교육도시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네요^
주차하고 내려와서 예쁘게 단장한 좁은
골목길을 다니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 하네요.
이런 좁은길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외국 손님들이 많이 찾아 온것 같네요^
감천문화마을의 10가지 약속
1.예쁘고 고운 말로 매너 있게 이야기해요~
2.사생활을 지키며 촬영의 품격을 높이세요~
3.두 달이 한 번!허심탄회 이바구 어때요?
4.우리 마을 일자리!우리 주민 모두의 일자리!
5.매월 마지막 주말은 감천 대 청소의 날입니다.
6.우리집 앞 쓰레기는 내가 치울게요~
7.감천의 미래!학생들의 안전은 우리 손으로!
8.골목길 안내판은 감천의 미소짓는 얼굴입니다.
9.주차장 주차는 감천의 기본 에티켓 입니다!
10.감천의 어르신은 우리의 엄마 아빠입니다.
한국의 마주픽추.산토리니,감천문화마을
앞집 뒷집을 가리지 않고 계단식 주거형태와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색채,모든길이 통하는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 있어 한국의 마추픽추,
산토리니라 불린다.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사람과 문화가 주인이 되는 공간으로 마을을
재탄생 하였다고 하네요^
황령산전망대
황령산 봉수대는동쪽으로는 해운대에 있는 간비오산.봉수대와
북쪽으로는 범어사봉수대,계명산 봉수대와 서로 연락을 하였다고 합니다.
1976년 부산시에서 학술 조사를 거쳐 복원한 황령산 봉수대는
부산의 동서남북을 동시에 조망 할수 있어 야경명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먼길을 가야만 하기 땜에 아쉽지만 야경을 못 보고 돌아 왔답니다.
황령산봉수대
봉수대는 군사적 목적의 중요한 통신시설로
낮에는 섶나무와 짐승 똥 등을 사용하여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밝혀 신호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