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무브
원제 : Night Moves
1975년 미국영화
감독 : 아서 펜
출연: 진 해크먼, 제니퍼 워렌, 에드워드 빈스,
멜라니 그리피스, 제임스 우즈, 수잔 클라크,
자넷 워드, 해리스 율린, 안소니 코스텔로
존 크로포드
'나이트 무브'는 아서 펜 감독의 75년 작품인데, 아서 펜 감독은 아시다시피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대표작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작은 거인'이라는 걸출한 두 작품으로
인정받은 감독입니다. 뭐 그 이전에도 폴 뉴만의 '왼손잡이 권총' 이나 헬렌 켈러의
어린시절 이야기인 '기적은 사랑과 함께' 같은 준수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의 이름값을 톡톡히 높여준 작품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였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도 출연했던 진 해크먼과 다시 콤비를 이룬 작품인데
'나이트 무브'가 만들어진 75년과는 8년의 간극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아서 펜은
'작은 거인'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성공을 했고, 진 해크먼은 '프렌치 코넥션'을
통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배우가 되었습니다. 67년보다는 월등히
위상이 올라간 두 감독, 배우의 결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이트 무브'는 성공하지 못했고, 이후 아서 펜은 급격히 추락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뭐 이 영화를 보면 이해가 갑니다. 아서 펜은 사실 그다지
상업적이지 못했습니다. 그건 그의 가장 큰 성공작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작은 거인'을 봐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너무 냉소적이고 신랄했습니다. 모범적인
권선징악적 헐리웃 영화가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통해서 냉소적이고 적나라하고
반항적으로 변신하고 그게 몇 편 먹히긴 했지만, 그 현상이 70년대까지 계속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리와 엘렌 부부
부유하고 관능적인 중년 부인에게 가출한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 해리
20대 시절의 제임스 우즈
'프렌치 코넥션'이나 '포세이돈 어드벤처' 등의 성공을 통해서 위상이 급격히 올라간
진 해크먼이 탐정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면 뭔가 신출귀몰하거나 초인적인 매력을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뭐 영화의 초반부는 그런 분위기를 끌어내긴 합니다.
진 해크먼이 연기한 해리 모스비 탐정은 처음에는 험프리 보가트가 단골로 연기한
분위기를 좀 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필립 말로우 탐정이나 셜록 홈즈처럼 어렵게
느껴지는 사건을 떠맡아서 이리저리 탐문하고 다닙니다. 관객은 이 내용이 꽤나
중요한 줄 알고 다소 지루해보이고 뭔가 산만해보이는 이 해리 모스비의 행적을
꽤나 집중해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헛수고라는 것을 결국 뒤늦게 알게 되죠.
아서 펜은 처음부터 해리 모스비에게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필립 말로우의
근사함이나 셜로 홈즈류의 천재적인 탐정놀음을 할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해리 모스비가 중년의 부유한 이혼녀에게서 집 나간 딸 델리(멜라니
그리피스)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해리는 델리를 찾기
위해서 델리의 주변인물(주로 그녀가 관계한 남자들)을 이리저리 쑤시고 다닙니다.
근데 뭔가 허술해 보입니다. 관객은 '내가 집중력이 약한건가'라는 의심을 몇 번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너무 쉽게 델리가 나타납니다.
이 델리라는 16세 소녀 찾기 놀음이 벌어지는 와중에 슬쩍 끼여드는 이야기는
해리의 아내 엘렌(수잔 클라크)이 바람을 피운다는 내용입니다. 그걸 숨기다가
해리에게 들켜버리지요. 이런 설정이 된 상황에서 해리는 플로리다까지 가서
델리를 찾고 거기서 만나게 되는 다소 관능적인 30대 여인 폴라(제니퍼 워렌)와
뭔가 끈적한 관계가 될 듯 합니다.
이 부분까지 가면 관객들이 기대하는 패턴은 뻔합니다. 델리를 둘러싼 뭔가의
음모가 있고, 그걸 해리가 007이나 셜록 홈즈처럼 근사하게 해결하면서 바람핀
아내와 쫑 내고 외지의 근사한 여인 폴라와 뭔가 이루어지는 것......
노안배우 진 해크먼의 45세 당시 출연작
델리라는 16세 소녀의 행방을 추적하여
플로리다까지 온 해리는 폴라라는 관능적 여인을 만나고....
18세 당시의 풋풋하던 멜라니 그리피스
80년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
근데 아서 펜이 어디 그렇게 낭만적인 판타지 동화를 만들까요? 그는 이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같은 삐딱한 영화로 용케 히트를 했고, 아메리칸 웨스턴
영화들에서 근사하게 그려냈던 서부를 짓뭉개버린 수정주의 웨스턴 '작은 거인'을
만든 인물입니다.
영화가 아직 절반 정도밖에 안했는데 델리를 너무 쉽게 찾고, 또한 델리를 너무
쉽게 엄마에게 대려옵니다. 아니 이제 뭔 이야기 더 할건데? 그런데 영화가 왜
이리 밋밋해.
사실 이 영화에서 델리를 찾는 과정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 내용을
통해서 아서 펜은 절대 근사하고 유능한 탐정 해리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가 이리 저리 쑤시고 다니면서 탐정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그냥 요식에 불과합니다. 사실 본 목적은 해리가 만난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자기소개'입니다. '나 이런 사람이요'라는 자기 소개 시간에 관객들은
엉뚱하게도 '치밀한 미스테리'를 기대하고 델리 사건추격에 집중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영화 중반이면 벌써 알아서 해결될 사건에.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진짜 사건이 터집니다. 응? 이게 뭔고? 여기서부터 관객과
해리는 같이 미궁에 빠집니다. 진짜 사건을 해결해 보겠다고 다시 나서는 해리,
근데 뭔가 조급해 보이고 엉성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필립 말로우'나 '007'이
아닌 그냥 무모하고 감정적인 해결사가 되어 보려는 '동네 탐정' 해리의 어설픈
사건해결이 시작됩니다. 당연히 관객이 바라는 시원스러움이나 깔끔함은 없지요.
심지어 그가 델리의 계부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세요. 격투기 경기로 따지면
효도르나 타이슨, 메이웨더 같은 깔끔한 기량이 아니라 그냥 동네 양아치
패싸움 같은 엉성하고 투박한 액션입니다.
폴라와 가까워지는 해리
배 밑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쇼크에 빠진 델리
해리를 은근 유혹하는 폴라
결국 해리는 델리는 데려가는데 성공하고....
그럼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냐고요? 사실 그것도 별 중요하진 않습니다.
뭐 영화니까 뭔가는 이야기하긴 해야죠. 플로리다에서 좀 더 가면 나오는
유카탄(플로리다쪽으로 치우져있는 멕시코의 땅)에서 뭔가 값나가는 것을
밀반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뭐 그게 핵심은 아니고..... 핵심은 해리가 말하는
두 대사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나쁜 놈들, 나쁜 놈들"
네, 해리는 자기가 성공적으로 의뢰받은 사건을 다 해결한줄 알고 의기양양 했는데
그 이후 생각지 못한 비극이 벌어지고, 뭔가 알수 없는 음모가 나쁜놈들에게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핵심이죠. 델리를 어디서 어떻게 찾느냐는
사실 별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관객처럼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해리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이 사건을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뭐 그가 원하는대로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가
델리찾기 임무중에 만난 각각의 사람들의 추한 면모와 이기적인 모습, 그리고
그때그때의 우발적, 혹은 임기응변적인 은폐, 변명, 거짓말 등을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나이트 무브'는 사건을 해결하는 유능한 주인공 탐정의 멋진 활약을 기대했던
관객에게 추악한 여러 인간상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무기력한 한계를 보이는
해리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리가 무기력한게 아니라
원래 '007'이나 '셜록 홈즈'같은 낭만적이고 유능한 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요. 그리고 이건 해리가 무모하게 혼자 별 계획도 없이 감정적으로
뛰어들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후반부에 그가 폴라에게 다그치는
모습은 그냥 안스러울 뿐입니다.
이 시점부터 뭔가 조급해지는 해리
해결사 흉내를 내려는 해리, 하지만....
자, 대략 이런 전개, 이런 내용이니 당시 관객들에게 '이게 뭔고?'라는 느낌을
많이 주었을테고, 훨씬 멋드러지고 낭만적인 추리물이나 범죄물, 스릴러가
잔뜩 등장하는 와중에 '나이트 무브'는 그냥 조용히 잊혀지는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카데미 수상 배우가 나왔는데, 그냥 저모양 저꼴이었으니.
엔딩씬에서 보여진 해리의 배를 롱 샷으로 잡은 모습은 그 상황에서 그냥
무기력한 주인공의 모습일 뿐입니다. 아서 펜 감독은 마치 관객에게 '뭘
기대했는데?'라고 조롱하는 느낌입니다.
'나이트 무브'는 집 나간 딸 하나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탐정이 그 의뢰를
수행하다가 어떤 추악한 음모가 벌어지는 것에 휘말리면서 경험하는 추악한
인간들의 물고 물리는 추잡한 짓거리를 경험하면서 결국 그걸 혼자 해결해보려다
무모함을 톡톡히 겪는 결과물입니다. 아서 펜 답죠. 그가 설마 폼나고 멋진
일류 탐정의 맹활약상을 풍부한 오락성을 곁들여 고분고분 관객들에게 선사해 줄
일이 없었지요.
'나이트 무브'는 그래서 '나이트 무브'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오락
탐정극이나 스릴러 중 한 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삐르게 잊혀졌고,
우리나라에 개봉도 되지 않았지만, 후대에 이 영화를 음미하면서 과연 아서 펜이
여전히 '아서 펜' 스러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 있는 산물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잘 흘러가지 않습니다. 물론 해리가 플로리다에 도착한
이후에 벌어지는 다소의 내용은 잠시 '기대하는 방향'으로의 혼동을 느끼게
하지만 오래 가진 않습니다. 감독이 관객을 제대로 따돌린 영화지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이런 탐정 영화가 '더티 해리'류의 영화와 상업적 대적을 하기는 사실
무리입니다. 그나마도 좀 비스무리한 작품이 잭 니콜슨 주연의
'차이나타운'입니다. '차이나타운'이 '나이브 무브'의 업그레이드 상위
버전쯤 된다고 봐야죠.
ps2 : 이렇게 후대에 다시 곱씹어야 하는 영화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할 1001편의
영화'에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이 영화는 제외되었더군요.
ps3 : 멜라니 그리피스가 델리 역으로 등장하는데 당시 18세였습니다. 다소
통통한 골격이 있는 관능적 여배우로서의 모습이었던 '워킹 걸'이나 '섬싱
와일드'와는 달리 그냥 어리디 어린 말라깽이 소녀더군요. 기존의 멜라니
그리피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런데 아서 펜 감독은 이 소녀를
다소 과하게 벗기더군요. 75년인데. 이 영화도 등장하는 여배우들 가슴
노출 경쟁이라도 하는 듯 한데 '겟 카터'와 거의 동급이더군요.
ps4 : 노안배우 진 해크먼이 실제 나이보다 5살이나 적은 '40살'로 등장하니
순간적으로 피식 했습니다.
ps5 : 개성파 배우 제임스 우즈의 20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이 등장하진
않더군요.
ps6 : '더티 해리' '타워링' '죠스' '스타워즈' 같은 재미난 상업영화들, 삐딱한
아메리칸 뉴시네마 부류의 영화들이 반짝 한 이후 다시금 70년대형 새로운
오락영화들이 계속 등장했으니 '나이트 무브'같은 영화를 만든 아서 펜이
설 자리가 없었겠지요. 그나마도 이 시대에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정도가
다행스런 작품입니다.
[출처] 나이트 무브(Night Moves 75년) 아서 펜 방식의 탐정물|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