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1
제주도 약천사 회주 혜인큰스님 관음기도
1.
불가사의한 신심의 10종 공덕
수행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아! 이것이다.'고 할만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관세음보살보문품(=관음경)'을 읽게된 것이다.
'모든 고통을 없애주고 재난을 물리쳐주는 관세음보살! 온갖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관세음보살!
그야말로 관세음보살님은 만병통치약과 같거늘 어찌 나는 관세음보살을 몰랐을까?'
그 날부터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불렀다. 많았던 서러움만큼이나 열심히 염불을 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나자 스스로도 느껴질 만큼의 많은 변화도 있었다. 관세음보살 정근을 통하여 가피를 입게되자 나의 신심은 더욱 굳건해졌다.
그 다음 해인사 장경각에서 1백만배 기도를 했다. 처음에는 하루 3천배를 하다가, 익숙해진 다음에는 4천배로 올렸고, 50만배를 하고부터는 하루에 5천배씩 하였다. 무사히 백만배를 회향한 뒤 나는 불보살의 무한한 가피력을 확신하게 되었고 매사에 자신감이 생겼다.
모든 것은 신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신심이 나를 기도하게 만들었고 신심있는 기도 덕분에 수행의 진척은 물론 큰 불사까지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복이 적다고 느끼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모름지기 한 분의 불보살님을 택하여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염불을 하라,
얼마 지나지않아 틀림없이 변화가 생긴다. 공덕이 생기고 복이 깃들게된다.
신심은 우리를 바꾸어놓는다. 좋은 믿음은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마하연론]에 보면 신심의 공덕을 매우 구체적으로 밝혀놓은 [신십종의新十種義]가 있다.
그 열가지는 징(澄), 결정(決定), 환희(歡喜), 무염(無染), 수희(隨喜), 존중(尊重), 수순(隨順), 찬탄(讚歎), 불괴(不壞), 애락(愛樂)이다.
출처: 약천사 혜인스님의 신심이야기1- 신심
혜인스님 지음 클리어마인드간
............................................................................................................................
2.
기도와 가피력이란 무엇인가?
기도는 절하면 참회기도라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음기도, 지장보살을 부르면 지장기도입니다.
또는 성현의 명호나 경을 쓰면 사경기도라고합니다.
기도를 통해 무념무상의 상태로 계속 정진하다보면 탁한 물이 고요해져 삼라만상이 비춰지듯 기도로 인해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기도는 일관되게 계속해야 힘이 생기며 우리 눈에 보이지않는 가피력을 얻게됩니다.
가피력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몽중가피는 꿈 가운데 어떠한 선몽을 얻는 것이고,
명훈가피는 자신도 모르게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점점 되어가는 것입니다.그리고, 현증가피는 갑작스런 통찰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중요한 것으로 저도 부처님의 가피를 받았습니다.
저는 전생에 술을 많이 마셨나봅니다. 그 과보로 어려서 학교다닐 때 항상 30등밖이었습니다.
절에 들어와서도 다른 도반하고 차이가 있었습니다. 천수경을 외워야하는데 외워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도량송을 하다가도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면 끝이 안나와요. 비슷한 말이 많다보니 끝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공이 들어오면 먼저 신도에게 천수경을 할 줄 아냐고 물었습니다.
천수경을 모르는 보살들앞에서는 경을 서로 모르니 요령껏 불공을 했지만 경을 외우는 보살들은 겁이 난 것이지요. 그래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천수경에 보면 만월보살 마하살, 수월보살 마하살, 군다리보살마하살... 이런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보살이름이 생각이 나지않아...목탁보살 마하살 요령보살 마하살... 했습니다.
그런데도, 보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별탈없이 불공을 잘 했습니다.
제주도 양진사 주지로 있을 때입니다. 양진선원을 건립하고 주지로서 인사를 하게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만해도 가피력을 얻지못해 사람 다섯명만 모여도 가슴이 달달달 떨리고 얼굴이 발개져버리고
앞이 탁막혀 말을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대로 낙성식이 두 달 정도 남았는데 안사말은 한마디 해야하겠고 걱정이었습니다. 미리 준비를 해야하겠다하고 문자하나를 찾아 외운 것이 원근각처였습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오신 여러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이지요. 이 말을 중심으로 말을 풀어야겠다하고서
낙성식날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낙성식이 시작되고 사람들앞에 서고보니 아니나 다를까 앞이 딱 막혀버려요. 가슴은 떨리는 중에 다행히 미리 외웠던 원근각처라는 말은 생각이 났습니다.
원근각처에서 많이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원근각처에서...
원근각처에서...
법회가 끝나고 어느 비구니 스님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원근각처를 8번했다며 그말 밖에는 할 말이 그렇게도 없었냐며 웃었습니다.
이렇게 사람 다섯 사람만 있어도 떨었던 이가 여기 있는 혜인스님이었습니다. 또한 복이 없고 덕이 없어 출가한지 15년이 되어도 양말하나 러닝셔츠하나 사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구에서 해인사를 가는데 차비가 없어 많은 괄시도 받았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원주에서 강릉 보현사를 가는데 차비가 53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은 130원밖에 없어 안내양에게 사정을 말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운전기사가 130원 거리만큼만 태워주고 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중간에 내려 인근의 비구니스님 절에가서 사람들앞에서 노래하듯 초파일 연등만드는 비구니 스님 앞에서 초발심자경문을 외우고 차비를 얻어 보현사를 갔습니다.
해인사 강원에 있을 때도 남들은 신도들이나 도반들이 책을 사주는데 저는 복이 없어 책한권 사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먼저 출가한 누이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 다른 비구니 스님이 쓰던 책으로 강원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머리가 우둔하고 잠이 많고 가슴이 떨리고 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관세음보살 주력염불을 하고 해인사 장경각에서 부처님 전에 하루 5천배씩 이백일동안 백만배를 하니 구름이 걷히니 달빛이 환하게 비추고 거울의 먼지를 닦으니 환한 모습이 보이듯이 자신이 환하게 보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후로 지금은 수만명을 앞에 두고 법문을 해도 떨리는 것이 없고 마음먹었다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하겠다고 마음먹어서 안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주도 약천사 대웅전을 짓는데 돈이 백억원이상이 들어갔습니다. 공부하는 승려가 돈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런데, 기도한 후 마음먹는대로 일이 되기에 부처님집을 최고로 지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제주도 중문단지에는 동양최대의 대웅전이 웅장하게 자리해 있습니다. 무사히 불사를 회향한 것입니다. 또한 백만배 절을 했으니 백만이란 숫자와 인연이 있어 백만평의 땅에 부처님 마을을 조성하기로하고 충북단양에 철쭉 백만그루를 심고 있습니다. 현재 80만평을 이루었습니다.
사주와 관상이 나쁘더라도 운명적으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다하더라고 그것은 관상학적 이야기입니다. 길이 아니라도 불도저가 지나가면 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불교는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운명과 팔자는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찾는 종교요,
마음을 보는 종교요,
마음을 아는 종교요,
마음을 깨닫는 종교요,
마음을 잘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한마음이 청정하면 일신이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중생이 모두 청정해집니다.
마음이 달라지면 모습이 달라지고 관상이 바뀌면 내 운명과 팔자가 바뀝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저는 오늘의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소나무를 의지해 칡넝쿨이 소나무를 탁 끝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잔디밭에 깔린 풀은 석 자도 올라가지 못합니다.
부처님과 부처님 말씀 그리고 가피력에 의지하면 얼마든지 행운과 훌륭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를 회고해보면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그리고, 남 법문하던 것을 부러워하던 시절, 나도 언젠가는 내생에 가서라도 저런 사람이 되어봤으면하는 생각이 기도를 하고나니 내생까지 갈 것도 없더군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오늘의 법회를 계기로해서 기도정진하는데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세음보살기도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보면
[무진의 보살은 잘 들어라.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자는 물에 들어가도 빠져죽지 않을 것이며, 불에 들어가도 타죽지 않을 것이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악한 자에에 밀려 낭떠러지에 떨어진다해도 다치지않으리라.
죄가 있거나 없거나 수갑을 채우고 쇠사슬에 묶여 감옥살이를 해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사람은 해탈을 얻으리라, 악한 짐승 나쁜 귀신들이 괴롭히거나 혹은 태풍에 밀려도 결코 거기서 다치지않고 살아나리라.
아들을 원하는 자여,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귀한 아들을 얻으리라. 딸을 구하는 자여,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생각생각에 마음을 항상 관세음보살에 두어라.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듯이 관세음보살은 그대의 음성속에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서른 두가지 몸을 나투어 중생을 이익되게하고 중생의 고통을 나누고 가지가지 방법으로 의사가 천만가지 약이 있어도 명의가 환자의 아픔아픔을 알아서 치료하듯이 관세음보살은 큰 의사이시니 중생의 고통과 모든 근심걱정을 다 해결해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관세음보살 가피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습니다.
일제때 청일전쟁 당시 만해 한용운 스님이 서울 작은 토굴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학도병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일제에 의해 끌려갔었습니다.
어느 보살이 삼대독자인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놓고 걱정을 하니 주위에서 만해큰스님을 찾아보라하여
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만해스님은 생각생각 언제든지 관세음보살을 찾으라 했습니다. 좋은 일이 있거나 나쁜 일이 있거나 자나깨나 관세음보살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위해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아들에게도 편지에 관세음보살을 염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아들이 죽었다고 부고가 오고 유골이 왔습니다.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보살은 낙심하여 관세음보살이고 부처님이고 필요없구나 하였습니다. 49재를 지내고 자기 팔자를 생각하며 실컷울고 자기도 죽으리라 식음을 전폐했는데 갑자기 밖에서 어머니 어머니하며 아들의 목소리가났습니다.
보살은 귀를 의심하고 혹 귀신이 온 것 아닌가하며 문을 여니 군복입은 아들이 서 있었습니다.
아니 귀신도 사람도 꼭 사람과 같네하며 나가보니 귀신이 아닌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
중국에 왔었지요하며 묻는데 사연을 듣고보니 이러했습니다.
중국으로 끌려가 총알이 콩볶듯 하는 중에 하루는 보초를 서는데 산너머에서 재명아 재명아하면서 어머니가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목숨 중국까지 찾아온 어머니나 만나고 죽자라며 개울밑으로 도망쳐 어머니에게 가는데 어머니 목소리는 계속 멀어져 갔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못찾고 날이 새 다시 부대로 돌아와보니 전우가 한 명도 남지않고 모두 전사했습니다.
그래 혼자서 49일간을 걸어서 돌아온 것입니다. 보살과 아들은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살아났음을 알고 감사의 뜻으로 살던 집을 관음암으로 바꾸어 평생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든지 지장보살을 염하든지 지극정성을 보이면 이렇듯 가피력은 반드시 옵니다.
한국불교가 제대로 되려면 옛날 신라 고려 조선때처럼 나무아미타불 실체를 바로 알고 바로 찾고 바로 불러야만이 한국불교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참선을 열여덟살부터 했지만 참선은 불교의 골수요, 뿌리요, 핵심이기에 참선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참선은 불교의 육바라밀 가운데 하나인 선정바라밀입니다. 음식이 아무리 좋아도 밥만 먹을수 없고 반찬만 먹을 수 없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대들보가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훍도 있어야하고 못도 있어야하고 모두 필요합니다. 결코 불교에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참선에만 집착하고 염불을 등한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
PART2
대만 불광산사 성운대사님 관음기도
1.
아홉 살때 꾼 기이한 꿈은 광겁무명(曠劫無明)의 참모습을 알게 해주었으며, 평생 관세음보살의 정신을 받들어 '사홍서원'을 실천하겠다는 초심을 일깨워주었다.
그 날 나는 학교를 마치고 강 옆의 길을 따라 집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풀잎은 싱그러웠다. 누런 황톳길을 뛰어가던 나는 미끄러지면서 '풍덩'하고 차가운 강물에 빠져버렸다. 수초와 진흙모래가 눈 깜짝할 새에 나를 덮쳤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치며 숨을 쉬려고 했지만, 눈앞이 흐려지고 가물가물해지며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혼미한 가운데, 나는 문득 살아난 듯 평상시처럼 어머니가 문가에 서서 내 이름을 부르는게 보였다. 그러다 마치 죽은 듯 음침하고 어두운 묘지가 보이고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데 어디선가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나를 부여잡고 강가로 데려다 놓았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마을 사람이 물에 빠진 나를 발견하고 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나를 안아서 집에 데려다 주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꾼 기이한 꿈 덕분에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내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의구심도 들었다.
아홉 살의 나는 조용히 사색에 잠기기 시작했다.
"원래 생명이란 이처럼 약한 것이구나. 어떻게해야 더 강하게 살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사람의 목숨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순간에 달렸는데, 어떻게해야 이 삶을 헛되지 않게 살 수 있을까?'
백년의 세상사가 마치 흩날리는 꽃잎과도 같은 인간 세상에서 최고의 보물은 무엇일까?
그 일이 있고나서 내가 물에 빠졌을 때 꾸었던 꿈을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자상하게 설명해주셨다.
"너를 구해준 백의대사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이란다. 관세음보살은 시방세계의 괴로움에서 구해주시는 분으로 억만창생의 괴로움은 다 그 분이 없애주신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사람을 구해준다는 것이 이처럼 친절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되었다.
그 때 나는 어머니께 다짐하였다.
"나는 평생 사람을 구해주고 자신도 구하며 살겠습니다."
꿈에서 보았던 백의보살과의 인연이 내 한평생 여래가업(如來家業)을 짊어지는 인연이 되었고, 삶과 죽음의 찰나적인 고난의 경험으로 생명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게 되었다.
지금껏 피곤하다는 말 한 번 한 적 없이 세계 각국을 돌며 홍법을 펼치는 운수납자의 모습은 오로지 어린 시절 꿈에 보았던 장엄한 백의보살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 뿐이라는 것을 그 누가 알까?
종종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삶과 죽음에 대해 대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어린 시절 강에 빠져 죽을 고비에서 보았던 백의 보살을 떠올리며 이렇게 대답한다.
"생사가 한 생각이니, 천하의 중생이 모두 복록과 장수를 얻기를 바랄 뿐입니다."
출처: 성운대사의 관세음보살이야기 (성운대사저, 조은자역, 이인옥 감수, 운주사간)
.........................................................................................................................................
2.
각종 수행중에서 제가 가장 크게 덕을 본 것은 '예불'입니다. 최근에는 다리 수술로 예불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과거 매일 아침, 저녁마다 부처님들께 절하는데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간은 길지 않지만 되도록 중단 없이 꾸준한 의지를 가지고 매일 계속했습니다.
15살때 수계 받으면서 계인을 태우는데, 머리 뼛속까지 타들어갔습니다. 그 후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졌습니다.
[고문관지],[사서독본]을 읽어도 도저히 외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열심히 외워도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어도 외울 수 없어 저를 지도하던 각민 스님에게 무릎을 꿇고 벌을 받거나 손바닥을 맞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하루는 또 외우지 못한 저에게 교무주임 각민 스님이 매를 내리치시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런 바보녀석! 관세음보살에게 지극 정성으로 절을 하면서 총명하고 지혜롭게 해달라고 빌어야지."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스승님이 때리는 데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등불 하나가 켜지며 마음이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관세음보살에게 지극 정성으로 절을 올리면 총명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거구나. 나도 이제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어.'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멍청하지도 않았던 저는 수계 때 기억력이 저하된 이후 제 인생에 이제 미래란 없을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에게 지극 정성으로 절을 올리면 총명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불현듯 제게도 희망의 불꽃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당시 총림 고찰 안에는 관세음보살에게 예불을 드리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웅보전은 아침저녁 예불을 할 때 이외에는 아무나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고, 다른 전각도 각기 다른 당주가 있었습니다.
불학원(佛學院) 내에서 공용으로 쓰는 작은 불당 이외에 어딜 가서 관세음보살에게 예불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깊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마다 몰래 불당으로 가 홀로 관세음보살을 외쳤습니다.
"세상 가득하신 관세음보살님께 보리심을 발원합니다. 제자 마음이 어지러워 관세음보살님께 절을 올립니다.
똑똑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대자대비하시고 세상을 고난에서 구하시는 관세음보살님께 기원합니다."
이렇게 외치고 난 뒤 절을 올렸습니다. 대략 30초정도 머문 뒤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외쳤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외치면서 절을 했습니다. 한 번, 또 한 번........
관세음보살님께 절을 올리고 얻은 영험담은 수없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절을 한 후 관세음보살님이 감로수를 머리에서 부어 주었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제게는 그런 일들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3~4개월이 지난 다음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관세음보살께 절을 올리기 시작한 이후로 저의 기억력이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전에는 [고문관지]한편을 두세 번 읽어도 외울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두세 번 만에 다 외울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전국책],[사기]에 나오는 단편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한 번 보기만 해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장들은 저의 입가를 맴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랑또랑하게 외울 수도 있습니다.
특히 행운이었던 것은 마침 그때 불학원 측에서 제게 도서관의 관리를 맡긴 것입니다.
도서관은 원래 서하사범대학교 소유였지만 군대를 따라 후방인 중경으로 후퇴하면서 서하불학원에 책들을 남겨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책 중에 어느 것을 먼저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과 사형들이 어떤 책을 가져가 읽는지 주의 깊게 봐두었다가, 그들이 책을 반납하고 나면 제가 가져다 읽었습니다.
그 중에 특히 시골 사범학교의 문예집과 각종 문예소설이 제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평생 수많은 고행을 아무런 불평없이 받아들였지만 크게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삼국연의] [수호전] [칠협오의] [소오의] [봉신방] [탕구지] 등의 책들은 한 번 보면 모두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가끔 제자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제가 읽었던 [삼국연의] 중 '제갈량이 동풍을 빌리다'라든가, '조맹덕이 화용도로 패하여 쫓겨 가다'라는 흥미진진한 구절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읽어주는 부분들은 모두 책 속에 있는 원문 그대로였으므로 제자들 모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곤 했습니다.
가끔씩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생각없이 [수호전]의 한 구절을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양산박의 108영웅들의 이름과 호, 복장, 무기등을 하나하나 줄줄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제가 젊었을 때 본 책을 아직까지 이토록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저의 일생에는 관세음보살님과의 인연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젊은 제자들의 수행은 언제나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나를 낮추고 더욱 겸손함을 키울 수 있으며 부처님께 마음속의 말을 토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 절을 올릴 때는 몸을 숙이게 되지만 마음속의 감정은 승화시켜 부처님과 호응해야 합니다.
'북은 쳐야 소리가 나고, 종은 두드려야 소리가 울린다' 하였습니다.
지극정성으로 절을 하는데, 부처께서 어찌 자비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출처: 합장하는 인생(대만 성운星雲대사저, 의은스님, 조은자 옮김, 운주사간)
다음 나무아미타불카페(cafe.daum.net/amtb) 형씨야님 글 다시 옮김
....................................................................................................................
PART3 우룡큰스님 관음기도 체험담 및 법문
우룡큰스님의 관음기도 체험담
8.15 해방 후,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해인사로 출가한 나는 고봉(高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강원(講院)에 들어가 경전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해인사의 어른스님들은 불교의 여러가지 공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화두공부는 어떻게 하는건지, 주력공부는 어떤건지, 염불정진은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 것인지를 제시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옛날 스님들은 이렇게 공부하셨다, 저렇게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을 뿐입니다.
나는 스스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願)을 세웠습니다.
'중노릇 잘 하게 해주십시오. 지혜 총명을 주시어 장애없이 경전공부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때 나는 치문을 배우고 있었는데, 책 읽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관세음보살 염불에 몰두하였습니다. 밥 먹을 때도 '관세음보살', 화장실에서도 '관세음보살', 걸어다닐 때도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당시의 강원에서 공부를 배우는 학인은 여러가지 사중(寺中)업무를 한가지씩 맡아 돕는 급사노릇도 하였는데, 나는 해인사 산중 암자들을 돌며 공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공문서를 가지고 한 암자의 원주스님께 전하면 읽은 다음 사인을 해주었으며, 다시 다른 암자로 가서 원주스님의 사인을 맡았습니다.
2~3일에 한번씩 공문서를 들고 산내암자를 다닐 때에도 나는 오로지 관세음보살을 외웠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관세음보살을 찾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관세음보살이 끊어지지 않는 차원에 이르렀습니다. 대화는 대화대로 잘되고, 내 가슴 속에 분명히 관세음보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염불을 시작한 지 1년 가량 지났을 무렵, 한밤중에 해인사 밑쪽에서 산불이 일어나 모든 대중이 진화작업에 나섰습니다. 특별한 소방장비가 없었으므로, 제1진이 불난 곳 가까이의 아직 불 붙지않은 풀을 낫으로 베면 제 2진이 벤 풀을 갈퀴로 끌어내고, 제3진이 괭이로 땅을 파면 제4진이 맞불을 지펴 불이 스스로 꺼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산불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나는 진화작업에 참여하였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쪽에서만 불이 못 올라오도록 맞불을 놓을 것이 아니라 불이 올라오는 뒤쪽으로 가서 진화작업을 하게되면 훨씬 빨리 끌 수 있겠다.'
...........................................................
우룡큰스님의 금강경 강의 중
축원과 보시
부처님께서는 강조 하셨다.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四句偈)만 이라도 받아 지니고 남에게 말하여 주면 그 복덕은 저 칠보(七寶)를 보시한 복덕 보다 더 수승(殊勝)하리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여러 부처님들과 부처님들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왔기 때문이니라”
이것은 法施(법시)의 복덕이 財施(재시)의 복덕 보다 더 크다는 말씀이다.
물질의 복이나 물질의 공덕보다는 진리의 복과 공덕, 법의 복과 공덕이 더 크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우리 불자들이 흔히들 동참하는 불사와 연결시켜 보시하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언급해 보자.
불사에 시주를 하면 복이 깃 든다고 한다. 그래서 복을 받기 위해서라도 시주를 즐겨 한다. 그런데 시주를 할 때 참으로 이상한 경우가 있다.
그것은 불상을 모신다고 할 때 돈 많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이다.
“부처님을 모시는데 필요한 경비는 저 혼자 모두 내겠습니다, 스님! 절대로 다른 사람의 돈을 받으시면 안됩니다..”
화장실을 만들거나 길을 닦거나 계단을 만들 때에는 보시를 하고자 하지 않으면서 불상을 모시는대는 왜 혼자 독차지 하려는 것인가? 바로 복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조성하여 길이길이 축복을 받으며 잘 살아 보겠다는 바로 그 욕심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보시에도 복덕은 뒤따른다. 하지만 끝이 있는 복을 지을지언정 자신의 깨달음과는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복덕을 독차지 하고자 하는 그 욕심에 대한 과보는 “나”의 몫이 된다.
따라서 참으로 잘 보시를 하고자 하면 평소에 정성껏 축원을 하며 모은 돈이나 물질로 시주를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나를 자주 찾아오는 한 사람의 예를 들어 보겠다.
박봉의 남편 월급으로 아들,딸 넷을 기르며 살았던 보살은 절에는 다니고 있었으나 보시를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보살은 서울 성북동의 정법사에 갔다가 한 신도가 부처님 전에 쌀 두 가마니를 기부 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부처님께 바치고 싶다..!” 하지만 쌀 한 되 따로 살 형편이 되지 않았던 보살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문득 한 생각이 떠 올랐다.
“우리 가족의 아침밥을 하고 저녁밥을 지을 때 쌀 한 숟가락 씩만 덜어내어 따로 모으자. 그것을 부처님께 바쳐야지..” 그날부터 보살은 밥을 지을 때마다 쌀 한 숟가락씩을 덜어 다른 봉지에 담으면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축원을 올렸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씩 절에 가지고 가서 쌀 봉지를 부처님께 바쳤다.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 났다. 그 이후로는 양식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없어졌고 남편 일도 잘 풀리고 자식들은 모두 대학을 나와 결혼하고 아들,딸 낳고 아무런 탈 없이 잘 살게 된 것이다.
그 뒤 보살은 꾸준히 쌀을 모으면서 염한 축원과 보시 공덕의 체험담을 주변의 신도들에게 들려주며 권했다. “내가 그렇게 해보니 참으로 영험이 있읍디다, 한번 해 보세요, 정말 기대 이상의 가피가 따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주변의 사람들도 그 보살처럼 축원하고 훌륭한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다.
이 보살처럼 정성이 깃든 공양미, “나”의 축원이 깃든 공양미를 부처님 전에 올릴 때 복덕이 함께 갖추어 진다. 복덕은 물질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성이 깃들어야 된다. 돈이 있다고 하여 佛事에 마구 돈을 희사 하기 보다는 정성이 깃들고 축원이 깃든 돈을 바쳐야 된다.
오히려 평소에 佛事에 쓸 돈을 모으십시오. 가족이 셋이면 셋, 넷이면 넷, 한 사람 당 오백원도 좋고 천원도 좋다. 형편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액수를 정하여 저금통에 넣어라. 그런데 절대로 그 돈을 그냥 넣지 마라. 남편 몫으로 돈을 넣으면서 남편을 축원해 드리고, 아들 몫으로 돈을 넣으면서 아들을 축원해 주고, 딸의 몫으로 돈을 넣으면서 딸을 축원해 주고, 내 몫으로 돈을 넣으면서 내 축원을 해라.
“부처님..! 이 돈은 000의 몫입니다. 000가 항상 건강하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 지도록 하옵소서..” 하루,이틀 생각하다가 말고 답답하면 하는 축원이 아니라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축원이라야 결실을 맺는다.
거듭거듭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축원이라야 힘이 모이고, 힘이 모여야 능히 어려움과 장애를 돌파 할 수 있는 것이다. 간절히 축원을 해라.
그리고 모은 돈으로 불사를 하라.
스님에게 드려서 불사에 쓰도록 하여도 좋고 법공양에 사용하여도 좋고 가난한 이웃에게 주어도 좋다.
특히 법보시에 사용하면 그 복과 공덕은 더욱 커진다. 왜냐하면 법보시를 통하여 서로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법보시야 말로 서로를 근원적으로 살리고 근원적으로 복덕을 쌓게 해 주는 진정한 불사佛事라는 것을 잊지 마라.
하지만 또 한가지 기억 할 것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이 법보시에 대한 집착 까지도 허락 하지 않으셨고 그 집착을 비우기 위하여 말씀 하셨다.
“수보리야,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니라”
법이란 그 이름이 법일 뿐 절대로 집착하지 말라는 뜻에서 이렇게 가르치신 것이다.
그럼 이제까지 공부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자.
금강경의 대의는 철두철미하게 대우주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절대 空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금강경의 법문은 현재 우상과 계급과 착각에 빠져 살아 가는 사람을 철저히 부정하여 털어내고자 한다. 곧 우상과 착각이라는 病을 치유하기 위하여 끝없는 부정의 법문을 펼치는 것이다.
가만히 자신을 되돌아 보자. 우리는 언제나 상대적인 생각에 휩싸여 살아 가고 있다. 있다, 없다, 부처다, 衆生이다, 스님이다, 신도다, 깨쳤다, 미했다, 안다, 모른다, 영리하다, 둔하다, 좋다, 나쁘다, 등등의 두 극단에 사로잡혀 살아 가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세계에 사로 잡혀있는 이상에는 대우주의 보편 타당한 진리를 체험 할 수도 없고 절대적인 자유나 행복도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상대적인 세계에 빠져있는 인간의 집착을 모두 놓아 버릴 것을 가르치고 있다.
“無住相 하라”
“無爲法으로 살아라”
“身相은 身相이 아니다”
“佛法이라는 것은 佛法이 아니다”
정녕 금강경을 공부하는 우리는 부처님에 대한 모습의 집착도 내가 아는 불법에 대한 집착도 넘어 서서 살아야 된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 진리에 대한 집착까지 완전히 놓아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상에 집착함이 없는 무주상을 실천하고 봄바람과 같은 무위법을 쓰며 살아야 된다.
봄바람은 “저 나무의 꽃을 붉게 만들어야 겠다, 노랗게 만들어야 겠다, 는 생각이 없다. 그냥 아무런 차별 없이 모든 나무들에게 따스한 바람을 안겨 준다.
금강경을 공부 하는 우리도 이 봄바람처럼 되어야 된다. 아들이니까 이렇게 해 주고 딸이니까 저렇게 해 준다는 차별적인 생각을 놓아 버리고 “내 자식이다, 내 남편이고 내 아내다”는 집착을 놓아 버리고 봄바람처럼 해 주어야 된다. 정성을 다하는 봄바람이 되어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각 자기의 본성에 따라 계발을 할 수 있도록 해 드리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하냐? 처음부터 “나”의 쪽에서 상대에 대한 희망과 관념을 만들어 놓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이렇게 하는데 우리의 실천이 어떻게 바를 수가 있나?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고 위한다면 봄바람처럼 해 줄 뿐 “나”의 관념이나 희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부처님을 믿으면서 기도하고 절하고 매달리면서도 뜻과 같이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 누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하나? 열쇠를 쥔 사람이 풀어야 하며 그 열쇠를 쥔 사람은 바로 “나”이다. 열쇠!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을 확 풀어 버리면 된다. 얽히고 설킨 나의 마음을 풀고 봄바람이 되는 것, 봄바람이 되어 모두 함께 살아나는 것, 이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우룡큰스님 금강경강의 第八제팔 依法出生分의법출생분 중
전체글 출처: 네이버 상방대광명 블로그 blog.naver.com/lawandme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_()()()_
감사힙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_()_
제 글도 함께 있는걸 보니 너무 기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내생에 가서라도 저런 사람이 되어봤으면하는 생각이 기도를 하고나니 내생까지 갈 것도 없더군요" 이 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네요.
온갖핑계와 비겁함으로 용기내지 않고 다음생으로 도망치고자 약한마음 먹었던것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_()_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