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서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라는 재미있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1960~1990년대까지의 신문기사를 (동아일보 등 몇몇 매체에 한해서이지만) 모두 디지털화해서 원문검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최근 1990년대까지 기사검색 구간이 확대되면서, 근래의 이슈들에 대해서도 추적 가능해진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 중 평소 궁금했던 '분당선 개포동 구간의 유래'에 대해 추적(?)을 해봤더니,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83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 3면의 내용인데, 지하철 3호선 양재~수서 구간 연장에 관한 내용이 서울시로부터 공고되었다는 내용입니다. 3호선 연장에 관한 공고가 기관으로부터 공식 발표된 것은 이것이 최초가 아닌가 합니다.
흥미롭게도, 공고된 노선대안은 현행 대치동 경유 대안이 아닌, 숙명여고 앞에서 노선을 바꿔타 현재의 '분당선' 노선대안 선형이었습니다. 당시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가 조성 중에 있었고 이를 동서로 관통하는 교통망을 시설해 주고자 한 것이지요. 같이 나오는 '남부순환철도'는 부곡(현 의왕역)~의왕(현 오봉역)~송파구 문정동~도농역 간 계획 철도노선으로 총연장 43km로 계획된 노선입니다. 최근까지도 문정동 쪽에 마련된 예정부지를 유지해 왔습니다만, 몇년 전 해당 부지를 '법조타운'으로 재개발하기로 함으로써 사실상 나가리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출처 : NAVER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
그러던 것이 현 대치동 지역에 은마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가 추가로 들어서면서 '집단민원'및 힘겨루기가 시작됩니다. 1989년 5월 17일자 동아일보 13면의 기사는 이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출처 : NAVER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
기사에 따르면, 1987년 12월 9일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자가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3호선 은마아파트 경유 및 대치역 신설'을 공약한 뒤, 1988년 2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1989년 5월 20일 서울시가 기존 공고안을 취소하고 대치동 경유안으로 수정공고를 함으로서 개포동주공아파트 vs 은마아파트의 힘겨루기는 은마아파트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은마/미도아파트가 한보그룹이 건설한 아파트임을 감안한다면, 당시 '한보그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노태우 대통령의 (결국 수서비리 사건으로 크게 비화되기까지도.) 한보그룹 특혜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던 사건일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3호선 연장선 건설공사 수주도 한보건설이 했고, 대치역 승강장 벤치는 '한보건설' 로고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줬던' 지하철을 빼앗은 댓가로 지불된 것이 '분당 신도시 전철의 개포동 경유' 였고. 원래 주려던 '지하철' 3호선 계획안에 억지춘향식으로 맞춰주다 보니 '600m 블럭마다 역이 하나씩 있는 광역전철'이라는 기형적 형태로 나타나고 만 것이란 사실이 오래된 뉴스 검색을 통해 확인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선례를 통해, '줬던 떡 빼앗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정치적 구호나 특혜에 의해 즉흥적으로 남발된 공약들이 얼마나 큰 사고를 치게 되는지' 를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됩니다. -_-
첫댓글 역사는 반복되고 있군요.......
대피선이라도 만들어서 9호선처럼 급행운영을 했었더라면 합니다. 불과 10년을 못내다보고,,, 아쉽네요. 처음 건설할때 대피선 중간중간에 놔준다고 건설비가 얼마나 많이 늘었을까요?
강남구 개포동의 2개역은 강남구 돈으로 건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피선을 놔서 완/급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서 분당선 전체에는 이익이 된다지만, 막상 그 역 이용하는 사람들은 '급행'을 이용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면 당정역 건설 때처럼 우리 역은 급행이 안 서는 역이니까 '반대' 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오죽하면 건축물 분야만큼은 법을 못 따라간다는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그러고보니 느닷없이 분당이마트 추락사건이 떠오르는군요.
억지춘향, 댓가 X → 억지춘양, 대가 O
억지춘양은 영동선 춘양역에서 비롯된 것이고, 단어가 순 한자일 때에는 발음에 사이시옷이 들어가더라도 그것을 넣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싯가 X → 시가 O; 市價, 始價 등인 때).
노태우 대통령이 비자금 등으로 구속 수감되고 나서 얼마 안 가 IMF가 터졌을 때 한보그룹이 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보통은 철강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했다고 알려져 있죠. 그나저나 수서~대모산 구간에 탄천역도 생길 예정이었는데 당시 토지공사가 이것 때문에 열받아서 즐 때렸습니다. 또한 수서~대모산 구간이 개착식이 아니어서 역 신설하려면 공기를 연장시켜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오. 그렇군요 (--)(__)
남부순환철도가 무산된게 공군측인가? 거기서 반대한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국군체육부대와 육군7923부대입니다. 체육부대는 몰라도 육군7923부대측에서 작전에 지장 받는다며 강력 반발했었습니다.
순서가 조금 바뀌었네요. 은마아파트 입주는 79년이니까 노선발표보다 훨씬 먼저입니다.
암튼 그당시 저동네 살던 제 기억으로는.. 대통령선거보다는 오히려 88년이던가의 국회의원선거에서 저 문제가 이슈였죠. 당시 유력후보이던 무소속 홍사덕후보를 누르고 민정당 이태섭후보가 당선된게 저 3호선 대치동유치 공약덕분이라고들 했던거 같습니다. 뭐 어릴때라서 구체적인건 잘 모르겠지만요.
원래부터 분당선은 왕십리까지 운행토록 계획되었습니다. 그런데 3호선이 수서연장이 되다보니 오히려 분당선은 서울시내에서 두갈레로 나뒤어졌습니다. 그때당시 5호선도 광역철도계획에 일환으로 서울시 교통기반을 잡으므로 나왔습니다. 역시 8호선도이때 같은방식으로 서울시에서도 건설 업무를 맞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들노선 서울시도시철도공사에서 운영합니다. 오히려 보면 지금 계획하는 별내선은 국가에서 건설해주고 서울시에서 맞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저도 비슷한 소식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2호선 문제도 겹치지요. 2호선이 원래 송파쪽으로 더들어가서 강남방향으로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여러가지(버스회사등 여러 조직의 압력)때문에 잠실에서 틀수 밖에 없었고 진정한 남쪽의 2호선기능의 일부를 상실하였고 8호선 개통전까지 잠실이남은 지하철 무풍지대가 되었죠. 분당선 왕십리 직결다음 중계동 직결도 이야기가 있었던것으로 압니다. 7호선과 결합됨으로 엄청난 효과가 예상되지만 먼지처럼 어느날 사라지더군요
중계동 직결이 12호선이야기 입니다. 다지나간듯 합니다. 오히려 은행사거리까지 경전철을 만든다지 뭡니까.
안녕하십시오. 분당선이 '서울시내에서' 나뉘어지는 것은 금시초문인 겄같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