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대의 급속한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은 우리 나라 경제의 놀라운 성장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해왔다.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국토가 각종 개발로 파괴되고 오염 물질로 뒤덮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주변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로 주민들이 괴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80년 대 중반 각종 중금속으로 발생한 온산.울산 공해병, 석유.화학 단지에서 발생한 유해 가스로 인해 피부 질환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 여천 공해병, 산업 폐기물 처리장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로 발생한 화성 공해병 등이 그것이다. 각 사건이 발생할 당시 공해병이냐 아니냐를 갖고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오염 물질에 의한 공해병이라는 심증만을 남긴 채 정확하게 원인을 밝히지 못하였다.
제3의 온산병으로 시달리는 고잔동 주민
최근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고잔동 63번지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의 주민 다수가 암으로 사망하고 상당수의 주민들이 괴종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접촉성 피부염과 위장 장애 증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한 집(김선배 씨)에서만 3명이 위암, 간암, 폐암, 치암 등으로 숨졌고 몇 년 사이에 암으로만 7-8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괴종양의 경우는 현재 10여 명 이상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괴종양이 특별한 통증을 동반하지 않고 있어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상당수 주민들의 몸에 집단으로 혹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고잔동 주민은 이같은 괴질환의 원인을 [한국인슈로]에서 발생한 유리 섬유의 분질과 폐기물의 불법 매립 때문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국인슈로는 보온.단열재인 유리 섬유 제품(글라스 울패널, EPS패널)을 생산하는 업체로 지난 74년 11월 설립됐다. 설립 당시 한국인슈로는 이들의 원료가 되는 글라스 화이버 (glass fiber : 유리섬유)의 제조 시설을 갖추고 지난 92년까지 18년 간 생산해 왔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의 유리 섬유 분진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인슈로 바로 아래에서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는 [유리섬유를 제작할 때 발생하는 분진으로 가동을 중지한 92년까지는 푹푹 찌는 삼복 더위에도 팔이나 목 등 노출되는 피부를 수건 등으로 모두 가려야만 밖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당시 대부분의 채소를 텃밭에서 재배해 먹었는데 암이나 괴종양이 발생하는 것이 어쩌면 채소에 박힌 유리 섬유가 몸 속에 들어갔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한다. 고잔동 주민들이 괴질환의 원인 제공자로 한국인슈로를 의심하는 또 다른 이유는 1976년에 발생한 석유 유출 사고와 최근까지 진행된 폐기물의 불법 매립이다. 한국인슈로가 가동되기 전 인근 지역에서 최고의 물맛을 자랑하던 이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어느 날 석유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인슈로의 지하 연료 탱크에서 석유가 새어나온 것이다. 처음엔 우물 지하에서 석유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으나,나중에 한국인슈로 때문에 지하수가 오염된 것을 알고 불을 붙여보았더니 우물에 불길이 확 번졌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만 보아도 인근의 지하수 오염이 매우 심각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폐기물도 불법매립해 온 한국인슈로
한국인슈로에서는 유리 섬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중 상당수를 2천여 평의 공장 부지에 불법 매립해왔다. 한국인슈로 공장장은 [꼭 불법 매립이라기 보다는 공장 부지에 폐기물을 쌓아 놓다 보니까 매립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0여m의 축대를 쌓아 가며 흙으로 복토까지 한 매립을 불법이 아니라고는 부인하지 못했다. 대부분 유리 섬유로 매립된 공장부지의 축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쉽게 무너졌다. 최근 한국인슈로에서는 자신들의 불법 폐기물 매립이 사회문제화 되자 부지에 야적된 폐기물을 치우고 콘크리트로 덮고 있다. 이에 대해 폐기물 매립을 은폐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질문에 [언젠가는 합법적으로 처리할 것]이라는 말만을 한국인슈로쪽은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인슈로 부지에 매립된 폐기물 양은 지난 20년 간 매립해 온 것이라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계산하기 힘들다. 인천일보(94.10.24)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현재 공장 주변에 야적돼 있는 1천m3의 유리 섬유 중 4백m3는 재생이 가능하지만 레미콘 트럭 1백여 대 분량인 6백m3는 매립이나 소각 처분 이외에는 달리 처리할 방법이 없는 상태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고잔동 주민의 건강 위협하는 유리섬유 분진
지난 11월 초 고잔동 주민 중 괴종양을 앓고 있는 주민 10명(민영복, 민면식, 김선배, 전미순 등)을 대상으로 건강 피해를 조사하기 위한 진료를 실시한 바 있다. 인천환경운동연합과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에서 의뢰해 직업병 전문치료기관인 평화의원 (원장 임종한)에서 실시한 결과는 진료환자 10명 중 7명이 가려움증과 위장 장애의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환자들의 생활 환경을 고려할 때 인근에 버려진 유리 섬유 폐기물에 의해 발생하는 증상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진료 보고서 중 앞에서 설명된 김선배 씨 집의 3명이 위암과 식도암으로 사망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위암과 식도암의 발생 원인과 연관지어 보면 음식, 식수의 오염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특히 고잔동 지역은 아직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한 실정에서 산업폐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식수오염이 암발생에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 유리 섬유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기계적인 피부질환을 일으키는 것과 농도가 높을 경우 호흡기 계통의 질환이 일어날 수 있으며 미국 산업위생협회는 분진이 발생하는 작업장에서 유리섬유 모직물을 다룰 때 공기 청결 호흡기를 쓰도록 승인한 바 있다는 자료가 제공되었다. 암과 관련해서는 1987년 6월 국제암연구소(LARC)에서 유리 섬유, 울(모직물)을 인간에게 암 발생이 가능한 물질로 분류하였다는 자료도 포함되었다. 한국인슈로에 의한 고잔 지역 주민들의 건강 피해가 사회문제가 되자 시당국과 환경처 등에서는 원인 분석을 위한 조사를 하고 나름대로의 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국립환경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 지역의 지하수.토양 오염, 폐유리섬유 등을 분석한 결과 원인규명을 위해서는 인근주민을 대상으로 한 역학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인슈로 인근 지하수 중 일부에서 석유 화학 물질 특유의 냄새와 맛이 났으나 지하수에서 폐유리섬유 성분을 분석하는 작업은 국내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인천일보 94. 11. 9). 인천보건환경연구원에서 조사,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휘발성 유해 물질이 검출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인천보건환경연구원의 수질분석 책임자는 언론의 보도가 잘못된 것으로 1차 고잔동 동사무소에서 분석 의뢰한 수질시료에서는 유해한 휘발성 물질이 검출되었으나 이에 대해 직접 수질 시료를 다시 채취해 분석한 결과 휘발성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한 음용수 부적합으로 나온 이유는 맛이나 냄새가 나기 때문이 아니고 일반 세균이나 대장균의 수치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인천시청이나 환경처 등 관련 행정기관에서는 일반 폐기물로 관리해야 되므로 시청관할이다, 한국인슈로에서 폐기물을 불법매립하고 유리섬유가 분진으로 날렸을 때는 특정 산업폐기물이었으므로 환경처 관할이라고 책임을 미룰 뿐이다. 그러나 지난 9월 환경처에 특정 산업폐기물이 일반 폐기물로 변경된 이유와 근거를 문의했는데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민들의 이야기는 물에서 맛이 날 뿐 아니라 끓일 경우 백색 분말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중순에 연합 TV에서 고잔동에 대한 취재가 있을 때 주민이 직접 물을 받아 끓였더니 흰 앙금이 생겼다. 후에 환경통신원 민면식 씨가 이를 실험용 현미경으로 한국인슈로의 불법 매립된 폐유리섬유와 함께 살펴본 결과 이들은 같은 조직(유리섬유)임을 알 수 있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보면 76년 한국인슈로의 연료 탱크에서 새어나온 석유가 아직도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 간 공장 부지에 매립된 유리 섬유가 자체 무게에 의해 보다 작은 입자로 쪼개져 지하수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주민들이 맑은 날 지하수를 유리창 등에 뿌리면 무지개가 생기며 뿌연 자리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본다. 현재 한국인슈로 인근 주민들은 수 km 떨어진 약수터에서 식수를 떠다가 스스로 공급하고 있다. 그나마 이 물은 음용수로만 사용할 뿐 음식을 조리할 때에는 아직도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식수 공급을 원하고 있는데, 인천시에서는 여러 대책을 발표했지만 당장 시급한 식수원 해결에 대해 급수차를 대기는 어려운 형편이니 상수도 설치 비용 70만 원을 내면 상수도를 설치해 주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인슈로 문제 이외에 소규모 산업폐기물 소각장이나 두산의 특정 산업폐기물 처리장 건설계획을 계기로 결성된 고잔환경보전대책위원회와 인천환경운동연합, 인천산업사회보건 연구회,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 등 인천지역 민간단체들은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 연대활동을 벌여나가기로 하고, 한국인슈로에서 발생한 분진문제에 대한 형사고발 조처와 함께 동 회사의 폐기물 불법매립에 대해서도 고발을 준비하고 있으며 피해자 보상 청구를 위해 증거 확보에 나서는 한편, 피해발생의 정확한 원인 분석을 대덕단지 내 한국화학연구소에 의뢰해 놓고 있다.
환경리포트 1994년 11-12월호{통권 제 1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