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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무에게서 본 중국의 단일화된 색깔
북경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갈 때 길가의 나무들 풍경이 특이했다. 가로수 나무 뒤편으로 또하나의 프라타나스 나무 군락이 밭처럼 형성되어 있다. 공항에서 북경 시내로 들어 가면서는 무심코 보아 넘겼다.
놀란 것은 처음의 여행지인 천단 공원에서다. 공원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모두 한가지로 측백나무다. 바닥은 금잔디로 보이는 결고운 초록 잔디가 깔려 있고 천단 공원의 안과 밖에는 모두 측백나무뿐이다. 몇 백년 전에 심겨진 나무들이 대부분인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그때는 측백나무만 있었나보라고 답한다. 어느 시대에 심었던지 단일화된 한가지 수종으로 천단 공원을 꾸민 것이 그 나무밖에 없어서라고 믿기에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나무에게서 그 동안 길들여진 공산주의의 색깔을 보았다. 상하 체계가 흐트러지지 않음을 상징하듯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단단함이다.
자유 앞에서 우리는 그 동안 너무 각자의 색깔을 드러냄에 열중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중국과 우리의 색깔은 분명 달라도 국민 하나 하나의 지혜를 한 방향으로 모아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의 안위를 지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반쯤은 베일에 가려진 나라
중국인들은 돈을 벌되 쓸 줄을 모른다. 그것이 장점일지 모르나 폐쇄 정책으로 그 동안 은닉되어옴으로 인해 굶주린 개인들이다. 나라는 부자일지 몰라도 개인은 대부분 빈곤하다. 공산국가 잔재, 무서운 정치 색깔이 검은 그림자로 남아 자본주의 국민들과는 다른 면이다. 그러나 겉치레가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누가 얼마나 부자인지 모를 만큼 검소한 옷차림이다. 우중충한 옷을 즐겨 입는 것도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함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 나라의 수도인 북경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소박한 도시다. 작년에 가 본 상해보다도 외형적인 발전은 뒤지고 있지만 겉으로 보아서는 경제력을 가늠하기 힘들다. 국가든 개인이든 반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정치체제가 다름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투명한 외형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와는 다른 관습에서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우둔해 보이나 속을 보이지 않는 나라의 깊은 뚝심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자본주의의 발전상에 비하면 아직은 어눌한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넓은 대륙과 수많은 인구가 가려진 베일에서 큰 빛을 발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상상해 보면, 그런 현상은 새로운 각도로 조명해 보아야 할 일이다.
3.무한한 땅 풍부한 천연 자원, 샛별로 떠오르는 관광산업
천혜의 손길로 빚은 장가계 무릉원은 축복의 관광지다. 장가계 속의 원가계, 무릉원은 여행 전 한국에서 인터넷과 책자에서 대충 알아보고 왔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절경이다. 아직은 여행지로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초기 단계지만 그 빼어난 비경은 앞으로 이곳이 큰 여행 코스가 될 것 같다.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될 만큼 아름다운 천연의 자원을 간직한 중국의 땅덩어리 일부분을, 할 수만 있다면 내 조국에 품어가고 싶었다. 장가계 한 구역 전체가 무릉도원이다. 산과 호수와 지하 동굴까지 완벽하게 갖춘 이상향 유토피아다.
개방의 물결을 타고 세계인을 불러들여 지금 중국은 만리장성을 비롯한 곳곳에서 관광산업이 샛별로 떠오르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다 그렇지만 무한한 땅 품부한 천연 자원으로 관광산업까지 급부상하는 나라, 조금은 두려운 대상이다. 관광객이 거의 한국인들로 여행지 곳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도 분석해 보아야할 문제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한국 관광객을 많이 만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만큼 한국이 부유한 나라일까. 여행비를 이토록 해외에 뿌릴 만큼 한국의 경제가 넉넉한 걸까. 물론 나도 포함하여서 그렇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그만큼 우리의 이상이 높아진 것이다. 넓은 안목을 키우고자 광활한 세계로 나가는 것을 어찌 막겠는가. 대신 우리 나라도 독특한 테마의 관광지를 조성하여 외국인을 불러들임으로 관광산업을 더욱 활성화하면 될 것이라고 본다. 신이 내리는 천혜 자원인 것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한국도 그런 꾸미지 않은 절경 하나쯤 축복의 손길로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4.땅을 개인소유로 허락하면 일본인이 와서 다 사갈 것이라는 추측
중국은 전 국토가 다 국가의 것이다. 아파트보다 길을 넓히는 길가의 헐리는 집이 보상가가 더 크다.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주택보다 부권을 쥐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아니다. 나라에서 국유의 땅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일정한 건물가격을 지불해 주고 흡수하며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백성에게보다 국가에 맞춰진 행정에 치우쳐 있다. 건축업자들이 나라와 계약을 맺는 기간은 통상 70-80년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 건축물이 통상 50년 정도의 미래를 약속하며 짓는 것에 비하면 탄탄하게 짓는 편이다.
3년 전에 중국 북경에 10구 2현의 도로를 신설했다. 중국 북경시를 자꾸 넓히고 있다. 그것은 북경의 힘을 기르려함이라는 것이다. 북경 시내 땅도 개인 소유는 하나도 없다. 서로 건물 값만 가지고 매매 거래될 뿐이다. 중국은 아직까지 개인에게 땅을 전혀 팔지 않는다.
중국 땅을 개인 소유로 허락하면 일본인이 와서 다 사갈 것이라고 그들은 추측하고 있었다. 일본은 중국에서도 무서운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본국의 국민들이 편중하여 땅을 보유하는 것보다 외국인이 들어와 땅을 소유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전해 들으며 참으로 어설픈 행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한 국가 유지를 위해 그 넓은 대국을 다스리는 철통같은 국책은 존경스러울 만큼 신비롭지만 과연 언제까지 백성의 자유를 유린하고 어둠 속에서 살게 하려는지 우리의 시각으로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5.맨발이 신발을 겁내지 않는다는 자세로 사는 소수민족의 삶
중국 격언에 '맨발이 신발을 겁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즉 없는 자가 있는 자 부럽지 않다는 뜻이다. 중국 속의 타민족 서민들은 사는데 별로 불편이 없으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국문화에 흡수되어 살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해석하면 소수민족의 서러운 삶이다.
조선족들도 지금은 연변에서 많이 흩어졌다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 문화를 잃어가고 있다고 비춰진다. 중국인은 대부분 일부 일처 일인 아이를 갖는다. 아기를 낳지 않으려 하여 둘째 아기부터는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조선족도 마찬가지로 본성에서 많이 퇴화되어 중국의 문화 속에 동화되어 살고 있다. 그래도 조선, 몽골, 위구르족(신강)은 자기 문화를 가지고 있는 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앞으로 저들의 후세는 선대의 조국이 대한민국임을 기억이나 할는지 의구심이 든다. 살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인정해 주어야할 사안이지만 스스로 위안하며 사는 그들의 모습이 더 안쓰럽다.
중국은 외국인에게 타운을 형성해주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도 차이나타운을 보았고, 우리 나라 인천의 한 구역에도 차이나타운을 형성해 주었다는 보도를 들었는데 중국은 타국의 문화적 마을을 형성해 주지 않음은 그만큼 닫혀 있다는 증거다. 겨우 길거리에 도로 표시만 해줄 뿐이다. 그러나 왕징에 가면 한국어 간판이 많다. 한국 음식을 파는 곳도 많다. 한인은 주로 중국 북경 왕징에 모여 산다. 북경의 한국 교포 7만명 중 6만명이 주로 왕징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조국인 한국이 잘 살아야 현지 조선족이 대우를 잘 받는데 현재는 한국이 잘 살아서 대접이 좋다고 한다. 맨발이 신발을 겁내지 않는다는 중국 격언처럼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길 빈다.
6.고구려 문제에 대한 조선족의 견해
고구려 땅문제에 대하여 안내원에게 접근해 보았다. 돌아오는 답변은 참으로 큰 실망이었다. 중국인 억지가 많다는 것을 서두로 비관적인 대답을 들었다. 장백산(백두산)의 일부를 떼어줬는데도 백두산이 자기네 산이라고 우기고 있다며 오녀산성도 자기네 것이라고 우겨 고구려 땅을 빼앗아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해진 사실을 뒤집으며 억지를 부린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국인이 빼앗으려면 중한 전쟁 난다는 안내원의 말은 참으로 큰 충격이었다. 200만 조선족의 힘으로는 권리 주장을 못한다는 것이다. 티벳 민족이 많은데도 자기네 문화를 갖지 못하고 있고 군인을 많이 파병하며 노력해도 안되고 있다는 말에서 중국 속의 타 문화는 인정되지 않고 있음을 보았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중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고구려 땅 문제를 거론하여 해결해야 되는데 그렇게 나설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중국은 공산국가의 문화가 이직도 지배적이어서 밉게 보이거나 따지고 대들면 그 다음날 해고당하여 목이 잘리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56개 다민족이 중국에 사는데 차별을 크게 당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것은 중국의 문화에 동화되어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족도 중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한 민족으로 잘 사는데 왜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겠느냐고 오히려 안내원은 반문하다. 한인교포 3세인 그는 '나는 한국은 잘 몰라요. 내가 사는 곳은 중국이고, 이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데 굳이 한국문제로 힘들게 살 수는 없잖아요.'라며 중국과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으려 함을 보았다. 스스로 중국 국민처럼 동화되어 실길 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 문제를 중국동포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되돌아오는 빈 메아리다. 그들도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지만 슬픈 현실이다. 조남기라는 조선족이 있다는데 한인 중에서는 최고 높은 지위로 별 3개인 장군이라 한다. 그의 힘으로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수민족 모두가 중국 땅에서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3세도 티벳 문화 유지하려다가 중국에서 못 살고 나갔다는 말을 덧붙인다.
중국은 바위처럼 끄떡하지 않는데 한국이라는 작은 주먹으로 옛 고구려 땅이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들고나서는 것은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에 불과함을 느끼며 서글펐다. 이미 그들은 오녀산성을 중국의 소유물로 인정하며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했다는 것이 아닌가. 슬픈 현실이다. 힘의 한계가 얼마나 절실한지 보았다. 정녕 사대주의 사상은 물러갔는데, 문화나 경제면에서도 한국이 한차원 더 앞서 있는데, 흑백이 명백한 고구려 문제 앞에서 넘지 못하는 벽이 안타깝다. 한국에서 느끼는 중국과 중국에서 느끼는 중국은 큰 차이가 있음을 보았다. 긍정으로 해석하면 더욱 단단함으로 국력을 기르고 세계 위상을 높여야겠다는 산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7.잘못 설치된 전기코드와 잘못 표기된 동해
북경 스프링스 호텔에서 유숙하던 첫날 전기 코드가 우리 나라와는 정반대로 되어 있어 디지털 카메라 충전기를 망가뜨렸다. 국제규격으로 지정되어야할 전기코드 꼽는 구멍이 잘못 설치되어 있다. 즉 110볼트와 220볼트의 구멍 모양을 바꾸어 설치해 놓았다. 110볼트를 꼽는 구멍이 실제로는 한국에서 220볼트의 전기 제품 코드를 꼽는 구멍 모양이다. 반대로 220볼트를 꼽는 구멍은 한국에서 110볼트의 전기 제품 코드를 꼽는 구멍 모양이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디지털 카메라의 충전기를 매일 충전하여 사용하는데 장가계의 란천 호텔에서는 정상이었는데 북경의 신설 최고급 호텔인 스프링스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다. 충전기를 110볼트로 조정해 놓고 꽂는 순간 불꽃과 함께 작은 폭발과 함께 연기와 화약냄새를 풍기며 터지는 사건을 당했다. 겉보기 구멍 모양만 110볼트였을 뿐 흐르는 전기는 220볼트였던 것이다. 카메라 충전기를 망가뜨린 것보다 이렇게 외국인 관광객을 혼돈 속으로 몰아가는 중국인의 행위가 국제적 매너에서 수준이 낮다는 사실에 실망이 컸다. 여분으로 준비해간 건전지로 남은 여행지의 사진은 찍어왔지만 스프링스 호텔의 전기 사건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혹자는 중국이 외국 투숙객이 모이는 호텔에는 전기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또는 전기 누전 화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뒤집어 건물을 신축한다고 귀뜸해 준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의 충전기를 망가뜨려 그 호텔 휴지통에 버리고 왔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가 잘못하여 고장낸 것이라고 고개를 저으며,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런 얄상한 발상으로 진정 그렇게 설치했다면 중국은 앞으로 더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엄청난 대륙에서 벌새 가슴으로 행해지는 과오로 인하여, 눈이 큰 세계인들이 반복하여 피해를 당한다면 과연 언제까지 용서하겠는가. 외국을 관광하는 여행객들이라면 호텔에서 전기 누전 사고를 낼만큼 문화 의식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지 않길 빈다.
아울러 인천국제공항으로 오는 북경발 에어 차이나 중국 비행기의 TV 모니터에서 우리 나라 동해를 일본해로 선명하게 표시한 것을 보며 가슴이 서늘함을 느꼈다. 관광 중에도 가게에 진열된 지구본마다 그렇게 표기되어 있어 모두들 분개했는데 비행기 안에서 또 그런 울분을 본다. 지구본 판매원에게 잘못된 표기라고 말하며 정정하도록 보고하라고 했더니 우린 모른다는 말로 일축했다. 하기야 판매원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들이 시정할만한 권한이 없으니 우리의 항의 또한 그대로 무산됨에 씁쓸했다. 우발적인 잘못은 아니다. 지구본마다 전부 그렇고, 비행기 모니터의 자막 장면마다 모두가 다 그렇다. 어느 누구 보아도 대한민국 허리쯤에 붙어 있는 태평양 바다를 한참 아래에 위치한 일본령 바다라고 보진 않을 것이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바라보는 자의 눈이 오류를 범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중국과 우리 나라를 오가는 비행기지만 수많은 외국인이 걸음하며 탑승하는 공간인데 저런 표기로 억지를 부려서야 되겠는가. 국가와 국가의 중대한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면에서 고의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길 바란다.
8.음식을 천천히 먹으라는 여유
우리를 안내하는 조선족 가이드가 건강 조심하라는 말을 강조하며 음식을 천천히 먹으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이곳 중국인들은 만만디라는 말처럼 급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여행에서는 볼 수 없는 여유다. 실제로 안내원은 제일 늦게 버스에 오르곤 했다. 오히려 우리 일행을 보며 벌써 식사를 마치셨느냐고 묻는 여유를 보인다. 다른 일정은 서둘러도 음식을 먹는 일만큼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건장해 보이는 걸까. 드넓은 대륙에서 형성된 보기 좋은 자세다. '빨리, 빨리'에 익숙해진 우리와는 이질감을 주지만 그런 여유로움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9.공산국가 도심의 북경에서 만난 교회 하나
여행을 마치고 북경공항으로 갈 때 도심에서 본 교회 하나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공산국가에서 만난 교회는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분명 십자가가 첨탑으로 솟아 있었다. 우리를 태운 중한 버스가 빨리 지나감으로 자세히 보지 못함이 아쉬웠다.
길가 상가단지에 홀로 들어선 교회에 진정한 하나님이 계실까. 아니 인간을 우상으로 섬기는 정치 체제에서 신을 과연 어느 한계선까지 인정할까인에게 문을 열어 놓고 모양만 흉내낸 허울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친다. 자유 속에 더 큰 구속은 아닐는지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엄청난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저 교회 건물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공산국가에서 십자가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이다.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다면 머지 않아 더 높은 자유도 허락할 것이고 서서히 국가의 벽이 낮아지며 세계 자유화 물결에 합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견해로 해석되는 아주 중요한 표적이다. 더욱 교회 건물이 늘어나고 종교의 자유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자유가 허락되길 빈다.
10.한국은 그래도 살만한 나라임을 깨닫게 해주는 값진 여행지
지난 6월에 다녀온 캐나다와는 전혀 다른 나라다. 캐나다에서는 남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중국에서는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정반대의 느낌이 든다. 주위 풍광도 같은 동양권이라서 장가계의 기암과 명소를 빼고는 만나는 풍광이 우리 나라와 비슷하다. 오히려 세계에서 공해가 제일 심하다는 중국을 대변하듯 희뿌연 하늘로 여행의 신선함을 떨어뜨리고 있다. 생활상의 분위기도 밝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우울하다.
이 정도면 세계인을 맞을 만하다고 나름대로 자부할지 모르나 불편한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지적으로는 문화의 척도라는 화장실 문화가 엉망이고, 아직 정비되지 않은 외국인에 대한 허술한 치안법으로 가는 곳마다 몸을 도사려야 하는 난제를 발견했다. 생활고로 인하여 좀 외진 시골에서는 파리 떼처럼 달라붙는 어린 소년 소녀들의 장사치 풍경이 불쾌감은 물론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한국인은 잘 사는 귀빈으로 그들의 돈벌이 대상으로 판정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천원이요'라는 한 구절을 끈질기게 외치며 따라온다. 더러는 애처로워 사 주고 싶어도 현지 교포 가이드는 절대로 사주지 말라며 우리를 오히려 강하게 단속한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저들을 잘못 길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얄상한 상술로 돈을 벌려는 세태를 꼬집어 비평하며, 저런 현상들은 눈 높이만 높여준 한국인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한국인의 깊은 정을 그렇게 밖에 받지 못함이 애석하다.
그런 외적인 문제보다 내적으로 안개 낀 현실이 더욱 안타깝고 답답하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대목에서 소슬하다. 한번 신임을 하게 되면 간까지 빼주는 국민성을 지녔다고 치부하지만 과연 그것이 국가와 개인의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까. 한국 기업이 중국에 와서 망하는 이유가 그 테스트 기간, 3-5년을 견디지 못해서라는 것이다.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데 드넓은 땅에서 얻은 여유로 해석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적 차원의 현실 앞에서 가늠해 보면 좀 황당한 일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견주며 그 당위성을 목청 높여 말하지만 우리의 시각으로는 쉽게 받아드리기 어려운 문제다.
투명한 하늘과 해밝은 나라 내 조국, 한국은 그래도 살만한 나라임을 깨닫게 해주는 값진 여행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