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소녀
…앵그르의 〈샤를 7세 대관식의 잔 다르크〉
역사화는 주로 교훈이 될 만한 사건이나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요. 그래서 매우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때론 익살
맞은 재미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샤를 7세 대관식의 잔 다르크〉가
바로 그런 그림이지요.
잔 다르크는 알다시피 백년전쟁 당시 조국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
한 영웅 소녀입니다. 전쟁의 불씨가 된 건 왕위 다툼이었지요.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죽었을 때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어요.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왕가의 혈통을 가진 이들이 저마다 왕의 자리를
넘보았지요. 프랑스 귀족들은 회의를 열어 샤를의 사촌인 필리프 6세
를 왕으로 뽑았어요. 그러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크게 반발했답
니다.
“내 어머니는 죽은 샤를 4세의 누이다. 프랑스 왕가의 핏줄을 이어
받은 내가 마땅히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비록 외가 쪽이긴 하지만 사촌이 왕이 되는 것보다 조카인 자기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지요. 억지 같지만 당시 유럽에선 직계
혈통이 아닌 사람도 왕이 되곤 했어요. 그러니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
는 아니었지요. 프랑스 내에서도 에드워드의 말을 옳게 여기는 사람
이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왕이 된 필리프 6세가 순순히 자리를 내놓을 리가 없었
지요. 에드워드 3세는 마침내 1337년 군사를 이끌고 프랑스로 쳐들
어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1453년까지 100년 넘게 계속되었
어요. 그래서 백년전쟁이라 부른답니다.
전쟁이 길게 이어지다 보니 그동안 여러 대가 흘러 두 나라의 왕들
도 바뀌었어요. 전쟁 초기에는 영국군이 크게 우세하여 프랑스 북부
지역을 거의 손아귀에 넣었어요. 그대로 가다간 자칫 프랑스의 왕위
를 영국 왕에게 넘겨줄 위기에 놓였지요. 이 흐름을 바꾼 것이 1429
년 오를레앙 전투입니다.
16세 소녀 잔 다르크는 어느 날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느님의 계시
를 받고 싸움터로 달려갔어요. 당시 오를레앙은 영국군에 포위되어
함락 직전에 놓여 있었는데, 잔 다르크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마침
내 해방되었지요. 잔 다르크는 이후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영국
군을 크게 무찔렀답니다.
당시 프랑스 군을 이끌던 인물은 왕위 계승자였던 샤를 7세였어
요. 그는 아버지 샤를 6세가 죽은 뒤 몇 년이 지나도록 왕이 아닌 왕
세자에 머물러 있었어요. 전통적으로 왕의 대관식을 올리던 랭스 지
역이 적군인 영국군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왕관을 쓰지
못했거든요. 잔 다르크는 샤를 7세를 앞세우고 랭스까지 진격하여 마
침내 대관식을 치르게 됩니다. 〈샤를 7세 대관식의 잔 다르크〉는 바
로 그 장면을 그리고 있지요.
왕의 대관식을 소재로 삼은 그림이지만 샤를 7세는 온데간데없고,
대관식을 지켜보는 잔 다르크가 그림 속 주인공입니다. 반짝이는 철
제 갑옷과 한쪽에 벗어 놓은 투구와 장갑이 그녀의 위용을 더욱 돋보
이게 만들고 있어요. 머리 뒤쪽의 둥근 후광은 성스러운 수호신의 이
미지를 풍기고 있지요. 그녀는 전장에서 심판일의 예수와 그 이름을
새긴 깃발을 들었다고 하는데, 손에 든 깃발을 보면 그림 아래 예수
(Jesus)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답니다.
잔 다르크는 싸움에 나설 때마다 성령의 도움으로 놀라운 전과를
올렸어요. 그러나 훗날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이것이
자신의 발목을 채우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종교재판에서 그녀는
하느님과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빌려 쓴 마녀로 낙인찍혀 결국 화형
대의 이슬로 사라졌으니까요.
머지않아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림 속 잔 다르
크는 의연하고 늠름하기 그지없습니다. 뒤쪽에는 수도사가 성서를
읽고 있고, 그녀를 따르는 시종들이 경배를 드리고 있지요.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화가 앵그르는 자기 얼굴을 슬쩍 그
려 놓았답니다. 그림 왼쪽 끝에 칼을 든 무관이 바로 그 자신이지요.
역사화를 그린 화가들은 그림 속에 이렇듯 자화상을 숨겨 놓는 경우
가 종종 있습니다. 자신이 추앙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 역사의 현장
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심리였겠지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년) | 다비드의 뒤를 이어 신고전주의 미술
을 이끈 지도자입니다. 6세 때 들어간 학교가 프랑스 혁명으로 문을 닫는 바람에
학교 교육은 4년밖에 받질 못했어요.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평생 동안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계기가 되었지요. 여기에 타고난 재능이 어우러져 신고전주의 최고
봉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답니다. 그는 특히 초상화에 뛰어났으며, 그의 그림들은 대
부분 선과 윤곽이 뚜렷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여성 누드를 즐겨 그렸는데,
그림을 보면 사람인지 조각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매끈하고 완벽하게 그렸답
니다.
* 별첨 사항: 이 글은 <새콤달콤한 세계명화 갤러리>(길벗어린이)에서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글과 도판은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싣는 것이며, 본 내용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