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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최석영-
겨울
애, 낳은 지 일 주일밖에 안된 몸으로 외출을 결심했다. 재를 넘어 운봉으로 가야할 일이 생긴 것이다. 어제만 해도 햇볕은 포근하고 세상은 아름다웠는데 잿빛 하늘에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하룻밤 새 발 한 짝 내딛기가 무서울 만큼 날씨로 매섭다. 나름대로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을 했지만 현관을 나섰다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에 화들짝 문을 닫으며 하늘을 보았다. 눈이라도 퍼 붓을 것처럼 우중충하다.
‘바람이 차면 큰 눈이 안 온다지? 그래, 월말이지만 그래도 11월인데 폭설이야 오겠어. 또 온다 한들 연재가 막히는 일 따위는 없을 거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심호흡을 하고 두꺼운 파카로 머리를 감싸고 밖을 향해 뛰었다. 시동을 걸고 히터를 올려도 따뜻한 바람은 나오지 않고 이와 이가 부딪쳐 타악기 소리를 냈다. 외곽도로를 빠져나와 요천검문소를 지나 연재로 가는 길 그제야 엔진이 열을 받아 차 안이 따뜻해졌고 이가 부딪치며 내던 타악기 소리는 자자들었다.
집 나선지 5분도 안돼 변전소가 있는 이백면까지 와버렸다. 차는 구불텅구불텅한 고갯길에서 파열음을 내며 끽끽 거렸다. 마음이 조급한 만큼 몸이 앞서고 앞선 마음만큼이나 액셀러레이터가 밟아졌다.
집짓는 공사가 이렇게까지 늦어진 것이 순전히 내 책임인 것 같아 경은이네 식구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후회가 사무쳤다. 차라리 빚을 내서라도 공사를 끝냈어야 했다는 부질없는 후회마저 들었다.
내가 운봉으로 발령을 받아 처음으로 자동차 출근을 하던 날 이 길을 오르지 못해 불 불 거리며 기다시피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하루에 한두 번, 많게는 서너 번 연재를 넘다 보니 이제는 눈 감고도 운전할 수 있는 길이다. 차가 안나가는 것 같아 속도계를 봤다. 100km가까이 되었다. 구불텅구불텅 뱀 꼬리 같은 고갯길 100km로 오르다니……. 좀 무리이다 싶어 속도를 줄이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나를 알아본 김영걸 씨가 경적을 울려 인사했다. 그는 소규모 양돈장과 정육점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그의 사업이 잘 될 때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후원해 관내 대상자 가정에 배포한 적도 있었다. 그는 요즘은 사업이 잘 안된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다. 텔레비전에서는 돼지고기 값이 폭등 했다고 하는데 김영걸씨 사업은 어렵다고 하니 호황 속 불황인지 아니면 텔레비전 보도가 잘못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돼지고기 값만 오르고 농민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현대 산업 구조는 그만큼 복잡해서 산지와 소비지는 같으면서도 다른 동네 일 때가 많았다.
고개를 넘어 운봉에 들어섰다. 구비 구비 고갯길을 달리다 보면 산꼭대기에 장동이라는 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 입구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그곳에 장동 오갑숙 할머니가 남원엘 나가려는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평소처럼 차를 세우고 할머니의 근황과 건강을 염려하며 버스를 기다려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일을 생략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공사 현장을 가 보는 게 급했고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젯밤 한파로 경은이네 집 보일러가 얼어 터졌단다. 집을 다 지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일이 급해졌다. 양 사장에게 들은 바로는 석유난로로 임시 난방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 추위에 석유난로로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난로로 난방이 어렵다면 보일러 배관을 다시 깔든지, 아니면 임시 거처라도 마련을 하든지 가부간에 결정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짓는 일이 어디까지 진척이 되었는지 임시 거처를 마련 한다면 어디다 할 건지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결정해야했다. 어쨌든 경은이네 집짓는 사업은 내 소관이었다.
연재를 넘어 내리막길을 내 달리면 사거리가 나오고 그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면 고기리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로 한참을 쭉 달리자 길가 묘지 억새풀이 허연 머리를 풀고 잿빛 물감을 발라 너울너울 붓을 든 억새가 그림을 그렸다. 붓이 터치 할 때 마다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내는데 마을을 그리고 다리를 그리고 인삼밭을 그리고 다시 동네를 그리고 안길을 그렸다. 저 안길을 따라 올라가면 경은이네 집짓는 현장이 보일 것이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숨이 콱 막혔다.
찬 바람 기운이 온 몸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핑 도는 현기증 때문에 걸을 수 없었다. 차를 잡고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양 사장이 달려와 차 안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남원 날씨와는 또 다른 운봉 날씨……. 체감온도 탓일까? 갑자기 무기력해 지는 나를 내가 믿을 수 없었다. 쓰러지듯 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양 사장이 조수석에 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한복지사 정신이 있는 겨 없는 겨. 벌써 나와서 돌아 댕겨도 되는 겨? 이제 막 출산한 산모가 바깥출입이라니, 늙어서 먼 고생을 얼마나 헐라고 이랴?......엉?”
양 사장은 내가 자기 여동생이라도 역정을 냈다. 귀청 떨어질 듯한 고함에 일그러진 표정, 억세고 우악스러워 장작개비 같은 말이 좁은 자동차 안에서 화통을 삶았다. 영락없는 운봉사람이다. 운봉사람의 말투가 원래 이랬다. 아궁이속에진 일회용 라이터가 터지듯 퍽! 하고 내 지르듯 쏘아 붙이는 말투. 나는 양 사장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잠시만, 바람이 지나가듯 잠시만 참고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양 사장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니 운봉 말씨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오해할 게 뻔 하지만 이미 운봉 사람이 다 된 나는 역정 내듯 내뱉는 말투에 무한한 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기에 빙그레 웃는 것으로 대신했다.
“뭣 하러 나왔어.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그래도요……. 양 주사님만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이번 한파는 니열부터 풀린 디야. 글고 경은이네는 임시로다가 방바닥 위에다 보일러선 깔고 보온덮개로 덮고 또 그 위에다 장판을 깔아 본께 데래(오히려) 옛날 방보다 더 따시고 좋은 깨 걱정 허지 말구. 이리케 올라올 줄 알았으믄 전화라도 해줄 거신 디 여그 저그 쫓아 댕기다 본 깨 또 깜 빡 했구만.”
아니나 다를까 봄 눈 녹듯이 녹아버린 양 사장의 말씨가 순주를 또 감동시키고 위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은이네 식구들이 찬 방바닥에서 고생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경은이네 집 공사를 맡은 건축업자 양 사장은 이 근동에서 알아주는 목수였다. 그러다 목조 대신 쇠가 건축물의 주 재료가 되면서 나무 깎는 목수는 퇴물이 되고 말았다. H빔이 기둥이며 상량 역할을 다 하는 마당에 나무 깎는 목수가 설자리는 없었다. 아무 쓸모가 없게 돼 버린 평생의 기술이 아까웠던 양 사장은 읍사무소로 찾아 온 것이 3년 전의 일이다. 그는 읍사무소로 찾아와 대뜸 말하기를
“내가 별다른 재주는 없는디, 그래도 집고치는 일은 잘 헝깨 어려운 사람들 문짝이나 달아주고 허물어진 벽이나 세워 주고 그러고 싶은 디 어치 케 주선 좀 해 줄라요?”
처음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사실 양 사장처럼 그런 생각을 하기도 힘들고 생각 했다고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 사장은 공사장에서 폐자재를 구해다 며칠이고 매달려서 집을 고쳐 주었다. 지붕이 새면 지붕을, 못 박을 데가 있으면 못을 박아 주고 보일러가 고장 나면 보일러를 고쳐주었다.
대상자들에게 정부지원금이나 사회복지사보다 양 사장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도 그때였다. 돈 몇 푼이 아닌, 행정편의가 아닌, 실질 삶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손, 그 손을 양 사장이 가지고 있었다.
양 사장은 그 후 농가주택이나 축사 짓는 개인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며칠이고 대상자 가정에 매달려 일을 봐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양 사장은 변하지 않았다. 소소한 일은 새벽이나 늦은 저녁이라도 봐 주었고 사람이 필요한 일이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끌고 와 처리해 주는 열성을 보였다. 몸이 두 세 개가 되어도 모자랄 만큼 바쁜 사람이 되 버렸지만 처음 마음만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양 사장은 사장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주사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사장은 돈 벌어 먹는 업자 냄새가 나지만 주사는 나라 밥을 먹는 공무원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양 사장이 품었던 희망사항이었는지도 모른다.
“다 다음 주 안으로다가 이사 들어가게 헐랑께 걱정하지 마.”
“가능하겠어요? 이제 뼈대만 세워졌는데…….”
“이……. 샌드위치 공법이라는 게 있는 디 그게 공장에서 미리 다 만들어가지고 가져다 붙이는 공법이라서 일만 시작하면 금방이라니까. 지붕 씌우고 벽 붙이고 보일러선 깔고 뭐, 대충 내부 수리만 하면 끝이지. 인자 자원봉사고 나발이고 인부들 불러다 해야것어. 이러다가 해 넘기겠당께.”
“그래야겠어요.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글씨……. 아적은 모르것는디 기름 값이 육십 달러는 넘는다고 쌍 깨 기름 보일라를 놓기가 째게 걸리기는 헌디…….”
“심야전기를 한 번 알아볼까요?”
“심야전기? 글씨 그 기 자부담이 커서……. 결국 건축비에서 빼야 헌다는 얘긴디. 현재 공사비도 사실은 마이너스거든. 다른 집들에 비해 단열재를 따불로 다가 쓰라고 헝깨 회 배 당 공사 원가가 말이 아녀. 헌디 거기다 심야전기 설치 부담까지는 암만 나래도 힘들지, 한복지사 쪽에서 어디 호구 하나 물어봐.”
“양 주사님도, 호구가 어디 있어요? 이제 호구 다 잡아먹어서 없단 말예요.........
사실은 저도 난방비가 내내 마음에 걸려요. 그렇다고 경은이 엄마가 연탄을 갈기에 자유로운 몸도 아니고…….”
“글씨 이……. 나도 일을 맞고 본께 좋은 집 지어 주는 거사 당연 헌 일이지만 좋은 집에서 오래오래 살게 허는 것도 책임이라면 책임일 것인디 옛날 보담은 방도 크고 거실도 커서 난방비가 많이 들 거신 디 그러믄 쥐꼬리만한 생계 보조금 가지고 기름이라도 땔 수 있을랑가 몰라."
양 주사가 담배를 꺼내다 다시 집어넣었다.
“창문 열고 피세요. 속 답답할 땐 피워야지 어쩌겠어요.”
“아녀……. 아녀……. 우리 마누라가 애 놓고 몸조리 제대로 못 혀서 평생 고생 하잔 여. 한 복지사도 이러키 참바람 쎄믄 뼛속에 바람 들어서 나중에 고생 헌깨 얼릉 집에 들어가서 보일러 만땅으로다 올리고 삼 치레는 치르고 돌아 댕겨도 돌아 댕겨이? 알았재?”
“알았어요. 일단 집 짓는 일부터 마무리 지어요. 보일러는 일단 기름보일러를 놓는 것으로 하고 후원자가 있으면 심야전기를 생각해 보기로 하고요. 그래야 일이 진척이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양 주사님만 믿어요.”
“암만, 공무원이 머 허는 사람이여! 공무원은 나라 밥을 먹는 사람이고 나라에서 밥을 먹이는 것은 백성들을 편 허고 잘 살게 허라고 허는 것이 아니것어. 긍깨 나가 나라 밥을 먹는 사람 양주사가 아닌가? 허허.”
차 문을 닫아 준 양 사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고개를 숙여 잠바로 바람막이를 하고서 라이터를 켰다. 양 사장이 담배에 불을 다 붙이기를 기다렸던 나는 묵례를 하고 현장을 빠져 나왔다. 경은이네 집은 들리지 않기로 했다. 으슬으슬 추운 게 도저히 경은이네 집을 들려 볼 엄두가 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경은이네 집 반대편 길로 들어서자 저수지가 있는 동구 밖이 나왔다. 저수지를 내려다보듯 서 있는 소나무 사이로 일렁이는 물결이 들어왔다.
빗방울이 우두둑거렸다. 아니 제법 큰 눈꽃송이도 보였다. 운봉은 가을이라는 계절이 희미한 동네다. 대신 겨울이 확실해 영하로 떨어지는 것은 흔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월 달에도 하얀 눈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기후 변화로 온화해진 것이 이 정도이니 예전 날씨는 어떠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처음 발령을 받아 운봉으로 와 고생하던 때를 떠 올렸다. 그때는 기후 적응이 안 돼 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렇게 고생하며 시작한 첫 사회생활, 사명감도 있었고 직장 생활에 대한 포부도 있었다. 그러나 칠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 의 나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장인이라기보다 동네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운봉이라는 동네에 동화 돼 버린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낯설음에 소스라쳐 놀라고 그러다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렇게 변한 내가 대견스럽고 기특하다. 한번도 운봉 사람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멀리 경은이네 집이 보였다. 무너진 하천은 보수공사가 덜 끝나 어지럽고 시커먼 초가는 세월을 버티기 힘겨워 씩씩거리는 비스듬히 쓰러져 가고 있었다. 차가 길을 따라 달리는 만큼 경은이네 집과는 점점 멀어지고 종래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운봉으로 발령을 받고 업무 파악을 하고 동네를 돌며 일일이 현황을 파악하다 경은이네 식구를 만났다. 그 때가 7년 전이고 경은이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경은이네 집은 치매를 앓는 할머니, 정신지체 2급인 아빠, 휠체어를 타는 엄마가 구한말에나 지었을 법한 오막살이에 살고 있었다. 경은이는 평범한 여자아이다. 다르다면 그 가족 구성원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일까 경은이를 처음 보았던 순주의 마음이 몹시 아팠다. 웃고 장난치는 아이, 앞니가 빠진 개구쟁이이면서 커서 간호사가 되 할머니하고 엄마 아빠를 치료해 주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 경은이를 보고 온 나는 잠들지 못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또래의 아이가 누구나 품었을 법한 꿈이건만 경은이는 이미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버렸다. 꿈과 이상은 땅속에 파묻어 버리고 냉혹한 현실에 뿌리박고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진 아이…….
‘도대체 생각들이 있는 사람들이야 없는 사람들이야. 무작정 애를 낳으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고 또 애들 놀림은 어떻게 하고…….’
철없던 나는 경은이 엄마와 아빠를 원망했다. 경은이가 너무 불쌍하고 가련했기 때문이다. 정신지체를 가진 남자와 지체장애를 가진 여자가 결혼을 한 사연은 평범하고 단조로웠다. 굳이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말하자면 경은이 아빠는 경은이 엄마 옆 동네에 살았고 경은이 아빠는 교회 사람들과 함께 경은이 엄마를 데리러 주일 마다 찾아갔고 그러다 둘이서 사랑을 하게 되고 그래서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시골 교회에도 봉고버스 한 대 정도는 있지만 그 때 만 해도 옛날이라 시골에 차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경은이 아빠와 젊은 청년들이 경은이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교회를 다녔는데 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경은이 아빠는 경은이 엄마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다리가 되어 주었고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돌아 다녔는지 휠체어가 한 해에 두 대나 부서졌다고 하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언제 어느 때나 경은이엄마 옆에는 경은이아빠가 있었고 두 사람이 결혼 할 거라는 사실을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았단다. 처지도 비슷하고 서로 아끼며 살면 또 살아지지 않겠나 싶어 두 집안 역시도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단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사실 경은이 엄마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피임을 했지만 결혼한 지 10년 되던 해에 그만 아이를 갖고 말았고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경은이다.
경은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그 착하고 선한 경은이 할머니의 행동이 이상해지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공연한 트집을 잡고 경은이 엄마를 때리기도 했다. 치매였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앓아오던 병이었을 것 이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뇌가 많이 손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하루도 새벽 기도를 빠뜨린 적이 없었다는 목사님의 간증이 아니라도, 울며 기도로 매달렸다는 이웃의 증언이 없어도 경은이네 가족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알고 있다. 경은이네 할머니가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얼마나 노력하시는 분이었는지.
그래서 일까? 경은이 엄마는 시어머니를 불구의 몸으로 병 수발을 들었다. 영세민이니 무료로 노인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다고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안돼요. 어떻게 부모를 남의 손에 맡겨요.”
그러나 그들의 불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경은이 엄마의 다리가 되어 주던 경은이 아빠가 발가락부터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렸다. 당뇨병에서 오는 합병증이었고 결국 무릎 이하를 절단해야 했다.
당뇨병은 식이요법을 하며 약을 제 시간에 복용해야 했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 식이요법을 챙겨줄 수는 없었고 천지사방을 뛰어다니기를 좋아 하는 경은이 아빠에게 제 시간에 약을 먹인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은이네 집은 현재도 충분히 불행했다. 정부에서 나오는 생계보조금이 수입의 전부인 이들에게 삶의 가치와 미래의 꿈을 설파 한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행위다. 왜냐하면 이들은 앞으로도 불행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 앞에 빤짝이는 구두를 신고 가는 것도 부끄럽고 미안했다.
경은이네 집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여 왔다. 사람이 무너져 가듯 경은이네 집도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경은이네 집을 지어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3년 전의 일이다. 그때부터 이곳저곳 복지사업 하는 곳을 수소문해 보고 후원결연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일은 업무 외의 일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것도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이지만 복지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할 인원이 수백 명이고 보면 경은이네 한 가정을 위해 본연의 업무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요 몇 년, 월차와 휴가를 알뜰히 찾았다. 대개 일이 밀리고 업무량이 많다 보니 월차는커녕 휴가마저도 제때에 찾지 못하는 것이 지역 복지사들(어쩌면 월차나 휴가 운운 하는 것이 대상자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이지만 경은이네 집을 새로 지어주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로는 월차나 휴가를 이용해 후원자와 후원기관을 쫓아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3년, 결국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영세가정 집 고쳐주기 사업이 방영된 이후 주거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사업 프로그램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그 첫 대상자로 경은이네 가정이 최종 심사대상자에 올랐다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경은이네 이웃동네를 방문하고 있던 터라 경은이네 집으로 차를 돌렸다. 그러다 차를 앞에서 차를 멈췄다…….
‘아직 확정된 사실도 아닌데 괜한 기대를 갖게 했다가 잘못되면 더 큰 실망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더 좌절하지 않을까? 앉아서 엉덩이를 밀며 걸레질을 하고 쥐와 벌레들과 싸우는 순정씨(경은이 엄마)를 생각하면,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지 못하고 밖으로만 빙빙 도는 경은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하지만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지…….’
차를 돌려 다시 일상 업무를 보기로 했다. 그날 밤, 저녁을 먹는데 박용춘의 전화가 왔다. 전화 받기를 망설였다. 관내 대상자인데 이 사람만은 피하고 싶은 사람, 안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계속해서 밸이 울렸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복지사님이십니까?”
“예, 박용춘씨.”
“어유, 제 목소리를 다 기억하시고, 역시 사람은 많이 부대껴야 한다니까요. 하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예 덕분에요.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아, 다름이 아니고 그 ㅇㅇ복지재단이라고 아시는지 모르겠네.”
박용춘의 전화는 늘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네, 그런데요.”
“제가 이번에 그 재단에다 집지어 주는 사업에 신청을 하나 했는데요. 최종심사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가슴이 뛰었다. 박용춘이 누군가! 장애인과 영세민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은 물론 사회단체 종교기관에서 주어지는 후원을 알뜰하게 챙겨먹는 사람이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고 인간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 피한다는 격언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의 그림자만 보여도 피하고 싶다. 그로 인해 복지사로 일하는 7년 데이고 학을 떼고 진저리쳤다. 그런 사람이 순주가 공들이고 있는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순간 하늘이 핑 돌았다.
“그걸 박용춘 씨가 어떻게…….”
“아, 머 그런 것까지 다 설명할라믄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오고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실태조사를 나올 때에 한 주사님이 있는 사실 고대로만 보고해 주십사 하는 겁니다. 예, 예, 잘 좀 부탁드립니다이…….”
박용춘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할 말이 더 있는 것도 아니면서 끊어진 전화기를 멍하니 들고 있다.
지난 봄.
짧은 봄이 운봉에 왔다.
운봉의 봄은, 봄인가 싶으면 여름으로 접어들 정도로 짧다. 또 봄인가 싶으면 아직 겨울의 끝자락을 놓지 않아 뒷산에 하얀 눈이 내린 4월을 맞은 적도 있는 이곳에 철쭉제라는 지역 축제가 5월이면 열린다. 수 백 만 명의 인파가 바래봉 일대에 피는 철쭉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전국으로 유명한 지역 축제이고 보니 읍사무소 역시 행정지원이나 인력지원을 위해 모든 최선을 다하게 되고 활용 가능한 인력은 현장으로 출동하게 되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진 나는 핸드폰이 고장 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다. 순주 자신도 자신이 왜 경은이네 집지어 주는 사업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어디 숨겨놓은 애인이라도 있는 거야? 전화기를 왜 들고 들어가는데……?”
“꼭 받아야 할 중요한 전화가 있단 말이야.”
먼저 일어난 남편이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다 말고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순주를 어이없어 했다.
“악!”
외마디 비명 소리,
순주 남편은 국을 뜨다 말고 욕실 문을 열었다. 머리에 거품을 잔득 묻히고 핸드폰을 손에 든 채 비명만 지르고 있는 순주, 순주 남편이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데 안도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이처럼 울먹이며 전화기가 물에 빠졌다고 했고 볼을 부풀린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화장실까지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리 줘봐. 일단 배터리 빼고 서비스센터에 맡기면 오후에는 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동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까 당신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착신시켜 달라고 그래. 그러면 그쪽에서 번거롭지 않게 알아서 해 줄 거야. 이제 됐지? 그러니까 얼른 씻어.”
“자기야 고마워......”
남편이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 내 행동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간신이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는 길에 핸드폰을 서비스센터에 맡겼다.
‘최종 통보일이 지난 지 벌써 5일짼데, 공신력 있는 큰 재벌에서 이럴 수 있나 싶지만 작은 돈도 아니고 집 한 채를 지어 주겠다는데 오죽 신중할까. 그래서 늦을 거야. 임 과장이 가부간에 연락을 해주기로 했으니 좀 더 기다려 봐야지…….’
조석으로 이해와 용서를 반복하며 OK 사인이 나기만을 기다렸다. ㅇㅇ재단은 핸드폰을 만드는 기업에서 설립했다. 일종의 사회환원 사업이라 항목들이 굵직굵직하고 알찼다. 전국에 있는 모든 복지기관들이 그곳의 지원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아니, 피 터지는 경쟁을 했다. 그런 경쟁 속에 요행수를 바라는 낚시꾼처럼 지원서 한 장을 넣고 기다리는 중이니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가. 3년 동안 경은이네 집 짓는 사업에 매달렸고 이제 그 결말을 눈앞에 두었다. 결혼한 지 2년이 넘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지 못했다. 검진을 받아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초조하고 막막한 기다림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나로서는 박용춘의 일로 해 더더욱 불안하다.
쥐를 노려보는 들 고양이처럼 ㅇㅇ재단과 순주를 노려보며 일이 웅크리고 있을 박용춘으로 해 가위 눌리고 악몽에 시달렸다.
순주 가슴이 쿵쾅 쿵쾅 방망이질을 해 댄다. 어쩔 때 헛구역질 같은 것을 하고 체한 것처럼 매스껍다. 신경 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자기야……. 어디 아파?”
총무계 박민선이 순주 옆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박민선의 친절한 말 한 마디에 그만 눈물이 핑 돌며 부아가 치민다.
‘이게 다 ㅇㅇ재단 탓이다. 가타부타 빨리 연락이나 줄 것이지 사람 피를 이렇게 말리다니……, 돈 있으면 다야…….’
“얼굴이 노란 게 체한 거 같기도 하고 손이 따뜻한 걸 보면 체한 것 같진 않은데?”
“아니야 언니, 요즘 좀……. 별일 아냐. 요즘 언니도 업무가 많다며……?”
“어, 수해복구 사업 감사가 있어서 그것 준비하느라 야간 좀 했지. 근데 자기 얼굴이 왜 그래? 입술도 조이고? 신랑하고 사이가 너무 좋은 거야?”
“아냐 그런 거……. 대상자 사업 신청을 하나 했는데 그게 기다려도 OK 사인이 안 떨어지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거 같은데? 병원엔 가 봤어?”
“어디가 아파야 병원엘 가지…….”
“아냐…… 이상해.”
“……?”
“자기 혹시 애기 들어선 거 아냐? 얼굴도 푸석푸석하고 아까 보니까 헛구역질 때문에 커피도 못 먹던데.”
“에이, 설마…….”
“잘 따져 봐? 응?”
그러고 보니 벌써 몇 주째 핸드백 안에 생리대가 그대로다. 비교적 날짜가 정확해서 생리대를 미리미리 챙겨서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있는데, 경은 이 일 때문에 그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 내가? 그렇게 바라고 기다리면서도 상상마저 할 수 없었던 일인데 설마?’
역시 박민선 언니는 예리했다. 임신 4주째였다.
남편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핸드폰은 서비스센터에 있었다. 급하게 공중전화를 찾아 겨우 겨우 공중전화기를 찾았다.
“자기야....... 나, 아기 가졌대.”
너무 큰 목소리로 말해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그런 것에 연연해할 내가 아니었다.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말은 안하셨지만 어른들은 또 얼마나 기다리던 애였나. 또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나는 또 얼마나 죄스러워 했던가.
“자기야....... 나 핸드폰 없어서 어른들께 전화 못 드리거든, 자기가 어른들께 전화 좀 드려줘……. 알았지?”
전화를 끊는데 요천의 천변로 벚꽃이 바람에 날렸다. 내 생애 그렇게 흐드러진 꽃가루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 삶 중 그날이 제일 행복한 순간일 거라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메모지 한 장이 있었다. ㅇㅇ재단 임 과장의 전화였다.
“임 과장님 안녕하세요. 운봉읍 사회복지사 한 순주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 드렸더니 자리에 안 계셔서 메모 남겼었습니다.”
“네, 지금 막 보고 전화 드린 거예요. 어떻게 결과 나왔나요?”
“아뇨, 사실 일이 좀 복잡하게 됐습니다.
최종심사에 운봉읍의 두 가정과 강원도 삼계면의 한 가정, 경기도 수원시의 한 가정, 이렇게 네 가정이 추천되었습니다. 이번에 저희 재단에서 두 가정을 시범 케이스로 사업을 추진해 보고 성과가 좋으면 내년에 중점 사업으로 선정해서 열 가정 정도를 지원할 계획이기 때문에 저희 재단에서도 관심이 높은 사업입니다.
이사장님께서 순주씨 관내에 대상자가 두 가정이 올라온 사실을 지적 하면서 두 대상자 모두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이시네요.”
“네? 무슨 말인지?”
“사실, 아무 문제도 아닐 수 있지만 문제가 되려면 또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우리끼리 하는 얘기로 무슨 사업이 있다 하면 대상자들 대부분이 목숨 걸고 덤비는데 한 지역에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면 말썽이 생기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요. 그건 절대 안 돼요. 이미 다 말씀드렸지만 경은이네는 정말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ㅇㅇ재단에서도 그것 때문에 집지어 주는 사업을 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정말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어 줘야지, 잡음이 두렵다고 엉뚱한 사람한테 지어 준다거나 그러면 안 되잖아요.”
“엉뚱한 사람들은 아니지요. 다른 대상자들도 다 절박하고 집이 필요하니까요.”
“그래도 이 사람들은 집이 없으면 죽어요. 내 말을 모르시겠어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네 식구가 쓰러지는 집에 주저앉아 죽어가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요. 네?”
“그럼 순주씨 의견은?”
“제 의견을요?”
“네. 일단 일선에서 대상자를 직접 대하시는 순주씨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다시 한 번 이사장님께 올려보겠습니다. 단, 이번 선정 과정의 모든 책임을 순주 씨가 지는 걸로 해서 말입니다.”
ㅇㅇ재단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방지할 방패막이가 필요했다. 그 사람들도 이쪽 일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니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니까 제 의향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게 한다면 이사장님께서 사인해 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경은이네 집에 집을 지어 주세요.”
“오경은 어린이 가정에 지원되는 걸로 보고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생각하고 망설이고 할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 사업을 경은이네 가정을 위해 준비했고 여태까지 이 일을 위해 노심초사하였다. 그러니 누가 지원이 필요하냐는 질문 따위는 애당초 불필요 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고집에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비교해도 그렇다. 박용춘의 집은 그래도 기와가 올려져 있고 비가 새지 않으며 방도 세 개나 되고 입식으로 갖춰진 주방도 있고 집 안에 양변기가 놓인 화장실도 있다. 하지만 경은이네 집은 박용춘의 집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가족 구성원 역시 박용춘은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이 있고 남의 일이지만 일을 나가 돈 벌어오는 아내도 있었다. 박 용춘 역시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벌꿀을 치고 산에서 버섯 같은 것을 채취해 부수입도 올렸다. 지팡이를 짚고도 절 둑 거리는 발로 산을 어떻게 오르는지 모르지만 박용춘은 용이 버섯을 제법 딴다고 하였다.
하지만 경은이네 집은 그와는 정 반대다. 누구하나 돈 벌어올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집안에는 환자와 어린아이뿐이다. 그러니 누가 지원을 받아야겠는가? 이것은 소신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다. 사회구제의 원칙인 것이다. 이 원칙을 직키며 수행하기 위해 대학에서 공부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고 나라에서 월급을 받으며 내가 일하는 것이다.
또 이런 제도적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목마른 사람 두 명이 앞에 있다 치자. 그중 한 사람에게만 물을 줄 수 있다면 가장 목마르고 생명에 위협을 덜 받는 사람에게 줘야 할 것이다. 이것은 법보 다도 앞선 윤리의 문제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경은이네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니, 내가 선택했다. 기뻐서 춤이라도 춰야 할 날에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이미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박용춘을 감당해 내기에 나는 너무 약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벽에 붙은 시계를 보며 초초하게 기다렸다. 자리를 뜰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것은 오히려 일을 더 키우는 일이다. 박용춘의 눈에 내가 띄지 않는다면 집에라도 찾아와 행패를 부릴게 뻔했다.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불안함으로 도래할 재앙을 기다렸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주차장에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추고 박용춘이 목발로 이용하는 막대기를 휘저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 설명 없이 누구 나 오라거나 어떤 말도 없이 집기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자판기 한 대가 박살나고 필경 대 유리가 깨졌다. 3층에서 근무하는 단기사병들이 박용춘을 제압했다. 토끼 눈처럼 충혈 된 박용춘은 광인의 눈 같았다.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산업계장 김 영호 씨 가 제압당한 박용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읍사무소가 박용춘의 습격을 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니 경찰에 인계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랬다간 더 큰 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달래는 게 상책이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시팔 년에게 물어봐.”
박용춘이 이를 부드득 갈았고 그 소리가 못으로 유리를 긁는 것처럼 들렸다.
“한 순주 씨, 이번에는 또 무슨 일입니까?”
김 영호 과장이 짐짓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그리고 끌다시피 박용춘을 데리고 나갔다. 분명 술과 저녁을 사주고 얼마간의 용돈을 쥐어줄 것이다.
눈들이 내게로 쏠렸다.
걸신들린 거지는 먹을 것을 가진 사람에게만 덤빈다. 때문에 먹을 것을 가진 사람은 잘잘못을 떠나 싸움에 말려들게 되는데 내가 꼭 그런 신세였다.
박용춘은 가끔 읍사무소에 나와 행패를 부렸다. 그 원인도 가지가지여서 공공근로 사업에 선정이 안 되었다거나 저소득 가정에 지원되는 융자 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거나 생계지원금입금이 하루 이틀 늦었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박용춘은 원조 막가 파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막가파 적 행태를 제재할 뾰족 한 방법이 없다는 데 있었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경찰에 신고해 봤자 구류 며칠만 살면 땡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다시 똑같은 행태를 자행할 것이다.
“얼마든지 집어넣어 보라고. 나같이 없이 사는 놈들은 남는 게 시간이니까.”
박용춘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다. 그가 얼마나 영악한지 방화, 상해 같은 중범죄는 절대로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 범죄는 구류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박용춘이 면사무소 집기를 부순 것은 필경 대 유리뿐이었다. 자판기는 외주 업체의 것이고 자판기 대여업자는 박용춘을 고발하지 않을 것이다. 박용춘은 매번 자판기를 부순다. 처음 몇 번은 박용춘에게 따지고 손해 배상을 청구 했지만 몸으로 때우겠다고 덤비는 통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터였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그렇게 지리 한 대치 속에 박용춘은 계속 읍사무소를 찾아와 집기를 부수고 행패를 부렸다. 읍사무소 역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박용춘을 연행했다. 그러나 기껏 구류가 고작이었고 밖으로 나온 박용춘은 또 행패를 부렸다. 자판기 없자는 이제 더 이상 자판기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나는 휴가를 내어 잠시 쉬기로 했다. 임신을 한데다 박용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였다. 휴가 계를 내고 남원 집으로 가려는데 바래봉에 구름이 걸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 구름이 봉우리에 걸리면 바람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인데 구름이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문득 운봉이라는 지명에 관한 유래가 생각났다. 구름이 걸친 봉우리, 운봉을 두고 한 말이다. 중국 송나라 땅 운봉과 지형이 흡사하여 운봉이라 불렀단다. 해발 500 고원분지의 운봉은 봄과 가을은 희미하고 여름과 겨울은 뚜렷한 계절을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사계절 중 여름이 가장 좋은 기후환경을 갖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나는 지금 그렇게 좋은 운봉 땅을 벗어나기 위해 휴가를 받았다. 아주 떠나는 것도 아닌데 묘한 감정은 뭘까........
휴가 중에도 박용춘은 계속 해서 행패를 부렸지만 그 빈도가 자자들더니 뜸하여 졌다.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하였고 어느덧 배는 조금 식 불러올라 남들에게 자랑하기 좋을 만큼 되었다. 정말 나는 대상자들에게 자랑을 하며 다녔다.
8월, 입덧이 막 가신 뒤라 먹어도 먹어도 허기졌고 주체하지 못할 식욕 때문에 점심시간도 아닌데 새터로 달려가 ㅇㅇ식당에서 산채비빔밥 두 그릇을 해치웠다.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위해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사무실에 시 기획 감찰실에서 감사를 나와 책상을 뒤지고 있었다. 정례 감사 기간도 아닌 한 여름의 감사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사태파악부터 해야 했다. 혹여 무슨 책이라도 잡힐까 전전긍긍하는 사무실 사람들이 순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 순주 씨에게 생계보조비 유용 및 착복과 건설업자에게서 뇌물을 수수 했다는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감사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몇 번이고 다시 되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부정 공무원으로 투서가 있어서 감사를 한다는 얘기 같았다. 나는 감사가 끝날 때까지 업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전주로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가장 길고 더운 여름이었다.
“2004년 5월 김 갑례 씨의 현금카드로 돈을 인출하신 적이 있죠?”
“네, 하지만 그건 김 갑례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분이고, 다른 사람이 돈을 빌려 쓰고 갚지를 않아 생계가 막막하다고 하여 김 갑례 할머니가 거주하는 마을 이장과 함께 돈을 인출해 생활용품을 사고 남은 돈은 할머니를 드렸는데요.”
“하지만 김 갑례 할머니 가족들 말로는 지급되는 돈을 다 찾아다 주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김 갑례 할머니 가족이라고 하시면 하 동길 씨를 말하는 건가요? 그 사람이 그래요? 내가 돈을 덜 찾아다 줬다고?”
하동길이라는 사람은 김 갑례 할머니의 이종 조카뻘 되는 사람이다.
할머니는 후손이 없었다. 아들 하나가 있었지만 광주 민주항쟁 때 실종되어 지금껏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들이 광주 민주항쟁 유공자가 된 것도 아니다. 광주에서 막노동을 하던 아들이 군인들의 무참한 진압에 욱 하는 성질로 시위에 했을 거라는 짐작만 할 뿐 정확한 행적을 알 길이 없었다. 또 광주 시민도 아닌 남원하고도 운봉이라는 산골짝에 할머니가 실종아들의 명예를 회복해 줄만한 힘은 지식도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때문에 할머니의 삶은 의지가지없게 되었고 유일한 생계수단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계보조금 뿐이다. 하지만 이 생계보조비를 빨아 먹는 사람이 있었다. 이웃보다도 못한 먼 친척 조카뻘 되는
하 동길 이라는 사람은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생계보조비를 갖가지 명목으로 빌려 쓰고 갚지 않았다. 때문에 별다른 수입이 없는 김 할머니의 생계가 막막했고 그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이장님과 함께 통장으로 지급된 돈을 찾아 한 달 동안 할머니가 쓰실 생필품을 구입해 주고 남은 돈을 비상금으로 드려왔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는 순간이었다. 차라리 내가 그 돈을 착복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 정도였다. 그랬더라면 이렇게까지 멍하고 띵한 기분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건 아실 거 없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이보세요. 지금 그 말투는 상당히 굴욕적이네요. 저는 아직 죄가 입증된 게 아니잖아요?”
감찰관은 순간 고압적인 자세가 위축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능글맞게 독기어린 얼굴을 다시 들고서 조여 왔다.
‘니가 어디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지 보자.’ 큰 비단구렁이가 온 몸을 칭칭 감고서 긴 혀를 날름거리며 위협하듯 혀로 입술을 적시며 날름 거렸다.
“하 동길 씨가 투서를 했건 다른 사람이 투서를 했건 그건 한 순주 당신이 알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 그 사람들과 합의라도 보시게? 하지만 투서라는 게 접수된 이상 합의와는 상관없이 조사를 해야 하거든, 그러니 괜한 헛수고 하지 말고 있는 사실만 말 하세요. 감사실에서 잔뼈가 굵은 내게는 당신 같은 피라미들의 전횡은 정황만 봐도 알 수가 있으니까.”
“그래요? 그러면 하 동길씨 얘기를 들었으니 김 갑례 할머니의 얘기도 들어 주셔야죠. 할머니께서 가서 물어 보세요. 제가 그 돈을 착복 했는지 안했는지.”
“여기……
남원의료원에서 김 갑례 할머니가 치매 치료를 받고 있다는 진단서입니다. 당신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혐의사실을 입증할 능력이 없는 김 할머니의 돈을 착복한거 아닙니까?”
“김 할머니가 치매 치료를 받고 계시다고요?”
80을 넘기고 90을 바라보는 분이니 치매 치료를 받으신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며칠 전만 해도 멀쩡하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갑자기 치매 치료라니…….
“그리고 결식아동에게 지급되는 부식이 부실하다는데……. 이거야 회계장부를 보면 알 것이고. 건설업자 양 달식 씨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어떤 사이라뇨?”
“2004년 3월 주천 에덴식당에서 점심, 동월 남원 풍경소리에서 저녁, 동년 4월 인월 삼겹살 집에서 저녁. 그밖에 매주 한 번은 함께 식사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보통 친밀한 사이가 아닌 가 봅니다.”
“지금 질문하신 의도가 상당히 불순하시다는 것 아세요?”
“이것 보세요, 한 순주씨! 지금 날 추궁하는 겁니까?
질문은 내가 하고 한 순주씨 당신은 대답만 하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지금 당신은 사회복계 공무원 신분으로 건축업자와 무슨 일로 이렇게 자주 밥을 먹었으며 또 오 경은양 집 지어주는 일을 수의계약 하였느냐를 묻고 있고 당신은 지금 그 대답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때서야 머리를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박용춘, 그 사람이 아니고는 이렇게 집요하게, 이렇게 추악하게, 이렇게 세밀하게 준비해서 궁지로 몰 사람이 없었다. 능글거리며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박용춘이 눈앞에 있었다.
“죽여 버릴 거야!”
박용춘으로 해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순간 폭발했고 갑자기 벌건 선혈을 보이며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것은 서너 시간 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였다. 대학병원이 없는 남원에서 일이 생겼다면 나는 아이를 읽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살의를 느꼈다.
투서 건은 직원들이 혐의사실에 대한 반박 자료를 준비해 올리고 지역민들이 탄원서를 쓰면서 일단락 지어졌다. 사실 내용을 알고 보면 건수가 될 만한 것이 없는 무고 성 투서였다는 것이 증명된 샘이다. 다만, 실적을 올려야 하는 공무원 사회의 풍토와, 고발이 들어오면 조사를 해야 하는 제도 때문에 내가 완전히 혐의를 벗는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아이가 유산된 것도 아니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니 크게 문제될 게 없었지만 운봉이라는 작은 동네는 탄원서를 쓰면서 심하게 술렁였다.
소문과 소문이 꼬리를 물었고 잡초가 자라듯 소문이 자랐다. 마치 지리산 줄기를 타고 넘는 구름처럼 박용춘에 대한 말들은 보태고 보태져서 루머로까지 확대 재생산되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들끓는 여론은 편 가르기의 극치를 보는 듯 했다. 모두들 박용춘을 욕했고 심지어 박용춘의 사주를 받아 투서를 던졌던 사람들마저 자기들의 잘못을 박용춘에게 전가시켰다. 내가 부도덕한 공무원이며 지역사회에 해를 주고 있다는 투서를 코치한 사람이 박용춘이다 고 하동길이가 말함으로서 박용춘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준비 하였는가 소문이 났다. 하 동길은 이장 단 회의에 불려나가 공개 사과를 하고 김 갑례 할머니께 수 백 만원을 변상한 다음에야 생계비 착복 건에 대한 고발을 취소 받을 수 있었다. 또 양 달식 사장은 장애인 집 고쳐주기 사업을 통해 사회봉사에 힘썼다는 사실이 알려져 읍민의 날 행사 때 감사패를 받기까지 하였다. 사람들이 전화위복이라고 등을 두드렸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실추된 내 명예와 자존심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태중의 아이를 위해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도리라 믿는다. 수없이 박용춘을 이해하려 했고 용서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할 때 뿐 마음에 응어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박용춘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고 부아가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순주의 남편은 적당한 시기를 봐서 사직서를 내라고 종용했다. 남원서 운봉으로 출퇴근 하는 것도 불안하고 뇌물수수니 직무 태만이니 모함 받는 것도 신경 쓰이니 애 낳고 살림만 하란다.
사실 나라고 그러고 싶을 때가 없겠는가.
어떻게 얻은 아인데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직업에 대한 환멸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사직서나 휴직 계를 낼 수는 없었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정확하고 또렷이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가슴이 그만 두거나 휴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신을 한 몸이지만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들이 거의 없다. 늘 운전을 하며 관내 대상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렇다고 딱히 용건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러나 대상자 대부분이 김 갑례 할머니처럼 연로한 노인들이고 보면 갑자기 몸이 아프지는 않는지, 생계보조비를 빼앗기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그런 게 이유였다.
박용춘의 투서 건으로 해 경은이네 집지어 주는 사업은 작은 읍내에 큰 이슈가 되어버렸고 그 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무성한 소문과 억측과 소문은 ㅇㅇ재단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자 이런저런 이유들로 해 자금결재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장마가 지기 전 새집을 지어 이사를 들어갔어야 했지만 벌써 장마가 북상하는 중이었다.
결국 읍장님과 사회단체에서 사람들과 함께 ㅇㅇ재단으로 찾아가 구걸하듯 통사정을 했다. 투서 건은 사실이 아니며 이러이러한 이유들로 사정이 절박하니 결정된 지원을 조속히 집행해 달라는 일종의 탄원 같은 것을 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무덥고 습한 여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다행이 00재단에서는 지원을 번복하지 않았고 장마가 끝이라면 경은이네 집을 짓기로 하였다.
장마를 밀어낼 태풍이 올라온다는 뉴스가 들렸다. 가슴 뛰게 하는 반가운 태풍이다. 이제 저 장마 전선만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사라진다면 경은이네는 새집을 얻게 되는 것이다. 태풍은 중형 급 이라했다. 관내 위험지구에 대해 순찰을 돌기 위해 직원들이 비상근무 조를 짰지만 나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열외 되었다.
마침 남편도 일찍 퇴근 남산 만해지는 배에서 꿈틀대는 태동을 보며 웃고 떠들고 나무껍질처럼 줄줄이 튼 뱃살을 남편에게 푸념하는데 자꾸 베란다 쪽으로 눈이 갔다. 여자의 본능은 참 무섭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늦은 밤 커튼을 열고 내려다 본 주차장에 한 사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비스듬히 서 있는 사람.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한쪽 다리가 짧아 서있는 폼이 특이한 박용춘 그 사람이었다. 나는 너무 소름끼치고 놀라 비명을 질렀고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쫓아가려고 했다.
나는 말렸다. 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자칫 일이 커지기라도 해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날이면 돈을 주고 합의를 봐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고 남편은 감옥을 가고 직장을 잃고 전과자가 될 것이다. 주차장에 서있는 박용춘이라는 사람은 그것을 노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남편을 설득해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베란다 밖을 보았다. 박용춘은 없었다. 혹시 현관문 밖에 있나 싶어서 밖을 내다 봤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상당히 많은 비가 내리기 때문으로 집으로 갔을 거라 생각했다.
태풍이 지나 가고 푸르다 못한 투명한 하늘, 짖다 못해 검은색을 띤 산허리를 하얀 구름이 돌아 운무를 이루고 용처럼 지나는 광경이 연재에 펼쳐졌다. 출근길 자연 이라는 화가가 그린 한 폭의 동양화다. 내가 직장이 운봉이라는 이유로 출 퇴근길에 이런 혜택도 받는다. 나는 이것을 자연이 내게 준 혜택이라 여겼다. 차를 세우고 운무를 감상 하는데 전화가 왔다.
“예 한 순주입니다.”
“한 복지사님, 저 경은이 엄마예요.”
“네, 경은이 어머니, 어젯밤 비에 별 피해는 없으시고요?”
“네, 근데요. 어젯밤 비로 우리 집 앞터가 휩쓸려가 부랬는디 어쩐대요?”
경은이네 집 뒤 터라면 새집을 지어 주기로 한 곳이다.
그 터가 밤새 내린 비로 휩쓸려갔다는 말에 하늘이 노래졌다. 이제 겨우 ㅇㅇ재단에서 자금지원 통보가 왔는데 집터가 유실됐다니 난감한 일이 일이 아닐 수 없다. 황당함에 경은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정말 밤새 호랑 골에 폭우가 쏟아져 경은이네 집 앞을 삭 뚝 떼어가 버렸다. 재빨리 피난갈 수도 없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지능이 낮은 남편, 어린 딸내미를 보호해야 할 경은이 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놀랐을까 싶으니 마음이 쓰리다 못해 아팠다. 제법 깊은 낭떠러지를 만든 하천 물은 아직도 뿌연 흙탕물이다……. 지대가 높은 곳의 유속이 빨라 홍수가 지면 무섭게 물이 불어나고 또 물이 금방 빠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비가 왔다면 경은이네 가족들도 해를 당하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저 가엽은 사람들이 좋은 집에 살아보지도 못할 뻔 하였다.
일단 경은이 엄마를 안심시키고 경은이가 학교 갈 시간이라 말에 조금 지체하여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서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무실은 폭우 피해를 집계하느라 분주하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침수나 유실된 농지가 속속 늘어나고 있었다. 고기리에서 내려오는 하천을 따라 있는 회덕, 주촌, 덕산, 가장리에서 농지가 침수되었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산업 계장님은 이 기회에 하천 정비사업을 따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강우량이 아니었음에도 지리산 계곡에 폭우가 인해 하천 범람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태풍 피해 복구사업으로 하천 정비사업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하천 정비계획 설계도에는 경은이네 집 앞까지 둑이 쌓아 하천을 넓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경은이네 집터에 집을 지을 수 없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라고 하지만 하천 제방 밑에다 마당도 없는 집을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경은이네 집터는 시유지에 불법으로 세워진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하천 정비 사업에 땅이 편입 되어도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만 본다면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다.
당장 경은이네 집을 지을 대토가 필요했다. 또 ㅇㅇ재단에 이를 통보하고 대토 구입비를 추가하거나 후원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지 나로서는 자신이 없었다. 다리에 맥이 풀리는 순간이다. 그날 오후 총무계 박미선 언니가 책상으로 와 앉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들었어?”
“……?”
“박 용춘씨, 어젯밤 교통사고 났대?”
“네?”
“고속버스 터미널 앞 용머리 고개 알지? 용암리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가다 화물차에 치였대.”
“많이 다쳤대요?”
“글쎄……. 위독하다는 얘기밖엔…….”
어젯밤 주차장에 서있던 박용춘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우리 집 앞에 서 있었을까?, 그리고 뜬금없이 용암리는 왜? 친척이나 친구가 있을까? 모두가 의문투성이로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굳이 핑계를 찾자면 대상자 가정에 교통사고 같은 위급한 일이 있으면 긴급히 지원해야 할 일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 사회복지사의 업무 중 하나다. 그러니 내가 박용춘을 찾아 병문안 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내 직업 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내가 꼭 가야 할 상황이 아님을 나도 알고 나를 맞아들일 박용춘과 그 가족들도 안다. 그러나 나는 초연하지 못했다. 우리 집 아파트 주차장에서 비를 맞고 서 있던 것과 교통사고가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그것은 주술사가 걸은 저주처럼 가슴팍에 못처럼 박혀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박 용춘씨 병문안을 간다고 해서 그런 의문점들이 풀릴까?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도 복도에도 박용춘의 보호자는 없었다. 가족들도 외면한 것일까? 잠시 머뭇거리다 간호사에게 면회가 되냐고 물어 보았다. 중환자실은 가족 외에는 면회가 안 되고 박용춘은 지금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박용춘의 부인이 보였다. 모를 일이었다. 그 때 내가 왜 안도의 한숨이 쉬었는지.
“먼 일이데? 그릇케 사람을 모함을 허고 그래 쌌트만?”
“네……?”
여과 없이 이해할 수 없는 적개심을 드러내는 박용춘의 부인. 성난 암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는 표정 뒤로 깊은 슬픔이 고여 있었다. 교통사고를 낸 당사자도 아니고 박용춘을 험담하고 다니지도 않았고 중상모략을 한 적도 없는데……. 적반하장이라는 단어가 맴돌지만 딱히 왜 나한테 이러느냐고 소리칠 명분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면 말을 해도 통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자포자기 하였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내가 올 자리가 아니었다.
“봐하니…… 어린애도 밴 모양인디 그러믄 못써. 사람이 잘못 헌 일이 있고 설령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더라도 그렇게 모함을 허고 없는 소리를 씨부래 대믄 안 되는 것이여.”
“그 말은 이 자리에서 할 게 아닌 거 같군요. 어려우신 점은 없으시고요?”
“애아부지가 쥐새끼 마냥 타 무글 건 속속들이 타 무근께 그런 걱정일랑 마쇼. 모다 들 그런다드만, 쥐새끼 마냥 찾아 무글 것은 알뜰히도 잘 찾아 무근다고. 그려서? 우리 애아부지가 도둑질을 혔소? 살인을 혔소? 아니믄 누구를 두들개 팼소?”
“이보세요, 아주머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배 안에 아이만 없다면 머리끄덩이 잡이를 하였을 것이다. 손이 몇 번이고 쥐어질 때마다 배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참았다.
꼭 남의 것을 훔쳐야 도둑질이 아니다.
남을 때려 상해를 입혀야 폭행이 아니다.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이 아니다.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당신 남편 때문에 유산까지 할 뻔 했다고, 부정 공무원으로 몰려 강퇴 당할 뻔 했다고 소리 치고 싶었다.
그러나 위독한 환자를 치료하는 중환자실 앞인데다 주위 보호자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까이 와서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엿듣는 눈치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이 분이 아버지를 다치게 한 것도 아닌데 왜 이 분에게 그러세요.”
“이놈아, 모름은 잠자코 있어. 다 저 여자가 느그 아부지 헌티 있는 소리 없는 소리를 해 대갖고 느그 아부지가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저리 된 거시여. 느그 아부지를 저년이 저렇게 만들었단 말여…….”
“죄송합니다.
어머니께서 속이 많이 상하셨나 봐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박용춘의 아들이 머리를 숙여 사과 하고 엄마를 끌며 밖으로 나갔다. 결국 박용춘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난 가을
박용춘은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읍사무소 커피 자판기는 부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생트집을 뜯지 못하게 되었다. 읍사무소도 마을도 조용했다. 나른한 가을 더위를 피해 일상을 만끽하듯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로 숨어들었다. 한가해진 파출소도 일상의 업무로 돌아간 김 순경이 마을 순찰을 돌았다. 김 순경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구판장(생활필수품을 파는 작은 슈퍼)에 모여 막걸리 잔을 드는 주민들에게 벼 도둑이 극성이라는 고지를 하고 있는 있었다.
대상자 방문 건이 있어 산덕리로 가던 중 안면이 있는 김 순경과 마주쳤다, 순주가 차를 세우자 김 순경이 옆으로 왔다.
“순찰 나오셨나 봐요?”
“예, 때가 때인 만큼 순찰을 자주 돌아야 허지 않것습니까?”
김 순경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가늘고 얇은 담배가 투박한 남자 손에 끼여 불 붙여지고 거미줄 같은 담배 연기가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를 날았다.
“작년에는 피해가 많았다면서요?”
“아 많다 뿐입니까? 한 동네 벼를 몽땅 도둑 마잤는디. “
“올해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아~ 내말이요. 그 옘벵헐 놈들이 값어치도 없는 쌀은 멀라고 훔쳐 가는지........
저~ 허리 굽은 노인들이 농사지어서 돈을 벌믄 얼마나 번다고....... 죽일 놈들......“
“그래요…….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나도 그 소식을 듣고 가슴이 쓰렸는데 정작 본인 마음이이야 오죽 하시겠요? 올해는 김 순경님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주시니까 별 문제 없겠죠?”
“아따 열이 도둑하나 못 잡는다 안 합디여. 그저 조심 허고 또 조심 허는 것이 상책이제. 근디……. 나한테 먼 허실 말씀이라도…….”
“사실 파출소로 찾아뵙기는 뭐하고, 전화를 드리자니 전화번호를 몰라서 애매했는데 오늘 뵈어서 다행이에요.”
“................?”
“이번에 영세 장애인들에게 전동 휄체어가 보급 되거든요. 그런데 이게 도로 위를 다니는 기계라 사고 위험이 있을 것 같네요. 장애인들이 밤에 밖으로 나올 때 쓸 수 있도록 야광어깨 띠나 야광 봉 같은 것을 협조해 줄 수 없나 싶어서요.”
“글씨요 이-. 파출소 비품을 제 맘디로 갖다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닝깨, 이 문제는 소장님 허고 의논을 혀 봐야 쓰것지만 쪼깨 어렵지 십은디.
지구대 파출소라는 곳이 쓸 수 있는 예산이 워낙에 없응깨요.”
김 순경의 대답이 실망스러웠다. 사정이야 어쨌건 면전에서 거절당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실망한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이것이 후원을 이끌어 내고 대상자들을 돕는 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후원을 받아 내는 기술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일종의 직업병?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나를 또 발견했다.
소스라쳐 놀랐다. 어느 때부턴가 후원 요청을 했다 거절당하면 나는 화를 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목적한 후원을 얻어 내려고 애썼다. 결국 어떻게 해서든 목적한 후원을 받아 내고서야 얻는 카타르시스,
“장애인들, 전동휄체어 타고 다니다 사고 나면 김 순경님 책임이라는 거 아시죠.”
“아니 저……. 그게…….”
쓴 웃음, 그리고 얼음보다 차갑게 휑하니 차에 행정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백미러로 담배를 집어 던지고 투덜대는 김 순경을 보았다.
부담 백배를 줘서 후원을 하도록 만드는 기술자, 나는 그런 기술자가 되어있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계획표까지 짜여져 있다. 앞으로 몇 일간 오며 가며 파출소를 들려 김 순경과 소장님을 조를 것이다. 그러면 어떤 형태든 되게 되어있었다. 이것은 내 직감이고 일을 만들어 가는 수단이기도 했다. 박용춘이 룸미러 속에서 웃고 있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 이라는 사람이 교회에서는 그렇게 선한 사람이었다고 했지? 박용춘과 이근안 그리고 내가 다른 게 뭘까? 억압과 폭력으로 카다르시스를 얻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전화기가 울렸다.
“내~”
“예, 동춘 의료기 김 용택입니다.”
“아 예 김 사장님.”
“다름이 아니고요. 오용선 할아버지가 신청한 전동휄체어 기종이 보조금 보다 비싼 것인데요. 안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시라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서요.”
김 사장이 말한 할아버지는 자녀도 성공한 편이고 생활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과거 부조리한 시대 특정인과 인맥을 이뤘다는 이유로 생활보호자 명단에 들었고 지금껏 저소득층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내가 임명받은 첫해 생활보호대상자 2종에서 오용선 할아버지를 탈락 시켰다가 호된 시고 식을 치렀다. 총무계장님과 면장님(그때는 읍으로 승격되기 전이었다.) 그리고 시의원님까지 나서서 생활보호 대상자 탈락을 취소시키라고 했다.
그 당시 생활보호 2종은 의료비 할인 외에 별다른 혜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이권사업이라도 되는 것인 양 압력이 들어왔다. 결국 나는 오용선 할아버지를 생활보호 2급으로 다시 지정하였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과 타협한 첫 케이스였다. 처녀를 도둑맞은 것처럼 억울하고 분해서 며칠이고 잠들지 못했다. 지금도 오용선 할아버지에 대해 지울 수 없는 적개심이 들끓는 것은 칼자루를 쥔 자의 오만일까 아니면 쉽게 털지 못하는 성격 탓일까.
“오용선 할아버지가 휄체어가 필요하다고요?”
다리를 절 둑 거리기는 하지만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전동 휄체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관절염으로 해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필요한 서류를 구비해 오셨더라고요.”
주행 속도가 10km밖에 나오지 않는 전동휄체어를 가져다 쓸데는 없을 것이다. 분명 정부에서 공자로 준다고 하니까 받아다 놓을 욕심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요?”
“내? 아~내! 오용선 할아버지가 전화를 한번 드려 보라고 그래서..........”
“김 사장님도 알다시피 의료기 보조사업은 시청에서 주관하잖아요. 그걸 제게 문의 하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의료기 지급 사업이 무슨 동네 떡 떼어 주는 사업도 아니고 다 규정과 절차에 의해서 지급되는 것인데 좀더 고급기종을 원한다면 그 비용은 본인 부담이라는 것쯤은 김 사장님이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예 알겠습니다. 저는 오용선 할아버지가 하도 읍사무소에 전화하면 다 알아서 해 줄 거라고 하셔서요.”
김 사장이 당황해 하며 전화를 끊었다. 오용선 할아버지가 하도 큰 소리 치며 읍사무소에 전화하면 다 해 줄 거라고 하니까 혹시나 싶어 전화한 것뿐일 텐데 말이다. 안 봐도 비디오인 오용선 할아버지의 언행........, 오만과 세월을 이고서 사람을 무시하며 종 부리듯 하려는 그 불손 함
‘영감탱이 정부에서 공짜로 주는 거라면 쥐약도 받아먹을 걸…….’
공안리 다리 앞에서 차를 세웠다. 학생 교육원 쪽에서 계곡을 따라 바람이 불었다. 온 몸에 두드러기처럼 돋아났던 열기가 바람에 삭혔다. 괜스레 차에 화풀이를 하고 심호흡을 했다. 물잠자리가 냇물 위를 날아 삼산리 체육공원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옛날 삼산리에 살던 최씨라는 사람이 방풍림으로 소나무를 심었다는데 지금은 운봉 읍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꼬부라지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세월을 인 나무에 그네를 매단 아이들이 놀고 있다. 소나무 들은 어느 것 하나 낙락장송으로 큰 놈이 없다. 촌로의 굽은 허리 마냥 휘어 늘어져 마을을 감싸고 풍수해를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봉민 씨네 아이들이 그네를 놀다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저 아이들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든 것일까? 나는 동네 안으로 들어섰다. 멀리 기와와 비닐덕석이 얹어진 지붕이 보였다. 박용춘의 집이었다. 처음부터 박용춘을 찾아볼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 오래전부터 찾아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일이다. 어떻게든 뭔가를 해결하지 않고는 순주 자신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동네에 살면서 아귀 같은 욕심은 왜 부리는지.......’
박용춘은 퇴원한지 한달 쯤 되어가고 있었다. 쓸어 질 듯 비스듬히 기울어 있으면서도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겉모양 만 그럴 뿐 정말 튼튼한 기둥과 기초를 가진 집인 것 같기도 했다. 기와지붕 한쪽 파란 천막으로 비 가름을 한 집은 주인처럼 고집불통에 음흉하고 포악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마당은 정갈했고 휄체어가 집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경사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쩔뚝거리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던 사람이 하반신이 마비가 되었으니 상실감이 꽤 클 텐데 상당히 빠른 적응력이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직도 정상이 않을 텐데, 그리고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받아 들이기 힘들 텐데 지금 내가 따지고 확인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꼭 확인을 해야 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사고 나기 전날 밤에는 왜 우리 집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방충망 문을 열자 박용춘은 휄체어를 탄 채 싱크대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 복지사님이 여기는 어쩐 일이다요?”
“퇴원 하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읍민의 날 행사니 뭐니 일이 좀 많아서 못 와봤어요. 건강은 좀 어떠세요?”
박용춘이 손을 닦으며 마루로 나왔다. 휄체어가 문턱을 넘지 못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박용춘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였다. 내가 마루에 걸터앉았고 박용춘이 부엌문 쪽 마루에 휄체어를 탄 채 앉았다.
“전동 휄체어가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생활보호 대상자 시니까 100% 지원이 되거든요.”
“그것 때문에 오셨소?”
“내......, 아니요. 그냥”
“별로 해주고 싶은 맴이 없을 거신 디…….”
“제 일이잖아요.”
고추잠자리가 마당의 빨래 줄에 내려앉았다. 순주도 박용춘도 고추잠자리를 보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내가 대답해 줄 말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욕심은 부려도 사람을 미워하는 성질은 아니라는 거. 절대로 한 주사를 미워하지는 않았다는 것만 알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고 나던 날 제가 사는 아파트에 오셨었나요?”
“갔었죠.
왜 갔었냐고 물으면 또 구차한 말들이 오고 가겠죠? 각자 사는 방법이 틀린 깨 살다 보 믄 또 알 때도 있것죠. 한 주사가 나를 모르듯 나도 한 주사 진심을 잘 모릉 깨.”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그렇게 포악할 수 있을까? 순전히 욕심만으로 가능할까?’
빨래 줄에 앉아 있던 잠자리가 날아올랐다. 우리 눈에 잠자리는 맥없이 날개 짓만 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잠자리 역시 고단한 삶을 사는 한 과정이고 수단 일게다.
“커피 한잔 드실 라요?”
“아뇨……. 금방 가봐야 돼요. 설거지 하셨나 봐요?”
“마누라가 나가서 돈번 깨 노는 내가 헐 일 이재.”
“집안에선 다정다감하신가 봐요.”
“......................”
“고슴도치 아요? 그놈 몸이 온통 가신디 그놈 품에서 새끼가 어치 케 큰 줄 아요? 고슴도치는 새끼를 품을 때 가슴으로 품는 다요.”
선문선답을 하는 것 같았다. 읍사무소에 와서 행패 부리던 박용춘이 아니었다. 다시 머릿속이 혼돈의 세계가 됐다. 선과 악의 구분선이 없어졌으며 자의 정체성을 잃어 버렸다.
박용춘이 말없이 웃을 때. 새 한 마리가 잠자리를 잡아갔다. 잠자리는 작은 벌레를 잡아먹어야 알을 깔 수 있고 새는 잠자리를 잡아야 새끼를 키울 수 있고 인간은 새를 잡아야 먹을 수 있다. 햇살이 마루를 침범해 들었다.
‘사고 나던 날 밤 왜 우리 집을 뚜러지게 쳐다보고 있었는지, 그 늦은 시간에 전주 가는 길 용암리는 뭐 하러 갔는지 정말로 박용춘 당신이 나를 모함할 생각으로 일을 꾸몄는지’
하지만 그런 말들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사그라 들기를 반복할 뿐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박용춘의 카리스마가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아귀라는 지옥에 가면 바늘구멍 같은 목구멍으로 태산만한 머리와 대양만한 배를 가진 귀신이 살고 있다. 그래서 그놈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아 걸신이 들려서 먹을 것만 보면 환장을 하고 덤벼든다.
박용춘만 보면 아귀가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본 박용춘은 아귀가 아니었다. 선사에 도인 같기도 했고 삶을 통달한 철학자 같기도 했고 시인 같기도 했다.
시계가 3시를 향해 달리며 햇살을 마루로 침범시켰다. 나는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직도 박용춘에게 캐물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3시에 있을 이장 단 회의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경은이네 집짓는 일이 진척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싼 땅이 있는 운봉에서 집터가 없어 집을 짓지 못했다. 집을 지으려했던 터는 하천 제방 공사로 편입되고 돈이 없으니 널려있는 땅도 그림의 떡인 샘이었다. 조급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집을 지어야 하는데 이러다 다른 사람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이장 단 회의는 일종의 자치회 모임이지만 동네일을 보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라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그 자리를 찾아 공개적으로 땅을 요구할 샘이다. 물론 말은 정중하고 부탁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이장 단에 집터를 기증해 달라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고기리 이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은 밭이지만 옛날에는 집터로 쓰던 땅이 있는데 그것을 동네에서 사서 경은이네 집터로 내 놓겠다는 것이다.
“한 주사에게 내가 놀랬당깨. 그렇게 공개적으로다가 땅이 없다고 해 대불믄 내 체면이 뭐가 댄당가… 내 한 주사 땜 시 내 체면이고 동네 체면이고 똥이 돼 부랬네.
갑생(경은이 아버지)이 그 사람이 그래도 우리 동네 사람인디 집지을 땅이 없어가지고 남의 동네로 간다믄 얼매나 챙피 스런 일이여…”
“그러셨어요? 저는 그저 급한 마음이 급해서 그만.......”
이미 예상 했던 일다. 사업 하나를 따오기 위해 효자를 불효막심한 놈으로 만들고, 후덕한 동네사람들을 인심 야박한 사람으로 만들고, 멀쩡히 일하는 사람을 무능력한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기도 했다. 있는 사실대로 후원 요청서를 쓴다면 어떤 사업도 지원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기리에서 제공한 집터는 동네 안쪽 뒷산 언덕배기였다. 옛날에 집터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밭으로 쓰이는 그곳은 집을 짓고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한 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북서풍이 바로 불고 음지를 끼고 있어 햇볕이 늦게 드는 단점도 있어보였다. 그늘져 작물도 크지 않아 쓸모없이 버려진 땅을 준단다.
집터를 보고 내려오다 뒷산 귀퉁이 한쪽에 양지바른 공터가 눈에 띄었다. 뒤로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있고 옆으로는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데 이십여 평 남짓 되는 땅이 버려진 듯 묵어있었다.
“이장님 저곳은 어때요?”
“어디? 저기 저 묵정 밭?”
“저기 대나무 앞으로 소나무 몇 구루 서있는 곳이요.”
“저기가............ 아마 칠수네 땅이지?”
“저곳이면 딱 좋겠는데…….”
“글씨......... 칠수가 동네 뜬지가 하도 오래 돼서....... 참말로 아까 그곳은 안 되겠는가?.....”
이장의 낯이 굳어있었다. 없는 집터 만들어 줬으면 됐지 무슨 요구조건이 이리 많으냐는 것이다. 씁쓸하고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사실 경은이네 집터도 자원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여론에 떠밀리고 눈치 보며 내놓는 것이고 이장이 지목한 땅도 파고들면 이장님에게 어떤 이익을 있을 역학관계가 성립되어 있을 터였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리고 짐작해 버리는 빠꼼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 내가 싫었지만 또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기도 했다. 결국 이장은 내가 원하는 땅을 동네 자금으로 구입해 주기로 했다. 완벽한 나의 승리였다.
경은이 엄마에게 새로 집지을 터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경은이 엄마의 동의를 구했다. 물론 경은이 엄마는 찬성 하였다. 반대할 리가 없었다. 그저 새 집이 생긴다는 부푼 꿈에 들떠있었다.
땅을 매입하고 터파기 공사를 시작했다. 00재단에서 지원된 4천 만 원 외에 다른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활용하다 보니 공사 기간이 길어졌다. 9월 초에 터파기 공사를 시작 하였는데 11월 말일이 되어도 집짓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겨울
애 낳은 지 일주일 만에 영하로 떨어진 날씨를 아랑곳 하지 않고 차를 몰고나온 것 치고는 내가 가진 전리품은 화려하지 않았다. 차바퀴가 수막현상을 받았는지 미끄럽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땅은 차가웠다. 브레이크를 밝으며 한기가 드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감기를 피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힘들게 버텨온 지난 일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고열에 몸살감기에 걸린 나는 아기와 격리된 채 일 주일을 앓아누워 있어야 했다. 내가 앓아누워 있는 운봉에서 사고 한건이 발생 했다. 오용선이라는 할아버지가 전동휄체어를 타고 장터에 나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고랑에 빠져 동사한 것이다.
차도 옆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 갔었겠지만 검은색 휄체어에 검은 잠바를 입은 할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몇 달 전 내가 염려하던 일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김 순경에게 부탁했던 야광 어깨 띠 같은 것이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중얼 거렸다. 태열기도 가시지 않은 아이가 입을 삐쭉이며 젖을 찾아 문다. 본능,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파출소 김 순경이 전화를 했다. 예산이 없어 휄체어에다 야광 페인트로 ‘안전’이라는 글자를 새겨 주기로 했는데 항의가 빗발친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와서 중재 좀 해 달라는 것이다. 또다시 핸들을 잡고 운봉으로 넘어갔다. 친정 엄마가 천성이라며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의 일이었다.
운봉의 날씨는 다시 포근해 있었다. 하나님이 경은이네를 생각해서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파출소로 들어가자 김 순경이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았다. 나 때문에 이런 민원에 휘말리게 됐다고 넋두리를 하였다. 나는 안전이라는 글씨를 어떻게 새기기로 했느냐고 물었다.
김 순경이 준비 했다는 야광 페인트 글자판 이라는 것이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고 사이즈가 어정쩡해 붓으로 아무렇게나 쓴 글씨처럼 보였다. 휄체어나 스쿠터 뒷부분에 이런 글씨를 써 놓는다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안전’ 이라는 글자는 주홍글씨였다. 간음한 여인의 이마에 새겨졌던 수치심처럼 천형에 천형을 더하는 것 같았다.
“김 순경님 암만 장애인들이 타고 다니는 거라고 하지만 이렇게 조잡한 글씨를 새겨 넣으려고 하면 좋아 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좀 모양새도 갖추고 그래야지, 사람들이 장애 갖은것도 억울한데 창피해 하면 되면 되겠어요?”
“아니, 지금 내가 잘못 했다는 겁니까?”
“김 순경님이 잘못 했다는 게 아니라요. 좀 성의 있게 모양새 있게 하셨어야죠.”
“아니……. 휄체어 그거 원래 도로주행이 안되는 겁니다. 교통 법규상 도로는 원동기를 장착한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거라구요. 방안에서만 써야 할 기계를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게 잘못이지 않습니다. 요즘 운전자들이 그 뭐야 휄체어 때문에 얼마나 불안해하는 줄 알기나 하십니까. 이건 시커먼 것이 시도 때도 없이 도로를 주행하니 안 그러겠습니까?”
“김 순경님. 지금 그 말씀 위험 수위라는 거 아시죠? 일단 이 일은 보류해 주세요. 제가 알아 볼 테니까.”
김 순경이 토를 달려고 했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파출소를 나왔다. 계속 앉아 있으면 그와 좋지 않은 말들이 오고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파출소 문을 나서며 사랑의 봉사대나 교통안전 관리공단 같은 곳을 찾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친 새끼, 그럼 경운기는 트렉타는 도로주행이 가능해? 사람을 무시해도 그렇지 그렇게 조잡하게 페인트칠 해놓을 생각을 어떻게 하냔 말이야.’
파출소에서 나와 경은이네 집짓는 곳으로 가는 길에 박용춘의 아들이 서울의대에 합격 했다는 프랭카드를 보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들려보아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생겼다. 가슴을 쥐었다. 아직 모유수유에 익숙하지 않은 가슴이 불고 있었다. 유두에 거즈를 끼웠다. 우유병을 빨고 있을 아기가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귀한 손자라며 이름을 고르고 고르는 중이라 아직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이름도 없는 아기가 젖 먹을 시간이 되었는지 젖꼭지가 아려왔다.
집짓는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내일이 이삿날인데 너무 늦지 않나 싶지만 들여놓을 가재도구도 별로 없어 시간은 충분 하다고 했다.
도배 하는 사람, 장판 까는 사람, 싱크대 설치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시장 통 같았지만 점심나절이면 다 끝날 일들이었다. 경은이네 외가 집에서 장롱을 해준다고 했는데 장롱이 들어갈 안방을 들여다보니 내 가슴이 다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경은이 엄마는 전동 휄체어가 지급되면서 훨씬 자유로워져서 매일 집짓는 현장에 나와 자신이 쓰기 편하도록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때문에 다른 집들과는 달리 이집은 바닥을 파고 욕조를 묻었고 싱크대 수납장을 줄여 휄체어를 바짝 댈 수 있게 하였으며 천정에 다는 수납장 대신 바닥을 파고 들어올리는 찬장을 만들었다. 현관문을 나서자 한쪽으로 얕게 물이 고여 있고 스폰지 같은 것이 깔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지난 번 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인데 무엇에 쓰는 용도일까? 휄체어가 밖에 나갔다 집안으로 들어올 때 물로 바퀴를 씻고 물 묻은 바퀴를 스펀지로 닦으라는 얘기다.
양 사장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통화 할 때 만 해도 경은이네 집에 있다고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양 사장을 찾아 뒤뜰로 가 보았다. 작은 텃밭이 만들어져 있고 그 한 귀퉁이로 학독이 놓여 있었다. 학독으로는 산에서 받아 내린 물이 떨어져 옹달샘을 만들고 학독을 채운 샘물은 다시 작은 웅덩이를 채웠다. 웅덩이에 열대어 몇 마리를 넣어 두면 그림에서나 볼법한 집이 될 것 같았다. 뒤뜰을 돌아 다시 마당으로 나오자 철망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는 양 사장이 보였다.
“아니……. 어디 계셨어요.”
“왔어........”
“뒤뜰 옹달샘 멋있던데요.”
“대나무 숲에 샘이 하나 있더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10년 가뭄에도 끄떡없는 샘이라 길래 하나 만들었지. 어뗘? 보기 좋지?
“내……. 너무 운치 있어요.”
“저기 저 큰 소나무 있는데 까지가 경은이네 땅이래. 그래서 이리 삥 둘러 망을 치면 달구새끼(닭) 몇 마리는 키울 수 있지 않겠나 싶어서 한번 만들어 보려고.”
“집짓는 공사비도 모자라다면서 이런 건 어디서 구하셨대요?”
“어디 공사 현장에 갔더니 있길래 생각이 나더라고…….”
경은이 엄마가 새참으로 빵과 막걸리를 가져왔다.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고 나는 내가 사회복지사가 된 것에 가장 보람을 느꼈다. 경은이 아빠는 목발을 짚으면서도 동네를 돌며 쓰레기를 줍고 개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은이 아빠. 경은이 아빠!”
언덕아래 어느 밭에서 개를 쫓던 경은이 아빠가 쳐다봤다. 그의 웃음은 언제나 천진했으며 행동은 느리고 신중했다. 역시나 경은이 엄마의 애탄 불음에도 두 박자 늦게 대답이 왔다.
“어,.................”
“어머니한테 가봤어?”
“아…, 아니.”
“얼른 갔다 와. 또 밖에 나오실라.”
“어…어. 알았어.”
경은이네 할머니는 치매가 심해져 문밖으로 나가려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감시를 해야 하며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또 할머니를 노인 병원에 입원 시키자고 했다.
“싫어요. 내 부모를 어떻게 남의 손에 맡겨요. 그 사람들 우리가 안보는 사이에 때리고 구박할지도 몰라요. 부자들이 사는 노인병원도 그러는데 영세민이 들어가는 병원은 오죽하겠어요. 우리가 죽으면 모를까 어머니를 그런 곳에 모실 수는 없어요.”
내 생각에 경은이 엄마는 시설에 대한 불신감이 깊었다. 아마도 어렸을 때 장애인시설에서 받은 상처 때문인 것 같았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다. 어쩌면 경은이 엄마가 옳을지도 모른다고.
“양계하는 집에서 닭 좀 얻어다 키워야겠어요.
경은이 어머니, 제가 닭 얻어다 드릴 테니까 복날 백숙해서 나눠 먹어야 되요?“
“이런, 여태까지 친환경 닭장을 만들어 놨드만 새치기를 하네 그랴…….”
“양 사장님도 부러우시면 어디서 똥개 하나 주워 다 놓으세요. 그러면 혹시 알아요. 경은이 엄마가 보신탕 끓여 줄지.”
햇볕 잘 드는 마당에서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저 멀리 경은이 아빠가 집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조금도 서두르거나 애타는 기색이 없었다. 경은이 아빠는 삶의 여유를 터득한 사람처럼 보였다.
박용춘의 집을 찾았다.
서울 대라면 등록금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빤히 아는 살림살이 등록금이 벅찰 것은 자명한 일,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또 새로운 일은 새로운 일이었다.
박용춘은 아래 채 헛간을 개조해 목기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목기 들이 옹성이고 박용춘은 작은 성주 같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
“새로운 일을 시작 하셨나요?”
“새로운 일은 무슨, 봉민 이네 공장에서 조금씩 거들던 건데 내가 못가니까 가져와서 하는 거지.”
“다행이에요. 뭔가를 할 수 있어서. 그리고 아드님이 좋은 대학에 합격한거 축하드려요. 읍내에 프랭카드가 걸렸어요.”
“애비가 시원치 않은 깨 달랑 한 장만 걸렸다면서요. 죽일 놈들.”
작년 운봉 사회단체 회장의 딸이 서울의 사립대학에 합격했을 때 프랭카드가 다섯 장이나 걸린 적이 있었다. 사람들 마다 플래카드가 너무 과하게 걸렸다고 입방아에 올랐었다. 그 사회단채 회장은 시의원에 출마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시의원 후보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생활보호 대상자와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달랐다. 모두가 부인하고 만인평등을 외쳐도 본인들이 다르다고 느끼면 다른 것이다. 카론의 강 만큼이나 신분의 차를 느끼는 세상. 이 빌어먹을 세상은 아직도 양반과 천민이 따로 살았다. 사회학자는 서민이 중산층이 되기까지 삼대가 희생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발표했다.
“등록금은 어떻게 준비가 되셨나요? 학자금 대출이라도 알아봐 드릴까 해서.........”
“지금은 사고 보상비가 있으니 학자금 대출이라면 후에나 부탁합시다.”
박용춘이 칠통을 열어 목기에 칠을 시작했다.
신나 냄새가 확 풍겨왔다. 카슈 라는 칠이 목기에 발라지고 목기는 새 옷을 입어 선명한 나무 결 무늬를 드러냈지만 신나 냄새로 나는 머리가 아팠다. 냄새를 견디지 못한 나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내가 삼산리를 나와 다시 남원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박용춘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고 보상금이 있으니…’
‘사고 보상금이 있으니…’
‘사고 보상금이 있으니…’
순간 머릿속을 덮고 있던 안개가 걷히며 박용춘에 대한 의혹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애초 박용춘은 새 집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성격상 자신이 살 곳이나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사람이고 뼈라도 깎을 사람이다. 그가 집을 탐냈다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야 했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돈이 되는 것이어야 했다. 집은 자산가치가 있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고 큰 목돈이 필요할 때 집을 팔거나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을 위해 자신가치가 있는 집을 지으려 했는데 나와 맞붙게 되었고 집짓는 계획이 실패한 박용춘은 자식을 위해 새로운 활로를 찾았고 그 활로라는 것이 고의적 교통사고였다. 박용춘은 자식을 위해 자살을 시도했고 그 훈장으로 하반신 마비를 얻었다.
내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순간 복받치는 눈물에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뒤 따라오던 차가 경적을 심하게 울리며 추월해 지나갔다. 핸들에 머리를 박고 헉헉거렸다. 그리고 집에 있는 생후 3주된 딸이 아른거렸다.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박용춘의 시린 가슴이 이토록 저며 와 닫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을 낳고 자식을 기르는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시리고 아린 가슴이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선에 다시 서고 말았다.
내 입장에서 박용춘은 구제할 수 없는 악한이었다. 겉 모양새가 사람이어서 사람취급을 하였고 공무상 돌보아야 할 대상자이기 때문에 찾아보는 것이지 그는 이미 내 안에서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가족 특히나 제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는 끈끈한 부정을 가진 아버지였다.
다음날 드디어 경은이네집이 이사를 들어가는 날이다. 그저 잠시 이사 짐이나 날라주고 올 요량으로 나선 길이었는데 읍사무소에 가 보니 서울에 있는 모 방송국에서 20분짜리 전국 방송을 위해 취재를 나와 있었다. 00재단에서 주선한 것인데 이 사실을 안 읍장님이 시장에게 보고를 했고 시장은 세탁기 한대를 들고 온단다.
그러자 이번에는 국회의원 측에서 대형 냉장고를 보낸다고 했고 도의원과 시의원이 앞 다투어 필요한 목록을 적어 보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텔레비전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야광 띠나 야광 봉을 후원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은이네 집, 정확히 말하자면 텔레비전 전국방송에 관심을 보일 뿐 다른 일에는 시큰둥했다. 세상은 역시 냉정한 곳이었다.
나는 출산 휴가 중인 나는 입주 잔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은 외부 손님이 올 것이라는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총무과와 마을 이장이 협의해 준비했다. 솔직히 경은이 네가 새집을 지어 입주 하는 일이 그렇게 큰 일 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떠들썩하게 동네 잔치를 할만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읍사무소와 동네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돼지를 잡고 떡을 하고 적을 부치고 술판을 벌려 잔치 준비를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어느새 마을 입구에는 프랭카드도 걸고 농악 패는 뚱땅거리고 이장은 라면박스로 축의 함을 만들어 돈 봉투 받을 준비를 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은이네 식구를 찾아 옛날에 살던 집을 가 보았다. 할머니 혼자 문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다시 마을 공터로 와 이장을 찾았다.
이장이 모른다고 했다. 아니, 잔치 준비에 정신이 팔려 내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크고 잘난 사람들이 많아 경은이네처럼 작은 사람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마을에 공터는 사람들로 꽉 차 폭발할 것 같은데 국회의원님을 태운 차는 도가 집 막걸리 배달 차와 서로 엉켜 버렸다. 두 차가 동네 입구를 막아 버렸고 동네로 들어오는 길은 설날의 고속도로처럼 돼버린 진풍경이었다.
PD가 주인공을 찾았다. 그제 서야 사람들이 경은이네를 찾았다.
“갑생이(경은이 아빠) 그 사람 새벽부터 동네를 쓸고 댕기 쌌트만 아까부터 안 보이든 디.”
그러자 또 한쪽에서 경은이 아빠를 텔레비전에 출연 시키지 말아야 한다느니 그래도 애 아빤데 얼굴은 보여야 하지 않느냐 느니 그렇다면 어서 찾아서 옷이라도 깨끗한 걸로 갈아입히자 느니 구구한 말들이 많아지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은이 아빠는 또 놀림감이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잘난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놀리고 있었다. 이장이 경은이와 경은이 엄마를 찾았다. 사람들에게 밀리고 밀려 고드름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처마 밑 응달 구석에서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경은이와 경은이 엄마를 동네 마당으로 데리고 왔고 나는 그 광경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나는 정말로 경은이네 식구들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우리 리포터가 아주머니 휄체어를 밀고 새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휄체어는 자동이네요? 수동 휄체어는 없습니까?”
PD는 리포터가 경은이 엄마 휄체어를 밀고 새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며 수동 휄체어로 바꿔 타기를 요구했다. 동네 사람들이 경은이 엄마의 수동 휄체어를 가져와 갈아탔다.
“오 경은양 아빠는 어디 계십니까? 함께 올라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경은이 아빠를 찾을 수 없다고 하자 PD는 그냥 찍고 있을 테니 경은이 아빠를 빨리 찾아오라고 했다. 휄체어를 밀고 오를 언덕배기는 보기보다 경사가 심했고 리포터는 힘들다며 투덜거렸다.
경은이 엄마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자신이 걷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뚱뚱한 아줌마가 되어 있는 것이 미안했고, 언덕배기에 집터를 잡은 것이 미안했고, 무엇보다 남의 도움으로 집을 지었다는 게 미안했다.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경은이 엄마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방송국 카메라가 리포터를 잡으면 리포터는 활짝 웃는데 경은이 엄마는 미안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PD는 경은이 엄마에게 자연스럽게 행동해 달라고 말했고 경은이 엄마는 또 그것이 미안해 죄송하다고 했다. 바보들은 항상 미안한 일만 생겼다.
사람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르자 농악놀이 패들은 마당을 돌며 징과 꽹과리를 쳤다. 동화 속에서 나올 법 한 하얀 울타리가 처진 집에 대문도 있고 마당도 있는 그림 같은 집이 펼쳐졌다. 마당 한쪽에 토종닭이 푸드덕거렸고 아름 들이 육송 가지에 매달은 그네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불이다.!”
큰 소리에 사람들이 웅성 거렸다. 한 사람이 불이 난 곳을 가리켰다. 검은 연기가 나는 곳, 경은이네 초가집에 불이 났다. 이미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었다. 나도 현장으로 달렸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예감에 자꾸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경은이가 엄마 휄체어를 밀고 쫓아오다가 휄체어가 구르는 사고가 났고 경은이 엄마는 휄체어에서 떨어져 버렸다. 에서 떨어져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안돼~ 여보……. 여보.......안돼.”
실성한 사람처럼 경은이 엄마가 울부짖었다. 휄체어를 수습해 태웠다. 그리고 양 사장님에게 휄체어를 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힘이 센 남자가 휄체어를 좀더 빨리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경은이 엄마를 양 사장에게 부탁하고 불이 난 현장으로 달려갔다. 다 쓸어 진 초가집이 달집처럼 불에 타고 있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
동네 사람 누군가 소리쳤다.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사람들이 릴레이를 벌이던 양동이질에 속도가 붙었다. 집 바로 앞으로 큰 냇물이 있어서 양동이 릴레이는 제법 힘을 내는 듯 했다. 불길이 잡히면서 사람이 조금씩 보였다. 경은이 아빠 갑생씨가 엄마를 붙들어 앉고 흐느적흐느적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불이 무섭다고 소리소리 지르는 할머니를 놓아주지 않은 채 느릿느릿한 방안을 돌고 있었다.
“……. 빨리요. 빨리요……. 애 아빠가 저 불속에 있어요.”
경은이 엄마가 울부짖으며 화제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자 카메라가 다시 경은이 엄마를 잡았다. 양 사장이 카메라 좀 끄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카메라는 양 사장을 비웃으며 계속 돌아갔고 리포터는 시계를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짜증을 부리는 리포터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이 샘물처럼 맑아지면서 주위의 움직임들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였다. 리포터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방송국 마다 쫓아다니며 일을 따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어서 이곳의 촬영 분량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자꾸 시간이 지체 되면 다음 스케줄이 꼬이기 때문에 리포터로서도 짜증이 날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저 불길 속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 좀 꺼내 주세여. 저사람 정말 죽어요.”
나는 생각했다. 경은이 할머니라면 모를까 경은이 아빠가 왜 저곳에 있을까? 그것도 경은이 할머니를 꼭 껴안고 있었다. 방문이 쇠창살도 아니고 다 썩어가는 나무문인데 그 문마저 다 불타고 없는데 왜 못나올까?
“우리가 들어가 끄집어내자.”
마을에서 그래도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 용기 내 말했다. 다 썩은 초가집이라 불길도 그렇게 세지를 않으니 여러 사람이 달려들면 충분히 끌고 나올 수 있을 상황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경은이 아빠를 끄집어내려고 할 때 경은이 아빠가 기름통을 들었다. 할머니는 웬일인지 가만히 서 있으면 사탕 사주겠다는 엄마의 말을 믿는 아이처럼 선하고 착한 얼굴로 서 있었다.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경은이 아빠가 기름통을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그 천진한 얼굴로 씩 웃어보이고는 기름통에 불을 붙였다.
확- 불길이 솟았다. 전쟁 영화에서 수류탄이 터지듯 불길이 터졌다. 불을 끌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와 사람을 구할지도 모른다는 사명감에 불타던 양동이 릴레이는 그만 힘을 잃고 주저 않았다.
경은이 아빠는 이미 방과 온 몸에 기름을 뿌려 놓았었다. 그렇지 않고야 방안이 폭발하듯 불붙을 수 없을 것이다.
화로에 풍로질 하는 것처럼 방안에서 불길이 거셌다. 멀리서 일일구 소방차의 사이렌이 웽웽거렸지만 마을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행사장을 찾은 외부 자동차가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의를 상실한 양동이는 불을 키웠고 불은 힘없는 초가집을 무너뜨렸다. 삐거덕 삐거덕거리더니 푹석 하고 집이 무너졌고 방문으로 뿜어져 나오던 불길은 무너진 집 더미를 삼켰다.
“자자 힘냅시다.”
방송국 사람이 다시 사람들을 부추겼다. 동네 사람들과 행사장을 찾은 외부 사람들은 방송국 사람의 부추김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못했다. 불이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절로 꺼지는데 뭣 하러 힘들여 물질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무너진 집 더미 속에 사람이 들어 있으니 그만 하자는 말도 못하게 되었고 물통은 자꾸만 무거워졌다.
불길이 잡히고 쇠스랑을 든 젊은 남자들이 무너진 집 더미를 치우자 경은이 아빠와 할머니의 주검이 나왔다. 경은이 엄마 앞으로 두 사람의 주검이 내어져 왔다. 어찌나 꼭 껴안았던지 두 사람을 떼어 놓을 수가 없어서 한꺼번에 떠메고 왔는데 할머니도 아들을 꼭 껴안고 있었고 아들도 엄마를 꼭 껴안고 있었다.
“여보오~”
한 여자가 주검을 붙잡고 오열했다. 동네 사람들이 안타까움에 혀를 찰 때 행사장을 일일구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고 국회의원님 시장님들은 자리를 뜨느라 정신이 없었다. 얽히고설켜 아수라장이 되 경적 소리는 울음소리를 삼켰다.
소방차가 뒤늦게 도착해 잔불을 끄고 시신을 수습하였다. 불을 끄기 위해 뿌린 물 위로 푸른 기름띠가 점점이 처지고 . 동네사람 하나가 플라스틱 빗자루를 가져다 잿더미를 쓸어 모았다. 그 빗자루는 경은이 아빠가 들고 다니던 빗자루였다.
방송국 카메라가 경은이와 경은이 엄마를 투 샷으로 잡았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잃고 오열하는 여자와 무표정한 딸의 얼굴이 참 대조적이다. 경은이는 무슨 심정, 무슨 마음으로 아빠와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을까? 잘 가라고 배웅을 할까? 아니면 왜 그랬느냐고 원망을 할까? 아니면 이제 좋은 집에 살수 있는데 왜 죽었느냐고 애달파할까?
PD가 카메라맨에게 카메라를 끄라고 했다. 큰 횡재를 했다는 듯 흐뭇한 PD의 얼굴이 보였다. 시계를 가리키며 뭐라고 쫑알대는 모습이 보였다. 몇 컷 만 찍고 다른 곳으로 가야할 리포터를 데려온 모양이다. 리포터가 방송국 차에 타고 PD는 경은이 엄마에게 묵례를 하고서 쓱 가버렸다. 양 사장과 나는 실신하여 늘어진 경은이 엄마를 휄체어에 태워 언덕배기를 밀고 올라갔다. 바퀴가 돌부리에 걸려 밀어지질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번거롭더라도 차로 이동할 것을 그랬다. 엄마 휄체어를 밀기 위해 힘을 보태는 경은이 나는 그 경은이 손을 붙잡고 말했다.
“경은아……. 너무 슬퍼하지 마. 알았지.”
“슬퍼하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경은이는 정말 슬퍼하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은 다시 장례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장례식은 정말 잔치가 될 수 있을까?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죽은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을 테니까. 가슴에 유선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아이가 젖 먹을 시간이 되었나 보다.
끝
첫댓글 200자원고지 291장 분량이네요. 놀랍습니다..[나도작가]그룹에 풍성한 수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