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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05년02월02일 음력(12/24) 날씨 : 맑음
산행지 :봉재산에서 문학산까지
산행자 :수요산행팀
산행코스: 동막역~봉재산~청량산~노적산갈림길~노적산~노적산갈림길~연경산~문학산~선학역
산행시간 : 6시간
개요
☞ 인천시 중심부를 동.서.남으로 S형으로 휘감아 도는 한남정맥의 문학지맥 이어가기☜
인천시를 통과하는 한남정맥이 만월산에서 문학산까지 지맥이 연결되어지며 문학산에서 서쪽방향으로 북망산과 수봉산 그리고 지금은 인천대학교가 들어서 있는 곳을 지나 동인천 자유공원를 지나고 월미도 월미산에서 맥을 다한다.
또 한 문학산에서 연경산이 이어지고 연경산은 노적산을 노적산(노적산에서 안암도까지 이어지는 기맥이 있음)은 청량산과 봉재산까지 이어져 송도 앞바다에서 맥을 다한다.
이렇게 하여 보니 인천시는 동과 북서쪽으로는 한남정맥이 남과 동서쪽으로는 문학지맥(개인적으로 이름붙여 봄)이 연결되어 풍수지리적으로 사방의 방위를 만들어 주는 가장 이상적인 도시형태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봉재산
연수구 동춘동 해안가에 자리잡은 봉재산은 (해발 103m) 청량산에서 이어진 야트막한 산이다. 해발 100m 남짓의 봉우리 4개가 남북으로 흐르는데 남쪽, 서쪽으로는 황해바다가 접해있고, 북쪽으로는 청량산이, 동쪽으로는 동춘동일대의 아파트단지가 맞닿아 있다. 봉재산 주변에는 동막마을, 능허리, 척전마을, 시듬물, 신촌 등의 자연부락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곳 주민들은 아직도 동막 어촌계와 척전 어촌계를 중심으로 갯벌을 이용한 어로생활을 하고 있다. 봉재산은 산세가 완만해 정상까지 오르는데 20분정도면 충분하다.
산정상에 오르면 송도앞바다 갯벌과 송도해상신도시 조성공사현장이 눈앞에 들어오고, 시화지구, 영흥도, 덕적도, 무의도, 용유도 등이 보인다. 예전부터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지금도 인천방어를 위한 중요한 군사적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봉재산이라는 산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전하는 것이 없다. 다만 이산에서 기우제를 자주 지냈는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제를 올렸다는 뜻으로 봉제산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동막과 자앞마을(척전마을) 일대에서 번성했던 영일정씨 집안에 중추동지사라고 하는 벼슬아치가 나왔는데 이를 기리고자 사람들이 동지산이라고 했던 것이 와전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산의 모습이 범이 앉아있는 것 같다 해서 범좌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 산꼭대기의 큰 바위를 범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바위는 봉바위라고도 부른다.)
청량산
청량산은 송도유원지를 감싸고 있는 산으로 일명 청룡산,청능산,척량산 등으로 불리워 지기도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산의 경관이 수려하여 이름을 청량산이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청량산이란 이름이 올바른 이름이라 하겠다. 산 이름을 청량산이라 지은 사람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이외에 재미있게 전해지는 유래로는 중국 산서성에 있는 유명한 산으로 그 본명은 오대산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 청량사가 있고 이 사찰에는 화엄종의 육대조사이신 징관조사께서 머물렀으며, 유명한 스님들을 무수히 배출시켰다고 한다.
어느날 정관조사께서 열반에 드시면서 내 법을 동쪽 해뜨는 작은 나라에서 꽃피운다고 갈파했다고 한다. 이때 법통을 잇고자 하는 두 수제자가 백마를 타고 징관조사가 지적한 해뜨는 동쪽 작은 나라로 향하여 달리고 또 달려서 마침내 중국 대륙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산인 지금의 송도 청량산 중턱에 당도하자마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정지해 버리고 말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래서 홍륜사(옛날에는 인명사) 절터에 누군가가 두 마리의 백마를 상징하는 마상을 세웠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일설에는 청량산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산시성에 있던 오대산(청량산)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노적산
노적산 역시 문학산과 한줄기다. 남구 학익동 향토마을에서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의 팔각정을 돌아 청학동으로 내려오는 길이 제일 다닐 만 하다. 초입에 약수터가 있고 높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아침운동 코스로 제격이다. 특히 이 산은 바다와 가까워 인천 앞바다 까지 한눈에 내려 다 보인다.
연경산
연경산은 문학산과 연결되어 있다. 남구 학익동 백학 초등학교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올라가자마자 바로 레포츠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약수터 8곳과 놀이대, 운동기계가 놓여있어 아침 저녁으로 찾는 시민들이 많다. 등산로 전상이 문학산의 팔각정과 만나도록 되어있다. 문학산 보다 낮아 그리 시원스레 펼쳐지지는 않는다.
문학산
문학산은 인천도호부의 남쪽에 있다하여 남산, 학의 모습과 같다하여 학산,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 봉화둑산이라고 불려왔으며 성산, 배꼽산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산이다. 문학산은 길마산, 수리봉, 문학산 정상, 연경산, 서달산 등이 동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져 산맥을 이루고 있어 우리고장 연수구의 지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산이다.
문학산(232m)은 이미 기원전부터 우리 역사속에 등장하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건국설화에 비류가 미추홀에 도읍했다는 사실이 전해져오고 있는데 여지도서(與地圖書) 인천도호부 고적조에는 '문학산 정상은 미추왕(비류)의 고도(古都)라 하였고 안정복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문학산 위에는 비류의 성기(沸流成基)가 있고 성문의 비판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성내에는 비류가 파놓은 우물이 남아있다'고 서술하면서 '동국여지승람에 그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을 개탄 한다'고 아쉬워했다.
<세종대왕실록>에도 '인천에 성이 있어 이곳을 미추홀고성 혹은 남산고성이라고 불렀는데 성내엔 작은 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문학산은 비류백제와 함께해온 인천지역의 성스러운 산이다.
문학산 정상에 처음 비류가 쌓았던 성은 여러차례 보강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1492년 임진왜란 때 인천부사 김민선이 성을 수리하여 사민을 거느리고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당시 왜군들은 문학산성 동문 밖 1백여보 되는곳에 주둔했는데 수리봉 부근에는 왜적들이 쌓았다는 왜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 문학산성은 약220m정도가 남아있어 인천광역시 기념물 1호로 지정돼있다. 문학산 정상에는 김민선장군의 영혼을 기리는 사당인 안관당이 있었다. 인천도호부 주변마을 사람들은 매년 두 번씩 제사를 올렸으며 일제시대 때 안관당이 불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안관당제를 유지시켜왔으나 문학산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또한 문학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어서 남쪽으로 안산 정왕산의 정왕봉수와 북쪽으로 서구 가정동의 축곶봉수와 서로 응하였다. 이 봉화대로 인해 문학산 꼭대기가 배꼽모양 같다고 하여 배꼽산, 봉화둑산이라고도 불리웠던 것이다
안대운님 글에서..
산행 전
잠이 오질 않는다.
송사문제로 지칠대로 지쳐버린 집사람은 모처럼 달콤한 잠에빠져 들지만 지나 온 날들의 상념이 문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인 요즘은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횟수가 늘어만 간다.
막내놈이 컴퓨터 게임에 너무 몰두를 하기에 이 놈을 감시하느라 컴퓨터를 거실에다 설치를 하였엿는데 요즘은 나를 위 해 거실에서 아이방으로 옮겨놓고 아예 방까지 뺏어서(아들놈한테는 미안하지만) 컴을 친구삼아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을 보내곤 한다.
지금 시간이 새벽 2시10분인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에 행여나 집사람과 아이들 깰까 봐 조심조심 자판기를 두드리는 내가 소심적인 성격으로 변해 버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변명하기위 한 위장인지는 몰라도 온 식구가 깊은 잠을 자기 바랄 뿐이다.
며칠 후면 선고를 하게 될 것이지만 원고로서 이기는 재판에서도 이렇게 坐不安席
인데 피고인들 오죽하겠는가? 하고 생각하다가도 2년동안이나 시간을 주며 기다려 줬는데도 불구하고 厚顔無恥 하는 이 사람들의 사람도 아닌 행동에 분노하여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하던 지난간 세월이 走馬燈 처럼 스쳐지나간다.
2 년여 세월을 기다리며 보낸 시간들이 결국은 재판으로 끝 맺음을 하여야 하는 마음이 분노를 넘어 슬픔으로 다가 오지만 더 이상 이것에 매달린다는 것이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기에 선고 후 모든 일을 법률자문을 하는 회사에 위임하여 처리하기로 하였다.
산행 글
그 동안 이어져 오던 수요산행이 다음부터는 화요산행으로 요일을 변경하여 관악산으로 산행를 하기로 하여 이 번이 인천시구간 마지막 산행이 될 것 같습니다.
구간별로 나누어 진행하던 산행을 구간 이어가기를 하다보니 조금은 힘든 산행이 되었지만 대원들 모두가 무사히 산행을 마치는 걸로 봐서는 관악산행을 하여도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장거리 산행을 산초스님이 계획를 합니다.
4일날이 선고일인데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자고 하는 집 사람의 청을 뿌리치고 산으로 향하는 내가 제 정신이 있는 놈인지는 차지하고라도 인천시 마지막 구간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 한 것이라고 나름대로 자아 해석을 하며 부평역으로 향하는 마음이 개운치만은 않습니다.
그러니까 2 년전에 투자예치금으로 빌려주었던 돈을 관리하던 회사에서 임의대로 사용하여 지금껏 돌려 받지 못하고 재판까지 해야 하는 심정이 당사자인 내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데 집사람이 오죽하겠는가?
짧은 시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전철은 부평역에 도착을 하게되고.....
인천지하철로 바꿔타기 위 해 동막역방향으로 내려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고 있으니 푸른솔님이 도착을 하고.........
08시40분 약속시간이 되어도 나머지 분들이 오질 않아 이상한 마음으로 생각을 하다 지난 번일이 생각나서 6번째칸으로 가니 이 곳에 모두들 모여 있습니다.
푸른솔님 오시라고 하고 오늘 산행에 처음으로 참여를 하시는 성금찬(물방게님)님과 인사 나누고 간선오거리역에서 합류하기로 한 세실리아님을 통화를 한 후 동막역으로 출발을 합니다.
09시05분 동막역에 도착을 하여 같은 전철에서 내린 마등령님을 끝으로 3번 출구로 나와 곧장 산행을 시작 하니 09시 10분입니다.
동막역에서 대건고등학교방향으로 2키로정도를 6차선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여 대건고등학교 못 미쳐 사거리에서 2차선 도로를 따라 500여미터 진행을 하여 임도를 따라 봉재산 들머리에 들어 섭니다.
들머리 입구에서 산행에 대한 설명을 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본격적인 산행길에 접어 듭니다.
마이너님이 제공하신 산행구간도입니다.
09:20분 대건고등학교앞 사거리에서 2차선 도로를 따라 봉재산 들머리를 잡습니다.
산행 전 청량지맥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봉재산행은 시작되고.....
봉재산 정상부에 올라 대우자동차 수출기지를 디카에 담아 봅니다.
팔미도와 무의도의 호룡곡산과 국사봉이 송도신도시 개발지의 교각공사지와 어울려 묘한 대조를 만들어 냅니다.
(환경단체의 반대로 터널공사가 중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봉재산에서 바라 본 청량산!
봉재산 군부대를 우회하여 시드몰마을을 지나고 6차선 도로를 건너야 청량산 초입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어서.....
청량산 들머리를 잡으며 흥륜사를 디타에 담으러 간 산초스님을 기다리며 숨 고르기 합니다.
청량산을 대표할 수 있는 靑松 입니다.
주민들 운동시설물을 지나 첫 번째 봉우리에서 청량산정산을 향한 진행로입니다.
연경상과 문학산 사이에 학익동과 청학동을 연경하는 문학터널이 있습니다.
청량산 정상의 송신탑!
淸 松 !
성금찬님과 산초스님!
이 봉을 넘으면 유엔기념탑과 박물관이 나오는 청량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멀리서 먼저 간 수요산행팀을 담아 봅니다.
두꺼비 像 !
송도에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입니다.
송도 유원지가 있는 곳 !
청학동 아파트단지
!
매립지 경계표시인지?
단체로.......
집안 일 때문에 만우님이 청량산 초입에서 늦게 합류합니다.
영원한 단짝이신데.....
청량산 등산안내도!
구 송도역을 가기위 해 횡단대기 중 입니다.
노적산 오르는 등산로!
조금 있으면 맛 있는 점심 시간입니다.
노상카페!
노적산에 오른대원들을 기다리면서........
연경산 오르는 길목!
팔각정!
말끔히 보수공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마지막 문학산을 향합니다
이후로의 사진은 전 산행기에 많이 올렸기에 생략합니다.
09시10분에 시작한 산행이 점심시간을 포함한 6시간만인 15시 10분 선학역을 끝으로 마무리 하지만,
벤뎅이회로 유명한 관교동까지 와서 대원들에게 뒷 풀이를 하여 주신 마이너님의 부군이신 김왕성님 ( 빠른시일내에 완쾌하여 산행에 동참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호의로 19시에 각 자의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산행 후기
산초스님의 제안으로 시작 된 수요산행팀의 인천시 한남정맥구간 산행이 18회를 넘기면서 구정을 지난 후 화요일로 변경하여 서울로 진입하게 됩니다.
지난 18회를 산행하면서 10명선을 유지하여 꾸준히 진행되어 온 수요산행팀에 수도권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라며 . 한남정맥 인천구간을 산행하면서 그 동안 모르고 지냈던 많은 부분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수요산행팀의 무궁한 발전과 끝임 없이 이어 지는 산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번 산행기록을 정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첫댓글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던 송사문제가 내일 잘 해결될것이라 믿고,, 그동안 인천지역 산행을 운해님 덕분에 편하고 쉽게 잘 하여서 감사드리고,,다음주 월요일 부천의 소래산을 산행하고
설 지나면 이제 서울과 경기북부의 기차여행 할수있는 산으로 원정산행을 자주 나가도록 하지요,, 과음해서 밴댕이회 맛을 기억도 못할것 같은데..ㅋㅋㅋ 수고했습니다^^**
샘난다 질투도 나고요.............ㅎㅎㅎ 운해님 언제 저랑 손잡고 산행 한데요? 미인들과 다니는 산행 보니 약오르내요. 그런데 밴뎅이회 맛은 어떤건가요? 죽이는가요? ㅎㅎㅎㅎ 운해야~ 니 그카지마래이......... 날 배신 때리공 ㅎㅎㅎㅎ
헉~~수잔관할인데 에고 ~~~관교동 벤뎅회 유명하지요~~젤루 좋아하는것두 못묵고~~아`~~흥 배아포~ 산초스님 월요날 부천소래산행이라고요~~미오여 또 참석할수읍잖유 명절 준비해야되는뎅 엄청미오요
산초스님의 격려가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바라던대로 승소는 하였지만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이 남아있지만 전문회사에 의뢰하여 처리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음편한 술한 잔 마셔야지요?
가을의 향이 봄에 피어나니 올 한해 농사는 풍년가만 부를 것같네 ㅋㅋㅋ 대구까지 소문나면 안 되는는데 ㅎㅎㅎㅎ 전국에 한 명씩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캬캬캬~~~
수잔동생아! 이 번 월요일 대공원에서 음력 섯달쭁파티 한 번 해야 하는데,,,,,,,,,,
일주일 동안 운동 안했으니 따라갈려는지 나참원 쫑파티해야되는뎅~~주전자막걸도 그립구~ 묵은때도 몽땅버려야되구~~ 설준비도해야되고~~아흥~갈등생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