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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다랑쉬 답사 주제는 「팔경」이다. 경관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뭔가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팔경!! 왜 하필 팔경일까? 왜 8가지 경관을 그렇게 읊었을까? 8이란 숫자가 궁금하고 8가지 경관의 독특하고 복합적인 해석과 감상이 다채롭다. 어느 것 하나 단순한 것은 없다. 시간과 시기 기상상태 또 마음의 상태, 즉 물리적 조건과 심리적 조건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또 그렇다 하더라도 때를 잘 맞추지 못하면 그 '경'을 볼 수 없다.
「경관분석론」이란 책을 보면 -물론 교과서이긴 하나- 서양사람들의 '경'에 대한 접근법과 우리의 것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극단적인 비교 같아 보이지만 서양보다는 우리가 경관을 보는 방식이 더 다채롭다. 물론 서양의 시각이 단순함 그 자체라고 할 순 없지만 우리만큼 복합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모든 측면에서 서양의 시각은 대단히 분석적인 반면 동양의 시각은 대부분 총체적이다. 학문의 다양한 분야도 그렇고 양의학과 한의학을 비교해도 그렇다. 이런 복합적, 총체적 시각이 팔경의 각 '경'에 묻어 난다는 느낌이다.
진주팔경(십이경)의 내용을 봐도 진주성의 물에 비친 모습, 나물케는 아낙네, 밥짓는 연기, 달을 토해내는 월아산 등 다분히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다. 단순한 것이 없다. 서양 조경기법의 vista 만들기나 조각처럼 전정한 베르사이유를 보면 한 방향으로 시선을 집중 시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아주 명확한 대상이 보임으로써 역동적이지 않고 정적이며 방향성이 있으되 다각적이지 않은 점은 우리가 경관을 보는 시각과 큰 차이점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시청각 및 오감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경관을 느끼고 보지만 서양에서는 그런 것들이 부족한 면이 있다. 물론 이태리 정원에서 사람들이 지날 때 갑자기 분수를 쏘아 놀라게 하는 등의 기법이 있으나 우리의 방식에 비하면 복합적이고 다채롭지 않다. 우리의 방식이 월등하단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경관을 얘기할 때 동서양의 방식이 모두 도구로 쓰여야 한다. 서양의 방식이 효과적일 때는 그것을 써야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동양의 방법이 쓰여야 함을 얘기하고 싶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꼭 분석적이어야만 또는 꼭 총체적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진주팔경과 같이 다양한 경관체험법을 보여주는 팔경들은 많이 있다. 그 예로 기성팔경*, 교동팔경**, 금정팔경***, 해운팔경**** 등이 있는데 모두 진주팔경과 비슷한 경관체험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의 팔경이라고 해서 모두 복합적이고 다지각적인 것은 아니다. 화암팔경*****, 석보팔경****** 등을 보면 단순히 장소 8곳을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각 '경'에 얽힌 전설, 이야기 등이 덧붙여진다. 이런 기법은 영국의 Stourhead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정원의 각 부분은 시와 신화를 가지고 있어 그 기초 위에서 정원 속에 펼쳐지는 '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의미 없이 바라보는 경관과 사전 학습이나 지각을 통한 경관체험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큰 틀은 다르지만 역시 사람의 시지각은 동서양을 뛰어 넘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주제인 「팔경」의 '팔'을 생각해 본다. 왜 꼭 8가지를 정했을까? "세상 어느 한곳도 같은 곳은 없는데 지역마다 꼭 8곳의 '경'을 정한 이유는 뭘까?" 라는 생각에 잠긴다. 「팔경」이 처음 도입될 당시는 분명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던 8과 관련된 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여러 고대 동양사상이 우리사회의 주된 사고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때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역설했던 노장사상(老莊思想)도 일조(一助) 했을 것이다. 대자연의 이치를 문자화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나 기호화한 주역팔괘(周易八卦)도 역시 노장사상의 영향하에 있었다고 볼 때 8경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도 계속 '8'을 고집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고(思考)의 상고성(尙古性)』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마 자신의 취향에 맞는 2∼3곳 정도에 의미를 부여하고 2경 또는 3경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8곳을 정한 것은 8경을 만들던 시절의 창의적이지 못하고 옛사람들의 생각을 답습하는 관습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현실에 맞게 새로 정했다는 '통영팔경'이나 '진주팔경'만 봐도 사고의 상고성(尙古性)이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져 가는 느낌이다. - 그것이 나쁘단 얘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라 더 창의적이고 발전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아무튼 앞으로 「팔경」답사는 계속될 것이고 답사 중 옛사람들이 경관을 봤던 다양성과 그 다양함 속에 묻어나는 건강함을 느껴보고 싶다. 「팔경」의 문구들만으로도 그 많은 경관요소 중 특정시간과 장소에서 어우러질 때 최고의 '상승효과'를 내도록 구성된 것을 느낄 수 있는데 하물며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팔경」은 말해 무엇하리!!
취기 올라 몽롱한 초승달을 보고싶다...
※참고자료
*기성팔경(岐城八景) : 黃砂落雁(황사낙안), 竹林捿鳳(죽림서봉), 水晶暮鍾(수정모종), 烏岩落照(오암낙조), 燕津歸帆(연진귀범), 內浦漁火(내포어화), 五松起雲(오송기운), 角山夜雨(각산야우)
**교동팔경 : 남북 분단 이전의 교동도의 자연 환경 중 멋진 풍경을 말하는 것으로, 현존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 화암효종(華菴曉鐘) : 읍내리에서 가까운 화개암에서 새벽에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
● 빈장모범(濱[水章]暮帆) : 빈장산 남쪽의 석양에 돌아오는 범선들.
● 잠두목적(蠶頭牧笛) : 잠두산의 목동들이 봄, 여름 석양에 부는 피리소리.
● 말탄어화(末灘漁火) : 서쪽 해안의 말탄포에 모여든 어선들의 불빛.
● 수정낙조(水晶落照) : 수정산서쪽의 망망 대해로 떨어지는 해.
● 호포제월(虎浦齊月) : 강화도의 인화곶과 마주하는 호두포의 청명한 달 밤에 떼 지어 나는 기러기와 해면을 비치는 달 빛.
● 인산관창(仁山觀漲) : 인사리 뒷산인 인산에서 보는 인사리 일대가 물에 잠기는 만조의 장관
● 진망납량(鎭望納凉) : 읍내리의 남산의 옛 이름은 진망산이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여름날 시원한 바람과 함게 산림욕이 좋았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았다.
***해운팔경(海雲八景) : 해운대 주변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해변은 아름다운 여덟 가지의 자연경관 즉 "해운대팔경"이라 불려왔는데,
● 해운대상(海雲臺上) : 동백섬 남단위에서 바라보는 경치
● 오륙귀범(五六歸帆) : 석양의 오륙도를 뒤로하여 고깃배들이 돌아오는 한적한 풍경
● 장산갈포(山渴布) : 해운대의 주산인 장산에 있는 폭포를 이른다. 폭포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물줄기가 마르지 않고 물 흐르는 소리가 퍽이나 아름다운 곳으로 해운대지역의 상수도원으로 주민 및 각 호텔에 각종 용수를 제공하기도 하는 곳
● 구남온천(龜南溫泉) : 해운대 온천을 말하는데 신라말 진성여왕이 온천에 행차하여 휴양하고 약수를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유명
● 봉대점화(烽臺點火) : 간비오산의 봉수대를 치는데 외적침입을 알리는 봉화가 해풍을 타고 불길이 하늘로 십여장이나 올라가 화산이 솟는 광역을 연상케 하였음
● 우산낙조(牛山落照) : 달맞이 길에서 해지는 모양을 보는 것으로 "해뜨는 것은 영도에서 보고 해지는 것을 해운대"라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줌.
● 장지유천(장池流川) : 현 해운대도서관 자리에 있었던 연못에서 흐르는 물로 못가에 버드나무가 우거져 제방전체가 휴식처가 되었던 것.
● 춘천약어(春川躍漁) : 해운대 춘천천의 물이 하도 맑아서 고기가 뛰어 노는 것이 보였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금정팔경(金井八景: 부산 금정산의 8가지 빼어난 절경)
● 어산노송(魚山老松): 어산교 주변의 울창한 노송의 아름다운 풍치를 가리킨다.
● 계명추월(鷄鳴秋月): 계명암에서 바라보는 가을달의 아름다운 풍경을 뜻한다.
● 청련야우(靑蓮夜雨): 청련암 주위에 울창한 대숲이 있다. 그 대숲에 내리는 빗소리를 나그네가 되어 청련암 객사에서 밤에 듣는 그 운치를 말한다.
● 대성은수(大聖隱水): 대성암 주위에는 바위가 많다. 그 많은 바위 위에 암자가 서 있다. 깊은밤 방밑으로 조용히 흐르는 가느다란 물소리를 듣는 것이 운치있음을 의미한다.
● 내원모종(內院暮鍾): 큰 절에서 들려오는 저녘 종소리를 내원암에서 들으면 한층 운치가 있다.
● 금강만풍(金剛晩楓): 늦은 가을 금강암 주위의 아름다운 단풍이 장관임을 뜻한다.
● 의상망해(義湘望海): 원효암 근처에 있는 의상대에 올라 멀리 바라다보는 동해 바다는 참으로 훌륭한 풍경임을 말한다.
● 고당귀운(姑堂歸雲): 금정산 상봉을 고당봉이라 한다. 그 고당봉에 흰구름이 흘러가다가 걸려있는 모습은 금정산의 운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화암팔경 : 화암 8경은 정선군 동면 화암리(畵岩里)의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속세에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지 8곳을 말한다.
(1) 화암약수 : 1910년경 문명무라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꿈에 구슬봉 높은 바위아래 돌연히 청룡과 황룡 두마리가 서로 뒤틀며 엉키어 몸부림치더니 하늘 높이치솟아 올라가는 것을 본후 잠을 깨어 새벽 일찍 그곳에 이르러 땅을 파헤치니 갑자기 땅속에서 물이 거품을 뿜으며 솟아 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하며, 그 물맛은 마치 계피가루를 탄것처럼 씁쓸하면서도 시원하였다 한다.
(2) 거북바위 : 화암리 그림바위 앞 기암괴석 절벽위에 큰 거북모양과 같은 바위가 남쪽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모양으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거북바위라고 불린다. 봄의 철쭉꽃, 가을의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3) 용마소 : 화암리 그림바위 앞에 광활석 반석이 있고 이 반석아래로 맑은 물이 바위를 감싸고 흐르는 곳으로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는 명소이다. 먼 옛날 그림바위 마을에 사는 김안댁이란 여인이 옥동자를 낳은 지 며칠 후 어머니가 밖에 나갔다 들어와 보니 아기가 자리에 없고 방윗목 선반위에 앉아 있음을 보고 크게 놀라 집안 식구들은 이아이는 장사(壯士)가 분명하니, 이대로 두었다가 장차 잘못되는 날이면 족이 멸망할 터인즉 죽이자고 의논하고 그날 밤 잠자는 아이 위에 안반을 누르고 맷돌을 얹어 눌러 죽였다. 이후 하루가 지나니 뒷산에서 용마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주인을 찾아뛰어 다니다가 이 소에 빠져 죽었다 하여 일명 용사소(龍死沼)라고도 한다.
(4) 화암동굴 : 2,800㎡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석 동공이 있는 화암동굴에는 높이 30m, 폭 20m, 로 동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황종유벽과 마리아상, 부처상, 장군석, 석화등 크고 작은 종유보석이 가득하며 지금도 종유석이 자라고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동굴이다.
(5) 화표주 : 화암리에서 화표동 입구 삼거리 우측으로 약 30m 앞에 바위로 뾰족하게 깎아 세운 듯한 우뚝 솟은 기둥 형상이 있는데 이것을 화표주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산신들이 이 기둥에다 신틀을 걸고 짚신을 삼았다고 한다.
(6) 설암 : 그림바위에서 동쪽으로 난 하천을 따라 좌우의 절경들을 구경하며 올라가다 보면 수십미터의 기묘하고 장엄한 기암괴석의 절벽이 들어서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 놓는다. 이곳에는 봄에는 진달래, 철쭉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숲이 돋보이며, 가을의 단풍과 겨울철 백설이 4계절 철따라 장관을 이루고 있어 옛날부터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리며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7) 몰운대 : 층층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이곳에는 커다란 반석이 펼쳐져 있으며 반석위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소나무가 있고 절벽아래로 맑은 시냇물이 흘러 옛부터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경치가 좋아 천상선인 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다 갔다고 전해진다.
(8) 광대곡 : 화암팔경중 제8경으로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붙은 신비의 계곡으로 옛날 심마니들이 이곳에서 산신께 기도를 드리면 산삼을 캔다고 하여 지금도 많은 심마니들이 찾고 있는 지역이다. 광대곡 입구에서부터 약 4km구간의 험준한 계곡에는 동굴과 12용소, 폭포 등이 있다.
******석보팔경 : 석보면 원리리의 8대 경승지 (1) 광로산 (2)병암산 (3)낙기대 (4)세심대 (5)동대 (6)서대 (7)석천서당 (8)광록정
樂栖齋 溫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