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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홀민속신화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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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신앙 스크랩 우리의 무속과 신앙(2)
nsa자운 추천 0 조회 8 09.08.06 11: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의 무속과 신앙 (2)

 

가망굿

중 ·북부 지방의 굿 중 부정굿 뒤에 행하는 굿

가망은 감응(感應)이라 표기하기도 하는데 사가망, 본향가망 등 다른 신격과 함께 불리며 신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다. 서울굿에서 가망거리의 진행을 보면 먼저 가망청배무가를 부른 다음 가망 노랫가락을 부른다.

무녀는 백지 3장을 양손에 갈라 쥐고 사방을 향해 절하는데, 백지는 부정(不淨)을 가시는 의미가 있고 절은 선대 조상들이 살던 곳을 향해 하는 것이라 한다. 이어 부채와 방울을 들고 춤을 춘 뒤 가족에서 공수를 준다. 가망 공수에 “너이 부리에 성 주고 본 준 가망, 본 주고 씨준 가망 아니시리”라고 한 것으로 보아 혈족의 성씨, 본관(本貫)의 기원이 되는 시조신으로 추측된다.


거리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대개 음력 정월 대보름 직전에, 마을 어귀나 큰 거리 등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에서 부정을 막아 마을에 큰 탈이 없기를 비는 뜻에서 지낸다.

마을에 따라 의식의 절차나 금기(禁忌) 사항이 다른데, 진행 절차에 따라 유교식 제사와 무속적(巫俗的) 방식의 굿으로 구분된다.

유교식 거리제의 한 예인 충남 청양군 사양면(斜陽面) 온암리(溫岩里)의 마을제사는, 제주(祭主) 3사람이 중심이 되어 걸립(乞粒)으로 제비(祭費)를 마련해 술·과일·떡 등의 제물을 준비하고, 마을 어귀에 차일을 쳐서 제장(祭場)을 만든다.

제일(祭日) 낮에는 집집에서 땔나무 한 짐씩을 가져와 동화대(洞火臺)를 만든다. 또한, 4∼5m 되는 장대에 짚과 잣나무가지를 고르게 둘러싸고 새끼로 묶어 동아대를 만든다. 동아대 끝에는 세 갈래의 동아줄을 길게 매어 늘어뜨리고, 이것을 잡아 끌어서 일으켜 세운다.

제물 진설이 끝나면 농악이 연주되고 제사가 시작된다. 독문(讀文)·헌작(獻爵) 등의 순서가 끝나면 한 사람이 동화대 꼭대기에 올라가 불을 붙이고 내려온다. 이것이 타는 동안 제물을 나누어주고 가무(歌舞)가 벌어지며, 온 마을사람이 즐기고 먹으면서 그 해의 안녕을 빈다. 특히 타다 남은 동화대가 넘어지는 쪽으로 온갖 잡귀가 모여든다고 해서, 모두 자기 집 쪽으로 넘어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거석숭배 [巨石崇拜, stone-worship]
세계 각지의 민족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자연숭배의 유형. 
이것을 크게 나누면 ① 돌의 항구성 ·견고성 등에 비추어 돌 자체에 초자연적인 힘이 내재한다는 관념에 입각한 주술적(呪術的)인 신앙과, ② 돌에는 조상의 영혼이나 신령 등의 영적인 존재가 강림(降臨)하여 거기 깃들인다는 애니미즘적(的)인 신앙에서 오는 것 등이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위의 두 가지가 반드시 명확한 의식 속에서 구별된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것은 서로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숭배대상에서는 돌의 크기, 모양, 빛깔, 그리고 놓인 장소 등이 조건이 된다. 이 같은 거석숭배는 아마도 석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되고 있으며, 오늘날 유럽 각지와 아프리카 북부 및 시베리아 등지에 남아 전해지는 멘히르(Menhir) ·돌멘(dolmen) ·스톤 서클(stone circle) 등은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성행한 거석기념물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거석 구축물(構築物)은 천연석에다 어떤 인위적인 가공을 하였으며, 돌 자체에 대한 숭배라기보다는 오히려 특정한 영적 존재의 영원화를 지향한 것으로서, 거석은 그와 같은 관념의 한 표현형식이라고 생각된다.

 

건축의례 [建築儀禮]

집을 짓는 과정에 따라 지내는 의례.

흔히 고사라 부른다. 한 가지 일을 매듭짓고 다음 일로 넘어가는 고비에서 잠깐 숨을 돌리는 휴식의 뜻과, 앞으로 해나갈 일을 다지는 뜻이 들어 있다. 이 때 집주인은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목수나 토역꾼들을 대접한다. 한국의 건축의례에는 날받이, 텃고사[土神祭], 개공(開工)고사, 모탕고사, 성주운보기, 상량고사, 집들이고사, 성주고사 따위가 있으며, 이 가운데 손꼽히는 것은 상량고사와 성주고사이다. 상량고사는 기둥 위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걸 때 올리는 고사로서, 이로써 집의 외형이 갖추어진 셈이므로 목수는 손을 떼고 앞으로는 토역꾼이 맡아서 벽을 치고 마루를 까는 등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이 고사는 집을 짓는 가장 중요한 고비를 넘긴 일을 자축하는 뜻이 포함되며, 건축의례 가운데 가장 성대히 지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성주고사는 앞으로 집을 지켜줄 성주신을 모시는 의례로서 주인의 나이가 7의 수가 되는 해 10월 상달에 날을 받아 지내며 무당이 주관하는 것이 보통이다.


걸립굿

마을의 공공기금이 필요할 때 동제(洞祭)와 같은 절차를 밟아 돈과 쌀을 거두는 굿.

형태는 마을에서 하는 굿, 절에서 하는 굿, 무당이 하는 굿 등이 있다. 마을에서 하는 걸립은 주로 정월 대보름 전후, 추석 전후에 하며 마을사람이 직접 농악대를 꾸며, 농악을 치며 집집을 방문하여 돈과 쌀을 거두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기예가 뛰어난 농악수들이 모여 직업적으로 걸립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 걸립 농악대를 걸립패라고 한다.

걸립굿의 순서는 지방에 따라 다르나 대개는 문굿·들당산굿·샘굿·집돌이·날당산굿 순으로 짜여 있다.

문굿은 걸립패가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기예를 보여 주기 위해 치는 농악이며, 들당산굿은 걸립패가 마을에 들어간 뒤 마을의 당산(堂山)에서 치는 농악이다. 샘굿은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치는 농악이며, 집돌이는 집집을 돌며 집안 고사굿을 치는 농악이다. 집돌이의 순서는 문굿·샘굿·마당굿·조왕굿·터주굿·장독굿·고방굿·성주고사·인사굿의 순인데, 지방에 따라 집안샘굿·마구간굿·고방굿·꿀통굿 등 온 집안에 고사굿을 치기도 한다.

문굿은 걸립패들이 집안에 들어가기 전에 문간에서 치는 농악이고, 샘굿은 집안의 샘가에서 치는 농악이며, 마당굿은 농악대가 마당에서 여러 가지 기예를 벌이는 농악이고, 조왕굿은 부엌에서, 장독굿은 장독에서, 고방굿은 광에서, 터주굿은 뒤꼍에서 치는 농악이다. 성주굿은 마루에 차려 놓은 고사상 앞에서 소리꾼이 고사소리를 불러, 그 집안의 내복(來福)을 비는 의식이며, 인사굿은 농악을 마치고 떠나며 치는 농악이다.

걸립패가 집안에 들어오면 주인은 고사상에 쌀과 돈을 제물로 얹어 놓는데, 이 돈과 쌀은 걸립패의 공금으로 쓰인다. 집집의 고사굿을 치다가 밤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걸립패 특유의 장기를 보여주는 판굿을 벌인다. 마을에서 고사굿을 끝내고 나올 때 날당산굿을 치고 떠난다.

걸립굿은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절을 새로 짓거나 중수할 때는 절걸립패, 나룻배를 새로 건조할 때는 나루걸립패, 서당을 새로 지을 때는 서당걸립패, 다리를 새로 놓을 때는 다리걸립패 등이 굿을 벌이는데, 여기서 거둔 돈과 곡식으로 필요한 비용에 충당한다.

 

견갑골점법 [肩胛骨占法]

동물의 껍데기나 뼈를 불에 구워서 그 갈라지는 금을 가지고 길흉(吉凶)을 점치는 고대점법.

부여(夫餘)의 우제점법(牛蹄占法)이 이에 속한다. 이것은 소를 죽여서 그 굽의 합불합(合不合)으로 치는 점법이다. 이 때 굽이 합쳐지면 길하고 벌어지면 흉하다고 여겼는데, 이 점법은 고구려 때도 있었다 한다.

 

계면굿

동해안 별신굿과 경기도 남부 세습무권(世襲巫圈)의 재수굿에서 행하여지는 제차(祭次)로 무녀가 생겨나는 과정을 밝히는 굿. 
제면굿·제민굿·걸립굿이라고도 한다. 계면할머니의 내력과 욕심, 심술 등과 징, 장구 치는 내력, 부채, 신칼 쓰는 법도와 역사를 노래한다.

강릉 지역과 울진 지역에서는 계면할머니를 무조(巫祖)신으로 신앙한다. 계면의 뜻은 분명하지 않지만 당골네 집으로 걸립(동냥)다니는 것을 '계면돈다'라고 한다. 굿의 진행과정을 보면 무녀가 부채와 방울을 들고 쾌자를 걸친 차림으로 계면떡을 앞에 놓고 청배무가(請陪巫歌)를 부른 다음 계면할머니의 내력을 노래한다. 이어서 팔도 무당의 굿하는 모습과 소리 등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하여 흉내낸다.

그리고는 계면떡을 구경꾼에게 나누어 주면서 공수를 주는데 이때 받는 떡의 개수가 짝수라야 운이 좋다고 믿는다. 계면떡은 농사짓는 마을에서는 씨앗이고 어촌에서는 고기라고 하며, 자식이 없는 집안에서는 자손을 이어 주는 상징으로 생각한다.

 

구생신 [俱生神]

사람이 태어날 때 함께 태어나는 신. 
동생신(同生神)이라고도 한다. 함께 태어난 사람의 선악 행위를 기록하여 염마왕에게 보고한다고 한다.

 

국무당 [國巫堂]

국가적인 기도 행사를 주관하도록 도성에 둔 무당. 
고려시대에는 무풍(巫風)이 성행하여 질병이 나면 일반인뿐만 아니라 왕실에서도 무당을 불렀다. 기우제 ·기설제(祈雪祭) ·기청제(祈晴祭)도 대개 무당을 모아 지냈으며, 고려시대의 무녀는 원(元)나라 등에 초청되기도 하였다.

국무당은 고려 명종(明宗) 때 별례기은도감(別例祈恩都監)의 설치와 더불어 시작되었는데, 그 후 폐단이 많다 하여 끊임없이 존폐 문제가 논의되었으나 조선시대까지 존속되었다. 고려 말 이후 유교의 대두로 무당을 내쫓고 음사(淫祠)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빈번하였고, 특히 1426년(세종 8)에 미신배척을 이유로 사간원에서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전통 존중의 뜻에서 그대로 존속시켰다.

 

군웅굿

뭇장수들을 청해 그들의 위엄을 보이고 그 힘을 빌려 액을 막는 굿.

일명 군웅장수굿, 장수굿, 놋동이굿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도당굿의 군웅굿에서는 남녀 무당 둘이 마주보며 춤을 추는 '방수밟기'를 한 뒤 화랭이(남무)가 군웅노정기를 부른다. 군웅노정기는 군웅이 강남에서 굿하는 마을까지 오는 과정을 서술한 무가이다. 이어 떡을 꿴 화살을 밖으로 쏘아 잡귀를 막는다.

동해안 지역의 별신굿에서 하는 군웅장수굿에서는 김유신(金庾信)을 비롯한 여러 장군을 청한 뒤 무당이 놋동이를 입에 물고 장군의 위엄과 위력을 보인다. 또한 황해도 굿에는 생타살 군웅거리와 익은타살 군웅거리가 있는데 격렬한 칼춤인 장군놀이를 하고 통돼지를 바친다.

굿

무당이 원시종교적 관념에 의하여 주재하는 새신(賽神) 의식의 총칭.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 한국에서는 고대부터 계속되었으며, 유교가 모든 생활규범과 실천윤리를 지배한 조선시대에도 왕실과 지식 지배층의 내방(內房)에서 행해졌다. 굿의 목적은 병의 퇴치·초복(招福)·초혼(招魂)·안택(安宅)·기우(祈雨)·진령(鎭靈)·제재(除災)·천신(薦神)·축귀(逐鬼) 등에 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집안에서 행하며, 계절적인 것은 춘제(春祭)와 추제(秋祭)로 나누며, 그 밖에 임시제(臨時祭)가 있다. 추제 중 대표적인 것은 청수맞이굿[橫數防]이며, 그 밖에 용궁맞이굿[龍宮迎祭]·봄맞이굿[春迎祭]·꽃맞이굿[花迎祭]·잎맞이굿[葉迎祭] 등의 유희적인 굿도 있다.

10월에 하는 추제는 가장 대표적인 무속에 의한 가제(家祭)로서, 명칭은 지방에 따라 달라 안택굿[安宅祭]·가신도(家神禱)·철기도(祈禱)·지신굿[地神祭]·지신도(地神禱)·터고사·대감굿·대감놀이·상산(上山)놀이·성주맞이·천궁맞이굿[天宮迎祭]·상굿[床祭] 등이라 하며, 시기도 지방에 따라 다소 다르다. 임시굿이란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임시로 하는 굿으로서, 크게 나누어 임신·출산·혼인·환갑 등 길사(吉事)에 행하는 것과 질병·사망·관재(官災) 등 흉사(凶事)에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굿은 사전에 길일을 택하여 원무당(元巫堂)이 주재하며, 창부무(唱夫巫)와 후전무(後錢巫)는 가무와 예(藝)만을 하고, 기무(技巫)는 장구를, 악수(樂手)는 조수로서 징을 치며, 전악(典樂)은 퉁소와 해금을 맡아서 의식을 행한다. 제물은 주로 백병(白餠)·과일·당과(糖菓)·유과(油果)·술·포(脯) 등이 쓰인다.

 

남해안별신굿 [南海岸別神-]

남해안 지역에서 벌이는 마을 풍어제의 하나.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로 지정되었으며 남해안 별신굿보존회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기능보유자는 정영만이다. 경상남도 충무와 거제도를 중심으로 하여 한산도·사량도·갈도 등 남해안 지역에서 벌이는 마을굿이다. 어민들의 풍어와 안전, 주민의 평안과 장수를 비는 제의로서 보통 2∼3년에 1번씩 굿을 벌인다. 제의는 주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행하며 보통 2∼8일에 걸쳐 한다.

굿은 세습무가 주관하나 동해안 지역처럼 집단을 이루지 않고 주무(主巫) 1명, 조무(助巫) 1명, 악사 등을 합하여 5∼6명 정도로 이루어진다. 무녀는 무구(巫具)로서 부채·무령(신방울)·신칼·손대 등을 사용한다. 악기는 3사람이 장구·징·꽹과리를 사용하는데, 때로 북을 쓰기도 하며 특히 굿의 시작과 끝 무렵에는 대금만 사용한다.

굿의 순서는 약간 차이가 있으나, 보통 청신길군악·들맞이·당산굿·일월맞이굿·용왕굿·부정굿·가망굿·제석굿·
서낭굿·대굿(대잡이굿)·손굿·손풀이·동살풀이·염불굿·군웅굿·거리굿(시석굿) 순으로 이어진다.

성대한 규모로 진행되고 신앙성이 뛰어나며 예술성 높은 무악(巫樂)을 들려준다. 사설이나 재담을 절제하여 굿이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만, 한거리가 끝날 때마다 고수(鼓手)와 주민들이 어울려 놀이마당을 이루기도 한다.

 

다리굿

무당이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고 혼령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는 뜻에서 하는 굿. 
씻김굿·지노귀굿 등과 같은 성격의 굿이다. 원래는 평양 예수다리[延裕橋]에서 하던 굿을 이른다. 《평양(平壤)》지(誌)에 의하면 예수다리는 평양의 교통상 요지여서 상여가 이곳을 통과하는데, 여자 상제만은 왕래가 금지되었으므로 이 다리가 여자 상제와 영결(永訣)하는 장소가 되어서 진혼제를 겸한 굿을 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다리굿이었으나 다른 곳에도 전파되어 일반적인 제사굿의 성질을 띤다.

굿을 하는 단상에는 몸다리[身橋] ·시왕다리[十王橋] ·사자다리[使者橋] ·불사다리[佛事橋] 등 홍백(紅白) 4가닥의 다리발[橋布]을 매고 무당이 춤을 추고 무가를 부르며 방울을 흔들어, 죽은 사람의 혼령이 이 다리를 타고 극락세계로 가서 왕생하도록 축원하면서 길을 인도한다. 굿을 하는 장소가 냇가나 다리 근처인 점이 특징이다.

 

당굿

마을 사람이 도당에 모여서 복을 비는 굿. 
제천의례(祭天儀禮)의 하나로, 산제(山祭)·동제(洞祭)와 더불어 한국 마을제의 기본형이며, 온 마을의 주민이 참가하고 무당이 주관한다.
 
대택굿

황해도 지역의 무속의례. 
대탁굿 ·만수대택굿 ·만구대탁굿이라고도 한다. 집안의 번창과 가족들의 건강, 수명장수 등 산 사람의 길복(吉福)을 비는 동시에 노인이 죽은 뒤 저승에 편히 들기를 기원하는 목적이 있다. 동해안 지역의 산오구굿이나 전라도의 산씻김과 기능이 비슷하다. 또한 무당이 대택굿을 할 경우에는 제자무당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준다는 의미를 가진다. 제주도의 신굿처럼 무당 한 사람이 평생에 3번 이상 할 수 없는 가장 규모가 큰 굿이다.

대택굿은 먼저 재수굿인 철물이굿의 제차를 행한다. 산 사람을 위한 굿이 끝나면 제단과 악사의 위치를 반대 방향으로 뒤집어 넋굿으로 들어간다. 산 노인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노인을 업고 도령을 돌고 산수왕이라 하여 길베도 가른다. 큰무당이 대택굿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사또놀이굿을 하는데 이때는 가마를 타고 구(舊)만신이 나가고 새만신이 들어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독경신앙 [讀經信仰]

경문을 읽어 악귀를 몰아내고 수복을 기원하는 무속신앙. 
독경자가 앉아서 경문을 낭송하므로 좌경(坐經) 또는 ‘앉은 굿’이라고도 한다. 독경신앙은 사상이나 신격에서 도교와 불교가 습합된 양상을 보이는데 신격에는 천존 ·대제 ·진인 ·원수 ·진군 ·교주 ·신장 ·천군 ·원군 등의 도교적인 신격과 부처 ·보살 ·나한 ·세존 등의 불교적인 신격이 있다.

독경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는 현실적인 인간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신을 청하여 화해함으로써 인간의 길복을 추구하는 무당굿과 달리 악귀를 쫓아내는 주술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독경무들은 악귀를 직접 쫓지 않고 신장대를 내려 신장대로 하여금 잡귀를 퇴치하게 한다. 독경의례는 가정에서 주로 행해지는데, 안택 ·고사 ·성주받이 등의 기복의례와 치병의례 그리고 독경무의 ‘내림굿’에 해당하는 ‘신도맞이’와 자신들의 재수를 발원하는 정기적 의례가 있다.

기복의례는 가정의 주신(主神)인 성주신과 터주신에 대한 제의로서 가정의 안녕과 복운을 비는 것이다. 진설한 제물 앞에 앉아서 북 또는 북과 징을 함께 치며 축원을 하는데, 부정경 ·지신경 ·성조경 ·명당경 ·조왕경 ·삼신경 ·환위경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치병의례는 ‘경읽는다’ 또는 ‘독경한다’고도 한다. 환자가 발생하면 문복(問卜)을 하여 악귀가 들렸다고 판명되었을 때 행한다. 제의 절차는 경당배설 후에 분향하고 북을 울리면서 축원문을 낭송한다. 가신(家神)인 성주 ·조상 ·조왕 ·제석 등에 먼저 고하고 신장편과 청신경으로 신을 청한 다음 옥추경 ·옥갑경 ·천지팔양경 등의 경문을 반복하여 낭송한다. 그리고 독경의 도(度)가 차면 신장대잡이와 사귀대잡이를 정하여 함께 ‘귀신잡이’를 한다. 귀신을 잡으면 빈 병에 가둔 후 해원경을 읽어 귀신의 원을 풀어주고 귀신잡이가 끝난 다음에 신들을 돌려보내는 신장환위경을 읽는다. 그리고 가신축원문을 낭송하여 집안의 신들을 좌정시킨 후 복덕을 빌고 독경을 마친다.

 

동해안별신굿 [東海岸別神-]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강원도 고성군에 이르는 동해안 어민들이 풍어와 안전을 비는 마을굿.

골매기당제라고도 한다. 1985년 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2-1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보유자는 무악 김석출(金石出), 무창 김유선(金有善), 장구 김용택(金用澤)· 제갈태오(諸葛泰伍), 무녀 김영희(金英熙) 등이다. 어민들의 풍어와 안전, 부락민의 평안과 장수를 비는 마을의 무속적 축제이다.

세습무들이 의식을 주관하며 보통 1∼3년에 1번씩 2박 3일 동안 10여 명의 무당이 진행한다. 굿의 신은 마을을 수호하는 골매기 서낭신이다. 제의를 행하는 시기는 마을마다 다르나 대개 음력 3∼5월, 9∼10월 사이이다. 제주는 그해 나쁜 일이나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은 주민을 뽑아 맡도록 한다. 경비부담은 재산의 형편에 따라 하는데, 어촌에서는 선주가 주로 맡는다.

굿은 보통 16가지 과정으로 진행하는데 잡귀를 몰아내는 부정굿, 천연두의 신을 배송(拜送)하는 손님굿, 군웅장수(軍雄將帥)의 힘을 보여주는 군웅굿, 꽃노래와 뱃노래를 하는 등굿, 풍어와 안전을 비는 뱃머리굿, 옥황상제에게 비는 황제굿, 액을 면하도록 비는 재미굿, 바다에서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용왕굿, 주민들과 함께 흥겹게 노는 놀이굿, 거리를 헤매는 잡귀를 위로하는 거리굿 등이 있다.

굿청의 장식이 화려한데, 무구(巫具)로는 신간(神竿)·용왕대·천왕대·손대·용선·지화·부채·신칼 등의 무패와 쾌자·활옷·고깔·달비·염주·큰머리 등을 쓴다. 무악(巫樂)과 무가(巫歌)가 세련되고 내용이 풍부하며, 다양한 춤과 익살스러운 재담이 많아 놀이적 특성이 강하다. 동해안별신굿 보존회에서 전승, 보존하고 있다.

 

마을신앙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지연(地緣)을 바탕으로 마을의 안녕 ·태평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서 공동으로 행하는 신앙. 
지역에 따라 의례의 명칭 ·제당 ·유형 등이 다르다.

마을신앙의 유형은 고사(제사) ·풍물굿 ·무당굿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고사는 밤중에 소수의 제관들만 참여한 가운데 경건하게 이루어지는 신앙형태이다. 제관들은 당에 가서 제물을 진설하여 대접하는데, 절하고 잔을 올린 후 비손을 하거나 축문을 읽는다. 유교식으로 홀기를 읽는 마을도 있다. 마을 전체의 소지(燒紙)와 동민들의 소지를 올린 후 마치는 것은 모든 마을고사에서 동일하다. 풍물굿 유형은 농악대가 주도하는 의례를 말한다. 역시 제관들을 선정하여 의례를 행하지만 농악대가 풍물을 울려 놀이판이 벌어진다. 동제가 끝나면 동네 우물과 집집을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줄다리기나 고싸움으로 풍농과 풍어를 점치고 기원하는 놀이도 이때 행해진다. 무당굿은 무당을 불러와 사제자로 세워 행하는 의례로 가장 규모가 크다. 이 3개의 유형은 독립적으로 집행되기도 하고 둘이나 셋이 함께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강릉단오제의 경우 유교식 제례와 풍물, 무당굿이 모두 행해진다. 대개의 마을에서는 고사나 풍물굿으로 동제를 모시고 무당굿을 하는 경우에는 터울을 두어 몇 해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한다.

마을신앙의 제당은 나무를 신체로 하거나 또는 신의 강림처로 믿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그러나 아무 표지도 없는 산중턱이나 평평한 공간이 동신의 강림처로 신앙되기도 한다. 이때에는 제의에 앞서 금색을 하여 신성한 공간임을 나타낸다. 나무와 함께 제단을 모시거나 쌓아놓은 돌무더기도 제당이 되고 또는 당집을 짓는 경우도 있다. 당집 안에는 신위를 모시거나 탱화(신상도)를 봉안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바위나 굴이 제당으로 신앙되기도 한다.

마을신앙의 주된 신으로는 당신(堂神) ·장승 ·솟대 등이 있다. ① 당신:마을의 수호신이자 생업을 관장하는 당신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산신이다. 산신은 산에 거주하는 신으로서 산 아래 사는 주민들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경기 ·서울 지역에서는 도당신이나 부군을 모시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당신이 보편적이다. 경상도 ·강원도에서는 서낭을 주로 모신다. 명칭은 각기 달라도 주민들은 당신을 인격적인 존재로 믿어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마을에 사는 모든 주민들의 조상으로 신앙한다. ② 장승:흔히 마을 입구에 세우는 장승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잡귀와 흉액을 막는 신으로서 장신 ·수살 ·벅수 ·우석목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흔히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으로 남녀 1쌍을 만들어 세운다. 장승의 기능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흉액을 막아주는 벽사신 외에도 마을경계표시, 그리고 이웃의 대도시와의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 등으로 알려져 있다. 장승은 동제를 모실 때 당신의 하위신으로 제의를 받는다. 이를 장승제 또는 거리제라고 한다. 장승 앞에 제물을 차리고 의례를 행한 후 폐백이라고 하여 백지를 건다. 이어 개를 잡아 마을 밖쪽으로 피를 뿌리거나 풍물을 떠들썩하게 울리는데 이는 잡귀를 물리치는 의식이다. ③ 솟대:장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신간(神竿)을 말하는데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양하다. 짐대 ·짐대서낭 ·오릿대 ·수살대 ·진또배기 ·진대하나씨 등으로 이름은 달라도 모습이나 기능은 일치한다. 솟대는 삼한시대의 소도에서 연유했다고도 하지만 현재는 장승과 함께 마을 입구에 서 있어 마을의 액을 막아주는 기능을 가진다. 강원도 강문의 진또배기는 장간 위에 3마리의 오리가 세워져 있는데 각각 화재 ·수재 ·풍재를 막아준다고 믿는다. 그 외에 오리에서 연유한 수신(水神)의 성격으로 풍농을 보장하는 기능이 있다.

동제의 제일은 정해진 날에 정기적으로 하거나 달만 정해 놓고 전문가에게 날을 받는 2가지 방법이 있다. 달은 정초와 대보름이 가장 많고, 봄 ·가을에 모시는 마을도 있는데 최소한 1년에 1번 이상 정기적으로 의례를 행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제일이 정해지면 마을 입구에 금줄을 쳐 잡인의 출입을 막고 집안에 초상이나 해산이 없는 모범 주민 가운데 제관을 선정하는데 생기복덕을 맞추기도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몸을 정하게 가지고 금색하여 출입을 삼가며 부정한 일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제물은 경건한 마음으로 값을 깎지 않고 구입하여 깨끗하게 장만한다. 가장 중요한 제물은 제주(祭酒)이며, 조라를 빚어 당 앞에 묻어둔다. 동제를 올리는 동안은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집안에서 근신하며 개나 다른 짐승들도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조심하여 온 마을이 경건함을 유지하도록 한다. 동제가 끝나면 다함께 음복(飮福)하고 마을회의를 소집한다. 마을회의에서는 이장선출, 품삯결정, 마을공사 등 1년 동안의 마을의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무신 [巫神]  
무속에서 신앙하는 신의 총칭. 
무속신앙은 다신교로 여러 신이 신앙의 대상이 된다. 또한 무신은 민간신앙에서도 예배의 대상이 되어 둘의 성격이 혼합되어 있다. 무신의 종류를 보면 첫째 가신의 비중이 가장 크다. 성주 ·제석 ·삼신 ·조왕 ·터주 ·업 등으로 굿을 할 때도 이들은 중요한 신으로 대접받는다. 둘째 동신(洞神)을 들 수 있다. 산신 ·서낭 ·당산 ·부군 ·도당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는 지역공동체의 수호신으로 마을굿을 할 때 주신으로 모신다. 셋째로는 자연현상의 질서를 나타내는 신들이다. 일월성신 및 방위, 바람 등인데 칠성은 수명 ·장수의 신으로 모시고 오방신장은 방위수호의 신이다. 넷째 사령신(死靈神)은 조상신 ·동신 ·잡귀 등으로 신앙된다. 특히 최영이나 임경업 장군처럼 억울한 죽음을 당한 위대한 인물들은 넓은 지역에서 신앙된다. 다섯째로는 무속신화의 주인공들이 있다. 저승을 관장하는 바리공주, 생산신인 당금애기 등이 대표적이다. 여섯째 인간의 생명현상과 관련된 신들로 손님(천연두신) ·시왕 ·사자 등이 있고 그 외에 불교나 도교 등 외래종교의 영향을 받은 신들도 있다. 이러한 무속의 신들은 상호 관련없이 각자가 맡은 직능을 수행하는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다.

 

배서낭  
배의 주신(主神). 
배를 관장하여 바다에서 배사고를 막아주고 선원들의 생명을 지켜주며 풍어를 주는 신으로 신앙한다. 충남 ·전라 ·경상 ·제주 등의 지역에서는 배서낭을 모시고 강원도에서는 배를 집과 같은 것으로 상념하여 배성주를 모신다.

배서낭의 신체는 주로 기관실에 모셔놓는데 한지에 북어를 묶은 것, 직사각형으로 접은 한지에 삼색실로 묶어놓은 것, 여자의 화장도구 등이 있다. 서해안에서는 신체를 모시지 않은 경우 기폭에 상(上)자를 쓴 서낭기를 중요하게 위한다.

배서낭은 대부분 여신이다. 이는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이 여신인 것과 상통한다. 신체는 별신굿을 하거나 뱃고사를 모실 때마다 새 것으로 바꾼다.

 

본향당 [本鄕堂]

제주도 마을의 토지와 주민의 제반 사항을 차지하여 수호해 주는 신을 모신 당. 
인가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에 돌담을 두르고 나무를 모시거나 나무와 당집을 함께 모신 형태가 가장 보편적이다. 본향당은 마을마다 반드시 하나씩 있고 해마다 신과세제(神過歲祭)를 모신다.

신과세제는 산 사람에게 세배를 하듯 마을주민들이 정초에 본향신에게 바치는 의례이다. 마을 전체가 준비하는 제물 외에도 주민들이 각자 집에서 떡과 과일 ·해물 ·메 등으로 제물을 차려와 당 안에 차려놓으면 당굿이 시작된다. 먼저 당매인 심방이 초감제로 신들을 청하고 모든 주민들의 성명을 고하는 예명올림이 행해진다.

본향다리는 특별히 본향신을 모시는 굿이다. 신이 좌정하면 마을을 대표하는 삼헌관이 배례하고 소지(燒紙)를 올린다. 신을 따라온 군졸들을 대접하는 삼천군병 사귐과 마을 도액을 막는 굿을 한 뒤 주민들은 심방에게 일년 운수를 묻는다. 도진으로 신들을 돌려보내는 것으로 마친다.

 

생식기숭배 [生殖器崇拜]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의 상징으로서 성기상(性器像)을 숭배하는 일.

일반적으로 남근숭배(男根崇拜)가 많다. 여성기(음부)숭배는 남근숭배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 상례이고, 또한 여성만의 풍요력(豊饒力)은 오히려 허리부분 등을 과장하여 나타낸 나녀상(裸女像)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생식기숭배의 바탕을 이루는 관념, 즉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민족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미개민족에게서는 오히려 생식기숭배를 찾아볼 수 없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진보(특히 농경)와 더불어 다른 여러 가지 성적(性的) 행사(축제 때의 성적 행사나 성적인 해방을 수반하는 축연 등)와 함께 같은 목적으로 나타난다. 이 생식기숭배가 가장 명확한 형태를 취하는 것은 인도나 그리스 등의 고대 문명국인데, 그곳에서는 최고의 신 시바가 남근의 형태로서 숭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예로부터 남근의 형태를 한 갖가지의 크고작은 선돌[立石]을 숭배하는 풍습을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남근석은 장군석(將軍石) 또는 망주석(望柱石)이라고 하는데,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되어 있어 자손이 귀한 사람이나 불임 여성이 여기에 치성을 드리면 어린애를 가진다는 전설이 있고, 또한 풍작을 기원하기도 한다.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七寶面) 백암리(白岩里),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立面) 입석리(立石里) 등지에 이런 입석이 있다.

 

지령 [地靈, Erdgeist]

땅의 정령(精靈). 
애니미즘(animism)의 일종이다. 미개민족 사이에서는 지령(지신)은 토지의 지배자·수호자로 여겨져 주민의 소유지는 지령이 지배·관리하는 범위의 토지라고 믿는 일이 많다. 어떤 토지의 주민 이외의 사람이 그 토지에 어떤 관계를 맺으려면 먼저 지령을 달래고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 신화 등에서 토지가 지닌 풍요성·비옥성과 결합된 지모신(地母神)의 관념은 지령 관념과 관련이 있으며 각지에 널리 보인다.

 

탑신제 [塔神祭]

음력 정월 3일이나 15일에 부락의 탑신에게 드리던 제사. 
옛날에는 흔히 부락 입구에 석탑 또는 자연석을 쌓아 만든 탑을 설치하고 이를 수호신으로 삼아 탑신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농악과 가무를 하면서 제사를 드려 탑신을 위안하고 새해에도 부락을 평안하게 지켜주기를 빌었다.

 

단군신앙 [檀君信仰]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檀君)을 숭배하는 민간신앙. 
일반적으로 단군과 천제인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桓因), 아버지인 환웅(桓雄)을 포함한 삼신(三神)이 신앙 대상이다. 삼신에 대한 해석은 두가지로 나뉘는데 ‘삼신각개설(三神各個說)’과 ‘삼신일체설(三神一體說)’이 있다. 삼신각개설은 환인은 천신(天神), 환웅은 지신(地神), 단군은 인신(人神)으로 각각 존재한다는 설이며, 삼신일체설은 하나의 하느님으로 천지인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설이다. 또 단군을 태양신이나 산신(山神)으로서도 섬겼는데, 태양신을 순 한국말로 하면‘밝은님’이라 할 수 있고 당시 한글이 없었으므로 이두(吏讀)로 표기하여 ‘단군’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또 고대 제정일치시대 제사장이었던 ‘천군(天君)’의 음이 와전되어 단군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설도 현대에 와서 연구된 것이지 단군신앙과 같은 형태의 신앙활동이 증명되는 고대의 자료는 없다. 다만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진한의 소도 등에서 천신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대에도 이와 비슷한 제사형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문헌으로 확인되는 단군신앙의 역사는 고려시대부터이다.《삼국사기》의 선인왕검(仙人王儉) 기사와 1131년(인종 9) 묘청이 임원궁에 지은 팔성당(八聖堂)의 하나인‘구려평양선인 실덕연등불(駒麗平壤仙人 實德燃燈佛)’을 살펴보면 12세기 이전에도 단군을 수호신으로 숭배했음을 알 수 있다. 13세기에는 거란과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자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내부의 갈등 해소를 위해 단군을 국조로 인식하는 저술이 행해졌다. 《삼국유사》《제왕운기》등이 대표적이며 조선 초기에는 《조선경국전》《삼국사략》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평양의 단군사(檀君祠)나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등에서 단군을 모시는 국가적 행사가 치러졌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자주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단군신앙이 강조되어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저술하기도 했다. 단군신앙이 본격적 종교로서 활동한 것은 1909년 나철이 창시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단군교이다. 뒤에 대종교(大倧敎)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단군신앙을 통해 민족을 하나로 묶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7년 신정일이 창시한 한얼교는 단군을 교조로 삼고 대외적으로 민족종교를 표방하였다.

그밖에 단군 단일신앙단체로는 단군마니숭조회, 단군교종무청, 개천교, 단군성조수도원 등이 있고, 단군신앙을 바탕으로 동학의 최제우나 증산교의 강일순을 함께 숭배하는 종교도 생겨났다. 단군신앙은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자주의식을 높이고 단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대종교는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을 하여 민족종교로서 큰 몫을 담당했다.

 

두린굿

제주도에서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벌이는 굿. 
명칭은 ‘미치다’의 제주 사투리인 ‘두리다’에서 나왔다. 이 굿은 정신이상이 어떤 악령(惡靈)에 빙의(憑依)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아 그 악령을 알아내어 내쫓고 다시는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행해진다.

먼저 제장(祭場)에 밥, 떡, 과일류, 채소류, 술 등의 제물이 갖춰지면 온갖 무구(巫具)를 갖춘 심방 4, 5명이 악기의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는 것으로 굿을 시작한다.

제의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된다. ① 초감제:춤과 노래로 시작하여 지리, 역사적 해설을 하고 제의의 날짜, 장소, 연유를 신에게 고한 다음 신들을 강림시켜서 제물을 권하고 치병을 비는 과정을 전개한다.

② 석놀림과 춤취움:석놀림은 신들을 즐겁게 놀리는 제차(祭次)이다. 심방의 서우젯소리에 맞추어 가족과 구경꾼들이 즐겁게 춤을 춘다. 이때 반드시 환자를 젯상 앞에서 춤추게 해야 한다. 그래서 환자가 무아경에 빠져 몇 시간이고 춤을 추다가 완전히 탈진하여 쓰러져 정신을 잃고 나면 그때 악령이 환자의 입을 빌려 “나는 누구다”라고 독백을 한다고 한다.

③ 대김받음:악령의 신분이 밝혀지면 심방은 그 악령이 빙의한 환자의 몸을 때리거나 하여 협박하면서 “또 환자에게 범접하여 괴롭히겠는가? 얼른 나가서 다시는 범접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라고 다짐을 요구한다. 그러면 악령은 환자의 입을 빌려 “절대 다시는 범접하지 않을 터이니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다짐한다.

④ 옥살지움:악령이 다짐하고 환자가 다시 잠이 들면 심방은 그 악령을 위로하고 대접하여 보내는 ‘옥살지움’을 진행한다. “… 인정도 많이 걸고 무엇이든 요구대로 줄 터이니 심방한테도 뒤돌아보아 복수하려 하지 말고 돌아서라.”라고 외치면서 제물을 조금씩 떼어 띠에 싸서 멀리 던지는 것으로 본굿을 끝낸다.

⑤ 도진:초감제에 청해 들인 여러 신들을 정해진 차례에 따라 돌려보내는 것으로 무의는 모두 끝난다.

 

고사굿 [告祠-]

강원도에서 음력 정월 보름부터 4, 5일 동안 행한 의식농악(儀式農樂). 
한햇동안의 복을 빌기 위한 연례적인 행사로, 경상도의 지신(地神)밟기, 전라도의 마당밟기굿과 같은 것이다. 의식은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등을 치는 농악대가 진행하는데, 농악대는 마을 집집마다 들르면서 집안 곳곳에 복을 빌어준다. 즉, 문전에서는 문전굿, 마당에서는 황덕굿, 부엌에서는 성주굿, 집 둘레를 돌면서는 지신굿 등 뜻을 지닌 농악을 연주한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2채가락, 3채가락, 4채가락 등의 다양한 가락을 연주한다.

지신굿을 마치고 농악대원들이 마당으로 나오면 주인은 고사반(告祀盤)을 마루에 내놓는데, 고사반에는 쌀 한 그릇과 실 한 타래, 청수(淸水)를 담은 작은 그릇, 약간의 돈을 놓고 촛불을 밝힌다. 주인이 고사반을 차려 내오면 농악대는 음악을 멈추고 상쇠를 선두로 고사반 앞에 서서 고사소리를 부르며 고사를 지낸다. 

 

 강님도령
무당들이 위하는 신.

일설에 따르면 서울 남대문을 지은 총각 도편수의 이름이라 하며, 대동미(大同米) ·포(布) 등의 출납을 맡아보는 관아인 선혜청(宣惠廳) 부군당(府君堂)에 모셨다고 한다. 도령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 하며, 아이도령을 강님도령이라 한다.

 

객귀 [客鬼]
떠돌이 귀신.

집 밖이나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혼령을 말하며,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나 교통사고 ·자살 ·타살 등 집 밖에서 횡사한 사람이 객귀가 된다고 믿는다. 특히 객지에서의 죽음을 강조하여 객사귀(客死鬼)라고도 하며, 죽은 사람의 넋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원귀(寃鬼)가 되어 떠돌아다니면서, 아무에게나 붙어 여러 가지 재앙을 가져온다 하여 꺼리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운명하게 될 때는 집안으로 옮겨와 숨을 거두게 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악질(惡疾)에 걸리면 객귀들렸다고 하여 무당을 불러다가 객귀물림이나 푸닥거리를 하였다. 바다에서 죽은 어부들의 넋을 위해 넋건지굿을 하고, 광산에서 죽은 광부들을 위해 넋맞이굿을 하였으며, 일반 평민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는 진오기굿을 하였다. 또 가정에서는 객귀의 범접을 피하기 위해 객귀물림을 하는데, 조밥과 나물반찬을 바가지에 담아 내다놓고 그것을 먹고 빨리 먼 곳으로 가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칼로 위협하고 칼을 던져 그 끝이 바깥을 향하면 객귀가 나간 것으로 간주하였다.


귀신 [鬼神]
원시 신앙 ·종교의 대상인 범신론적(汎神論的)인 존재.

죽은 사람의 혼령 또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화복(禍福)을 내려준다고 하는 정령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귀신을 주로 음양설(陰陽說)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을 보면 귀신의 존재에 대하여 귀(鬼)는 음지령(陰之靈)이고, 신(神)은 양지령(陽之靈)이라 하였다. 즉, 생물을 구성하는 본질은 음과 양의 두 기(氣)이며, 이 두 기의 영(靈)이 그 생물에서 떠나는 경우에 혼(魂) ·백(魄) ·정(精) ·신(神) 또는 귀신이 되고, 이들 혼백 및 귀신의 존재 기간은 장단(長短)이 있어 영구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귀신의 성정(性情)에 대하여 사람과 같이 지각이 있고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 등장하며, 귀신은 원래 기(氣)이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목석도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귀신은 본래 사람을 현혹하는 일에 흥미가 있어 괴상한 일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 많다고 하였다. 《금오신화(金鰲新話)》에서도 김시습(金時習)은 “귀자(鬼者) 음지령(陰之靈), 신자(神者) 양지령(陽之靈)”이라 하였다. 즉, 그의 귀신관을 요약하면, 천지 우주만상을 음양(陰陽), 양기(兩氣)의 활동으로 보고 이것을 생사의 두 범주로 나누어, 살아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 인(人) ·물(物)이고, 생물이 죽은 상태인 경우를 귀신이라 하였다. 《해동잡록(海東雜錄)》에서 장계이(張繼弛)는 귀신은 사람의 사령(死靈)이며, 죽은 후 잠시 동안은 존재하지만 결국은 없어진다고 하였다. 즉, 영혼의 상대불멸을 시인하고 절대불멸을 부정하였다. 또 서거정(徐居正)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귀신은 음성인 까닭에 여자에게 잘 붙는다고 하였는데 음양설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민담 ·전설에 의하면 남성에게도 귀신이 붙어 나쁜 일을 자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한국 사람의 귀신에 대한 공통된 관념은 귀신에게는 착한 것도 있으나 나쁜 것이 더 많다고 보았으며, 형체는 없으나 인위적 행위는 물론, 초인간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우주에 가득 차 있어서 능히 사람과 교섭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사람과의 교섭은 착한 것보다 나쁜 것이 더 많으며, 따라서 일반 민간에서는 귀신이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귀신은 음기(陰氣)를 좋아하고 양기(陽氣)를 꺼리며, 썩은 것을 좋아하고 신선한 것을 꺼리며, 어둡고 탁한 것을 좋아하고 맑은 것을 꺼리며, 성한 것을 꺼리고 약한 것을 좋아하며, 건전한 것을 꺼리고 쇠퇴를 좋아하며, 밝은 것을 꺼리고 어둠을 좋아하며, 강한 것을 꺼리고 약한 것을 좋아하는 등 양기 성한 것을 꺼리고 음기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귀신은 사람에게도 붙는데, 그것은 음을 좋아하고 양을 싫어하므로 원기가 왕성하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붙지 않고 원기 없고 허약한 사람에게 붙는다고 생각하였다. 또 음습한 곳을 좋아하여 옛 성이나, 옛 우물, 페허가 된 절, 허물어진 고가(古家)나 문루(門樓), 어두운 동굴, 고목, 음산한 계곡 등에 살고, 썩은 절굿공이와 절구통 등 오래되어 더러운 것에 붙는다고 생각하였다.

귀신의 발생은 본래부터 있다는 생각과 어떤 물건에서 발생한다는 두 가지 생각으로 나뉘는데, 특히 전자의 경우에는 산천 ·호수 ·강가 ·수풀지대 ·바위틈 등 대체로 음기가 차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운 느낌을 일으키는 곳에는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귀신이 형성되는 기반은 천공(天空)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의 거대한 힘에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 중심은 천둥과 번개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찍이 풍뢰신(風雷神)을 귀신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도 그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신(神) 발견의 근원도 여기서 찾는 것이고 귀신이라는 말의 내용도 중요한 뜻을 지닌다. 귀신 중의 신적 요소(神的要素)는 신으로서 제신화(祭神化)되는 반면, 신적(神的) 성격을 상실한 것은 귀신류로 떨어져 악의 근원이 되고, 유행병이나 기타 해독을 끼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원시사회 이래 공통적으로 공포의 대상으로 삼았던 천둥 ·번개 ·비바람 ·질병 등의 범람을 귀신의 작용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이에 대처할 강력한 대립물을 생각해 냈다. 주술적으로 이를 격퇴하고 인간사회에 침투하는 것을 단념시키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회유책을 쓰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귀판(鬼板) ·귀면와(鬼面瓦) 등이 등장하였고, 궁중에서 귀신 쫓는 의식으로 행한 나례의식(儺禮儀式)이 민간행사로까지 확산하였다. 사람들은 귀신을 격퇴하는 힘은 신명(神明)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귀신이 사람에게 위해를 끼치는 음습한 존재라면 신명은 원만하고 맑고 깨끗하며 밝고 환한 것을 좋아하여 잘 모시면 도움을 주는 존재로 믿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신명에 대하여 의뢰심을 가지고 있었다. 신명은 귀신을 부릴 수 있으며 명령할 수도 있고, 그 생사여탈(生死與奪)의 권리까지 지니고 있는 존재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귀신이 몰고 오는 재화(災禍)를 면하려면 그 통솔자인 신명에게 빌어 귀신을 단속하도록 하는 일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최근까지 한국의 각 마을에서 동제(洞祭)를 지낸 까닭은 신명의 위력에 의하여 귀신의 침입을 막자는 데 있었으며, 또 무당이 굿을 할 때 반드시 강신(降神)을 행하는 것도 재앙의 근원이 되는 귀신을 물리치는 데 그 뜻이 있는 것이다.

도깨비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잡된 귀신.
허주(虛主) ·독각귀(獨脚鬼) ·망량() ·이매(魅)라고도한다. 음허기(陰虛氣)로서 원시신앙적인 귀신사상에 의하여 형성된 잡신이지만, 음귀(陰鬼)로서의 귀신과는 다르다. 도깨비는 사람이 죽은 후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용구로 쓰다가 버린 물체에서 생성된다고 한다. 즉, 헌 빗자루 ·짚신 ·부지깽이, 오래된 가구 등이 밤이 되면 도깨비로 변하여 나타나는데, 그 형체는 알 수 없으나 도깨비불이라는 원인불명의 불을 켜고 나타난다고 한다. 또 이 귀신은 다른 귀신과는 달리 사람에게 악한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장난기가 심하여 사람을 현혹하고 희롱도 하며, 잘 사귀면 신통력으로 금은보화를 가져다 주는 등 기적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성질이 음(陰)하기 때문에 동굴 ·고가(古家) ·고목(古木) ·계곡 같은 곳에 모여 살다가 밤에 나와 활동한다고 한다.

도깨비에 대한 관념은 옛날부터 민속적으로 정신적인 바탕을 이루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화를 낳았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를테면, 도깨비는 초인적인 괴력(怪力)을 지니고 있으므로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고, 솥뚜껑을 솥 속에 넣으며 큰 산을 움직이고, 큰 바위를 굴리며 많은 물을 단숨에 마신다는 것이다. 한편 이 괴력으로 심술궂은 일도 많이 하는데, 논에 개똥을 가져다 놓으며, 밤 사이에 가구를 엎어 놓고, 국수를 산에다 버리기도 하며, 물고기나 궤를 훔쳐간다. 이와 같은 설화는 아직도 민간에서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믿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밤에 산길이나 들길을 혼자 걸을 때 은근히 두려운 생각이 들거나 압박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도깨비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도깨비의 형태는 독각귀라는 말처럼 다리가 하나밖에 없으며, 그래서 씨름을 할 때에는 다리를 감아야 넘어지고, 키가 커서 하반부는 보이나 상반부는 보이지 않아 얼굴을 알 수 없다. 진(晉)나라의 갈홍(葛洪)은 저서 《포박자(抱朴子)》에서 도깨비를 잘 설명하고 있는데, “산정(山精) 도깨비는 모양이 어린애와 같고 외발로 뒷걸음질쳐 걸으며 밤을 좋아하고 사람을 해치는데 그 이름을 소()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신 [三神]
아기를 점지하는 일과 산모와 생아(生兒)를 맡아보며 수호한다는 세 신령(神靈).

삼신에 대한 기원은 아기를 점지해 달라는 기자(祈子)의 형태로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기를 낳은 후부터 이루어진다.

아기를 낳으면 곧 흰밥과 미역국을 각각 한 그릇씩 장만, 삼신상(三神床)을 차려 신에게 바치고 영아의 명복과 산모의 건강 회복을 기원한 후 산모가 먹는다.

삼신은 아기의 출생에만 관계된 신이 아니고 육아에도 관련된 신이기 때문에 젖이 부족할 때는 젖이 풍족하게 나오게 해달라고 삼신에게 빌고, 첫이레, 두이레, 세이레 때는 아기의 무병장수를 비는 뜻에서 삼신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올린 다음 산모가 먹는다.

또 백일날 아침과 돌날 아침에도 삼신상을 차려 삼신께 먼저 빌고, 그 음식을 산모가 먹는다. 이때는 흰밥과 미역국 외에 정화수(井華水)와 애기시루(삼신시루:시루떡)가 추가된다.

생식기숭배 [生殖器崇拜]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의 상징으로서 성기상(性器像)을 숭배하는 일.

일반적으로 남근숭배(男根崇拜)가 많다. 여성기(음부)숭배는 남근숭배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 상례이고, 또한 여성만의 풍요력(豊饒力)은 오히려 허리부분 등을 과장하여 나타낸 나녀상(裸女像)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생식기숭배의 바탕을 이루는 관념, 즉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민족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미개민족에게서는 오히려 생식기숭배를 찾아볼 수 없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진보(특히 농경)와 더불어 다른 여러 가지 성적(性的) 행사(축제 때의 성적 행사나 성적인 해방을 수반하는 축연 등)와 함께 같은 목적으로 나타난다. 이 생식기숭배가 가장 명확한 형태를 취하는 것은 인도나 그리스 등의 고대 문명국인데, 그곳에서는 최고의 신 시바가 남근의 형태로서 숭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예로부터 남근의 형태를 한 갖가지의 크고작은 선돌[立石]을 숭배하는 풍습을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남근석은 장군석(將軍石) 또는 망주석(望柱石)이라고 하는데,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되어 있어 자손이 귀한 사람이나 불임 여성이 여기에 치성을 드리면 어린애를 가진다는 전설이 있고, 또한 풍작을 기원하기도 한다.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七寶面) 백암리(白岩里),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立面) 입석리(立石里) 등지에 이런 입석이 있다.

 

서낭단
서낭당 서낭신을 제사하는 단. 
지방에 따라서 할미단[老姑壇:전남]·천왕단(天王壇:경북)·서낭단[城隍壇:경기·황해도]·국사단(國師壇:평안도)·국시당(함남) 등 여러 가지의 명칭이 있다. 서낭신은 토지의 부락(富樂)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최근까지 가장 널리 제사지내던 신이다.

보통 고갯마루, 큰길 가, 부락 입구, 사찰 입구 등에 위치하며 그 표시로는 작은 돌을 무더기로 쌓아 놓고 가까이에 나무(神樹)가 있다. 이 나뭇가지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 놓은 헝겊 조각, 상인이 이재(利財)를 꾀하기 위해 단 짚세기, 신랑·신부가 새집으로 옮길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 놓은 건색 헝겊 조각 등이 걸려 있다.

흔히 통행인은 나그네길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돌을 주워서 단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것은 도로를 배회하는 악령의 해를 피하기 위함이며 또 이때 자기가 원했던 바를 마음속으로 또는 소리내어서 기원하기도 한다. 서낭신은 무당의 신이기도 하므로 이 단에서는 무당들에 의해 여러 가지 새신(賽神) 행사가 행하여졌다.

서낭[城隍]이라는 명칭은 고대 중국의 성읍(城邑)을 수호하는 신인 성지신(城地神)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육조(六朝) 때부터 '성황(城隍)'이라고 불렀으며 당대(唐代)를 거쳐 송대(宋代)에 크게 성하였다.

한국에는 고려 때에 전래되었고 조선시대에 와서 크게 성행하였는데 제일(祭日)은 지방에 따라 다르나 대개 음력 보름에 부락 공동제로 지내며 재액을 당한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지낸다. 현재는 그 자취만이 약간 남아 있을 뿐 별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동신 [洞神]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신앙하는 마을의 수호신. 
산신, 서낭신, 당산신, 도당신, 부군신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마을공동체의 수호신으로 매년 마을굿을 할 때 주신으로 모셔진다. 동신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동신에 대한 신앙은 성주, 제석, 조왕, 터주 등을 섬기는 가신(家神)신앙과 함께 전통사회의 가장 중심적인 민간신앙이었다. 처음에는 마을의 산이나 오래된 나무, 바위 등 자연물을 그대로 신앙 대상으로 삼다가 차츰 이를 의인화하여 인위적으로 신의 거처를 정하고 위패를 모시거나 신상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동제를 올리는 예가 많았다.

동신은 그 계통에 따라 크게 천왕신·천신대감신 같은 천신(天神), 칠성신·노성신 같은 성신(星神), 후토지신·오토지신 같은 지신(地神), 산신·서낭신 같은 산신(山神), 용왕신·용신 같은 수신(水神), 뒤주대왕신·임경업장군신 같은 인신(人神)으로 나뉜다. 주목할 것은 인신의 경우 주로 역사적으로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믿어지는 위인들을 신앙 대상으로 삼은 것인데, 이는 이들의 억울한 죽음과 자신들의 억눌린 삶을 동일시한 민중의식의 반영으로 보인다. 마의태자, 최영장군, 공민왕, 남이장군, 사도세자, 임경업장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동신은 그 자체가 신체(神體)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제의의 기간에 강림하는 별도의 신체를 갖고 있다. 동신의 신체는 당산, 산신각, 서낭당, 당집, 당목, 장승, 솟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당산이나 산신각은 가장 보편적으로 세워졌는데, 이는 산악숭배의 오랜 전통이 마을 단위에서 구현된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따라 경기지방에서는 도당이, 전라지방에서는 당산이, 경상과 강원 지방에서는 서낭이 주로 세워졌다. 당집은 마을에 처음 들어온 시조(始祖)나 각종 인격신을 모셔 놓은 동신의 총당 구실을 하였다. 당목은 신앙 대상인 동시에 휴식과 놀이의 공간,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는 여론형성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처럼 동신을 모시는 공간이나 제의는 의식적으로는 수호신의 기능을, 실질적으로는 마을공동체의 결속을 통해 풍요를 다짐하고 마을 단위의 공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전통사회에서 민중들의 공동체의식의 주축을 이루었다.

 

금성대왕 [錦城大王]
무당이 받드는 무신(巫神). 
무당의 노래인 가망청배, 호귀(胡鬼), 만명(萬明), 창부(倡夫), 군웅청배 등에 따르면, 금성대왕·금성대신(錦城大神)·금성대국(錦城大國)· 금성대신창부(錦城大神倡夫)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무신의 고유명사라기보다 금성산신을 무당이 받들기 시작하면서 존칭이 붙었다.

금성(전남 나주의 옛 이름)에서 산신을 제사하는 오랜 풍속이 있고, 금성산신이 개성의 덕물산신(德物山神)과 같이 처녀 희생으로 산제를 올리는 것이 통례였는데, 두 산신의 무당이 세계와 관련하여 무신으로 등장한 것으로 본다. 나주에는 한말부터 신청(神廳)이 있어서 무당조합을 구성하고 금성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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