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설전 개시 (舌戰 開時)
7월 20일 유시...한 장의 배첩이 나혁진이 기거하고 있는 묘옥에 도착했다. 집사로 일하고 있는
조용진이 은쟁반에 배첩을 담아 왔다. 그는 장안 일대의 유명한 악덕 변호인이였는데, 탐관오리
와 부유층만을 변호해 그 폐해가 자못 심각했다. 보다 못한 나혁진이 그와 내기를 해 이김으로써
그의 혀를 잘라 다시는 세상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만든 후 집사로 썼다. 배첩의 내용
은 이랬다.
<8월 20일 화산 정상에서 강호 무림의 최고 후기 지수를 뽑는 대회가 열립니다. 꼭 참석해
주시기를...이 편지는 삼십 초 후에 폭발하니 주의해 주세요..> 당황한 나혁진은 편지를 조용진
의 입에 쳐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편지는 폭발했고, 나혁진은 유능한 집사를 잃었다. -_-;
8월 20일 화산 정상에 오른 나혁진. 화산에는 이미 당금 무림의 이름난 후기 지수들이 총집결
해 있었고, 앞에는 자단목으로 만든 커다란 비무대가 놓여 있었다. 나혁진은 자신의 경쟁자가
될만한 상대를 몇 몇 확인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비무대에 서서 중인에게 포권을 한다. 머리를
파르라니 깎고 승복을 입은 그의 이름은 인국거사로 속명은 장인국이였는데, 절정의 언변고수
의 신분에서 모든 것에 회의를 느껴 출가를 했다. 그러나 항간에는 몰래 결혼도 하고 아들도 있
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인국거사의 뒤에는 백발이 형형한 노마두가 서 있었는데, 인국 거사와
절친하다는 용주옹이었다. 용주옹은 100년전 강호를 진동시켰던 청산유수(靑山流水) 신공을
연성하다 주화입마에 빠져 혀가 마비되어 반 벙어리 상태였다. 하지만 한 때 무림을 떠르르하게
울렸던 신분이니만큼 심사 위원으로 참가한 것이었다. 인국거사가 말한다...
<오늘 이와 같이, 많은 후배 고수님들이 모였으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
결을 밀어낸다더니 과연 늠름한 후배님들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오늘 당금 무림의 후기
지수중의 최고를 뽑겠으니 후배님들께서는 향후 그를 무림의 영도자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오>
지루한 인사말이 끝났다. 비무대에는 두 명의 사나이가 섰다. 한 명은 나혁진과도 안면이 있는
사내였는데, 사파의 권현문이었다. 권현문은 약관도 되지 못한 19살의 나이에 당시 이미 무림
에서 꽤 세력이 있었던 병해옹을 꺾은 신진고수로 주목받은 사내였다. 당시 권현문은 상대 의복
의 헛점을 노린 안발란수(安發蘭水) 초식으로 상대의 입을 다물게 했었다. 그 자리에 나혁진도
있었는데, 그 사벽함과 독랄함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있다. 비무대 맞은 편의 사나이는 소개말을
들어보니 김진곤이라는 자였다. 나혁진도 그의 이름이 얼핏 생각이 났다. 강호에서 밑천이 들지
않는 사업(강도)을 하는 녹림의 태두로 역시 사파의 거두였다. 두 사람은 오로지 상대를 공격하
고 당황하게 만드는 악랄한 초식 위주의 공격법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못 그 결과가 기대되는
바였다. 김진곤이 말한다.
<너에게서는 열흘간 안 씻은 개 냄새가 나는걸...> 중인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다. 권현문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허허. 오래 살고 보니 말하는 개를 다 보는군..>
<뭐라고? 내가 개란 말이냐?>
<왜? 찔리나? 하하하> 권현문은 앙천대소했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웃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미 상대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두 사람의 개 논쟁은 끝없이 계속됐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이성을 잃고 상대의 머리채를 잡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뒹굴며 머리채를 휘두르는 게 여인네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머리털이 사방에 흩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중인들은 못 볼 것을 본거마냥
눈살을 찌푸렸다. 마침내 뒤에서 지켜보던 인국거사가 입을 열었다.
<야! 재네 치워라...>
두 사람은 여전히 머리칼을 붙잡은 채, 질질 끌려 나갔다. 나혁진은 자못 실망했다. 천하에 명성
을 떨친 두 사람의 실력이 고작 저것이었단 말이냐...그렇담 나의 적수는 없는 것이로다. 나혁진
은 공중으로 날아 두 바퀴 반 돈 다음 세 번 회전해서 비무대에 착지했다. 흰색 장포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위풍당당했다.
<항주의 나혁진이오. 상대를 가리지 않으니 아무나 나와도 피하지 않겠소...>
비무대 뒤편에서 삿갓을 쓴 사나이가 느릿느릿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비무대에 오른 그는
삿갓을 벗었다. 그의 얼굴에는 온통 칼자국이었고, 등에는 한 자루 장검을 짊어매었다.
<윤제객이라 하오... 20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마침내 펼쳐 보려 하오...>
나혁진은 무림의 소식에 능하고 대부분의 고수를 알았으나, 윤제객은 처음 들었다. 사정은
대부분 마찬가지여서 아무도 그의 이름을 들은 바가 없었다. 중인들은 웅성웅성했고 나혁진은
긴장했다.......
<2부 끝... 과연 윤제객은 실력을 보여줄 것인가? 천하의 고수들은 많은데 나혁진이 설전을
제패할 것인가...to be continued...>
첫댓글 ㅋㅋㅋ 재밌다~ ㅋㅋ 머리끄댕이 잡고 끌려 나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