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서 중대 사자암으로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작은 길을 만난다.
이 길을 따라 40여 분쯤 올라가면 조그마한 우물이 있다. 한강의 발원인 우통수(于筒水)다.
우통수는 우리 말로는 '우통물'이다. 그동안 '우통수'라고 불러 왔다. 표석 바로 옆 통안에 괸 물이라고 생각한다.
테두리를 두른 샘 우리샘이다. 이를 우리 함(檻) 샘천(泉) 함천(檻泉)이라고 불렀다. 우통수를 두고 부르는 이름이다.
“서대 밑에서 샘이 솟아나서 빛깔과 맛이 보통 우물물보다 낫고 물의 무게 또한 무거운데 우통수(于筒水)라고 한다.
서쪽으로 수백리를 흘러가다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데, 한강이 비록 여러 군데서 흐르는 물을 받아 모인 것이지만
우통수가 중령(中泠)이 되어 빛깔과 맛이 변하지 아니하여, 마치 중국의 양자강과 같으므로 한강이라 이름 짓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우통수의 근원에 수정암(水精庵)이란 암자가 있는데, 옛날 신라 때 두 왕자가 이곳에 은둔하여
선(禪)을 닦아 도를 깨쳤기에, 지금도 중으로서 증과(證果)를 닦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두 거처하기를 즐겁게 여긴다."
고려말 조선초 문신 양촌 권근(1352~1409)은 우통수기문(于筒水記文)을 남겼다.
<증보문헌비고>에는 한강의 근원의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한강의 근원은 셋인데, 하나는 오대산의 우통수(于筒水)이고 하나는 금강산의 만폭동(萬瀑洞)에서 나오며
다른 하나는 속리산의 문장대에서 나온다."
우통수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나라 안에서 차를 달이는 물로는 으뜸이라고 소문나기도 했다.
'봄날이 끝나갈 무렵 차를 끓여 갈증을 달래고 싶지만 어찌하면 우통수의 물을 얻어 올 수 있을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거기에 덧붙여 "우통은 오대산 상원사 곁에 있는데, 한강의 상류이며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샘이다
(于筒在五臺山上院寺側 是漢江上流 爲東國第一泉)."
조선 중기의 허균(1569~1618)은 그의 '화사영시'(和思潁詩)중 '소회를 쓰면서 소자정에게 답한 운을 쓰다'
(書懷 用答邵資政韻)의 끝 부분에 남긴 말이다. 그는 곧 그 샘물이라야 차를 제대로 끓일 수 있는데 그것을 구하지 못하는
귀양살이의 답답한 현실을 빗대어 읊은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이행(李荇;1352-1432)도 우통수를 우리나라의 3대 약수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 찻물을 평하여 '충주 달천의 물이 제일이고, 오대산 우중수(于重水)의 물이 두번째이며,
속리산 삼타수의 물맛이 세번째라고 말했다.

우통수 곁에 있는 오대산 서대 염불암이다. 드물게 자그마한 너와 지붕을 올렸다.
삼국유사는 오대산 우통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라 정신왕(淨神王)의 태자 보질도(寶叱徒.寶川)는 아우 효명태자와 더불어
각기 1천 명씩 거느리고 대관령을 넘어 성오평(省烏坪)에 이르러 여러 날 함께 즐기며 놀았는데
형제는 태화 원년 8월 5일에 몰래 오대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따르던 일부 무리들은 태자 형제를 찾지 못하고 함께 서울(경주)로 돌아갔다.
형 태자는 오대산 중대(中臺) 남쪽 진여원(眞如院:현 상원사)터 아래쪽 산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암자를 지었다. 아우 또한 북대(北臺)의 남쪽 산 밑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역시 그 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진여원에는 날마다 이른 아침에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두 태자는 함께 예배하고 날마다 새벽에 골짜기의 물(우통수)을 길어다 차를 달여 1만 진신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
염불암은 암자라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지금은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토굴처로 이용되고 있다.
장령산 아래 자리 잡은 이 암자는 옛날에는 수정암(水精菴) 이라 했다.
월정사(月精寺)의 정(精)이 이 암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낡은 처마 밑에 풍경 대용으로 빈 깡통을 매달아 놓았다. 정감이 넘친다.
바람이 불면 저 깡통이 어떤 소리를 낼 것인가 조금은 궁금해 진다.
그 오대산에는 오대(五臺)가 있다.
자장율사는 오대산 가운데 중대를 짓고 동대 서대 남대 북대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네 개의 암자를 지었다.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그리고 중대 사자암이라고 부른다.
각각의 암자는 모시는 불상도 다르고 읽는 경전도 다르다.
동대는 관음(觀音)을, 서대는 미타(彌陀)를, 남대는 지장(地藏)을,
북대는 석가(釋迦)를, 중대는 문수(文殊)를 불상으로 모신다.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이라고 추앙받는 김교각 스님도 중국에 가기 전에 염불암에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우통수 즉 금강연이라고 하고 있다.
금강연은 이 오대천에서 가장 핵심적인 신성한 장소로 꼽힌다.
자연 스님은 그의 책 <월정사의 유래와 한강의 시원>에서 금강연의 신비함을 들어
우통수가 분명 한강의 시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섯의 봉우리가 둥글게 벌려 대소의 크기가 엇비슷하므로 오대산이라고 이름한다.
서대 아래에 샘이 있어 용출하는 데 한수(漢水)의 근원이 된다." -<고려사>-
"장령(長嶺) 아래 신천(神泉)이 솟는데 우통수라고 한다.
그 물은 산중의 물과 합해져 기린봉(驥麟峰)의 동쪽 골짜리로 흘러 반야연(般若淵)과
금강연(金剛淵)이 되니 이것이 한수의 근원이다." -<지행록>-
"강릉의 서쪽 150리에 있다. 오대산 서대의 아래에 테두리 있는 샘이 있어 용출하는데
색과 맛이 일상적인 것보다 수승하니 한강의 첫째가는 시원이 된다."-<대동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