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흘,진선미,최성희,김학준,김태훈, 최현경, 강봉금, 황정미 |
자신에게서 불거져 나오는 분노, 원망. 세상혼자 남겨진 막막함과 설움을 묵묵히 제 안에 눌러 담으며 살아왔던 12살 소년 창이가 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사명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물음을, 악다구니들을 안으로 삼키던 그 아이가 서서히 다른 이들의 분노와 원망에, 찌그러진 욕망과 순수한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제가 아닌 다른 이들의 소리가 제 안에서 더 크게 자리 잡아 갈수록, 아이는 눈과 귀를 열어, 세상을 대하기 시작한다. 안으로 안으로만 제 자신의 불덩이를 녹여가던 12살 창이라는 아이는 문득 인생이란, 묵묵히 받아들임을 아는 것이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그 시기가 가면, 다시 얼굴을 바꾸어 가며 또 다른 생채기로 내 안에 자리매김 될 것이다. 오늘 아주 조금씩 달이 기울고, 매 시간 내몸의 세포들이 성장과 퇴화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내 발걸음들은 원하든 혹은 원치 않던 언젠가는 내가 도달해야만 하는 내 인생의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1947년 어느 겨울. 경북의령 한유산 중턱아래 창이네가 살고 있다. 엄마, 아버지, 동생 홍이와 함께 사는 12살 창이는 남모르게 한 달에 두 번, 한유산 어느 동굴에 숨어사는 앞 못 보는 당대 최고의 신 무당. 월선에게 간다. 일제시대. 위안부공출을 피하기 위해 숨었던 처녀들이 월선의 구심점 때문에 끌려간뒤, 두 눈과 함께 민심을 잃었던 월선이가 창이의 친 할머니이다. 자신에게 한없이 엄하기만 한 아버지와 늘 묵묵히 자신을 이야기를 들어주는 할머니. 월선 사이에서 어린 창이는 점차 외진 동굴에 홀로 사는 세상에서 버려진 듯 한 할머니 월선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월선을 미워하는 모습을 보며, 창이는 월선에 대한 동정심과 이름 모를 아련함을 키워가게 되고.. 1950년 6월 25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것만 같은 혼란의 그날. 창이는 피난길에서 두 눈을 잃고, 혼자 남겨지는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