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 - 글의 종류 : 전기문..
전기문에 들어가야 할 필수 조건 : 주인공의 사고 방식, 업적..
◈ 글의 특징
• 내용 : 이중섭의 삶과 인간 됨됨이, 빛나는 예술 업적 등을 서술하였다.
• 구성
① 인물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생애를 일대기식으로 다루었다.
②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인물이 생애를 서술하였다.
• 표현
① 인물의 상황을 시대 상황과 결부하여 요약적으로 서술한 후, 중요한 부분을 상세히 다루었다.
② 특정 상황을 소설의 한 장면처럼 처리하여 구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준다.
본문
① 이중섭의 출생과 학창 시절 및 그림의 경향
1. -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부농의 가정에서 막내로 출생
1. - 태어나 자란 곳의 땅 냄새가 흠뻑 배어 있어야 한다.
1. -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독창성과 창조성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 이중섭의 민족 의식
- 순수한 조선 냄새가 나는 소 그림을 그리고자 함
- 민족 의식이 강한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음
◈ 이중섭과 미술
- 습작에 성실함: 수많은 황소 그림을 그림
- 독특한 화법을 추구함 : 밀가루와 수채 물감 그림
- 그림으로 민족 정신을 지키려 함: 한글 자모 그림
-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려고 함: 조선 땅의 조선 소를 그리려 함
② '귀국과 결혼, 일본에서 출품한 작품, 첫 아이의 죽음을 겪으며 그린 그림'
2. - 오산학교 졸업 후 일본 유학, 마사코와 결혼,,'망월',,,
2. - + 천도 복숭아, 아들의 아픔을 그림으로라도 위로 하고자...
◈ ‘망월’에 담긴 의미
- 조국의 비운과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함
- 둥근 달 :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광복을 기원하는 청년이 그러한 염원을 기원하는 대상
- 청년의 머리 단상 : 일제 치하의 시대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 이중섭 자신의 모습이기도 함
- 머리가 반쯤 잘린 소 : 일제에게 침탈 당한 조국의 상징
◈ ‘죽은 아이를 위한 그림’
- 죽은 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아이 또래로 보이는 꼬마들을 그려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아이들과 더불어 그린 ‘천도복숭아’는 내세에서 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③ 한국 전쟁으로 인한 피난 생활과 이 시기의 그림
3. - 제주도, 조카 - 이영진의 집으로 피난
3. 주위 환경에 따라 그림의 소재는 변하나 이중섭의 예술관은 변하지 않는다.
◈ 이중섭의 제주도 시기의 그림
- 이중섭은 제주도 서귀포에 자리를 잡고 비교적 안정된 주거 공간에서 가족과 지내며 제주도의 풍물을 주로 그렸다. 제주도의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은 피난 생활에 지쳐 있던 이중섭에게 생동감을 준 그림의 소재들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중섭을 기려, 1966년 ‘이중섭 기념관’을 짓고, ‘이중섭 거리’를 조성하였다.
④ 가족과의 이별과 은박지 그림
4. - 아내_폐결핵에 걸려 각혈까지 하는 중증 환자.., 장인 사망
4. - 아이들과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그리워서 은박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
◈ 은박지 그림
- 담배 종이에 그린 그림으로 언제 어디서나 변변한 미술 도구 없이도 그릴 수 있다. 삶 자체가 그림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이중섭의 화가로서의 면모가 엿보인다.
⑤ 전시회 개최와 건강 악화로 인한 죽음
5. - 가족들과 이별 후 친구들의 집을 전전,,
5. - 1955년 1월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염..
5. - 전시회 끝난 후 마음의 병이 찾아와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다가
5. - 1956년 7월 서울-서대문-적십자 병원에 입원..
5. - 거식증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1956년 9월 6일 사망
◈ 이중섭의 정서적 불안
- 마음의 병 : 가족에 대한 그리움,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예술가로서의 고뇌로 생긴 병
- 불안한 행동 : 거식증에 걸림, 병실을 흰색 페인트로 칠함
◈ 이중섭의 죽음
- 글쓴이의 상상에 의거해 마치 이중섭의 운명 장면을 직접 보는 듯이 표현함
-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을 나타냄
- 죽음에 임하는 이중섭의 담담한 태도가 슬픔과 여운을 남김
- 달빛이 고독한 분위기를 자아냄
※ 이중섭의 생애와 그림
- 1916년 4월 16일 평안남도 평원군 부농의 가정에서 막내로 출생
- 오산 학교 재학 시절 임용련·백남순 부부에게 영향을 받아 그림을 시작.
이 시기부터 ‘황소’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음. 또한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반대해 한글 자모를 이용해 독특하게 구성한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
- 일본 유학 시기인 1938년 5월, 일본 단체 자유 미술가 협회 공모전 협회장상 수상, 1943년 ‘망월’을 출품해 태양상 수상.
- 귀국 후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여 원산에 정착. 이 때 그린 ‘닭’ 그림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준다.
- 1946년 형의 죽음과 첫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이중섭의 생애에서 가장 슬픈 해로 기록됨. 죽은 아이를 위해 그린 ‘천도복숭아’ 그림에서 아이를 향한 애틋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다.
- 한국 전쟁으로 인한 피난 시절, 부산으로 피난한 이중섭은 추위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조카 이영진이 있는 제주도로 내려가게 되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 속에서 바다와 태양, 해양 동물, 제주도의 풍물과 아이들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림.
- 다시 부산으로 상경한 이중섭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부두 노동이나 운수 회사의 인부 노릇을 하며 지냈지만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건너감. 그러나 그러한 생활고 속에서도 신문 연재 소설 삽화를 거절함. 이 시기의 이중섭은 담뱃갑의 은박지에 매일매일 일기 형식으로 ‘낙서화’를 그림.
- 1955년 1월,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엶.
- 1956년 7월, 서울 서대문의 적십자 병원에 입원. 죽음에 임박해서도 손톱으로 은박지에 그림을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