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너무나 정신적'인 운동입니다. 골프가 다른 스포츠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골프가
철저하게 정신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타고난 소질에다 자신이 흘리는 땀의 양과 쏟는 정성에 따라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만족하는 정도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 그 결과는 흘린 땀과 쏟은 정성을 배반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절망감은 안겨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골프는 다릅니다. 스코어가 연습량에 비례하지도 않고, 아무리 좋은 컨디션이라도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하늘이 내린 골퍼'라는 찬사를 듣는 완벽한 골퍼라도 하루아침에 절망의 벼 량으로 곤두박질치는 경우가 생기는 운동이 바로 골프입니다. 골프는 철두철미하게 정신이 지배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1998년 미국 LPGA 투어에 데뷔한 지 7개월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여자프로골퍼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박세리를 비롯해 박지은, 김미현 등 우리나라 여자골퍼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들이 악조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으로 세계 유명 골프 스타들과 당당히 겨루기 때문입니다.
골프는 송곳과 같습니다. 정상에 도달했다는 느낌은 극히 짧은 순간 전율처럼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송곳의 끝에 머물 수 없듯 골프의 정상에도 머물 수 없습니다.
골프는 신기루입니다. 목표를 갖고 추구하지만 결코 '이제 됐다!'고 말할 만한 성취감을 안겨주지 않습니다. 꼭 달성하겠다고 세워둔 목표는 꿈일 뿐입니다. 다가서면 저만치 멀어져 있고 손에 잡힐 듯한데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신기루입니다.
골프의 구력이 길어질수록 골프를 잘 하기 위한 수련과정은 선(禪)을 하는 과정이나 카톨릭에서의 묵상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어쩌면 골프 역시 선의 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골프는 철저하게 정신수양을 필요로 하는 운동입니다. 특히 달인의 경지에 오른 골퍼가 도달해야 할 이상의 세계는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세계나 노자와 장자가 설파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절대 무(無)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스코어를 내기 위한 온갖 골프관련 교훈들,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많은 지침서들, 다양한 환경의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등 골프와 관련된 교훈과 일화들은 선의 수행과정에서 듣게 되는 짧은 화두(話頭)나 경구들, 선승들의 일화들과 신통하게도 맥이 통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선의 시조인 달마대사가 골프라는 운동을 알았다면 뼈를 깎는 수행을 마다하고 골프채를 잡았을 것으로 믿어봅니다. 그리고 면벽좌선보다는 골프를 통해서 선의 높은 경지에 도달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만큼 골프는 수행자의 그것과 다름없는 정신수양을 필요로 합니다. 정신을 수양하는데 골프만한 운동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달마가 골프채를 잡을 수만 있었다면 수많은 고금의 수행자들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화두 대신 "달마가 골프채를 잡은 까닭은?"이라는 물음을 던졌을 것입니다.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의 도를 깨닫기 위해 이 질문을 되풀이했을 것입니다.
골프가 얼마나 정신적인 운동이며, 골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얼마나 부단한 정신수양을 필요로 하는지를 선의 화두나 경구, 선에 얽힌 일화들, 불교 경전과 성경, 중국 고전 등에 나오는 가르침과 잠언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같은 노력은 골프라는 지극히 미묘한 운동을 즐기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정신수양을 통해 지혜로운 삶은 살아가는 길을 찾을 수도 있는 절묘한 시도가 되리라고 봅니다.
이런 작업은 또한 골프에 담겨 있는 깊은 철학을 캐내는 일도 될 것으로 믿습니다. 1998년 겁 없이 책을 낸 뒤, 드러난 골프에 대한 무지와 속단이 부끄러워 빨리 증보판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3년이 지난 뒤에야 손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곳곳에서 부족함이 엿보이는 것은 골프라는 운동의 불가사의한 속성 때문이 아닐까 자위해봅니다.
다시 한번 골프라는 운동을 알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골프의 세계를 열어 온 개척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울러 골프에 담긴 깊은 철학을 캐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선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되고 동양정신에 대한 우월성을 깨닫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앞으로도 골프의 정신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골프애호가들과 함께 나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