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시(詩)인 시조(時調)를 중심으로
제 1 강(講) 작품 감상 (하여가, 단심가) 1. 시조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짓는가? 먼저 이방원의 '하여가' 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한 번 보자 1) 하여가 ( 何如歌 ) 조선 개국 직전 이방원(李芳遠;뒤에 太宗)이 지은 시조. 고려의 충신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마련한 자리에서 아래 시조를 지어 불렀다.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만수산 드렁칡이 얼거진들 엇더리요 우리도 이같이 얼거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2) 단심가 ( 丹心歌 ) .그 자리에서 정몽주(鄭夢周)는 하여가를 듣고《단심가(丹心歌)》를 지어 이방원에게 자신의 절개를 시조에다 다음과 같이 노래해(君子不事二君) 지조있는 선비는 두 임금 곧 두 왕조 고려 신하지 조선 신하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출전:청구영언(靑丘永言), 포은집(圃隱集)
*공부할 문제
1. 두 시를 음미하며 외워 보자. 2. 재미있는 부분은 어디인가? 3. 단심가를 흉내(패러디)내어보자. 이몸이 웃고 죽어 일백번 웃고죽어.... 4. 두 노래의 핵심 즉 요지를? 말해보자. 누가+누구에게+무엇을+말했나 5. 제재(題材): 작품의 주된 재료는? 감자탕의 주재료 두가지 ? 감자탕을 만들려면 시장에서 무슨? 6. 주제(主題): 작품의 소재(素材)는? 중심 사상(생각)은? 7. 정몽주. 이방원에 대해 백과사전을 보고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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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학습 자료) 게시판에 게시하여 개별 학습하도록 지도 고려라는 해가 기울고 조선이라는 역사의 여명기(餘命期)에 이성계가 낙마하여 병환 중에 있다 하니, 문병을 아니 갈 수도 없었다. 정세를 살피기도 할 겸 정몽주는 그의 사저로 가기로 하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성계의 아들 방원은 조영규를 데리고 아비 옆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조영규가 이성계더러 들으라고 한 마디 하였다. "정몽주 대감의 병 문안은 곁으로의 명분일 뿐 그 속셈은 다른 데에 있을 것입니다. 조심하여야 하옵니다." "당치않은 소리, 정대감과 나는 오랜 친구 사이인데 그럴 리가 있나?"그러자 방원이 답답하다는 듯, 침상에 손을 짚으면서 말했다 "아닙다. 아버님!" 마침내 정몽주가 문병을 마치고 방원과 대좌하게 되었다. 먼저 방원이 말문을 열었다. "포은선생, 술이나 한잔 드시며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이나 해주시오." "내가 무슨 대학자라고 좋은 말이 있겠소?" "대감께서는 당대의 대학자이시오니 성리학에 대해 좋은 말씀을 좀 해주시오." "성리학이라면 심신의 수양이 으뜸이지요. " 학문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일 뿐, 화제는 바뀌어 고려조의 정치이야기가 나왔다. 이방원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정몽주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하여가' 시조 한 수를 유려하게 뽑아 내려갔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료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고저"
후세에 널리 알려진 '하여가' 였다. 썩어져가는 고려 왕실만 붙들기 위해 고집을 부리지 말고, 칡덩굴처럼 얽혀서 사이좋게 사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정몽주는 노래를 다 듣고 나서 좋은 시라고 칭찬한 다음, " 젊은 사람의 노래만 듣고 그대로 있을 수야 없지, 화답하는 것이 내 인사이니 내 노래도 들어보게" 하면서 '단심가(丹心歌)'를 불렀다.
"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만고 충절인 포은은 '단심가'를 통하여 고려조에 대한 충성을 거듭 피력한 것이다. 방원에게는 시조가 아니라 자기를 나무라는 호령처럼 들렸다. 이로써 두 사람은 서로의 뜻을 알고 헤어졌다. 이방원과 헤어진 정몽주는 돌아오는 길에 전부터 자주 드나들던 술집에 들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신록이 송도를 곱게 물들이는 가운데, 숲 사이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 대감마님, 오랜만에 오십니다. 오늘은 마침 좋은 생선을 지져 놓았으니 많이 잡수시고 가시지요." "고맙네, 한잔먹고 가야겠네." 그리고는 주막 마루에 걸터앉았다. 눈앞에는 얕은 울타리에 꽃이 만발하여 나비가 날아들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수근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 주모, 술을 가져오게. " 한참 후에야 술상이 나왔다. 뿌연 막걸리에 생선 지짐이가 구미를 돋구었다. 대작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연거푸 석 잔을 마신 후, 지는 해를 바라보며 혼자 울고 있었다. 도시 일어서려는 기색이 없자 보기에 딱했든지 녹사가 곁으로 다가섰다. " 대감, 해가 서산에 지고 있습니다. 그만 진정하십시오" 어느덧 만수산의 서늘한 산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그는 할 수 없이 말에 올라야만 했다. 무심한 말은 정몽주를 싣고 선죽교 돌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말이 선죽교에 다다르자 " 멈추어라!"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한 선죽교의 돌다리 위에는 판위위시사 조영규가 가로막아 서 있었다. " 누구요, 누가 우리 대감마님 행차를 가로막는 게오? 정몽주 대감의 행차임을 모르시오?" 겁에 질린 녹사가 조영규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조영규가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였느니라. 비키지 못하겠느냐? 철편의 맛을 보아야 하겠느냐?" 녹사가 울면서 조영규의 몸을 안으려고 뛰어 덤벼들자 몸이 닿기 전에 조영규의 철편이 녹사를 힘껏 갈겼다. 녹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버린다. " 자, 대감. 이미 천명이 다하였으니 말에서 내려 철편을 받으시오." 정몽주가 태연한 자세로 말에서 내리는 것을 본 녹사가 " 시중대감, 어서 도망가십시오! 역적 조영규는 소인이 막겠습니다." 피를 쏟으면서 땅에 쓰러졌던 녹사가 조영규의 두 다리를 잡고 덤볐으나 조영규의 철편은 여지없이 녹사를 정통으로 맞추었고 녹사는 그만 시체처럼 나뒹굴고 말았다. 이때 말에서 내린 정몽주가 태연히 조영규에게 다가서면서 말을 던진다. 추호도 당황하는 빛이 없는 정몽주의 얼굴에서는 오히려 미소마저 감돌고 있는 듯 했다. " 이 시중대감이 시킨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삼천리의 명령이오.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악문 조영규가 철편을 바짝 나꾸어 공격의 자세를 취하자 " 이놈, 천하에 죽일놈" 이성계의 분부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정몽주가 천둥 같은 호령을 한다. " 쥐새끼만도 못한 네놈이 감히 천명을 사칭하다니...고려 조정의 녹을 먹는 신자 (臣子)의할 짓이 고작 이거더냐?" 그러나 조영규의 손에 들린 철편은 이미 원을 그리고 있었다. " 컥...." 우뚝 선 자세로 조영규를 노려보던 정몽주의 입, 코, 눈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철편이 정몽주의 머리를 친 것이다. " 에익!" 다시 한 번 뼈 부서지는 무서운 소리가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진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놈, 역적놈들..."겨우 한마디 꾸짖는 소리가 쓰러지는 정몽주의 입 밖에서 새어나왔을 때, 조영규의 철편은 세 번째의 원을 그렸다. 만고의 충신 정몽주가 선죽교 돌다리 위에서 털썩 쓰러졌다. 다리 밑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방원이 우르르 달려나와 넋을 잃고 서있는 조영규와 나란히 서서 장엄한 충신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었다. 날짜는 공양왕 4년 4월 4일 이었다. 그는 죽임을 당할 줄 알면서도 모친 이씨의 ' 정의를 위해 죽으라.'는 말을 따랐다. 만고의 충절은 새로운 왕조를 새우려는 쿠데타 세력에 의해 피살되므로써 고려와 운명을 함께 하였던 것이다. 그후 조선에서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그의 충절을 기려서 그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를 문묘에 봉사하였다.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혼백유야무)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정몽주의 [단심가]를 漢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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