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타의 세게 문화유산으로 등록되 있는 샤 쟈한 모스크와 마크리 힐의 중세 무덤지역을 둘러보고 카라치에서 모헨조다로로 떠나는 열차를 타고 가는 부분까지입니다.
3일차 (7/19 화요일) 타타 시의 세계문화유산 구경
05 : 50 기상
밤새 우유가게에서는 어제와 같은 소란이 계속되고 럭샤인지, 폭주족들인지 암튼 오토바이의 엔진 터지는듯한 소리에 밤새 깊은 잠자기가 힘들었다. 상당히 피곤한 동네라는 생각이다.
07 : 20 호텔 나옴
오늘은 어차피 밤에 기차를 타고 카라치를 떠나야하기 때문에 굳이 호텔에 다시 올 필요가 없어서 짐을 모두 정리해서 가지고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날이 조금 시원한건 좋은데 비맞고 돌아다니면 골치아플 것 같다. 어제처럼 퀘타카페에 갔더니 종업원들이 단골손님이라도 온 듯이 하하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해준다. 별 말없었는데도 어제처럼 가져다준다. 근데 다른 곳보다 유난히 퀘타 카페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짐작에 거지까지는 아니고 바로 그 위의 극빈층들인 듯 싶다.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인데 그냥 아무 말없이 앉아있다가 가끔식 식당에서 짜이나 짜파티를 주면 순서대로 받아먹는다. 아침을 해결하는 방식인 모양이고 식당 주인이나 손님들이 그들에게 먹을걸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오늘 아침값은 54루피 나왔다.
식사 후 신발 꿰매는 노인네의 작업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호텔로 가서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가지고 호텔 앞으로 나왔다. 8시가 약간 넘으니 어제 약속했던 택시 기사가 어떤 손님을 태우고 오더니 잠깐만 기다려 달란다. 아마도 오는 길에 근처의 손님을 태운 모양이다. 알았다고 하니 5분쯤 후에 택시가 왔다.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하는걸 “노 프로브램(파키스탄에서 젤 많이 들은 말이다)”이랬더니 씨익 웃는다.
08: 15 사다르 바자르 출발
출발해서 조금 가니 성 요셉 교회를 지나간다. 이 교회는 1862년에 세운 유서깊은 곳으로서 학교도 같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08 : 35 지나 국제 공항 통과
카라치 시내의 출근 시간은 서울의 그것에 전혀 손색이 없다. 거의 전투하듯이 빠져나왔다.
우리가 탄 택시의 기사는 50대 초반인데 얼굴은 여든이 다 되시는 우리 아버지보다도 더 늙은 것
같다. 자신을 치트랄 부근의 파슈툰 족이라고 소개한 이 기사는 자신의 종족에 대해 무척 자부심
을 가진듯하다.
차는 현대 엑셀인데 내가 90년도에 처음 샀던 바로 그 기계식 캬뷰레타의 차다. 그는 “윤다이(현
대)” 차가 최고라고 치켜 세운다. 가금 지나가는 현대차들을 보면 어김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에서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고 구름만 끼어있다. 하늘이 무심치 않은게
야...
09: 04 오른쪽으로 멀리 카심 항구를 바라보며 지나간다.
카라치를 벗어나니 길은 편도 2차선으로 곧장 뻗어나가고 있는데 주변은 황량한 볼모지이다.
통행하는 차량은 대부분 수출입 화물관련 트럭들이다. 카심항을 지나니 활량함은 점차 줄어들면서
숲과 농경지들의 면적이 증가한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중간 중간에 경찰들이 검문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오직 택시만 잡고 있었다.
삥뜯는 것이다. 처음에는 택시기사가 트렁크를 열어주는 척하면서 50루피를 주고 통과했다. 조금
더 가니 두 번째 검문소에서는 기사한테만 받는걸로 끝내지 않고 우리한테도 뜯어낸다. 무슨 서류
에 이름을 적어라, 온 목적이 뭐냐 등등의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기에 모른척하고 아는대로 답변
하고 가만히 있었다. 결국은 자기 입으로 팁을 달란다. 왜그러냐 하니까 우린 친구래나? 허허 웃고
50루피를 주었더니 좋다고 악수하고 경례까지 붙여준다. 차가 출발한 후 기사가 열받아서 씩씩거
린다. 그러더니 담부터는 20루피씩만 주자고 그런다. 그러자고 하였다. 파키스탄, 큭히 카라치의
부패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고 첫 인상이 일그러지는 경험이었다. 두 번째 삥뜯긴 곳을 지
나니 길은 포장도로가 편도 1차선으로 바뀌고 중앙선도 없어진다. 양 옆으로 비포장된 공간이 있
으니 서로 비켜가면 된다.
09 : 35 다베지 시 통과
09 : 50 가로 시 통과
가로시에서 타타가는 시외버스를 추월하였다. 저 버스는 어디서 타야하느냐고 하니까 “리 마르켓
(Lea Market)에서 탄다고 한다. 론니의 정보가 맞는 것 같다. 근데 파키스탄 사람 상당수의 발음
이 프랑스 식과 일본식을 섞어온 것 같다. 특히 “R"발음을 분명히 한다.
10 : 10 거쭈우 시 통과
10 : 15 잠시 휴식
나무 그늘이 있는 시냇가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마침 시냇가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잡은
잉어인지 붕어인지를 손질하고 있고 팔려고 내놓고 있었다. 다시 출발하였다. 이후 주변 풍경은
꼭 광서나 운남의 남부지방 풍경을 연상시킨다.
10 : 25 마클리 시 통과
릭샤들이 수십대 대기하고 있으나 유명한 MAKLI HILL의 무덤군은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걸어
서도 충분히 갈 수 있다.(릭샤 있는 곳이 버스 스탠드라고 한다면 10분 정도의 거리)
10: 29 타타(Thatta)시 진입
입구의 충전소에서 택시의 CNG도 보충한 후 샤 자한의 모스크로 가기로 하였다.
10 : 40 샤 자한(Sha Jahan) 모스크 도착
의외로 입장료는 없었다. 모스크들은 현재도 신도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파키스탄 모스
크는 별도의 요금을 받지 않는다는걸 여기저기 다니면서 알게되었다. 다만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신발 보관료를 약간 낼 뿐이다. 보관료는 통상적으로 5루피정도 한다.
샤자한 모스크는 아담한 규모의 모스크로서 입구를 들어서면 정원이 나오고 정원을 들어서면 사원
의 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여기서 신발을 벗어 관리인에게 맡긴다. 문을 들어서면 마당은
전부 대리석으로 바닥을 장식하였는데 무척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마당을 빙 둘러 회랑이 있
고 정면에는 모스크가 있는데 사실상 대리석 마당이 신도들이 앉아서 기도드리고 강론을 듣는 곳
이다. 복도와 회랑은 무척 아름답고 다양한 색깔의 벽돌로 장식되어 있었다. 특히 복도와 회랑의
중간 중간에 반원형으로 제작된 천정의 무늬는 소박한 듯하면서도 엄숙하고 그러면서도 기품있는
아름다움으로 디자인되었고 각각의 천정 형태는 모두 달라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대리석 마당 앞의 출입문이나 회랑도 그늘진 곳은 자연 통풍이 잘되고 무척 시원하여 앉아서 한
참을 쉬었다.
12 : 00 모스크 나옴
모스크 앞 간이 식당에서 짜이 4잔과 치킨 라이스 3개, 낭 2개로 4명의 점심을 때웠다. 모두
150루피 나왔다. 식사 도중에 흑인의 후예로 여겨지는 사람이 익살맞은 몸짓을 해서 부근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었다. 생각해보면 카라치는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 기항지로서 동부 아프리
카에서 중국에 걸쳐 다양한 문화와 물품,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히 이루어
진 곳이라 흑인의 후예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신드 쪽에서 종종 보
였다.
식사 후 모스크 뒤쪽의 옛 시가지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지금은 폐허가 된 오래전의 학교 시설이
방치된 채 있었고 그 안쪽의 골목은 시장이었다. 사람들은 낯선 동양인들을 시기롭게 쳐다보고 사
진도 찍어달라고 했지만 그다지 위험하다거나 불안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특히 인도계 여인이 아
들인듯한 유럽계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 무척 특이하게 보였다.
시장통을 한바퀴 둘러보니 전통적인 그들의 삶이 여실히 드러나 보였다. 구 시가지를 빠져나오니
바로 버스들이 모여있는 주유소 건물이 나온다. 아마도 여기서 카라치 가는 버스를 타는 듯했다.
모스크까지는 걸어서 10~15분 정도의 거리다.
차는 다시 길을 거슬러 마크리 언덕으로 간다. 마크리 언덕은 중세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용되는 이
슬람의 공동묘지다. 도로에서도 훤히 보이는 곳이다.
12: 37 마크리 힐 도착
마크리 힐의 입구에서 물어보니 타타에서 하루 릭샤를 대절하려면 600루피이고 타타버스 스탠드
와 이곳까지는 1인당 10루피라고 한다. 우리야 택시를 대절해서 왔지만 다른 이들은 카라치의 리
마켓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을 오면 마크리 힐에서 바로 내릴 수 있으니 구경 후 릭샤를 타고 샤
자한 모스크를 들렀다가 버스 스탠드에서 카라치 가는 버스를 타면 하루에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마크리 힐은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지는 않았다. 일단 택시를 타고 맨 끝까지 갔다가 구경하면서 나
오기로 하였다. 입구에서 맨 끝가지는 대략 1.5km정도 된다. 입구를 막 들어서니 나무 그늘 밑에
서 인도인 복장을 한 노인이 우리를 보더니 황급히 나무 바구리를 연다. 택시 기사가 코푸라 춤추
는건데 볼거냐고 한다. 본다고 했더니 세워준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피리를 부니 코푸라가 몸
을 곧추 세워 일어난다. 보고서 사진을 찍었더니 10루피란다. 다시 택시를 타고 끝까지 갔더니 거
기는 작은 모스크와 기념품 가게들이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니 열기가 확 느껴지면서 땀이 송송 맺
히기 시작한다. 기념품 가게 쪽은 가지 않고 바로 밑의 중세 무덤들로 내려갔다. 이슬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장례를 치룬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우리처럼
땅을 파서 매장하는게 아니라 평지에 눕히고 그 위에 흙을 덮는 방식이다. 물론 귀족이나 부자들
은 호화로운 석관묘을 써서 작은 건물이나 담으로 둘러싸인 곳에 안치한다. 우리가 둘러보는 것들
도 모두 과거의 잘나가던 사람들의 석관과 그 석관을 안치한 건물이나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당
들이다. 석관은 주로 붉은 색이 나는 연한 돌들을 사용하였는데 옆면에는 우루두 어로 기록을 남기
고 위는 무늬를 넣는 방식인데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담장이나 건물들도 상당히 공을 들여
장식과 무늬를 넣었다. 무척 더웠지만 볼건 보고 가야겠기에 중간중간의 나무 그늘이나 건물안으
로 몸을 피해가면서 거의 걷다시피 하면서 이곳저곳의 건물과 석관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입구 부근의 무슨 공주의 관이 있는 건물은 관리인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입장료를
200루피(외국인/1인)씩 내라고 해서 그냥 바깥에서만 둘러보기로 하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건물이
충분히 보호할 가치가 있는 느낌이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쉬엄쉬엄보면서 차분히 구
경할려면 2시간이 약간 더 소요될 것 같다. 우리는 차를 이용했고 대충 둘러봐서 시간이 짧게 걸
린 셈이다
13: 45 마크리 힐 나옴
마크리 힐을 나오면 바로 앞이 3거리인데 여기서 카라치 가는 버스들도 선다. 버스 정류장 부근
의 약국에서 스프라이트, 콜라(각 10루피), 아이스 크림(20루피)를 먹고 잠시 쉬었다.
14:00 마크리 힐 출발
조금 가다가 기사가 양해를 구하고 어느 작은 건물에 들어가 아잔(기도)을 하고 나온다. 담배 한대
피우고 기다리다가 다시 출발한다.
14 : 48 가로 시 통과
14 : 56 다베지 시 통과
15 : 22 카심 항 통과
정식 이름은 모하메드 빈(bin) 카심이다(즉, 모하메드의 아버지 카심이라는 뜻이다.)
15 : 32 카라치 시내 진입
다시 전투 속으로 들어온 셈이다.
15: 40 지나 국제 공항 통과
16: 20 클리프톤 해변 도착
클리프톤 해변은 해안선이 그다지 길지 않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인 셈이다. 해안
선의 길이는 7, 8km쯤 되는데 뻘밭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여기서
는 수영복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옷을 입은채 들어가 수영을 하거나 노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귀챦으면 우리처럼 괜히 왔다리 갔다리만 해야한다.
혹시 이슬람의 전통옷을 입은 처녀들의 물에 젖은 몸매를 구경할려면 여기로 오면 될 것이다.
오후 5시가 넘어서기에 슬슬 출발해서 해안선의 가장 끝쪽까지 가니 마누라 섬이 건너편에 보인
다. 버스 종점인 듯 시내버스가 몇 대 서있어서 가보았더니 젊은 버스 차장들이 들어오란다. 파키
스탄의 시내버스는 운전석 부근의 앞쪽과 뒤쪽에는 쇠창살이 달려서 앞쪽에는 여인네들이, 뒤쪽에
는 남정네들이 탄다. 앞쪽에 차장놈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보니 하시시를 피우고 있다. 나한테도
피우라고 권하기에 담배를 꺼내물고 난 않피운다고 하였다.
17: 20 출발
잠깐 쉬어가자고 해서 부근의 노천 식당에 가서 짜이를 시켰다. 짜이를 먹으면서 기사에게 “조로
아스터 사원(론니에는 침묵의 탑으로 나온다)을 가야한다고 하였더니 ”노 프로브램“이랜다. 이말을
처음에는 곧이 곧대로 듣다가 나중에는 실체를 파악하였다. (노 프로브램의 반대말은 인샬라인듯하
다...) 암튼 짜이를 먹는데 기사가 길 건너편 집이 무슨 집인 줄 아느냐기에 모른다고 하였더니 파
키스탄 야당을 이끌고 있는 베네지르 부토 여사의 집이란다. 오호~ 그래? 하고 뛰어가서 정문쪽을
찍어왔다. 집 건물 위에는 자기 정당의 깃발이 크게 휘날리고 있었다.
차를 마시고 일어나 택시를 타니 기사가 이번에는 파키스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지
나의 집에 데려다준다.(파키스탄 화폐는 지나의 얼굴만 그려져 있다.) 지금은 “부자 하우스”라 불리
면서 일종의 기념관인 모양인데 시간이 늦어 문을 닫았다. 이곳에 오니 마누라, 부자 같이 우리나
라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어서 우습기도 하였다.
다시 택시를 타고 zamzama rd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거리는 중산층의 쇼핑가인 모양이다. 어
제부터 택시타고 카라치를 갈고 다닌다는 생각이든다. 이렇게라도 카라치를 보고 가니 그나마 다행
이다. 기사의 호언과는 달리 결국 침묵의 탑은 찾지 못하였다. 정말 없는건지모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기사도 열심히 찾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18 : 45 카라치 중앙 역 도착
역에 도착하니 기사가 시내 구경도 했으니 익스트라 챠지를 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않된다고 했다
가 200루피 달라는걸 100루피를 주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갔다. 일단 저녁을 먹어야겠는데 이놈
의 역에는 먹을만한 곳이 전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다시 큰길로 나가서 왼쪽으로 보
니 길 건너편에 KFC가 보인다. 그쪽으로 걸어가서 KFC건물을 끼고 안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들
어가니 피자 헛 가게도 보이고 시장인 듯 식당도 2곳 보였다. 일단 식당인듯한 곳에 가니 의외로
먹을게 없다. 피자 헛으로 갈까하다가 그 가게 맞은 편에 버거를 파는 노점이 잇기에 거기에 가서
비프 버거에 에그 후라이를 추가해서 달라고했다. 값은 15루피인데 제법 맛있다. 정작 식당에서
나온 짜파티는 별로였다. 식사를 하난 내내 지나가는 사람들 한테 원숭이 노릇했다. 그냥 쳐다만
보고가면 다행인데 지나가는 웬만한 놈은 다 우리한테 말을 걸어서 귀챦아서 혼났다. 대충 허기를
때우고 나오니 이 거리는 은행가인 모양이다, 유럽풍의 인더스 뱅크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유나이티드, 시티 은행들도 보인다.
카라치 역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땀과 바닷바람에 묻은 소금기가 섞여서 찐득거리는데 화장실 찾
기가 만만치 않았다. 화장실은 기차역 들어오다가 매표소 건물귀퉁이에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니 수돗물도 적게 나와서 난감해 하니 다른 사람이 눈치를 채더니 플랫홈에 들어가면 수돗가가
있다고 거기서 씻으라고 한다. 그래서 일단 플랫홈으로 들어갔더니 말대로 중간 중간에 수돗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여럿 보였다. 안의 매점에서는 생수 큰 것을 30루피식 다랄고 한다. (1.5리터
는 23원 정도가 슈퍼 가격이다.)
20 : 10
열차가 들어와서 올라탔다. 근데 파키스탄 열차는 좌석 찾기가 너무 힘들다. 우선 각 열차
에 고유 넘버가 붙어있지를 않을뿐만 아니라 행선지표시도 없다. 도저히 못 찾겠기에 염치 불구하
고 역의 어느 사무실에 가서 우리 좌석 좀 찾아달라고하였더니 우리를 중국인으로 알았던 듯이 니
네 나라에서 만든 열차인데 왜 못찾느냐는 투로 퉁명스럽게 말하길래 우리는 한국인이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얼굴이 펴지더니 친절하게도 직접 우리를 안내해서 데려다준다. 아마도 중국에 대해서
별로 감정이 좋지는 않은 느낌이다. 사실 데려다주니 앉았지 우리끼리는 절대 못찾겠더군. 왜냐하
면 열차 칸은 어떻게 찾더라도 좌석 배열이 너무 어렵다. 즉, 상하로 되어있는데 상단은 침대이고
하단은 4명이 앉는 좌석이다. 좌석번호가 나란히 있는게 아니어서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다. 뒷사
람을 위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은 창쪽에 1인용 좌석이 서로 마주보게 배치 되어 있다. 그
리고 그 옆에는 상,하단으로 좌석이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은 침대다. 아랫칸이 4명씩 앉는 긴 의자
가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창족 중간에 숫자와 알파벳이 써져있다. 그걸 해석하자면 동그라미 안에
숫자가 싀여진 것은 침대를 의미한다. 예컨대 원안에 13B라고 씌여지는데 여기서 B는 A,B,C가
아니라 BED라는 의미이다. 그 원 밑에 양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숫자가 4개씩 쓰여져 있다. 예컨
대 10S라면 NO.10 SEAT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위쪽이 창쪽이고 아래쪽이 복도쪽 좌석이 되는
셈이다. 어쨌든 열차의 좌석까지는 무사히 왔는데 이 열차 구조가 무척 특이하다. 즉, 일반적인
열차 한칸의 중간에 출입문이 추가로 있고 화장실도 추가로 있다 그래서 한칸이지만 사실상 2개
로 나누어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소규모의 사람들만이 모이는 공간이 되기 때문에 가족끼리 갈
때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화장실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카라치가 시발역이어서 그런지 좌석은 꽉차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산 표는 침대가
2칸이고 좌석이 1칸이라 돌아가면서 침대에서 자기로 하고 9시부터 12시까지 불침번을 내가 먼
저 서기로 하였다. 몸이 끈적거리는게 영 찝집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술 한잔씩 하고 잠이나 청하
자고 해서 생수통에 팩소주 2개 넣어 마른 오징어와 함께 먹었는데 생각만큼 잠은 오질 않는다.
MP3를 꺼내어서 작은 놈이 넣어준, 빙고와 러브 송을 비롯한 음악을 들었다.
21: 00 정시에 열차 출발
우리가 탄 칸에는 갓 낳은 어린 아이(라다라는 여자아이다)를 포함해서 15명 정도되는 알리네 가
족이 점령했다. 처음에는 우리를 신기하고도 낯설게 보더니 중학교다닌다는 남자아이가 용감하게
영어로 말을 걸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나갔다. 영어 실력이 달리는 내가 설명하느라 무척 애
를 먹었지만 서로간에 대강의 뜻은 이해하는 식이었다. 내 디카와 mp3를 신기해하기에 사진도 찍
어주고 mp3의 빙고와 김밥도 들려주니 노래가 너무 신나고 좋다고 서로 돌아가면서 듣느라고 난
리다. 소녀를 비롯한 여인들도 마침내 합류해서 이런 것 저런 것을 중학생 아이를 통해 물어오는데
답변하느라 진땀이 났다. 조금있으니 자기네 밥도 먹으라고 하고 과일도 주고 쥬스도 줘서 잘 먹
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이야기? -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를 하다가 중간 중간에 열차가 쉬는 틈
에 나가서 음료수도 사와서 나눠먹기도 하였다. 파키스탄은 열차가 한번 쉬면 10여분씩 쉬는 모양
이다.(모든 역을 그러는건 아니지만 중간 중간에 그런다.) 이럴때는 역안에서 환하게 물을 밝히고
밤세워 먹거리를 파는 리어카 식당들을 자주 이용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서대전역의
가락국수가 생각난다.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01 : 00 침대칸으로 올라가 취침
신선생과 교대하여 올라가 뒤척거리다가 2시쯤 잠이 들었다.
4시 가가이 되어 일어나보니 알리네 가족은 내린 모양이다. 우리 칸이 훵하다. 아랫칸으로 내려와
길게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한 20분 정도 잤을까 누가 깨워서 일어나니 열차 공안이 깨우더니
어디에서 왓느냐 뭐하러 왔느냐 꼬치꼬치 묻는다. 처음에는 잠이 덜 깨서 이것들이 왜그러나 하였
는데 조금 이야기해보니까 동양인이 너무 신기한 모양이다. 잠도 깰겸 이야기나 하자는 것이다. 나
는 졸려 죽겠는데.... 그래서 조금 이야기하다가 나는 좀 자야겠다고 이야기 하니 일어난다. 다시
누웠는데 5분 정도되니 이번에는 3명이 몰려와서 또 깨우더니 같은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한다
. 넘 귀챦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계속 대꾸해주었다.
05 : 30 일출
결국 2시간 정도 자고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열차는 1시간 정도 연착하여 모헨조다로에 도착한
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거의 평지를 달려온 것 같다. 다만 하이데라바드 부근은 황량한 곳이었는데
모헨조다로 부근은 벼농사를 짓는 듯 논들이 무척 많아보였다. |
첫댓글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하얀색으로 된 글씨가 많네요
마우스 왼쪽으로 하고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