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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머, 리더스 다이제스트 유머집
저작권:
등록자: 한사모(k2hsm)1998-09-28
하이텔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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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 차렷!”
징계사유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공군기지 게시판에 나붙은 공고 : “아래 사병들은 오늘 오후 공급
실에서 선행상 메달을 찾아갈 것. 이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는 징계 조치하겠음.”
십년 감수
내가 훈련을 받고 있던 ROTC소총사격장에 솜씨가 형편없는 1학년 후보생이 한 명 있었
다. 그 친구가 실탄 50발을 헛되어 써버리자 교관은 화가 치밀어 “야, 너는 널따란 헛간 벽
조차 맞히지 못할 놈이야! 나무 뒤에 가서 네 골통에나 대고 한 방 쏘지 그래?”하고 고함
을 질렀다. 풋내기가 자취를 감춘 뒤 2,3분쯤 지났을 때 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쪽에서 총
소리가 들렸다.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교관은 헐레벌떡 그쪽으로 뛰어갔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1학년생이 걸어나와 부동자세를 취했다. “죄송합니다. 교관님. 또 빗나갔습니다 !”
알 만하군
사령관이 예하 부대 식당을 검열하고 있었다. 한 신병 앞에서 걸음을 멈춘 사령관이 물었
다. “여기 식사가 어떤가?” “예, 식사 때마다 음식을 놓고 서로 싸웁니다. 각하.” 사령관
은 흐뭇했다. “허, 거참 반가운 일이군. ”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각하.” 그 신병이 대
답했다. “싸움에서 지는 쪽이 식사를 해야하니까요.”
생일까지 빼앗긴 병사
일본을 향해 항진중인 군함 「리브스」호 함상에서 근무하던 내 동료 한 사람이 사소한
군기 위반으로 1계급 강등에다 벌금을 물고, 3주일동안의 가외근무까지 하게 되었다. 얼마
후 7월 2일이면 21번째 생일을 맞게 되는 그는 밤마다 가외근무를 할 때면, “나를 강등시
키고 벌금을 물릴 수는 있겠지만, 내 생일까지 빼앗아 가지는 못하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하곤 했다. 7월 2일이 다가오자 그의 흥분은 한층 고조되었다. 그는 7월 1일 저녁 잠자
리에 들면서 늘 하던 그 말을 다시 되풀이했다. “내 생일을 빼앗아 가지는 못하겠지.” 다
음날 아침, 그는 배가 날짜 변경선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일어나 보니 7월
3일이 되어 있었다.
사나이가 할 일
아들이 입대하게 되어 나는 “군대는 널 사나이답게 만들어줄거다.”하고 격려해주었다.
그런데 입대한 아들로부터 이런 편지가 왔다. “아버지! 저는 이제 잠자리를 멋있게 펴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제 옷을 세탁하여 다림질까지 하고 꿰매 입는 것도 익혔습니다. 매일
아침 청소를 하고 먼지를 털고 일주일에 한번씩 대청소를 하는데 대 청소때는 벽도 걸레질
하고 창문도 닦아야 합니다. 아버지, 이래도 군대가 저를 사나이답게 만들어 줄 것으로 믿고
계십니까?”
임 무
미국 버지니아주 포트리에 신임소대장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 마침 감찰감이 소대시찰을
와서 그를 따라다니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만사가 별탈 없이 잘돼가고 있는 듯했는데
감찰감이 한 사병 앞에 가더니 자네 임무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얼간이 같은 그 사병은
“낙엽을 긁는 일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전시에 뭘 하느냐 말이다.!”
“낙엽을 더 빨리 긁겠습니다.”
유효기간
월남 참전 시절, 크리스마스가 되자 우리 형수는 손수 만든 과자를 보내면서 혹시 과자가
늦게 도착해서 내가 상한 과자를 먹게 될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소포 꾸러미에는 이
렇게 쓰여 있었다. “만일 이 소포가 1월 10일 이후에 도착하면 베트콩들이나 먹으라고 던
져주세요.”
휴 가
맥 사우어라는 친구가 해군에 복무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휴가를 얻어 조그만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민간인 복장에다 더블 백을 짊어지고 마을 한복판을 걸어갔다.
동네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와 마주친 처음 몇 사람은
별로 반가운 기색도 없이 “맥, 잘 있었나?” 하고 지나쳐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인사에 좀
실망하고 있던 차에 드디어 옛 친구 거스를 만나게 되었다. 거스만은 틀림없이 몹시 반가워
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반색을 하면서 큰 소리로 “야, 맥! 이거 참 반갑
군!” 하고는 맥이 들고 있는 더블백을 내려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떠나는 길인가?”
- 착각
2차대전의 격렬한 전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어느 날. 출격한 편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공군기지 사령관은 석양에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대, 두대, 상처투성
이가 되어 돌아오는 편대기들이 착륙하고 있었다. "아직 한 대가 안 돌아왔습니다" 부관이
옆에서 보고했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나도록 근엄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사령관의 옆에는
많은 장교들도 함께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멀리 하늘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기지로 다가오는 비행기가 있었다. 그 비행기는 털털거리며 가까스로 기지에 착륙하고 화재
진압차가 불을 껐다. 사령관은 즉시 달려가 비행기에 올라 연기 속에서 조종사를 끌어 안았다.
그러나 조종사는 이미 죽어있었고 사령관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감격한 모든
병사와 장교들이 함께 엄숙하게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사령관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조종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
"어라 ? 얘 우리 편 아니네 ? "
- 비상수단
2차 대전중 여군으로 복무하던 어느 날 영국의 솔즈베리역에 도착해보니 갈아타야 할 기
차가 멀리 떨어진 건너편 플랫폼에 벌써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내린 곳에서 그 플랫폼으로
가는 지하도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안타까운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기차를 놓치겠네!” 그러자 건장하게 생긴 한 수병이 나를 자기
어깨 위로 번쩍 들어올리더니, “비켜주세요! 아가씨가 기절했어요!” 하고 고함지르며 사람
들을 뚫고 나가 기차가 떠나기 직전에 나를 객실 안에 내려주었다. “고마워요.” 내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기차를 타지 못했을 거예요.” “천만에요, 아가
씨.” 수병은 이렇게 대꾸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 명
내가 젊은 시절 해군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는데, 어느 날 중상을 입은 수병
한 사람이 실려 왔다. 늘 그랬듯이 나는 수술준비를 하고 나서 환자로부터 수술승낙서를 받
으려 했다. 그는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그 서류에 꼭 서명을 해야 하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
다. 꼭 해야 한다고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그는 마지못해 서명을 했다. 나는 그 서류를 다시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수병이 망설였던 까닭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준 서식은 시체
부검의뢰서였던 것이다.
방법 불문
내가 조선기술책임자로 복무하던 항만기지에서 있었던 일. 사령관 사무실 문 바깥 손잡이
가 새로 필요하게 되어 나는 신참 기술병을 보내 손을 봐주게 했다. 5분 뒤 되돌아온 기술
병은 철물상의 문 손잡이가 동이 났다고 보고했다. “그러면 수단껏 해보라구. 자네가 어디
서 손잡이를 구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만 완수해.” 그날 저녁 사무실을 나가
려던 나는 문의 안쪽 손잡이만 쥐고 사무실 바닥에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위기일발
2차대전중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 보병부대가 아직 전진을 못하고 묶여 있었다. 우리
캐나다군 홍보팀은 보도본부를 설치한 후에 기분을 한번 풀기로 했다. 유명한 종군기자 몇
명을 포함하여 각급 홍보관계자들이 참가하는 소프트볼 경기가 시작되었다. 3회가 끝났을
때 일단의 영국군이 길을 따라 행군을 오다가 이 “미친 캐나다군인들”을 보고 깜짝 놀랐
다. 영국군 장교가 우리 심판을 불렀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심판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부
들부들 떨며 이렇게 알렸다. “여러분, 경기를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영국 공병대가 이 운동
장의 지뢰를 제거하러 왔습니다.”
일요예배
서독 라인강변에 주둔한 영국육군의 중대장으로 있을 때 나는 사령관으로부터 다음 일요
일 예배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장병들이 참석하게 유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장병들에게 교회에 꼭 나가라는 명령은 내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중대 선임하사의 제
안을 받아들여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랬더니 금요일날 중대 내에 다음과 같은 공고가
나붙었다. : “완전군장 차림의 열병식훈련이 일요일 10시 15분에 실시됨. 중대장이 훈련 전
에 중대를 검열할 것임. 일요일 예배 또한 10시 15분에 열림. 예배에 참석하는 자는 훈련에
서 제외됨.”
오발탄
우리 소대가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한 사병이 총을 두 발이나 쏘고서도
목표물을 맞히지 못했다. 울화통이 터진 상사가 사병의 손에서 소총을 빼앗으면서 으르렁거
렸다. “이런 멍텅구리 같으니라구. 너는 눈도 없니? 잘 봐.” 상사는 총을 겨냥하고 쏘았지
만 목표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맞았다. 그러자 상사는 사병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소리쳤
다. “봤지 ? 이 바보야. 이게 바로 네가 쏜 방식이야.”
비오는 날
헌병대에 들어가서 기초훈련을 받고 있을 때 목격한 장면. 부대 특무상사가 훈련병 한 명
을 불러 명령했다. “저기 있는 깡통으로 사령부 앞 화단에 물을 준다. 실시!” “하지만 상
사님,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지 않습니까?” 신병이 대꾸했다. “상관없어!” 상사
가 큰소리로 말했다. “우비를 입으면 될 것 아닌가!”
특 혜
찰스왕세자가 해군대위로 복무하고 있는 군함에 다시 승선하기 위해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병 두 명에게 신문기자들이 접근했다. “찰스 왕세자가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
는 말이지요?” “정말입니다. ” 한 수병이 대꾸했다. “한 가지 , 자기 양친 사진이 함장
실에 걸려 있는 유일한 사관이란 사실을 제외하면....”
모의전투
육군에서 모의 전투 훈련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부대장의 지프가 진흙탕에 빠져버렸다. 그
부대장은 병사 몇 명이 근처에서 빈둥거리고 있는걸 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미안합니다.
저희는 사망자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 병사가 대꾸했다.
그 부대장은 자기 운전병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일병 ! 가서 저기 시체 몇 구를 이리
끌고 와서 차바퀴가 힘을 받도록 바퀴 밑에 밀어 넣어.” 부대장은 즉시 차를 밀어줄 병사
들을 구할 수 있었다.
체중조절
남편이 웰링턴의 국방참모대학에 다닐 때 그의 반에 발리라는 뚱보친구가 있었다. 체중
때문에 종종 놀림을 받던 발리는 말을 타기로 했지만 그것이 효과가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
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오전 커피 마시는 시간에 체중조절이 장교들의 화제가 되었다.
“여보게.” 발리가 뻐기면서 말을 꺼냈다. “살을 빼는 데 승마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구.” “맞는 말이야, 발리.” 한 장교가 되받았다. “자네 말은 체중이 최소한 20㎏은 빠졌
으니까 말이야.”
육지에서 얼마나?
전쟁포로가 되어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압송되던 중 우리가 탄 배가 어뢰공격을 받
았다.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나뭇조각을 잡고 떠 있던 나는 연대선임하사에게 고함
쳐 물었다. “우린 지금 육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약 3㎞ 정도.” “정말 다행
이군요. 그런데 어느 방향으로요?”
“바로 밑으로, 이 멍청아!”
진 급
군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때의 일. CPX훈련으로 정신이 없던 어느 날 밤, 중대장의
호출전화를 받았다 풀어놓고 있던 전투화, 탄띠, 철모 등을 허겁지겁 착용한 나는 옆에서 졸
고 있는 통신장교에게 보고를 하고 상황실로 가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도중에 웬 장교가
나를 뚫어지게 쏘아 보길래 황급히 경례를 붙였다. 상황실 문을 열고 막 보고를 하려는데
중대장의 호통이 떨어졌다. “이봐 오상병 ! 누가 자네를 그만큼 진급시켜 줬나?” “네?
” 이쪽저쪽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좀 이상하다 싶어 번개같은 동작으로 철
모를 벗어보니까 맙소사, 대위 계급장이 붙어 있는 우리 통신장교 철모가 아닌가?
포로 생포
우리 부대가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승전파티가 열렸다. 사탕과 짭잘한 음식들이
널려 있는 테이블 앞에서 부대장이 말했다. “제군들, 적을 공격하듯이 음식을 초전 박살하
라.” 한 병사가 먹을 것을 호주머지에 쑤셔넣다가 발각되었다. “이봐, 자넨 뭘 하고 있
나?” 부대장이 나무랐다.
“ 네, 포로를 몇 명 생포하고 있습니다.” 병사가 대답했다.
야간보초
우리 스위스 연대의 장병 대부분이 부활절 휴가를 떠난 뒤 나는 멀찍이 떨어진 막사 한쪽
모퉁이에서 야간경계근무를 섰다. 별일 없으리라고 생각한 나는 초소에서 편안하게 드러누
워 있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누가 어깨를 두드리는 바람에 눈을 뜬 나는 별을 잔뜩 단 장군
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일어나 경례를 붙이려 했다. “괜찮아, 젊은 친구.” 장
군은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넬 깨우는 사람이 선임하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비 결
야전근무기간을 끝낸 존스 상병은 미군 모병센터에 재배치되어 신병들에게 그들이 정부로
부터 받게될 혜택, 특히 미 육군 보험제도에 대해 알려주는 일을 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
아 존스 상병은 거의 100%에 이르는 보험판매고를 기록했다. 어느 날 장교 한 사람이 그
비결을 물어보는 대신 방 뒤쪽에 서서 존스 상병의 판촉강의를 들어보았다. 존스 상병은 신
병들에게 미 육군 보험의 기본적인 사항을 설명한 다음에 이렇게 말을 이어나갔다. “육군
보험에 가입하고 나서 전투에 참가해 사망할 경우, 정부는 보험 수혜자에게 3만 50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여러분이 육군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전투에 참가해 사망할 경우에는 정부는
최고 3000달러만 지불하면 된다.” 존스 상병은 신병들을 쓱 훑어보더니 말을 맺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느 쪽을 먼저 전투에 내 보낼 거라고 생각하는가?”
선 택
2차대전 중 영국 선박에 대한 독일군의 공격이 절정에 이르자 영국 해군본부 작전실은 부
산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군 여성봉사대원들은 벽에 걸린 커다란 대서양지도 북쪽
으로 항해중인 함정의 위치를 표시하는 깃발을 옮기느라 사다리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시찰 나온 고위인사를 당직장교가 작전실로 안내해 들어왔다. “각하, 어떻습
니까?” 당직장교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 고위인사가 대답했다. “저 여성봉사대원들에게 모
두 바지를 입히든가, 아니면 호송선단을 몽땅 남대서양으로 이동 시키든가 하게.”
신병들이니까
내가 로디지아 육군 훈련 조교로 있을 때, 한 동료가 신병들을 부대내 매점에 데리고 가
서 술을 한잔 샀다. 흥겹게 마시고 난 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그 동료는 자기가 신병들의
내무반에서 잠을 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열시간 전에 방을 깨끗이 정돈하는 것이 불가능함
을 깨달은 동료는 신병들에게 침대를 거꾸로 엎으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검열을 하러 온
중대선임하사는 난장판을 보고 노발대발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선임 하사님.” 동료가 나
섰다. “내무반 청소상태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침대를 거꾸로 엎고 다시 치우라고 했
습니다.” “그래? 좋아. 기강을 바로 잡으려고 그랬다니.” 선임하사가 말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을 기대하진 말게. 아직 신병들이니까.”
경 고
우리 고장의 육군지원예비군본부에 가니 좁은 길 옆 잔디밭 가장자리가 대형차량에 짓밟
혀 있었다. 부근에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인 조그마한 팻말이 진흙탕 속에
넘어져 있었다. 다음에 들었을 때 망가진 곳은 보수되었고 새로운 잔디가 자라고 있어 기분
이 좋았다. 그런데 근처에 있는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위험- 지뢰가 잔디밭 가
장자리에 묻혀 있음.”
- 경례 뒤엔 답례가
우리 부대로 새로 전속온 한 소위가 연대 주둔 지역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사병이 경례
를 하지 않은 채 지나 갔다. 불경한 태도에 화가 난 소위는 그 사병을 불러 세우고 경례를
100번 반복하도록 명령했다. 이런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한 상급장교가 다가와서 무
슨 일인가 물었다. 소위가 여차여차한 곡절을 애기하자 그 장교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
했다. “소위, 귀관의 조치는 아주 정당해. 하지만 명심하게. 복무규정에 따르면 귀관도 경례
를 받을 때마다 답례를 하게끔 되어 있네.”
훈련도 허사
여왕이 우리 영국공군기지를 방문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부대에서는 경비견 한 마리
를 선물하기로 하고, 몇 주일간 그놈에게 앉는 법과 앞발을 여왕에게 내밀며 인사하는 법을
훈련시켰다. 실습 중 여왕의 대역은 우리 기지의 부관 부인이 맡아주었다. 여왕의 방문 당일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개는 여왕 앞에 충직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여왕폐하께 악수 !
”하고 명령했더니 그놈은 부관 부인 앞으로 걸어가 앞발을 슬쩍 내밀었다.
그렇다고 자를 잘라?
1949년 우리 부대는 사우스 웨일스에서 막사까지 송수관을 설치하기 위해 길이 12㎞ 되
는 도랑을 팠다. 우리는 진흙에서부터 단단한 바위까지 온갖 종류의 땅을 곡괭이로 파야 했
다. 도랑의 깊이는 1m였는데 유난히 엄하고 괴팍한 하사가 잣대를 하나 들고 왔다갔다하며
깊이를 재어 보고 돌아다녔다. 어느 날 놀랍게도 그는 작업을 반시간 일찍 끝내주었다. 우
리들이 일을 아주 잘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7시에 별안간 집합 나
팔소리가 나서 우리는 모두 옷을 입고 나가 정렬했다. 누군가가 하사의 자막대기를 몇 센티
미터 잘라낸 것이 들통났던 것이다.
균 형
구축함 「어스니보인」호의 우리 승무원들은 캐나다 해군 전체에서 가장 덩치 큰 존스라는
수병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몸집과
무게로 전함대에 널리 알려져 있던 그 친구는 가끔 선의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하루는 우리 배가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근해를 항해하고 있었는데 큰 폭풍우가 몰아쳤다.
갑자기 배는 불가항력적으로 기울기 시작, 좌현쪽으로 거의 눕다시피 했으며 쉽사리 바로
설 수 없을 듯했다. 모두들
몸을 가누느라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데 확성기로부터 함교 당직사관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존스 수병은 우현으로 가라!”
바다의 활주로
항구와 인접해 있는 해외의 어느 공군기지에 영국공군 수송기 한 대가 착륙하려다 활주로
를 지나쳐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다행히도 부상자는 한 사람도 없었도 수송기도 회수되
었다. 그후 여러 달 동안 그 수송기가 소속된 비행중대는 끊임없는 야유로 시달림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견딜 수 없었던 치명적인 야유는 인접 항구로 기항하던 구축함이 던진 것이
었다. 구축함의 함장이 기지사령관에게 이런 전문을 보냈다. “이곳에 하룻밤 기항할 예정이
다. 귀 비행중대의 활주로를 이용할 수 있겠는가?”
기 회
2차대전때 조지 C.마셜 미 육군 참모총장이 와이오밍주 포트프랜시스워렌 육군훈련소를
불시에 방문했다. 신참내기 훈련병이었던 나에게 마셜장군, 기지사령관, 와이오밍주지사 및
다른 요인들의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내가 카메라를 조절하고 있는데 마셜
장군이 나에게 인자하게 말했다.
"훈병, 어떤 포즈를 원하는지 말해주게나.” 이미 카메라를 다 조작해 셔터만 누르면 되었
지만 나는 그런 높은 양반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
다. 그래서 목청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모두 한 걸음만 앞으로 나오시죠.” 그 높으
신 양반들의 내 명령에 따라 한 걸음 앞으로 나온 뒤 나는 일보 뒤로 물러서서 찰칵 셔터를
눌렀다.
관심사
전시에 영국 켄트의 노스포럴랜드 상공을 초계 비행하던 나는 아군 대공포대로부터 포
격을 받았다. 무전으로 미쳤느냐고 호통쳤더니 포격은 중지되었다. 그런데 착륙하자마자 전
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대공포대 지휘관이었는데,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미안하게 됐소”
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한 가지 좀 얘기해주지 않겠소? 우리가 당신을 맞힐 뻔
하긴 했습니까?”
특별 대접
이른 아침이었다. 육군에 입대한 지 2주일밖에 안된 새파란 이등병이 부대장인 대령의 집
무실 바닥을 걸레질하고 있었다. 그때 대령이 다른 장교 2명과 함께 들어왔다. 일행은 각기
뜨거운 커피 한잔씩을 들고 테이블에 빙 둘러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전날 마시다 반쯤 남은
커피잔이 하나 있었는데 대령이 그 커피잔을 이등병을 건네주었다. 깜짝 놀란 이등병은 그
컵을 받아들자 마루걸레를 비껴 세워놓고 의자를 끌어당겨 테이블에 바싹 다가앉으면서 이
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부대장님. 입대한 이후 이런 대접을 받아보긴 처음입니다.”
승 진
해군에 입대한 우리 아들이 승진해서 계급장에 줄무늬 하나를 더 얻자 그 소식을 편지로
알려 왔다. “뭐 대수로운 건 아니지요. 하지만 큰 쓰레기통을 비울 때, 그래도 이제는 제가
손잡이 두 개 중에서 더 깨끗한 쪽을 들게 됐답니다.”
백발백중
미 해군은 잠수함의 어뢰 발사 연습 때 회수가 가능한 연습용 어뢰를 사용한다. 발사된 어
뢰가 명중할 경우에는 쉽게 회수할 수 있지만, 표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갈 때는 영원히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 잠수함은 함대 소속 잠수함 가운데서 훈련용 어뢰를
가장 많이 잃어버린 기록을 세웠다. 잔뜩 화가 난 포술 장교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어뢰수들의 외출 상륙증을 모두 거두어서 연습용 어뢰탄두에 넣고 밀봉해버렸다. 그 후 우
리는 백발백중으로 표적을 명중시켰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병사
어떤 육군 하사가 사병들에게 정렬하라고 명령했다. “차렷 !” 하사가 소리질렀다. “음
악에 조예가 깊은 병사는 일보 앞으로!” 사병 여덟 명이 즉각 일보 앞으로 나섰다. “좋
아.” 하사가 말했다.
“ 지금 즉시 장교클럽으로 가서 피아노를 옮기도록.”
잘난 체하다가
어느 날 캐나다군함을 시찰중인 영국 해군제독이 자기 모자를 갑판 위에 던지고 소리쳤
다. “불발탄이다. 즉각 처리하라!” 그러자 한 젊은 수병이 발길로 모자를 차서 바다에 넣
어버렸다 제독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반쯤 물에 잠긴 자기 모자를 가리키며 그 수
병에게 명령했다. “생존자다. 뛰어 들어가서 그를 구하라!”
단 두 발짝도
어떤 해병대위가 인솔한 중대가 80㎞의 행군을 기록적인 시간내에 끝마쳤다. 대위는 막사
앞에 병사들을 세워놓고 그들을 칭찬한 다음, 해병대의 빛나는 전통을 내세우며 이렇게 말
했다. “제군들, 본관은 이 행군을 다시 한번 실시하고자 한다. 해낼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
는 사람은 누구든 2보 앞으로 나서라.”
그러자 이등병 한 사람만 빼놓고 전 중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중대장은 놀라긴 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단 한 사람인 그 병사가 아직도 80㎞를 더 행군할 수 있는 원기와 용
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칭찬해주었다. “80㎞를 더 걷는다구요?” 얼이 빠져버린 이등병
이 중얼거렸다.
“중대장님, 전 단 두 발짝도 나갈 수 없는데요.”
급한 김에
장교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라는 말은 기초훈련을 받는 동안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었다.
우리는 장교가 막사에 들어오면 맨 먼저 본 사람이 즉각 “전원 차렸!” 하고 구령을 붙여
야 한다고 들었다. 훈련 닷새 째 되던 날 모두들 침대에 앉아 군화를 닦고 있을 때 장교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내 바로 건너편 친구가 제일 먼저 보고 벌떡 일어나더니 엉겹결에
이렇게 소리쳤다. “하나 들어온다!”
어쩐지
ROTC 하계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일이다. 훈련소 이발소에 갔더니 상고머리로 깍고 나오
는 후보생들의 머리가 하나같이 쥐가 뜯어먹은 모양이었다. 우리 차례가 가까워올수록 이발
사의 경험과 자격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의자에 앉는 순간 나는 우리의 걱정이 근거있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주인이 내 뒤에 서 있는 이발사에게 지시했다. “ 그 친구만 끝내고 넌
다시 구두나 닦아!”
궂은일
군 병원의 당직 간호장교들은 군인환자들의 온갖 엉큼한 수작을 받아넘겨야 한다. 어느
날 밤 자기가 로미오나 되는 듯이 굿나잇 키스를 하자고 졸라대는 환자를 밀어내면서 한 간
호장교가 한 말
: “위생병이 올때까지 기다려요. 궂은 일은 모두 그 사람이 맡아 하니까.”
황금률
잠수함에 초대되어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조타수에게 항해 중 준수해야 할 무슨 특별
한 규칙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 대신 나에게 암산을 잘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어
리둥절해하자 그는 잠수함 근무 중 지켜야 할 황금률을 얘기해주었다. “잠수함이 물 속에
들어간 횟수를 셀 것, 거기에다 물위로 떠오른 횟수를 더할 것, 그리고 둘로 나눌 것. 만약
나머지가 하나 남을 때는 절대로 승강구 문을 열지 말 것.”
긴급 대피
1942년 2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레일리아 다윈에 일본군이 폭격을 하자 병원에 있던 사람
들은 황급히 대피했다. 밖으로 나가려던 주임의사는 나이 많은 간호부장이 자기 방에서 서
랍을 정신없이 뒤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가 “선생님, 제 틀니가 안 보여요! ”하고
소리치자 의사는, “빨리 나와요!” 하고 소리질렀다. “일본군이 지금 떨어뜨리는 것은 샌
드위치가 아니라 폭탄이란 말이오!”
잠꾸러기 연대장
신참 소위 시절 북아프리카 야전군사령부에 배속된 내가 당직사관으로서 해야 할 임무 중
엔 잠꾸러기 연대장을 새벽 6시 정각에 깨우는 일도 들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 일을
맡게 된 날, 이른 새벽 연대장이 자는 1인용 텐트 앞에 섰다. 구식 군대가 길러낸 고집불통
의 표본인 연대장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음을 알리는 요란한 소리가 새나오고 있었다. “연대
장님, 6시입니다. 일어나셔야 할 시간입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다시 지금 몇 시
니까 빨리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퉁명스럽고 못마땅해하는 목소리가 텐트 안에서
흘러나왔다.
“ 자네는 시간만 말하게. 결정은 내가 할 테니까.”
여동생
사관생도가 여자 친구와 걸어가다가 한 장교와 마주쳤다. 당황한 사관생도가 엉겹결에 자
기 여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장교가 말했다.
“아니, 괜찮아. 이 아가씨, 전에는 내 여동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