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도 춘하추동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데 어찌 나그네 인생 길에 작은 사연인들 없겠는가. 나의 살던 고향은 김해(金海) 장유(長有) 팔판산(八判山) 아래 사기점골 신안(新安)마을이다. 대대로 농사짓고 살아오면서, ‘盤谷窯(반곡요)’를 만들어 분청(粉靑)도자기를 굽고, ‘釜山法友會館(부산법우회관)’이란 이름으로 고시원(考試院)을 운영하면서 조모님 모시고 4남매 키우며 그렇고 그런 세상을 살아 왔었다.
도시팽창으로 장유 신도시 조성이 시작되던 나이 50때에 가정의 사정으로 이것저것 정리하고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등산을 다니며 집터를 찾다가, 이곳 지리산(智異山) 동쪽 백두대간의 꼬리봉인 산청(山淸)웅석봉(熊石峰 1,099m) 어천(漁川)계곡에 자리를 정했다. 칡넝쿨 엉킨 억센 땅을 고르고 집을 지어 ‘悅樂堂(열락당)’이라는 당호(堂號)를 걸고 이사 온 때가 미국 애트랜타 올림픽이 시작되던 1996년 여름이었다. 당호의 뜻과 같이 스스로 배우고 익히면서 기쁨(悅)을 얻고, 가끔 친구들이 이곳을 찾아오면 즐거운(樂) 하루가 되었다.
여기 ‘쉴만한 물가’라는 이름은 성경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여기 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감사하여 따온 것이고, 작은 정자(亭子) ‘愚川(우천)’은 원래 마을 이름이 ‘어리 내’ 즉 어리석다는 뜻으로 ‘愚川’이라 바위에 새겨있는 것을 탁본하여 만들어 걸었다.
작년에는 흙벽돌을 쌓아 엉성한 황토방 ‘방초동산’ 한 채를 내 손으로 지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면 어김없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그 낙(樂)으로 겨울 보내기가 한결 쉬웠다.
낯설고 외진 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래고 정원을 가꾸면서 정을 붙여 온지 벌써 5-6년. 마을에 집이라곤 서너채 뿐이었는데 이웃도 여럿이 늘어나고 주변도 그 사이 많이도 달라졌다.
세월은 유수(流水)같이 빠르다. 이제 시냇가에 그늘이 짙어지니 정다운 친구들이며 자연을 사랑하는 분들이 찾아와 쉬어 가곤 한다. 자연은 곧 도(道)요 진리(眞理)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시비하거나 분별하지 않는 자연과 더불어 한 가족이 되어, 불편함을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 가는 자리가 되면 좋겠고, 자연을 통하여 창조의 원리와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유익한 대화로 물질문명에 시달린 삶의 질을 높이고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