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인"이란 이름은 地名보다 驛名이 먼저 붙여졌습니다...
1912년 호남선이 개통되고,
1914년 1월 11일 김제와 정읍구간이 영업을 개시하자
때를 같이해 신태인역도 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붙여진 이름이 인근 泰仁과 구별되는 新태인역입니다.
대전과 이리 처럼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정에서 생겨난 도시입니다.
신대륙 미국의 도시들이 영국 특정지역의 이름을 따다 앞에 'New"
나 "Neo"를 붙여 작명한 것과 비슷한 발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전까지 면행정의 중심은 화호였습니다.
화호가 물산(物産)과 교통의 중심지였으나 신태인에 역이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도권을 넘겨줬습니다.
신태인읍은 옛 태인의 용구산면(약칭 용산면)과 북촌면을 통합해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용북면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다 1933년 역명을 따 신태인面으로 개칭하였고
1939년 읍(邑)으로 승격,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역이 자리잡은 곳은 한촌(寒村)에 불과했던 삼천리(三泉里)였습니다.
삼천리는 원래 북촌면 지역으로 1914년 구역 개편때 "瓢泉리"에서
"泉"자를 따고 상삼(上三), 하삼(下三)리에서 "三"자를 따
삼천리라 불렸습니다....
신태인은 일제침략과 농지수탈의 산 역사를 그대로 지닌곳이며,
평야부의 중심에 위치, 일본인들이 많이 옮겨 살았고,
경제적 실권도 그들이 휘둘렀습니다.
당시 호남평야의 중심에 자리잡은 김제 옥구 익산 정읍지역과 함께
신태인도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인들의 수탈의 주무대로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며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