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을 꿈꾸는 그녀들<1>
농촌총각 장가보내기에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지원을 해가며 팔을 걷어붙였다. 인구감소도 문제지만 나이 50이 넘도록 ‘장가못가는’ 총각들의 삶의 질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여수시가 추진한 농촌총각의 베트남 처녀와의 국제결혼 과정을 6박7일간 현지 동행 취재하였다. 이를 맞선보기, 결혼식, 신혼여행, 대책마련 등 4회에 걸쳐 시리즈로 싣는다.<편집자주>
(1) 맞선보기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특공작전
최근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이슈로 등장한 문제가 국제결혼이다. 예전 같으면 상류층에서나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이루어지던 국제결혼이 이제는 한국의 농촌사회로 전이되어 ‘장가 못가는’ 농촌총각의 탈출구로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6월 27일부터 7월3일까지 여수시가 추진한 농촌총각들의 베트남 처녀와의 국제결혼 과정을 현지 동행 취재하였다. 베트남 처녀와의 국제결혼은 베트남 당국의 단속으로 낯 내놓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야밤에 특공작전처럼 택시로, 오토바이로 갈아타면서 장소이동을 하며 선을 보았다.
10명의 여수 농촌총각들은 코리아웨딩스쿨(대표 나순자) 주관으로 설레는 마음을 안고 27일 오후 8시 인천공항에서 베트남으로 떠났다. 호치민공항에 28일 새벽 1시에 도착하여 숙소에 가자마자 짐도 풀지 못한 채 대기하고 있던 20여명의 베트남 처녀와 1명의 농촌총각이 먼저 선을 보았다.
이번에 동행한 여수 총각들은 나이가 35세에서 51세였고, 학력은 국졸에서 대졸까지였다. 일행중에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여자 앞에서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이도 있고, 발음이 약간 부정확한 언어장애를 가진 이도 있었으며 재혼인 경우도 있었다. 선을 보는 베트남 처녀들은 18세에서 35세까지이며 중졸과 고졸이 대부분이었고 호치민에서 3시간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농촌에 살고 있는 처녀들이었다.
나순자 회장은 선을 보는 베트남 처녀들에게 먼저 “한국 사람과 결혼하면 무조건 잘 산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면서 “세계 어느 나라든 열심히 일해야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남편을 사랑하고 시골에서 일하며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사람만 남자를 선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새벽 2시께 일행중 35세에서 42세 이하인 5명의 총각들은 택시로 이동하며 골목길에 들어있는 한 식당의 2층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70여명의 베트남 처녀들이 3층과 4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옆집에서 알면 신고할 우려가 있으니 조용히 하라는 식당 주인의 당부가 있었다.
선을 보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먼저 1명의 남자가 정해진 방에 들어가 5~6명의 베트남 처녀 가운데 나이와 외모, 느낌에 따라 1~2명을 선택하는데, 이를 반복하면서 60~70명의 여성들을 차례로 보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선택되어 남는 사람은 역시 5~6명 정도다.
다시 이들을 대상으로 학교, 가족관계, 직업 등을 서로 알려주는 절차를 밟았다. 양쪽이 필요한 사항을 알려주면 서로의 기대와 차이를 생각하고, 선택 여부를 결정짓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5명중 4명의 총각만이 신부를 선택했다. 이 때까지 2시간여의 시간이 걸렸다.
새벽 4시께 다시 남아있던 4명의 총각과 합류하여 5명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다. 택시 2대를 나눠 타고 이동한 뒤 오토바이로 옮겨 타고 좁은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 허름한 한 가정집으로 안내되었다. 역시 그곳 2층에서 앞의 절차대로 반복하면서 39세에서 46세의 3명의 총각만 신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베트남 처녀가 나이 차이 때문에 총각을 거절하기도 했다.
남은 사람은 고령자인 44세와 51세의 2사람이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다. 웨딩드레스를 판매하는 상점의 3층으로 갔다. 44세의 주 모씨는 약간의 언어장애, 51세의 강 모씨는 재혼이었다. 이같은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그래도 좋다는 여성만 서로 선택하였다.
이렇게 해서 10명의 총각이 모두 짝을 짓고 보니 이미 동이 트고 시계바늘은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들의 나이 차이는 15세에서 20세 수준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나이 차이이지만 베트남 처녀들은 이를 감수하고 한국인을 선택했다.
베트남 처녀들은 시골에서 호치민으로 올라와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을 위해 며칠씩 마담뚜의 숙소에 머물며 ‘선’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그녀들이 좁은 숙소에서 며칠씩, 또는 몇주씩 견디며 있는 것은 바로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정인서 조선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