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관과 학교
관광 도우미
류 금 남
1911년 진남관에는 여수 공립 보통학교 (현 여수 서 초등학교)와 여수 공립 심상 소학교(현 여수 동 초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보통학교는 한국인 자녀를 가르치는 곳이었고, 심상 소학교(尋常 小學校)는 일본인 자녀를 가르치는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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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일제는 신 교육령을 반포하고 한일인(韓日人)에 교육조건을 균등하게 시행한다고 선전했다. 1938년 이후에 건립된 학교는 한국인 자녀를 받아들이면서도 심상 소학교라 했다.
여수 공립 심상 소학교는 1916년 4월에 떨어져 나갔고, 여수 공립 보통학교는 1935년 3월에 현 서 초등학교 위치로 자리를 옮겼지만 교실 부족으로 일부 학생들은 여전히 진남관에서 공부를 했으며, 여수 서 국민학교로 개칭된 후에도 1955년경까지는 진남관에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
보통학교와 심상 소학교를 통털어 국민학교(國民學校)라고 부른 것은 1940년부터다.
1945년 9월 여수 구봉 국민 학교(현 여수 중앙 초등학교)가 진남관에서 탄생했으나 곧 이전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여수 동정 공립 국민 학교(현 여수 남 초등학교)가 진남관에서 개교했다. 여수 동정 공립 국민 학교는 다음해 4월 자리를 옮겼다가, 1947년 9월에는 여수 봉산 국민 학교(麗水 鳳山 國民學校)라 개칭하고 1년 후 다시 진남관으로 돌아왔었고, 1953년 국동(菊洞) 현 위치로 신축 이전하면서 여수 남 국민 학교가 됐다.
1945년에 출발한 여수 중학교가 1946년 6월 진남관으로 와서 공부를 하다가 다음 해 10월에 일본군 병사 판자집 막사였던 현 공화동 위치로 옮겼다.
1946년 10월 1일 조종응(趙鍾應)이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중학교에 못 들어가는 근로 청소년들을 위하여 진남관 한 칸을 빌려 속칭 여수 야간 중학원(麗水 夜間 中學院)을 설립하여 시내 각급 학교 교사들의 봉사로 수업을 했고, 2년 후에는 여수 야간 상업 중학원으로 개칭했다.
1952년 조종응 선생이 별세하자 문을 닫았으나, 곽백련(郭伯連)이 학교를 다시 세우기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여수 상업 고등학교를 건립했고 1961년 8월 31일 남산동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했다.
그리하여 진남관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1917년 5월에 출범한 麗水 公立 水産 簡易 學校 (현 여수 대학교)가 진남관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으나, 엄밀히 말해 현재 진남관 서남쪽 비석군(碑石群)과 그 부근 일대였다. 1921년 4월 1일부터는 수업연한 2년의 公立水産學校로 승격되었고, 1922년 4월에 종포로 이전해 갔다.
끝.
글 쓴 날: 2004. 3.23./ 2004.9.10.
참고 문헌: 여수s여천 발전사 (김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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