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유지 목사는 부인을 사별하고 미국으로 귀국하다(4월).
광주의 삼일만세운동에 양림교회 교인들이 대거 참여하자 일제는 북문안의 교회당 터를 몰수하였다.
광주의 삼일만세운동 거사 계획은 양림리의 남궁혁 장로 집에서 양림교회 교인들(김강, 최병준, 황상호, 강석봉, 한길상, 최영균, 최정두, 서정희, 김태열, 홍승애 등)과 비밀 독서모임 회원들(정상호, 김복수, 박팔준, 김용규, 한길상, 최한영, 강석봉, 김태열, 강생기 등)을 주축으로 진행되었다. 이 회의에서 서정희는 시민들을, 김강은 양림교인들을, 홍승애는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을, 최병준은 숭일학교 학생들을, 김태열·최영균·김용규 등은 시내 각급학교 학생들의 동원을 맡았다. 최한영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국가 등의 인쇄를 맡았고 자금은 이기호가 맡았다. 3월 10일 만세물결은 본정을 거쳐 법원 앞을 지나 경찰서 앞까지 진행하였다. 100여명이 체포되고 이 가운데 12명이 양림교인으로 확인되었고 그 중 김철·최병준·김강·최한영·황상호·김철주·홍승애·박애순 등은 실형을 선고 받았다. 최흥종 장로는 서울에서 만세시위 중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김윤수 장로 소천하다(4월경). 오웬기념각에서 임시로 예배드리기 시작하다(5월경). 남문밖에 교회당을 건축하고 이전하다(10월경). (출처:광주양림교회 홈페이지 http://www.yangrim.org/home/profile/main-1.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