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
글,그림; 한 병인
1, 어지럼이란 무엇인가?
어지럼은 의학용어로 주위가 평소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느낌을 말한다. 해부생리학적으로는 눈과 전정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신호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에 두뇌가 혼란에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전정기관은 내이(內耳)에 속하는 기관으로, 측두골(側頭骨) 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림 1).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창 밖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평형기관은 몸이 제자리에 앉아 있다는 정보를 보내고, 눈은 몸이 움직인다는 정보를 보내는데, 두뇌는 이 두 가지 정보 중에서 어느 쪽을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서 갈등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어지럼을 유발하는 것이다(그림 2). 한편, 두뇌 자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어지러운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두통, 열, 피로, 우울, 배고프거나 머리를 세게 부딪힐 때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2, 어지럼을 유발하는 질환
눈, 전정기관(vestibular organ), 두뇌에 생기는 질환이 어지럼을 유발할 수 있다. 눈에 생기는 질환은 쉽게 진단이 되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전정기관 질환으로 생기는 것을 “말초성 어지럼”이라고 하는데, “양성 돌발성 체위성 어지럼”, “전정 신경염”, “메니에르 병” 등이 있다. 두뇌 질환으로 인한 것을 “중추성 어지럼”이라고 하는데, 뇌경색, 뇌출혈, 뇌종양 등이 있다. 앉았다가 일어설 때 시야가 흐려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힘이 빠지는 것은 빈혈, 심혈관 질환, 경동맥 협착, 기립성 저혈압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은 질환이 아니라면, 약물 부작용이나 심리적인 원인일 수 있으며, 고령자가 아무 질환 없이 어지럽다면 노인성 어지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3, 어지러우면 왜 메스꺼운가?
어지러울 때 우리의 두뇌는 나쁜 물질이 몸에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여, 위장에 있는 내용물을 배출하기 위해 구토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심하면 설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구토를 하게 되면 상당히 불쾌할 뿐 아니라 식도가 파열될 위험도 있다. 구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4, 진단 과정
어지럼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뇌나 심장과 같은 중요한 부위에 질환이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문진; 어지럼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걸을 때 심한지 누울 때 심한지, 주위가 빠르게 도는 것처럼 느끼는지 등을 의사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또는 귀에 질환이 있었는지도 말해 주어야 한다.
진찰; 의사는 눈의 움직임을 진찰하기 위해서 의사의 손가락을 바라보게 하거나, 머리를 흔들게 하거나, 눈을 감고 균형을 잡고 서 있으라고 할 것이다 (그림 3). 침대에 앉았다가 갑자기 뒤로 눕게 할 수도 있다 (그림 4). 진찰 시에 메스꺼움이 심하면 약물치료를 먼저 하기도 한다.
검사; 어지럼 진단에는 다양한 검사기구들이 사용된다. “프렌쩰(Frenzel) 안경 검사”는 시야를 가린 상태에서 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구이다.(그림 5). “전기 안진 검사 (Electro-oculography; EOG)”와 “비디오 안진 검사 (Video Nystagmography; VNG)”는 여러가지 자극을 준 후에 눈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전정 유발 근전위 (Vestibular evoked myogenic potentials; VEMP)”와 “시각 인지 기능 검사 (Subjective Visual Vertical; SVV)”는 전정기관의 기능을 검사하는 방법이다. “초음파 뇌혈류 검사(Transcranial Doppler; TCD)”는 두뇌의 혈관을 검사하는 기구이다(그림 6).
5, 어지럼의 원인질환
어지럼의 흔한 원인은 주로 전정기관 질환이며, 대표적인 질환은 “양성 돌발성 체위성 현훈”과 “전정 신경염”이다.
(1) 양성 돌발성 체위성 현훈(良性 突發性 體位性 眩暈)은 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를 번역한 것으로, 영어권 사람들은 BPPV로 줄여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양성”이란 것은 위험한 병이 아니란 뜻이고, “돌발성”은 갑자기 발병한다는 말이며, “체위성”은 체위에 따라 어지럽다는 뜻이다. 이 질환은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이석(耳石)들이 '반고리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발병한다. 이석이 떨어지는 이유는 전정기관 前庭器官)의 혈액순환이 나빠지거나, 머리를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이석을 고정하는 조직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반고리관은 전정기관 안에 자리잡고 있다. 한 쪽에 세 개씩 양쪽에 6 개가 있고, 반고리 관 안에서 이석이 있는 위치도 다르기 때문에 진단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 여기에 대하여 세계의 어지럼 연구자들이 활발히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이다. 본원의 어지럼 크리닉에서도 자체 개발한 두 가지 진단법을 2006 년과 2007년에 세계학술지인 Neurology에 소개한 바 있다.
이 질환은 대부분 "이석 정복술"로 치료가 잘 된다. 이석 정복술은 이석을 원래의 자리로 넣어주는 주는 방법으로써, 6 개의 반고리관에 따라 다양한 정복술이 개발되어 있다. 가장 먼저 소개된 것이 1992년에 개발된 “에플리(Epley) 정복술”로, 뒤 반고리관의 이석을 원래의 자리로 옮기는 방법이다 (그림 7). 정복술을 한 후에도 집에서 어떤 자세로 잠을 자거나, 어떤 음식을 피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모든 환자가 한 번 만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복술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치료가 성공적으로 되더라도 경미한 어지럼이 2 달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 이석을 제거하기 위해서 수술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반고리관은 아주 작을 뿐 아니라 두개골의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수술로 도달하기가 어렵고, 이석 하나의 지름은 10 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아주 작기 때문에 맨눈으로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2) 전정신경염(煎庭紳經炎)은 서 있을 때, 마치 술 한 것처럼 길바닥이 움직이는 것같은 느낌이 들고, 면 어지럼을 덜 느끼는 것이 특징이다. 전정신경염은 전정기관을 지배하는 전정신경에 바이러스가 침범하면서 발병한다. 회복은 몇 일만에 되기도 하지만 6 주까지 어지럼이 지속될 수도 있고, 회복 되었다가 수 개월 후에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서 전정기관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켜야 한다. 어지럽다고 누워 있기만 해서는 회복이 느리다. 눈을 양쪽으로 번갈아 보거나, 양발을 앞뒤로 붙여서 걷는 동작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그림 8)
6, 어지럼의 응급처치
어지럼이 갑자기 생기는 경우는 전정기관 질환이거나 뇌혈관질환일 가능성이 많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지럼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최선이다. 만약, 졸리거나, 사물이 여러 개로 보이거나, 팔 다리의 힘이 약해진다면 뇌혈관질환일 가능성이 높고, 가슴이나 배가 아프다면 심장이나 대동맥의 질환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즉시 도움을 청해야 한다. 또한,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어서 저혈당이 예상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간혹, 빈혈이나 영양부족인 줄 알고 음식을 잔뜩 먹고 나서 심하게 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탄수화물 음식인 설탕이나 꿀물이 좋다. 커피, 우유, 주스 등은 구역질을 유발할 수 있다. 구역질을 느끼는 도중에 만약 혀 밑에 침이 고인다면 곧 구토가 나올 것이라는 징후이므로, 고개를 숙이고 토할 준비를 해야 한다. 위장의 용량은 1 리터 정도이지만 구토량은 보통 300 cc 정도의 그릇을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그림 9). 또한, 손바닥 쪽의 손목주름에서 5 cm 몸 쪽의 지점에 있는 내관(內關: PeriCardium-6)을 자극하면 도움이 된다 (그림 10).
7, 어지럼의 생활치료와 예방
어지럼 치료를 받은 후에도 어지럼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운전석에서 내릴 때에 어찔하거나, 정차 중에 차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기도 한다. 제자리로 들어간 이석이 원래 위치와는 다르게 놓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지럼에 대한 불안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럴 때에는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어지럼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전정기관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의 근본 원인이 혈관의 동맥경화이므로, 담배, 카페인, 매연, 스트레스 등을 피하는 것이 좋다. 수영이나 사우나와 같이 신체에 급격한 온도변화를 야기하는 활동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많이 걷는 것이 혈관에 좋은 운동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는 분들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 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