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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주제 공산주의ㆍ사회주의 원리와 그 변천 |
제2주제 공산주의ㆍ사회주의 원리와 그 변천
어떤 현상을 잘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 되는 뿌리를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우리는 현재의 상황이나 그 이념만을 고찰한다면 진정한 이해가 될 수 없다고 보며 이 장에서는 북한이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공산화된 역사적 배경을 간략히 고찰하고자 한다. 즉, 20세기에 들어와 소련공산주의의 세계 공산화 전략에 의해 지구상의 반이 넘는 지역이 공산화된 결과의 희생물이 된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공산주의ㆍ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제도의 부정과 공유재산제도의 실현으로 빈부의 차이가 없는 사상을 말하며 공산주의 사회란 그러한 공유제도하에 빈부를 차별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를 말한다. 이러한 사회가 과연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면 누구나 가서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사회는 지구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음을 사람들은 차츰 알게 되었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사적 배경을 살펴볼 때, 공산주의는 마르크스가 그 이론을 제시한 이래로 공산주의의 목표를 달성한 나라가 없었음은 물론, 이룩하지 못하는, 또한 만들어질 수도 없는 ‘허구적 목표사회’일 뿐이다.
▣ <참고자료> 이를 부연 설명하면, 인간이 일할 능력이 있으면 일하고 능력이 없을 때는 하지 않아도 자기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분배받아 살 수 있는 그야 말로 지상 천국 같은 이상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중엽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말은 엄밀한 구별 없이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는데, 마르크스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개량주의적 사회주의와 구별하기 위하여 '공산주의'라고 하였다. 여기서 비교하는 관점에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초보적 단계로서 완전한 분배상의 평등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
그러나 오늘날 공산주의에 관한 이해는 문헌에만 남아 있거나 유토피아로 치부되어지는 죽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회주의적 정치행태로 설명되기도 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840년대 이후 서유럽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창시된 마르크스주의를, 레닌이 20세기 초 러시아의 특수한 조건하에서 발전시킨 사상 및 이론의 체계와 실천운동이다.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즉 공산당(共産黨)이 수립한 과거 소련ㆍ동유럽ㆍ중국(대륙)ㆍ북한ㆍ인도차이나반도 등지의 공산당 일당독재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여파가 유럽의 정치와 사회에 격심한 파동을 일으킨 격동의 시대 산물이었다. 특히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이후 산업현장에서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과도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본주의 착취를 문제 삼기 시작하였다. 즉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의 상황을 더욱 심화시켜 두 계급의 양극화를 초래하며 결국에는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본주인 브루조아 계급에 대항하는 폭력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보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물론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적 논리대로 이루어지는 필연적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 폭력혁명을 달성시킨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를 이룩하고 ‘사회주의 사회’ 단계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된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마르크스-엥겔스가 헤겔의 변증법(辨證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唯物論)을 결합시킨 유물변증법적인 역사관 즉,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전개한 것은 유명하다. 유물사관은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에 나타난 여러 사회제도의 출현과 붕괴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사회발전의 법칙에 따라 5단계로 설명하였다. 즉,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사회’-> ‘중세 봉건사회’-> ‘근대 자본주의사회’-> ‘공산주의 사회’로의 역사 발전 과정은 상당히 논리적이며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앞부분은 그런대로 수긍되는 면이 있지만 마지막 단계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자체 모순(자본가의 노동자 착취와 상호 갈등 등)에 의해 붕괴되어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부분은 크게 잘못된 예측이자 의도적인 이론이었음이 이미 증명되고 있다.
▣ <참고자료> ‘유물사관’이란 ‘사적 유물론’이라고도 하며 인간은 생산을 중심으로 서로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한 시대의 생산관계(정신, 정치, 문화 등의 상부구조)는 그 시대의 생산력(물질, 경제 등의 하부구조)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인류 사회의 발전과정은 양자의 상호 모순과 그 극복 발전과정(계급투쟁과 혁명)에서 사회혁명이 피지배계급 측에 의하여 일어나, 마침내 새로운 생산관계(경제제도)가 창설되고, 이에 따라 정치제도를 비롯한 상부구조도 바뀌면서 역사가 전개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주장들은 대부분 1867년에 출간된《자본론》에 수록되어 있다. 《자본론》제1권을 쓴 마르크스는 그의 생전에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엥겔스가 그의 원고를 정리하여 뒤에 출판하였다.(우리나라에도 번역판이 일부 나와 있다) 엥겔스는 ‘사적 유물론’과 ‘잉여가치론’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고 자부하였으며, 대체로 70년대부터는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하고, 생시몽, 푸리에, 오엔 등의 선구적인 사회주의에는 과학적 이론이 없다고 하여 '공상적 사회주의'라 불리기도 한다. ▣
2. 세계 공산화의 실제 과정과 그 특징
마르크스-엥겔스의 계급투쟁과 유물사관을 골자로 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더 간명하게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사건이 1917년 레닌의 지도 아래 러시아 제정을 전복시킨 볼셰비키 혁명이다. 레닌 중심의 소수 직업혁명가들은 혁명을 성공시킨 이후 '러시아공산당'을 결성하고 러시아를 공산화시킨 다음 세계 공산화의 전략을 펴는 공산주의 종주국이 되었다.
◈ <참고자료> 공산주의 사회 식량배급제도의 기원(간수의 독특한 리더십과 배급제도) 러시아 혁명을 완수하고 소련 공산주의를 실현시킨 레닌이 초기에 혁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감옥에 갖혀있을 때, 험악하고 짐승 같은 흉악범들이 왜소한 간수에게 절절매며 순한 양같이 복종하는 모습을 보고 레닌이 간수에게 묻기를 “어떤 기술로 그렇게 죄수들을 꼼짝 못하게 다스릴 수 있느냐?”고 그 비결을 물었다. 간수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말을 잘 듣는 죄수에게는 빵을 더 주고, 말을 안 듣는 죄수에게는 빵을 주지 않는다. 그랬더니 하나같이 빵을 얻어먹기 위해 말을 잘 듣더이다”고 하였다. 인간에게 먹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것을 절감한 레닌은 혁명에 성공한 후 인민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식량을 위주로 한 생필품을 ‘배급제’, ‘정량제’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후 이러한 배급제도는 공산주의체제의 특징이 되었다고 한다. ◈
러시아 혁명의 과정은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시작이자 세계 공산화로 이어졌다. 1917년 2월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와 군인들이 러시아 제정의 차르 니콜라이 2세를 축출했다(2월 혁명). 사회주의 성향의 케렌스키 임시정부와 레닌의 혁명노선 사이에는 갈등이 노출되었고 결국 같은 해 10월 레닌의 소수 직업혁명가들을 핵심으로 한 볼셰비키 전위대는 임시정부를 타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수했다(10월 혁명). 1921년 3월의 전국공산당대회에서 볼셰비키(공산당)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의 생활 전반을 통제할 일사불란한 단일정당으로 확립되었다. 레닌은 공산주의를 국제적 차원의 운동으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국제주의(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신봉하고 있었다. 이것은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모든 사회발전의 세계사적 필연성이라는 것과 각국 노동자의 이해(利害)는 지속적·궁극적으로 볼 때 동일하다는 것 등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이루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국제적 차원으로 확산시키려는 세계 공산화 혁명은 아시아 국가 등 자본주의 영향이 가장 적은 국가 등으로부터 시도되었다. 1924년 레닌이 죽자 스탈린이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했다. 레닌의 충실한 후계자임을 자처했던 그는 세계혁명의 보루(堡壘)가 될 소련공산주의의 강력한 토대를 주장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차후 세계의 반이 넘는 지역을 공산화시켰다. 소련의 대표적인 공산화 수법은 소련 군대를 앞세운 강압적인 공산주의 이식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에 동구 여러나라가 공산화되는 형태나 북한의 소련군 점령 형태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국, 월남 등 지역과 같이 소련 공산주의자가 공산화 대상 지역에 침투하여 토착공산세력을 양성하고 그들을 코민테른이 통제하였다. 코민테른(Comintern)이란 ‘제3인터내셔날’(The Third International)로도 불리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날(Communist International)의 약자이며 1919년부터 1943년까지 존속하였던 공산주의 전략을 실천하던 국제기구를 말한다.(정치학대사전, 아카데미리서치, 2002, p. 2410.)
우리의 관심 대상인 북한은 소련군에 의해 공산국가체제를 갖추게 된 점은 유사하나 동구 국가들은 비교적 토착공산세력이 주동이 된 면이 있지만 북한은 이 점에서 좀 다른 형태를 보인다. 즉,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전하여 승리한 연합군의 자격으로 북한에 진주하면서 점령지 국적을 가진 자를 앞세워 공산화시킨 점에서 ‘소련 군용화물열차에 실려 온 정권’(baggage-train regime)으로 부르기도 한다. 소련은 1917년 혁명 이후 1987년까지 70년 동안 소련 공산당이 자국의 공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시킨 사람이 6천여 만명에 이르며 세계의 반 이상을 공산화시키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은 파악하기도 어려운 규모이다. 이렇게 값비싼 희생을 초래했던 어마어마한 공산제국도 결국 1989년 동구 여러나라들의 공산체제가 연쇄적으로 해체되는 변화속에 1991년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 정책으로 공산국가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공산주의는 사실상 이 지구촌에서 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의 공산화 잔재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 몇나라가 있다. 중국은 자본주의 경제원리를 도입하며 나름의 중국식 사회주의, 즉 그들이 말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中國特色的社會主義)로 변형되었으며, 기타 개혁ㆍ개방을 추진(‘도이모이’)중인 베트남과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북한 등이 잔존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3. 공산주의ㆍ사회주의의 변형
가. 변형의 이론적 설명
공산주의의 전(前))단계로서 역사상에 등장한 사회주의는 대체로 반자본주의 및 반개인주의라는 의미를 강하게 나타낸다. 사회주의가 가지는 공통된 성향으로는 개인주의적 경쟁원리에 반대하고, 협동의 원리를 통해 빈곤해소와 빈부격차의 완화 및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여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만 즉시 공산주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과도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의 특성을 갖고 있다.
▣ <참고자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특징을 든다면 ① 집체적인 노력동원에 의한 재화 배분, ② 점진적인 계급의 소멸, ③ 전체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하는 명분을 내건 소수 혁명가들의 국가기구 장악, ④ 사회주의적 의식의 주입(사상 개조 교육), ⑤ 평등성의 증대, ⑥ 일당지배 국가가 관리하는 계획 경제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
그리고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단계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발전 전략을 실천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이러한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과정에서 많은 경제적인 비효율성과 인간성에 위배된 정책들을 채택하면서 대실패를 초래하게 되어 결국에는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동안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목표로 했던 제반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특징을 살펴보면, 그들은 집권초기에 공산당을 조직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체제내의 모든 인적(人的), 물적(物的) 및 사상(思想) 등의 역량(力量)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들의 정치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들의 동원방식은 아마도 겹겹이 쌓인 산위에 떠있는 ‘찬란한 무지개’(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잡아야 한다고 하면서 주민을 첫 번째 산등성이까지 이끌어 올렸는데, 산등성이에 오르면 무지개는 잡히지 않고 다음 산꼭대기 위에 다시 떠있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시 이 무지개를 잡아야 한다고 주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동원과정(계속혁명론)을 수 십 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주민들도 몇 개의 산을 넘는 과정에서 ‘찬란한 무지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희망사회’일뿐이라는 만시지탄의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국제공산주의의 운동사적 배경을 살펴볼 때 그 실천과정에서 노정되는 이데올로기와 현실간의 괴리는 각자 개별 국가들의 상황에 따라 정도를 달리해왔다. 그 특징은 주어진 대내외적 여건과 통치자의 카리스마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사회주의의 모습으로서 변형되어 정치체를 유지해왔다. 오늘날 실제로 자기 환경에 맞게 변형된 사회주의 체제를 강조하면서 경제발전을 꾀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중국의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꼽을 수 있으며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분석될 수 있다.
여기서 최근 사회주의의 변화를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모델)들을 개관하면 좀 더 이해가 쉬워진다. 첫째, 현대화론과 연관을 가지면서 마르크스주의 관점이 내포된 경제결정론적 가정하에 제시된 ‘수렴이론’(convergence theory)을 들 수 있다. 이는 일종의 경제(하부구조)결정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상반된 체제간에 필요한 장점들을 서로 도입하기 위해 실제로 중간의 어떤 방향으로 양측은 모두 변화 수렴한다는 이론이라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수렴이론은 화합의 희망이지 실제로 검증된 이론은 아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공산권의 변화 방향을 고찰하는 중요한 패러다임의 하나이다. 둘째, ‘세계체제 공영(共榮) 모델’을 들 수 있다. 이 모델은 개별국가들이 ‘자력갱생’식의 생존에 한계를 느껴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합류되지 않을 수 없는 흐름을 설명하는 것이며, 특히 최근 동서(東西)이념 대결의 비중이 약화됨과 아울러 남북(南北)문제인 빈부대결(貧富對決) 양상이 심화되고 중요한 관심으로 대두되면서 이 설명 모델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승리로 판가름 난 현실속에 사회주의권은 생존을 위한 변화모색이 당연히 이루어지면서, 세계경제 중심인 자본주의 공영권에 편승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그들의 적응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셋째, ‘자유화 확산모델’을 들 수 있다. 사회주의체제가 사유재산 개념이나 자본주의 경영방식을 도입하게 되면서 그 이념인 자유화 또는 민주화 사조(思潮)의 침투와 확산을 면할 수 없게 되며 이는 동시에 문화, 정치, 생활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의 사회주의 체제의 변동을 설명하는 이론(모델)들은 관점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는 모두 중복되고 있으며 상호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공산권의 변화 양상 혹은 특징들을 설명하는 이론들의 공통적이고 중요한 현상을 열거한다면 대개 다음의 몇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이데올로기의 변질과 새로운 기능적 적응 현상이다. 둘째, 당과 관료제의 합리적 방향으로의 기능적인 변화이다. 셋째, 우상화로 대표되는 카리스마적인 독재자가 사망한 후에 흔히 나타난 집단지도체제 혹은 권력분립체제의 출현 현상과 우상화 독재자의 격하운동이다. 넷째,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서 경제분야의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중앙집권적인 통제경제는 생산성의 하락을 초래하고 경제침체 문제에 직면하면서 시장경제와 각종 자본주의 방식을 선별적으로 도입하는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다섯째, 교육ㆍ.문화ㆍ생활방식의 변혁을 점차 요구하게 된 것이다. 경제개혁은 곧 개방과 함께 선진 과학기술의 도입과 서구사상의 침투를 수반하며 이는 곧 교육, 문화 그리고 생활방식 등의 이질적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통치구룹에서 흔히 강조되어 온 ‘사상오염’(思想汚染) 혹은 ‘우리식대로 살자’는 등과 같은 정치 구호들이 등장하게 된다. 여섯째, 정치테러, 공포정치의 획기적 완화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비밀경찰이나 군대 등을 통해 정치테러, 위협 및 숙청 등을 정치권력 행사의 중요한 무기로 삼아 인민을 복종하게 하였으나 이제는 점차 그 한계를 느끼면서 주민들에게 새로운 체제에 대해 설득하며 당 리더십에 대한 신뢰 확립을 위한 정책방향을 전환하는 등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소련, 동구권, 중국, 베트남 등 국가들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혁명적, 이데올로기적 지향’의 체제 이데올로기 요소와 ‘실용주의적, 합리적 지향’의 체제 이데올로기 요소가 상호 갈등하면서 변화된 것임을 아래 대조표로 나타낼 수 있다.
◈ <참고자료> 사회주의 체제 변동의 갈등 요소 대비
‘혁명적, 이데올로기적 지향’요소 --->‘실용주의적, 합리적 지향’요소 ----(교조주의-敎條主義)---------(수정주의-修正主義)
----------------정치우선 ---> 경제(이윤)우선
-----이데올로기, 사상 우선 ---> 과학기술, 전문지식 우선
--------------좌경(左傾) ---> 우경(右傾)
--------혁명적, 이상주의 ---> 합리적, 실용주의
--------------홍(紅,red) ---> 전(專,expert)
------정신유인(精神誘引) ---> 물질유인(物質誘引)
--------------평등주의 ---> 업적주의
---------폐쇄, 자력갱생 ---> 개방, 대외협력
----------------........ ---> ........ ◈
▣ <참고자료> 홍(紅)과 전(專)이란 용어는 중국에서 사용한 것으로 혁명과정에서 대비되는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나타낸 말이다. 사실상 중국의 혁명과정 시기의 역사에서 홍과 전의 갈등이 대조적으로 보였다. 특히 ‘홍’이란 혁명과정에서 공산주의 붉은 사상과 혁명의 피끓는 의지를 강화하려는 공산당 강경파를 뜻하며 모택동이 문화혁명시기에 ‘홍위병’을 동원한 것도 그러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전’이란 ‘홍’위주의 모택동에 맞서 실용주의를 내세웠던 유소기 등을 중심으로 한 수정주의를 예로 들 수 있다. ▣
▣ <참고자료> '자력생갱'(自力更生)이란 용어는 특히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강화되면서 대표적으로 나타난 정책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북한의 ‘주체사상’ 중 ‘경제에서의 자립’이 가진 의미가 우리만의 힘으로 살아가자는 자력갱생이라 볼 수 있으며 이것 때문에 심각한 경제침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이 대조표의 내용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사회주의권의 ‘교조주의’가 ‘수정주의’로 변화하는 방향은 곧 홍(紅,red)에서 전(專,expert)으로, 그리고 좌경(左傾)에서 우경(右傾)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변화방향은 항상 오른쪽 방향(우경)으로 변화는 것이 아니라 경우와 상황에 따라 반전(좌경)의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사회주의 역사상 많은 사례에서 좌우사이를 오가는 소위 ‘진자식 변동’이 있었던 경우는 많았다.
나. 변형의 실제
이러한 관점을 실제적으로 살펴보면, 중국과 북한의 개혁과정은 그 유사성을 많이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도 중국과 북한은 동양권의 가까운 사회주의 국가로서 상호 협조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냉전체제의 종식과 함께 어떤 면에서 견제의 대상이었던 소련의 해체와 함께 가일층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동병상련의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개혁을 추구할 때 비교적 성공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개혁모델을 답습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결국 중국과 북한 양국의 개혁성향을 분석할 대, 이들은 공히 시장경제와 대외개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나 모두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념아래 각각 자기들 식의 사회주의를 내세움으로서 대외명분을 강구함은 물론 대내적으로 인민들의 일체감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양상은 달리하지만 중국에서는 등소평을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밋형 통치체제가 확립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오늘날의 후진타오체제와 김정일체제가 확고히 자리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 북한의 개혁경험이 다름으로 인한 차이는 있겠으나, 이는 그들의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고, 각 단계에서 주어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책을 달리하는 전략,전술적 차이라 분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권의 변화는 점차 확산추세에 있어 공산화 통일된 베트남도 최근 '도이모이'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므로써, 베트남전의 적이었던 미국과 수교도 맺고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지금 많이 진출하는 등 베트남의 변화는 놀라운 정도이다. 이러한 변화추세는 곧 북한에도 영향을 미쳐 대대적인 개혁 개방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07년 10월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예정 성사된 것은 북한 변화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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