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나라 경제 지표들을 보며 ‘경제가 그리 비관적은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부존 자원이 부족한 우리 경제의 바로미터는 바로 수출이다. 그런데 수출 무역 흑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 1월에서 3월까지의 무역 흑자는 무려 67억 8,500만 달러에 달한다. 국가 전체의 부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제 곧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할 것이다’ 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5월 경제협력기구(OECD)는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당초 4.75%에서 5.6%로 상향 조정했다. 5% 이상의 경제성장률,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장밋빛 미래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주위에서는 온통 죽겠다는 아우성뿐이다. 국가의 부가 늘어났는데도 실업 문제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젊은이들의 실업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오히려 IMF 외환위기 때보다도 심각하다.
구조적인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 부의 편중 현상이 눈에 띄게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적인 예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삼성전자의 영향력이다. 올 1~3월 국내 총수출액은 593억 7,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중 16.6%인 98억 6,000만 달러를 삼성전자에서 올렸다. 특히 무역 흑자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려 30.7%인 20억 8,000만 달러에 이른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보고 삼성전자가 부를 독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삼성전자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세계 속에 한국을 심는 민간 외교관의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삼성전자의 성과가 우리에게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상대적 빈곤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 경제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그들의 실책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보면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강력한 소수의 경쟁자들이 시장을 싹쓸이 하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힘없는 다수의 기업들은 하청업체로 몰락해서 강자의 요구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들은 이러한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브랜드
_ 보이지 않는 엄청난 가치, 브랜드 없는 제품은 경쟁사의 먹이
“공장에서 제조되는 것은 제품이지만 소비자가 사는 것은 브랜드다.” 유명한 다국적기업 WPP Group의 전 회장이었던 스테판 킹(Stephen King)의 말이다. 이 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의미를 내포한다. 누구나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출시할 때 기본적으로 브랜드(이름)를 만들어 붙인다. 그러면 제품을 사는 것과 브랜드를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여기에서 말하는 브랜드는 단순한 의미에서 제품의 이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의 1차적인 사전의 뜻은 ‘나와 남을 구분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마케팅에서 말하는 브랜드는 단순한 구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고객과의 일련의 약속으로, 신뢰와 일관성을 포함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모아놓은 것이다.
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8가지로 볼 수 있는데 Name, Term, Sign, Symbol, Design, Knowledge, Experience, Image 등이다. 이 중에서 브랜드를 전략적 마케팅의 개념으로 상승시킨 요소가 지식(Knowledge), 경험(Experience) 그리고 이미지(Image)다. 이러한 요소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기업의 미래를 보장하는 가치다. 좋은 브랜드와 그렇지 못한 브랜드를 구분하는 기준이 반드시 제품의 품질에 기인하지는 않는다. ‘맛나’가 ‘다시다’에 비해 더 좋은 원료(소고기 함량)로 만들었으나, 다시다가 제공하는 ‘고향의 맛’이라는 이미지와 경험을 능가하는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구치, 프라다, 알마니 등의 브랜드를 아는 사람들은 10배 이상의 값을 지불하고도 그 제품을 다른 제품의 살 의향이 있다. 그들은 그 제품들이 제공하는 이미지와 상징성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그들은 분명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다. 핸드백 하나를 100만 원이나 주고 사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
그래서 브랜드에 대한 지식(가치의 인정)은 이미지나 경험과 함께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명품 브랜드들의 제조 원가가 여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일까? 조금은 높겠지만 월등히 높지는 않을 것이다. 나머지는 수익이다. 정말 수지 맞는 장사다. 그래도 사람들이 폭리를 취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정당하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반드시 제조원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소비자들이 지불하고자 하는 의향이 있는 가격이 실제 가격이다. 즉, 소비자들은 10만 원으로 핸드백을 사고, 90만 원으로 주위의 부러움이나 자기만족을 산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100만 원을 지불하고 명품 핸드백을 사는 것이다.
이미지와 이야기를 브랜드라는 그릇에 담아야 여기에 어떤 불합리한 부분이 있는가? 필자는 이것이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명품 핸드백을 사는 소비자가 당장 사용할 핸드백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은 소지품을 담을 가방의 기능과 함께 자기를 연출하는 비싼 액세서리를 함께 사는 것이다. 아니 현재는 오히려 본말이 전도되어 액세서리에 물건을 담고 다니는 형국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이제는 제품의 본원적 기능에 다시 한번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만큼 경쟁자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냉장고 제품의 경우 더는 냉장, 냉동 기능만으로 경쟁할 수는 없다. 신발이 질기고 오래 간다는 이유만으로 팔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오히려 빨리 떨어지는 신발이 더 잘 팔릴 수도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항상 새로운 신발을 사 주기를 원하는데, 2~3년간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소문이 나면 아이들은 그 신발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제품에 이미지와 이야기를 더해야 팔린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브랜드’라는 그릇에 담아 제품과 함께 비벼 놓아야 비로소 소비자들이 먹고 싶어하고, 사고 싶어하는 상품 (팔리는 물건이라는 의미)이 될 수 있다.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방법과 아이디어를 요구한다. 또 경우에 따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브랜드가 없는 제품은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거나 경쟁사의 먹이가 될 수밖에는 없다는 사실이다(단 산업재나 부품 등의 경우에는 예외).
감성
_ 감성적 가치를 제품에 추가해야 마케팅에 유리 감성 마케팅은 앞서 이야기한 브랜드 마케팅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의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가치를 사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피곤한 생활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유복한 삶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 줄 제품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구는 기술이나 기능보다는 감성적인 면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가 많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단순히 기능적인 제품이 아니라 감성적 욕구를 충족해 줄 제품을 선호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감성을 구매한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감성 마케팅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감성적 가치를 제품에 추가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감성의 일부분인 감각(오감)을 이용하는 오감 마케팅이라고 불릴 수 있는 방법이다.
첫째 방법의 대표적인 예는 삼성전자가 만든 고급 냉장고 브랜드인 지펠(Zipel)의 사례다. 지금은 지펠의 성공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처음 지펠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지펠의 성공을 예측한 사람이 극히 일부, 아니 전무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삼성이나 LG 등 국내 가전 브랜드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고급 시장에서는 오히려 짐이 된다. 지나치게 대중적인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고급 냉장고 시장은 GE나 월풀 등의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96% 이상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직원들 이외에는 아무도 국내 제품을 쓰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에서조차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모험을 시작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보다는 우리의 안방을 더는 남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사명감에서 시작했다.
당시 냉장고 시장의 싸움은 기술과 부가기능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신선냉장’, ‘3방향 신선냉기’, ‘신선 야채실’, ‘무소음’ 등을 강력한 경쟁우위로 내세웠다. 삼성전자는 고급 냉장고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과감이 포기해야 한다고 결정(정말로 어려운 결정이었다)했다. 그리고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할 때, 기존의 방법을 과감히 버렸다. 지펠은 단순히 냉장고가 아니라 주부들의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남자들이 자동차를 소중히 여기듯이 주부들은 냉장고를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진짜 주부들은 보석을 좋아하기보다는 지펠 냉장고를 보석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지펠을 쓰는 주부들은 진짜 좋은 엄마이고, 좋은 주부라고 홍보했다. 그 결과는 기존 외제 명품 브랜드가 96%를 차지하던 시장을 90% 이상 지펠과 디오스가 차지하게 되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성공을 거두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감성이 이성보다 강하다’는 마케팅의 교훈을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고급 냉장고의 기능을 홍보하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일 수 있다. 사람들은 많은 돈을 지불하고 사는 제품의 기본 기능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제품과 나와의 관계, 더 나아가 그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어떻게 대우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감성적 가치를 홍보하는 것은 어쩌면 침묵으로 기본 기능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하는 한 차원 높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향기, 색채, 소재 등 오감을 건드리는 마케팅 방법 활용
둘째 방법은 전통적으로 알려진 기본 기능에 감각적 가치를 더해서 고객의 감성적 만족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초콜릿 향이 가득한 아이스크림 가게, 무지개 빛깔의 스파게티, 페퍼민트 향과 라벤더 향이 은은히 배어 나오는 양복 등이 그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성이나 취향을 눈에 보이는 색채, 형태, 소재를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무의식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고 이를 매출 증대로 연결하는 것이다.
감각을 이용한 감성 마케팅 방법 중 가장 보편화된 것은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 마케팅이다. 셔츠, 신발은 물론 최근에는 수신음이 울리면 장미, 커피 등의 향기가 나오는 휴대폰 및 화면 영상에 맞는 향이 뿜어 나오는 텔레비전도 개발되었다.
소비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주부들은 콩나물 값을 깎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비싼 화장품이나 옷은 두말하지 않고 산다. 중국에서 만든 나이키 운동화를 국산보다도 비싼값을 지불하고 산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최근에는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론적으로 무엇이 맞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행동은 분명히 예전에 비해 감성적인 가치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제 우리 중소기업들도 그들만의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제품을 잘 만드는 것 못지않게 잘 팔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더 잘 팔리게 하기 위해, 아니 어쩌면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도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브랜드는 기술과 기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비록 현재 상황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는 시대다. 정말 좋은 제품과 브랜드만 있다면 오히려 소비자들이 홍보대사를 자임할 수도 있다. 고난과 시련은 성공의 필요조건이 아닐까? 제품을 만들지 말고,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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